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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59 - 세발자전거 2
S#1. 운동장 / 낮
빈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탄 만수가 신나게 운동장을 돌고 있다.
이만치에서 그 모습을 열심히 보고 있는 해성.
만수는 재주를 부려가며 해성을 중심으로 자전거를 타고 돌다가 드디어 해성의 앞에 와 선다.
만수 : 알겠냐. 자전거를 타는 방법은 아주 간단해. 넘어지지 않으면 되는거야. 자 봐라. (다시 자전거를 타고 해성의 주위를 돌며)
이쪽으로 넘어지려고 하면 무게중심을 이쪽으로. 다시 저쪽으로 넘어지려고 하면 반대로... 이 얼마나 쉽냐. (다시 앞에 서더니)
그리고.. 시선은 멀리 앞을 봐.
해성 : 멀리 봐요?
만수 : 그렇지 너 걸어봐봐.
해성 : 걸어봐요?
만수 : 그래. 자 어서 걸어봐.
해성 : (걷는다)
만수 : 니 발끝을 보면서 걸어봐.
해성 : (자기 발끝을 보며 걷는다)
만수 : 어때. 넘어질 거 같지.
해성 : ..예....넘어질 거 같애요.
만수 : 이제 평소처럼 걸어봐.
해성 : (좀 앞을 보며 걷는다)
만수 : 지금 어디 보고 있어.
해성 : 음... 이 앞이요.
만수 : 거봐. 걷는 속도일 때 그만큼 앞을 본다. 그럼 달리는 자전거 속도 비례로 이동 거리를 생각해보라구.
해성 : (멈춰서 생각해보더니) 아아...
만수 : 더 멀리 앞을 봐야되는 거 이해갔냐?
해성 : (기뻐서) 이해 왔어요.
만수 : 바로 그거야. (자전거에서 내려서 해성에게 넘겨주며) 그럼 이것으로 자전거 강습을 마치고.. 이 몸은 이제부터 내 로봇 애기들하고
씨름하러 가야겠지?
해성 : 저도 같이 가야죠.
만수 : 너는 뭐 더 연습하다 와도 좋고.. (이미 걸어가며) 까짓 로봇 정도야 다 이 정만수 손아귀에서 발발거리는 것들 아니냐..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가고..)
남은 해성, 자전거를 어찌해야 될지 몰라서 우물거리다가 자전거를 타고 쫓아가려다가.. 결국은 그냥 끌고 열심히 쫓아간다.
S#2. 실험실 / 낮
만수가 퍼스널 로봇으로 경로 실험중이다. 로봇을 작동시키면 끽끽거리면서 튀는 게 움직임이 영 부드럽지 않다.
만수, 이리저리 들여다보며 머리를 쥐어뜯으며 다시 컴퓨터 앞으로 가서 앉는다.
해성이 복사물을 안고 들어오며.
해성 : 복사 다했어요.
만수 : 그래. 수고했어. (화면을 노려보며) 그 중에 SMC 부분 좀 찾아줄래.
해성 : 아 맞다. SMC. 그걸 잊어먹었네. 금방 갖구 올게요. (돌아나가려다가..로봇을 보고.. 다가서 만져본다)
만수 : (돌아보다가) 야야야. 만지지 마. 안그래도 덜그럭거리고 있단 말야.
해성 : 뭐가 잘 안되요?
만수 : 잘 되는 게 뭔지 물어봐줄래?
해성 : 뭐가 잘 되는데요?
만수 : 없어. 미치겠다. (다시 로봇 쪽으로 와서 연결부위들을 살펴본다)
해성, 모니터 쪽으로 가서 들여다본다.
해성 : 이거 모터 테스트는 이번 주말까지 해야 되는 거잖아요.
만수 : (옆에 놓인 설계도를 들춰보며) 걱정을 마라. 저언혀 걱정 할 거 없어요. 내 비밀을 하나 가르쳐 줄까.
해성 : 비밀이요?
만수 : 이거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된다. 이거 아무도 모르는 건데..
해성 : (진지해서 듣는)
만수 : (은근히) 사실은 나.. 머리가 아주 나쁘거든.
해성 : ?
만수 : 그래서 뭐든지 빨리 못해. 남들 두배는 개겨야 되요.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성공을 한다 이거지. 왜냐.
머리가 나쁜 놈들은 끈기가 있거든. 정만수의 끈기... 이거 챔피온급이니까 아무 걱정 할 거 없어. 오늘 밤? 까짓거 새면 되지.
오늘 밤에 안되면? 내일 밤은 없냐? 내일 또 새면 된다 이거야.
해성 : (진지하게 끄덕인다)
만수 : 야 임마. 방금 이건 농담한거야. 그러니까 웃어줘야지이.
해성 : ....(웃어보려다가 어색해서 포기한다)
만수 : 관두자... 근데 해성아.
해성 : 예?
만수 : SMC 안 갖구 올거니?
해성 : 아아..
해성, 부지런히 나가고, 만수 다시 설계도를 보며 컴퓨터로..
S#3. 민재 사무실 / 낮
민재. 서류 등을 한아름 들고 들어서다가 보면. 한쪽에서 의자를 붙이고 정태가 잠이 들어있다.
민재, 한심해 보다가 옆으로 가서 툭툭 차며.
민재 : 야. 김정태.
정태 : (덮고 있던 점퍼를 아예 얼굴 위에 뒤집어 써버린다)
민재 : 슬슬 병이 도졌구만. 학기초에 며칠 열심히 한다 싶더니 또 다시 아무데서나 퍼지기 시작했어. 야 임마.
(정태가 덮은 점퍼를 걷어내며) 내가 너 낮잠자라고 사무실 얻은 줄 아냐? 어?
정태 : 아 그 자식. 내가 낮잠 자면 니 학점이 떨어지냐 그냥 지나가아.
민재 : 니가 지금 내 의자에 발 올리구 있잖아.
정태 : (발을 얹고 있던 의자를 뻥 차서 밀어주고 할수없이 일어나 앉는다)
민재 : (의자를 발로 밀어 자기 책상 앞으로 오며) 너 프로젝트 맡았다며. 그건 다했어?
정태 : 으이그. 징그런 자식. 다 했다. 벌써 다 해치웠다고. 됐냐?
민재 : 알만하다. 랩에 들어가서 다했다구 하면, 다음 일 시킬까봐 일루 도망친거지? 아냐?
정태 : 과연 내 친구야. 몰라도 될 거 까지 다 알아주고...(하품을 하다가) 참 세탁소 몇시까지 하는 지 알어?
민재 : 갑자기 웬 세탁소야.
정태 : 옷 하나 맡길 게 있는데. 그거.. 자켓 하나 드라이 해주는데 며칠 걸리는 지 알어?
민재 : (수상해서 돌아본다) 너 어디 면접 보냐?
정태 : 대한민국에 내가 면접 볼 데가 어딨어.
민재 : 그럼 뭐야.
정태 : (벌떡 일어나 손에 잡히는대로 책이며 서류를 민재에게 안기며) 일해라 일. 이사장. 열심히 일하셔.
정태, 하품을 하며 나간다. 민재 아무래도 수상하다...
S#4. 박교수 연구실
지원이 남희에게 복사물 철해진 것들을 넘겨주며.
지원 : 3차 결과까지 다 정리했어요. 한번 봐줄래요.
남희 : 벌써 다한거야? 빠르네. 수고했다얘. (들쳐보는)
지원 : 내일은 나 랩에 못 나올 거 같은데 괜찮을까요?
남희 : 저녁에도 시간이 안돼? 우리 회식 한번 할까 하는데...
지원 : 내일 저녁은 좀 곤란한데요.
남희 : 금요일엔 아르바이트도 없잖아.
지원 : 근데.. 약속이 있어서요.
남희 : 그래? 그럼 우리 회식을 늦출까..
지원 : 그러지 마세요. 나 원래 회식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알잖아요.
남희 : 너 회식 싫어하는 거 아니까 이번 회식에는 반드시 델구가야겠어. 토요일은 어때.
지원 : 아르바이트 있잖아요. 고3이라서 뺄 수가 없어요.
남희 : 너 없으면 내가 좀 난처해서 그래. 최교수님 랩원들하구 같이 갈건데...온통 남자들이잖아.
걔들 보나마나 술 먹고 별소리 다할텐데 너라도 있으면 내가 좀 의지가 되니까.
지원 : .. (좀 웃는) 난 가끔 선배가 이해 안될 때가 있어요. 그렇게 싫은 자리라면 안가면 되잖아요.
남희 : 그래도 명색이 랩장인데 어떻게 빠져.
지원 : 어떻게 빠지다뇨. 그냥 빠지면 되지. 그리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한테는 듣기 싫다고 하세요.
앞에서는 웃고 있었으면서, 뒤에서 싫었다고 말해봐야 아무 소용없잖아요. (자기 가방을 챙겨 나가며) 그럼 모레 뵈요.
남희 : (나가는 지원을 좀 언짢아서 보고 있다가) 정말 정이 안가. 암만 애써두 안돼. 으유....(거칠게 서류를 챙기는)
S#5. 캠퍼스 / 밤
전자과 건물 전경. 불켜진 방들...
그 위로 들리는 만수의 화난 목소리..
만수 : 뭐가 문제야. 말을 해봐. 내가 해줄 거 다해줬잖아.
S#6. 실험실
만수가 로봇에게 화를 내고 있다.
만수 : 봐라. 움직일 때는 이렇게.. (자기가 직접 부드럽게 움직여 보이며) 이런 식으로 움직여야지. 보이냐? 보여? 봤지?
그럼 다시 한번 해보자구 자아.. (컴퓨터로 다시 작동 시키고 재빨리 와서 본다)
여전히 아까보다 더 버벅거리는 로봇. 아예 움직임을 멈췄다.
만수, 어처구니가 없어 보다가 머리를 벅벅 긁어대다가...
만수 : 좋아..내말 잘들어봐. 니가 깡통인건 아는데..내가 프로그램을 어떻게 넣어줬니..(설계도를 펼치며) 지금 우리가 작동시킨 제어기는
말그대로 환상의 울트라 스무드 제어 프로그램 이야. 이걸 왜 못 받아들이겠다는 거야. 엉? 그리고...(하다가 보면)
입구에 해성이 서서 멍하니 구경하고 있다.
만수 : 왔냐?
해성 : 늦어서 미안해요. (들고있던 논문 몇 개를 보이며) 여기 논문 중에 재미있는 게 있어서 읽어보다가...
만수 : 됐어. 괜찮다구. 너라도 재미있었으니까 더 바랄 것이 없어. 난 행복하다구.. 오오 해피 데이...(하며 문으로)
해성 : 어디 가요?
만수 : 빨래하러 간다.
해성 : 빨래요? 이 로봇은 어쩌구요.
만수 : 내 머리 속에 뇌를 꺼내서 세탁기에 세탁비누 잔뜩 넣어 돌린 담에 바짝 말려갖구 올테니까 좀만 기다려라. 오오 해피 데에이...
만수 노래는 하지만 스스로에게 짜증이 나서 문을 쾅 닫고 나간다.
해성, 그 소리에 찔끔.
S#7. 이교수 랩/ 밤
작업을 하던 명환, 고개 돌려보며.
명환 : 문제풀이 조교?
중희 : 예. 내일 선형 시스템 문제풀이를 해줘야 되거든요. 근데 출장 가게 되면 그거 누구한테 맡겨야 되는데. 어쩌죠?
명환 : 가만 있자.. 내일 누가 시간이 있나...
하는데 만수가 활기차게 들어온다. 평소의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만수 : 여어.. 오밤중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뭐 도와드릴 거 있슴까?
명환 : 넌 어디서 놀다가 이제 들어오는거야. 제어기는 어떻게 됐어?
만수 : 하이구.. 정만수가 언제 맡은 바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거 보셨어요? 아니 중희형은 왜 또 그렇게 불쌍한 얼굴로 서있어?
중희 : 너 내일 문제풀이 조교 좀 해줄 수 있냐?
만수 : 뭔데요. 무슨 시간인데.
중희 : 선형시스템.
만수 : 으하하. 그거야 또 이 정만수의 전공이잖아요. 야아 이거 바쁜데 또 내가 뛰어줘야겠구만.
내가 이래서 맡은 바 연구가 자꾸 늦어진다니까. 어디서요? 몇시 강읜데?
명환 : 정태한테 말해봐.
중희 : 정태요?
명환 : 내 슬쩍 보니까 정태는 벌써 맡은 거 다 해가는 거 같던데 정태라면 안심되잖아.
만수 : 아니아니 잠깐.. 방금 내가 해준다고 했는데요.
명환 : 정만수. 시험 감독을 하라는 게 아니고, 애들이 문제를 푸는 걸 도와주라는 거야. 그리고 넌 제발 너 하던 거나 좀 제대로 해줘.
(말 다했다는 듯 작업으로 돌아가는)
만수 : (웃지만 진짜 좀 기분이 나쁘다) 야아.. 그러니까 뭡니까. 석사 일년 김정태는 안심이 되고.. 석사 이년 정만수는 못 믿겠고..
중희 : (만수의 어깨를 잡아 끌며) 만수야.
만수 : 뭐요.
중희 : 선형시스템의 안정성 증명 부분에서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지 기억하냐?
만수 : ...문제요?
중희 : 그 중에 하나라도 기억나는 거 있어? 응? 딱 한 개라도.
만수 : (불퉁해서 중희를 보다가 탁 뿌리치더니) 사람을 어떻게 보는 겁니까? 내가 바봅니까? 내가 미쳤다고 몇 년 전 문제를 기억하구
살아요? 내가 그렇게 모지란 놈으로 보입니까? (불쾌한 듯 문으로 가며) 사람 순하게 살았더니 진짜 바보 만들구 그래. 정말...
S#8. 이교수 랩 앞 복도 / 밤
만수 기세등등하게 나와서 문을 쾅 닫고, 두어걸음 씩씩하게 걷다가 멈춘다. 얼렁뚱땅하고 나왔지만 사실 좀 비참하다.
우두커니 서있다가 가까스로 떨치고 가던 길을 간다. 그 스텝이 점점 춤 스텝처럼 변하면서....
S#9. 전자동 앞 / 밤
만수가 춤을 추듯 걸어나오고 있다. 싱잉 인더 레인의 한 장면처럼 이리저리 뛰며 가로등 잡고 한바퀴 돌기도 하고..
두 팔을 벌려 폼도 잡으면서... 기분이 좋아져서 다시 들어간다.
S#10. 실험실 / 밤
만수가 흥얼거리며 들어선다. 여전히 탭댄스 스텝을 밟으며 시험실을 돌다가 문득 보면.
해성이 컴퓨터 앞에서 완전히 집중을 해 있다.
만수 : 뭐하냐?
해성 : (못 듣는다)
만수 : (다가가 들여다보면) 이. 해. 성. 뭐하냐고.
해성 : (그제야 멍해서 만수를 보더니 다시 화면에 집중하며) 가만 있어봐요. 거의 다 되가요.
만수 : 뭐가 다 되간다고?
하며 화면을 보다가 만수, 어어....해서 들여다본다.
해성 드디어 작업을 끝냈는지 작동 시키면서..
해성 : 다 됐어요. 인제 봐요. (하고 로봇을 돌아본다)
만수도 돌아본다. 로봇이 움직이고 있다. 전과는 다르게 부드럽게 움직여주는 로봇.
해성 : 어때요. 인제 제대로 움직이죠? 부드럽잖아요. 움직이는 게.
만수 : 너.. 이거.. 어떻게 한거냐.
해성 : (옆의 논문을 펼쳐보이며) 이 논문에 나와있는 걸 보니까 모터 입력이 불연속이면 로봇 움직임이 부드럽지 않대요.
그래서 오프샷을 두고 (화면을 가르켜 보이며) 이 점의 위치를 제어해 봤거든요. 여기서 압력을 오차에 비례한 값으로 집어 넣으면
오차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0으로 수렴해가구요. 연속적으로 줄기 때문에 모터로 들어가는 값도 연속이 되거든요.
그럼 로봇이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는 거라구요.
해성이 말하는 동안 만수, 멍해서 해성을 보고 로봇을 보고 모니터를 보고 하다가.....
만수 : 너.. 머리가 좋구나. 아주 좋은 편이야..
해성 : (은밀하게) 이건 비밀인데요.
만수 : 뭐가.
해성 : 우리 언니가 그러는데 나는 머리 속에 뇌를 꺼내보면요. 한부분만 쪼글쪼글하고 나머지는 주름 하나 없이 매끈할 거래요.
그래서 머리가 좋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대요.
만수 : 아....
해성 : (혼자 웃으며) 농담한 거에요. 이럴 땐 웃어줘야죠.
만수 : .......(뭐라 할 말이 없다)
해성 : 근데... 나.. 가봐도 되요? 오늘 밤에 경진이네 방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만수 : (아직 멍해서 끄덕인다) 그래. 가봐. 잘 가.
해성, 여늬 때와 다름없이 무심한 얼굴로 자기 짐을 챙긴다.
S#11. 대학원 기숙사 앞 / 밤
그 위로 들리는 경진의 짜랑짜랑한 목소리.
경진 : 구지원. 너 정말 일루 와서 안 붙을거야?
S#12. 지원/ 경진의 방 / 밤
자현과 해성, 경진이 둘러앉아 족발에 야채 등을 늘어놓고 있고.
자현은 벌써 먹고 있고. 지원은 자기 책상 앞에 앉아서 작업을 하고 있고.
경진 : 야아.. 오늘은 우리 해성이를 위해서 하루밤 친하게 놀기루 했잖아. 너 뭐하구 있는거야 손님 불러놓구.
지원 : (계속 일하며) 먼저들 시작하라니까. 나 이것만 마저 끝내면 돼. 신경쓰지 말구 시작해.
자현 : (열심히 쌈을 싸며) 시작은 벌써 했어. 너 올 때쯤이면 남은 게 없을까봐 그러지. (한입 가득 집어넣는)
경진 : 구지원 너 계속그러면 학교 전체에 소문낸다. 구지원은 머리가 너무 나빠서 남들보다 세배씩 공부해야 된다고 소문낼거야. 무섭지?
지원 : 니가 자꾸 말 시키면 이게 더 늦어진다니까.
경진 : 으이그....(포기하고 족발 찾아드는)
해성 :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자기도 경진이처럼 쌈을 싸기 시작)
경진 : 그럼 해성아. 시작해봐.
해성 : 뭘?
경진 : 일단 너에 대한 모든 것을 다 털어놓아봐. 사람이 친해진다는 게 뭐냐. 서로간의 비밀을 공유하는데서 시작하는거다 이거지.
그러니까 너의 모든 비밀을 털어놓아봐라...이거야.
해성 : 비밀... (생각해보는데)
자현 : 비밀 같은 소리 하구 있네. 내가 그동안 해성이하구 같이 살아봐서 아는데.. 얘 비밀은 하나밖에 없어.
해성 : 뭔데?
자현 : 너 비밀 있잖아. 몽유병.
해성 : 내가 몽유병이야?
경진 : 해성이가?
자현 : 그렇다니까.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서 방 안을 빙글빙글 도는거야. 혼자 중얼중얼 그러면서.
경진 : 에엥? (해성을 다시 보는)
해성 : 그거 뭐가 생각이 안나서 그래. 아니면 뭐가 갑자기 생각나거나.
자현 : 알어. 근데 해성아. 사람이 자면서 돌아 다니는 것만 몽유병이 아니다. 너처럼 자다 말고 뭐가 생각난다구 벌떡 깨서
돌아다니는 것두 병이야. 알어?
해성 : 아니야..
경진 : 에에.. 그럼 비밀 말구 약점 말해봐. 아니면 꿈이나.. 장래 희망. 원하는 남성상. 첫사랑의 아픔. 두 번째 사랑도 좋고.
해성 : 원하는 건 있어.
경진 : 있어? 어떤 남자. 말해봐. 내가 사흘 이내루 찾아서 소개팅 시켜주지. 말만 해.
해성 : 남자가 아니구.. 난 마술을 잘 했으면 좋겠어.
경진 : 자현 마술?
해성 : 응. 나 마술 책 있는데.. 시간 날때마다 연습해.
경진 : 우와.. 하나 해봐. 자아.. 이해성의 마술시간입니다....
해성 : 안돼. 정말로 잘 하기 전에는 보여줄 수 없어. 마술은 관객 앞에서 단 한번의 실수도 하면 안되는 거거든.
자현 : 어쭈우..진짜 마술사같이 말하는데.
해성 : (점점 대화가 즐거워지고 있다. 능동적이 되어가며) 원하는 거 또 있어.
경진 : 뭔데. 설마 서커스 줄타기는 아니겠지.
해성 : 자전거 타기.
자현 경진 조용해져서 보다가..
경진 : 아직 자전거 못타?
해성 : 벌써 열흘째 연습하고 있는데 잘 안돼. 만수선배가 가르쳐준대로 해봐도 안되구... 앞으로 가진 않구 자꾸 넘어지기만 해.
자현 : 그래? 그럼 그딴 거 관두고 나한테 운전 배워. 자동차 운전. 그건 바퀴가 네 개니까 안 넘어진다구.
지원 : (작업이 끝났는지 파일들을 끄며) 자전거 배우는 프로그램 있잖아.
경진 : 프로그램이라니..
지원 : 자현이 너 몰라? 느네 기계과 교수님들하고 우리 전산과 교수님 하고 같이 만든 거.
자현 : 아아아. 맞다. 그거 있어. 그래그래. 해성이 너 그걸로 연습해라. 그거면 우리 학교 지리도 다 알 수 있어.
시뮬레이션 화면이 우리 학교거든.
경진 : 그게 어딨는데.
해성 : 그게 뭔데?
S#13. 홍보관 내부 / 낮
화면에 비추어지는 학교 전경. 달려가면서 보이는 느낌으로 화면이 움직이고 있다.
주욱 빠져보면 그 앞의 자전거에서 자현이 타고 신나게 달리고 있고. 병석이 그 옆에서 노트북을 조작하고 있고.
해성이 그 옆에서 감탄하며 보고 있고. 백곰이 걱정스레 병석을 보고 자현을 보며...
백곰 : 학생들 정말 제대로 조작할 줄 아는 거 맞지? 이 기계는 우리 학교 홍보관의 귀중한 자산이에요.
만에 하나라도 아주 약간의 이상이라도 생기면 이거 누가 책임질 수 있는 거지?
자현 : (신나서 달리며) 아이구 아저씨. 저기 병석이는 이거 만든 교수님의 수제자였다구요. 걱정을 마시라니까..
(자전거에서 내리며 해성에게) 어때 해볼만하지?
해성 : 그 자전거가 그러니까 진짜 자전거처럼 균형 잡는 거 까지 실제대로 작동한다는 거지?
자현 : 그렇다니까. 일단 타봐. 자 얼른.
병석 : 어이 잠깐만. 다시 스타트해야지.
백곰 : 아니 그런데 이렇게 자꾸 작동을 해도 문제 없는건가? 닳거나 과부하가 걸리는 거 아니야?
갑자기 연기가 나거나 어디 나사가 빠지거나.. 또는..
자현 : 아저씨는 여기 서서 해설자 하세요.
백곰 : 해설자?
자현 : 그렇죠. 텔레비젼 보면 나오잖아요. 해설자. 화면을 보면서 여기는 어디다... 방금 어디를 지나고 있다..
그런 거 중계하는 사람 있잖아요.
백곰 : 그건 아나운서지..(하면서도 자현이 이끄는대로 자리를 잡는) 해설자와 아나운서는 롤이 달라요. 롤이...
해성 : (자전거 타고 긴장해서 준비하고 있고)
병석 : 준비됐어?
해성 : 응. 준비 됐어.
병석 : 스타트한다. (작동하고)
해성,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하고.. 화면은 흐르고..
백곰은 화면을 보아가며 나름대로 아나운서를 흉내내며 '아아.. 방금 어디를 출발했습니다. 저기 어디가 보이는군요...' 등의 해설을 하고.
해성, 자전거를 타다가 비틀거리면 백곰과 자현이 떠들어대며 해성을 지도 하고.
이제는 누구보다 열성적이 된 백곰. 그리고 신이 나서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해성.
자전거 연습 프로그램의 신기한 이것저것 스케치와 함께.
S#14. 실험실 / 낮
문을 열고 들어서는 명환.
보면, 만수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논문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명환 : 정만수.
만수 : (그제야 명환이 온 것을 알고) 예?
명환 : 뭐야. 이제 겨우 논문 뒤지고 앉아있는거야?
만수 : 부탁이 있는데요. 앞으로 저를 야단칠 때는 상황을 좀 더 확실하게 알아보고 난 뒤에 다음 말을 골라 주시겠어요?
명환 : (어이없지만) 그래 지금 상황이 어떤데.
만수 : 백문이 불여일견이겠죠. (하더니 자판을 쳐서 작동을 시킨다) 보실까요.
명환, 만수가 가르키는 곳을 보면 로봇이 유연하게 움직이고 있다.
명환 믿기지 않아서 로봇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다시 모니터 화면을 체크해보면서..
명환 : 경로제어기 설계가 끝났단거야?
만수 : 끝난 정도가 아니잖아요. 보면 모르십니까? 이 우아한 동작 안 보이세요?
명환 : (재빨리 프로그램들을 살피며) 방향은 어떻게 하지? 이 방법은 위치만 제어하잖아.
만수 : 생각을 해보세요. 사람도 전진하는 쪽으로 몸체가 향하는게 자연스럽잖아요. 이 방법을 쓰면 로봇몸체가 이동방향으로
향하게 되니까 훨씬 더 자연스럽지 않겠습니까? 굳이 따로 방향제어를 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데요.
명환 : 이걸로 끝나는거 아냐. 인터넷으로 명령을 전달하는 부분과 연결해야 한다구. 인터넷으로 하면 시간지연같은 게 문제가 될텐데..
할수있겠어?
만수 : (삐딱하게) 해봐야 알죠. 못 믿겠으면 아예 맡기질 말든가. 어째 선배님 말투는 제가 이걸 해낸 게 못마땅하신 듯 합니다.
명환, 뭔가 말할려다가 그냥 두고 다시 프로그램을 체크한다.
만수 : 커피 드실래요? 시원한 걸루 뽑아와요?
S#15. 실험실 앞 복도
만수, 음료수를 양손에 들고 오다가 잠시 멈추더니 생각을 해보고...
만수 : 뭐... 꼭 내가 한게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 그 논문을 내가 먼저 읽었다면 내가 먼저 할 수도 있었던 거고..
해성이는 다만 그걸 먼저 읽었다는 거고.. 그러니까... 그래 그냥 시간차지. 시간차. 운명의 별 거 아닌 시간차.
만수, 스스로 합리화하고 문을 열려다가 멈칫.
S#16. 실험실 내부
입구의 만수는 안보이는 자세로, 명환이 전화를 하고 있다.
명환 : 글세 만수 이 녀석이 멋지게 경로제어기를 완성해놨다니까. 아직 다 끝난건 아니지만. 너두 와서 한번 봐라. 내가 그랬잖아.
만수가 평소엔 삐에로같이 덜렁대고 다녀도 한번 맘 먹은 일은 어떻게든 해낸다니까.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 있는 거 몰라?
뒤의 만수, 영 들어서기가 난처한데..
명환 : 아참 중희야. 그 회사에 최실장이라구 있어. 그분 한번 찾아뵙구 인사 드려. 여러 가지루 우리 도와주고 있으니까.
그리고 일끝나는대로 와. 어떤 핑계도 안통하니까 머리 굴리지 말고 바로 오란 말야.
S#17. 수학 강의실
처장이 옷걸이에 단정하게 걸려 칠판 한쪽에 매달린 양복 윗도리.
와이셔츠 옷소매를 단정하게 걷어올린 채 열강 중인 처장.
수강생 중에는 대욱과 마이클과 지민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처장 : (강의내용 보충.. 마치고 책을 덮더니) 아 참, 여러분, 체스 좋아해요? 내가 며칠전에 아주 재밌는 문제를 발견했는데
한번 들어보겠습니까?
처장, 아주 재밌다는 표정으로 아이들을 둘러본다.
대욱 등 아이들, 또 퀴즈구나 난처한 표정들인데.
처장 : 8*8 chess판을 knight 말이 뛰어서, 같은 칸을 2번 뛰지 않고 모든 칸을 한번씩 밟을 수 있는가?
(한번 둘러보더니) 지금 당장 답을 말해줄 학생 있어요?
물론 모두 조용하다. 대욱은 얼른 머리를 숙여서 시선을 피한다.
마이클은 입을 벌리고 멍하니 교수를 보고 있고.
지민은 열심히 문제를 적고 있는 중.
처장 : 아무래도 지금 당장은 무리겠지요? 이해합니다. 그럼 다음 이 시간까지면 충분할거라고 보고. (셔츠소매를 내리고 옷걸이에서
옷을 내려 입으며) 직접 체스판을 그려놓고 한번 해보세요. 아주 재밌을겁니다. 그럼 다음 시간을 기대해보지요.
S#18. 강의실 앞 복도
수학강의를 끝낸 아이들이 몰려나오는데 대욱과 지민과 마이클이 함께 나오며..
대욱 : 어때 재밌지. 내가 여기까지 와서 이 수업 듣는 이유가 뭐겠냐. 교양과목은 이왕이면 재밌고 쉬운게 좋잖아.
마이클 : 재수강하는 거 아니었어?
대욱 : 어.... 학점이 좀 짜긴 해. 그게 딱 하나 단점이지.
지민 : 근데 가끔 내시는 그 퀴즈문제 있잖아. 오빠가 지난번에 들을 때도 그런 거 내고 그러셨어? 그때랑 같은 문제 내시는 거 아니야?
오빠 몰라?
대욱 : 야야.. 처장님이 어떤 분인데 같은 문제를 두 번 내겠어. 언제나 직접 문제를 만들어오신다고.
아 그런데.. (멈추더니) 내가 한가지 충고 하는데.. 이 문제 안 풀어와도 돼.
마이클 : 숙제잖아. 그런데 안 풀어도 된다고?
대욱 : 내가 가만 보니까 누군가 교수님이 낸 문제를 풀어오면 실망하시는 거 같드라구.
지민 : 에? 문제를 풀어가는데 실망하신다니.
대욱 : 글세 내 말을 믿으라니까. 그리고 그 다음 내주는 문제는 몇배쯤 더 어려워진다고. 그러니까.. 우와아.. 교수님이 내신 문제는 절대
풀 인간이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돼.
마이클 : 정말? 믿어도 돼?
지민 : 마이클오빠야. 대욱이 오빠가 왜 재수강까지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대욱 : (삐지며) 지민이 너 이제 쥐새끼 방 청소 할 때 나 필요없는거냐?
지민 : 아이 오빠아...
S#19. 위성 센터 옥상
안테나 밑 부분에서 석우가 차트를 들고 체크하며.
석우 : xxxx는 어때.
경진 : (E) 정상입니다. 모두 좋아요. 아주 좋아요.
석우가 슬쩍 들여다 보는 곳. 안테나 아래의 통제실 공간에 경진이 들어가서 기기들을 체크하고 있다.
석우 : 니가 정상이라고 하는 건 안 믿어. 다시 한번 첨부터 봐봐..
경진 : (기어 나오며) 선배님. 언제 한번 저하구 뒷동산에서 만나실래요. 거기 보니까 검도부 애들이 와서 연습을 하든데요.
걔들한테 죽도 하나씩 빌려가지구 정식으로 저를 패주시는 게 어때요. 그럼 저두 정식으로 반항할 수 있는데.
석우 : (웃고 산을 향해 기지개를 켜며) 이제 완전히 봄이구나.
경진 : 경도 125도에서 131도, 위도 33도에서 38도인 대한민국은 봄인지 모르겠지만요. 민경진의 마음은 아직도 찬바람이 불고 서리가
내려있습니다. 맨날 선배님께 구박을 받고 사느라고 일년 사철이 한겨울이네요.
석우 : ....이젠 괜찮아진거냐? 조잘거리는 걸 봐서는 괜찮은 거 같기도 하고. 일도 제법 열심히 하는 거 같고..
경진 : ....민경진의 짝사랑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거라면 글세요. 하루 중 스물세시간 오십분은 괜찮은데요. 나머지 십분 동안 한번씩은
걸려서 넘어지곤 해요. 그러면 그 후유증이 서너시간은 가니까 결국 완전히 괜찮아진건 아닌가봐요.
둘은 나란히 서서 저 아래 펼쳐진 풍경을 보는 자세이다.
석우 : 사람에 대한 감정이란 게 원래 그렇잖아. 모든 감정을 다 제거하고 나도 그리움이란 게 남고..그리움까지 다 없앴다고 생각해도
미련이란 게 남고..그런거지.
경진 : (석우의 옆구리를 친근하게 팔꿈치로 치며) 아이구. 민경진을 뭘로 보시는 겁니까. 저는 자폭 단추를 누르는 한이 있어도
미련같은 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구질구질한 건 안 키운다구요.
석우 : (무심한 듯) 가만있자. 민재가 오늘 수업이 있든가.
경진 : 3시 수업이니까 지금 들어갔겠는데요. (하고 대답하다가 멈칫 석우를 돌아본다)
석우 : (빙긋이 웃더니) 미련같은 거 안 키운다고?
경진 : 이건 그냥 ...머리가 좋은 건데요.
석우 : (들고 있던 차트를 경진에게 안기며) 다시 한번 체크해봐. 니 말은 못 믿는다고 했잖아.
석우, 웃으며 가버리고.
남은 경진 차트를 들고 통제실로 들어가려다가 문득 학교 건물들이 있는 쪽을 바라본다. 저 멀리 보이는 캠퍼스 건물들..
S#20. 이교수 강의실
이교수 강의중이다.
학생들 중에 민재, 정태. 그리고 한쪽에 해성의 모습 보인다.
이교수 : 이동로봇의 동역학 부분은 각자 참고문헌을 찾아보도록 해. 그럼 이동로봇의 동역학 모델을 세울 때 generalized coordinate은
어떻게 잡아야할까? (둘러본다)
민재 : 이동로봇의 중심점 엑스, 와이와 각도 파이, 그리고 좌우바퀴의 회전각도 쎄타 엘과 쎄타 알로 하면 될거 같은데요.
이교수 : (아이들 보며) 어때?
해성 : 어어... 좀 많아요. 너무 많다구요.
민재 : 많지는 않을걸요. 책에도 그렇게 나와있었던 거 같은데...
이교수 : 그래. 그 정도면 동역학 모델을 세울수 있을거야. 자세한 것은 이동로봇 관련 책을 찾아보도록 해 자, 그럼 다음... (책 펴는데)
뭔가 골똘히 생각하던 해성.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책상 근처를 서성거리며 돌아다닌다.
주위의 학생들, 곁눈질하기 시작하고 보던 민재, 정태를 쿡쿡 찔러 해성쪽 가리켜보인다.
정태, 보다가 어이없어 웃어버리고.
이교수, 그런 해성을 발견한다.
여기가 어딘지 잊어버린 사람처럼 생각에 빠져 서성거리는 해성.
누군지 키득거리기 시작한다.
이교수 : 이해성. (반응없자 다시한번) 이해성!
해성, 그제서야 정신 차리고 주변 둘러본다.
이교수 : 뭐하는거야?
해성 : 아.. 저기요... (민재보고) generalized coordinate(제네랄라이즈드 코오디넷)이 되려면 각 코디네이트 사이에 제약이 없거나
non holonomic(넌 홀로노믹) 제약식만 존재해야하지 않나요?
해성, 민재를 쳐다보고 있다.
이교수 : 이민재, 지금 너한테 질문하고 있는 거 같은데.
정태 : (당황하고 있는 민재를 툭툭 찔러준다)
민재 : (해성에게) 예, 그런데요.
해성 : 그런데 파이와 쎄타 알, 쎄타 엘 사이에는 홀로노믹한 관계가 있을 거에요.
민재 : 그걸 어떻게 알수 있죠? 엑스, 와이, 쎄타 알, 쎄타 엘 사이에 관계를 구할수 있는데 이 중에서 어떤 것이 홀로노믹하다는것인지
알기가 어려울텐데..
해성 : (노트 들고 민재 앞으로 오더니 뭔가 쓰며) 자, 보세요. 여기 이 두 식을 빼면 파이와 쎄타 알, 쎄타 엘 사이에 이런 관계식이
나오잖아요. 여기에 양변을 적분한후, 적당한 초기값만 정해주면 홀로노믹한 관계식이 나오잖아요.
민재, 말이 막혀서 주위를 둘러본다.
이교수와 다른 아이들 둘을 주목하고 있다.
정태,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감추고 있고.
해성 : (아랑곳없이) 그러니까 파이하고 쎄타 엘, 쎄타 알 중 하나는 없어도 되는거죠.
민재 : 예... 그런거 같네요.
해성, 만족해서 옆에 있는 아무 자리에나 앉았다가 자기 자리가 아닌 걸 깨닫고 다시 일어서더니 자기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그런 해성을 바라보는 아이들. 이교수 역시 해성을 보다가 책을 다시 펼친다.
이교수 :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도 될까? 해성인 아직 자기 자리 못 찾았니?
S#21. 복도
우르르 나오는 학생들 사이로 묻혀 나오는 민재와 정태.
정태, 비죽비죽 웃고 있다.
민재 : 처음 봤다. 진짜 그런 앤 처음 봤어.
정태 : 빙산의 일각을 본 거야.
민재 : 어쨌거나 아직도 멍하다야. 냉커피나 마시러 가자.
정태 : (시계를 들여다보며) 좋지.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까.
민재 : 너 아직도 안 불었어. 오늘 저녁 무슨 약속이야.
정태 : 나중에 기분이 좋아지면 얘기해주지.
민재 : 알았어. 경진이한테 물어보지 뭐. 그럼 당장 알아내 줄거니까.
정태 : (당황해서) 야야. 경진인 안돼. 그 놈이 알면... (하는데)
해성 : (E) 저기요... 잠깐만요.
달려온 해성이 민재의 팔을 잡는다. 민재 당황해서 팔 빼내는데.
민재 : 저요? 왜 무슨..
해성 : (들고있던 책 펴보이며) 아까 참고했다던 책요. 그 책에서는 왜 generalized coordinate를 다섯 개씩이나 잡았을까요?
그 책 무슨 책이에요? 제목 알아요?
민재와 정태, 황당해서 서로 얼굴 마주본다.
민재 : 저기... 지금은 기억이 안나는데... 그리고 지금은 이 친구하고 어딜 가기로 했는데요...
해성 : 그럼.... 가면서 얘기해요.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그 책 언제쯤 읽어본 건데요?
S#22. 석학의 집
지민, 대욱, 마이클이 한 테이블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있다.
앞엔 수학문제를 푼듯한 종이 몇장 어지럽게 널려있고 수업시간에 내준 문제와 약식 체스판도 보인다.
현재 마이클이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을 나머지 둘이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미순이 다가와서 지민의 머리에 노크를 하며.
미순 : 지민이 너. 장사 안할겨?
지민 : 아이 잠깐만요. 마이클이 이 문제 거의 다 플어가고 있단 말이에요.
미순 : 문제? 공부하는 중이야 지금?
마이클 : (볼펜을 던지며) 오 노우. 기브업이야. 안돼. 틀렸어.
대욱 : 야 임마. 너 천재라며.
마이클 : 천재에도 백가지 종류가 있어. 마이클은 수학천재 아니야. 마이클은 그냥 천재야.
미순 : 뭐여. 수학문제야? (들여다보는데)
지민 : 본다고 아시겠어요?
미순 : 야임마. 수학이라면 십년동안 장부를 써온 나한테 물어봐야지.
대욱 : 어 정태형이다. 정태형 왔어.
아이들 미순을 무시하고 마악 들어오는 정태와 민재, 해성이에게 달려가 끌어온다.
지민 : 정태오빠. 정말 반가워.
마이클 : 정태형. 오케이. 수학천재.
정태 : (끌려오며) 뭐야 뭐.
민재 : 어쭈 니들 눈에 나는 안 뵌다 이거지.
대욱 : 일단 일루 앉으십시오. 선배님들. 그리고 이 문제를 봐주십쇼.
정태 : 이게 뭔데.
미순 : 봐주지 마. 그거 얘들이 수학시간에 숙제 받은 건데 숙제는 지들 힘으로 풀어야지.
정태, 얼른 일어나 다른 자리로 가려는데 아이들 강제로 끌어앉히고..
그 와중에 해성이 문제가 적힌 종이를 들어 보고 있다.
지민이 약식 체스판을 정태의 앞으로 밀어주며.
지민 : 8*8 chess판을 knight말이 뛰어서, 같은 칸을 2번 뛰지 않고 모든 칸을 한번씩 밟을 수 있는가. 이게 문제거든요.
대욱 : 이게 말입니다. 아예 어려운 공식증명 같으면 내가 손도 안 대죠. 풀릴 듯 풀릴 듯 안되니까 더 화나잖아요.
지민 : 오빠는 풀어볼 생각도 안했잖아.
민재 : 김정태 간만에 머리 좀 써보지 그래.
등등 아이들이 떠드는 와중에 해성은 옆 테이블에 종이를 놓고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정태 : 수학문제네. 이게 어디서 나온 문제야?
마이클 : 처장님 머리 속에서 나온 문제래. 이거 퀴즈야.
정태 : 야 그럼 수학과 가서 물어봐. 수학과 어디 있는지 몰라?
민재 : (재미있어서) 정태 너 못 풀어도 괜찮아. 후배 앞이라고 너무 긴장하지 말라구.
지민 : 그래요. 못 풀어도 되니까 시작이나 해봐요.
대욱 : 아 그냥 재미로 한번 풀어보세요. 그리고 나서 그 재미로 문제 푼 종이만 우리한테 넘겨주면 된다니까요.
해성 : 여기 있는데요.
모두 놀라서 보는.
해성이 문제를 푼 종이를 내준다. 정태가 얼른 받아서 내용을 본다. 아이들도 저마다 들여다보는....
정태 : 이거.. 지금 방금 푼거야? 이 자리에서?
해성 : 전에 그거하고 비슷한 문제를 풀어본 적 있어. 원리는 아주 간단하거든. (민재에게) 아직 생각 안났어요?
민재 : (당황) 뭐가요?
해성 : 그 책 제목이요. 그 책에 저자 이름도 생각 안나요?
정태와 민재, 황당해서 마주본다.
S#23. 캠퍼스 길 / 아직 오후
해성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머리 속에서 열심히 원리를 연구해보고 마음을 가다듬어 자전거에 오른다.
비틀거리면서 어느 정도 몇바퀴 자전거가 굴러간다.
해성. 어어어 좋아하는 순간, 앞의 코너를 돌아나오던 동현이와 부딪힌다.
동현이 겨우 넘어지는 것을 면하고. 해성의 자전거는 넘어져 버린다.
아파하는 해성에게.
동현 : (화가 나서) 이거 봐요. 어딜 보구 다니는 거야.
해성 : 죄송해요. 저기 멀리를 보고 있었거든요.
동현 : 글세 자전거 타면서 왜 한눈을 파냐구요.
해성 : (억지로 일어서며) 자전거를 잘 타려면 멀리 봐야 된다구 해서...
동현 : 뭐요?
해성 : 그게 달리는 속도하고 이동거리를 계산해보면... 어디쯤 봐야 가장 안전한지.. 걸어가는 속도하고 비례해서 생각해보면..
동현 : 자전거 탈 줄 몰라요?
해성 : ...네.
동현 : 그럼 이런 길에서 말구 저어기 공터에 가서 연습해요. 알았어요?
해성 : 네. 죄송해요.
동현 : (언짢아서 넘어진 자전거를 일으켜주며) 그리고. 자전거는 이론으로 타는 게 아니고 운동 감각으로 타는 거에요.
큰뇌가 아니라 작은 뇌를 써서 타는 거라고. 뭔 말인지 알아요?
해성 : .....아직 잘...
동현 : 도대체 우리 학교엔 왜 이렇게 이상한 여학생들만 있는거야.
해성 : 예?
동현 : 알거 없어요. 자전거 타지 말고 끌고 가요. 또 사고치지 말고.
해성 : 예... 죄송해요.
동현 투덜거리면서 가고.. 해성, 그제야 아픈 다리를 만져본다.
S#24. 실험실
만수가 혼자 앉아서 컴퓨터를 작동해보고 있다.
컴퓨터를 작동해보고 퍼스널 로봇을 쳐다본다. 제대로 잘 안되는 분위기.
만수 : 아이구... 왜 이렇게 안되냐. 시간지연은 이 정도면 될텐데.... 좀 돌아가라 돌아가... 엉?
만수, 컴퓨터를 탁탁 때리고 자기 머리도 탁탁 때리고 다시 해보는데 절뚝거리며 들어오는 해성.
만수, 해성의 걸음걸이를 지켜보며.
만수 : 자전거 타다 또 넘어진거냐?
해성 : 예. 이번엔 사람도 쳤어요.
만수 : 너.. 제발 운전면허 같은 건 딸 생각하지마라. 여러 사람 다치겠다.
해성 : 알아요. (하며 둘레둘레 살피는) 복사해올 거 있어요? 오늘은 복사기가 고장이 안났으면 좋겠다.
이상하게 내 차례만 되면 고장이 나요.
만수 : (슬그머니 의자를 밀어 옆으로 비키며) 내가 해놓은 거 한번 볼래?
해성 : 예. (좋아서 얼른 의자를 끌고오는)
만수 : 니가 이 분야에 관심이 있다니까 어디 한번 테스트해볼까?
해성 : 좋아요.
만수 : 음.. 지금 말야. 저 스테이션하고 이 로봇하고 연결이 되있잖아. 로봇을 제어하는 부분과 인터넷으로 명령을 전달하는 부분을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거든 내가.
해성 : 예, 알고있어요.
만수 : 내가 대충 다 해놓긴 했는데 너도 한번 시험삼아 해봐라.
해성 : (컴 화면 유심히 들여다보고) 예. 해볼께요.
만수 : 시간지연 문제에서 좀 걸릴지도 몰라. 안되는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보고. 할수 있겠지?
해성 : 안되면 물어볼게요.
만수 : 마. 안되는 것일수록 혼자 해결하려고 노력을 해야지. 그래야 느는거지이.
해성 : 그럼 혼자 해볼게요.
만수 : 좋아. 그럼 난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게. 까딱 실수해서 내가 해놓은거까지 다 망치면 안되니까. 그리고 말이야. 너... (하다가 보면)
해성 : (완전히 프로그램에 몰입해있다)
만수, 해성의 옆에서 손을 흔들어보인다.
해성은 이미 화면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입까지 헤 벌린 상태로....
만수 : 완전 자동 집중장치구나. 너. 버튼 하나만 누르면 완전히 가버려. 야아..
S#25. 대강당 앞 / 밤
거기 펄럭이는 현수막이 보이고. 들어가는 관객들도 보이고..
이만치에서 서교수를 억지로 끌고 오는 박교수.
서교수 : 나아참. 할 일이 태산인 사람을 붙잡고 무슨 콘서트를 보자는 거야.
박교수 : 할 일이 태산이니까 이런 시간을 가져야지. 안그러면 인간이 피폐해져서 안되요. 피폐. 알지? 피...해지고 폐..해지는 거.
그리고 오늘 콘서트가 그유명한 가수..누구지..그 사람이 나온대요. 그리고 그 유명한 개그맨..이름이 뭐드라..그 사람도 나오고..
(하다가 한쪽을 보더니) 아니 그런데 저게 누구야.
서교수 : 누구? (하며 박교수가 보는 곳을 보려는데)
박교수 : (재빨리 서교수를 끌어서 구석으로 숨으며) 숨어숨어.
서교수 : 왜애? (하며 뒤를 보려고 애쓰는)
박교수 : 우리가 숨어줘야 돼. 아이구 고개 좀 일루 돌려요. (하면서 자기는 슬그머니 뒤를 본다)
박교수가 보는 곳에 지원과 정태가 나란히 대강당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박교수 : (감탄하여) 데이트다.
서교수 : 가만 있어봐. 저 둘이 데이트를 해?
박교수 : 야아 보기좋다. 이쁘다. 부럽다.
서교수 : 일났구만. 교수가 학생들 데이트 보면서 침 흘리고 말야.
박교수 : 우린 왜 저러구 못 살까. 이건 문제라고 봐.
서교수 : 나는 안하는 거고. 박교수는 못하는거지.
박교수 : 근데 그거 알어? 언제부턴가 이쁜 여자를 보면....아이구 우리 마이클하구 어울리겠다. 이러구. 잘생긴 남자를 보면 아이구 우리
남희하고 잘 맞겠어..이런 생각이 먼저 든단 말야. 내가 늙어버린건가. 그럼 난 이제 영 끝난건가?
서교수 : 아이구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구 안 들어갈거야? 콘서트 보겠다며.
박교수 : 변덕이 났어. 콘서트 안 봐. 우리 어디 가서 맥주 한잔씩만 하자. 응? 응?
서교수 : 어이구....어이가 없다.
그 위로 음악이 들리며.
S#26. 대강당 내부
무대에서는 한참 공연이 진행이 되고 있다. 객석의 사람들이 주욱 보이고.. 그 중에 정태와 지원이 나란히 앉아있다.
정태, 슬쩍 지원을 돌아본다. 지원은 정태와 가장 멀리로 몸을 떼고 반대편에 붙어 앉아있다.
정태 혼자 웃고 다시 무대를 보는데 공연을 보던 지원이 정태에게..
지원 : 지금 저 노래 제목이 뭐라고 했어?
정태 : (안 들리는 듯 좀 작은 소리로) 뭐라구?
지원 : (좀 정태에게 가까이해서) 노래 제목이 뭐냐구.
정태 : (여전히 안 들리는 듯 귀를 가까이 대며) 안들려 뭐?
지원 : (정태의 귀에 가까이) 노래 제목 알어?
정태 : (지원을 돌아보며) 몰라.
그 바람에 둘의 얼굴이 거의 가까이 마주보게 된다.
지원 당황해서 얼른 다시 떨어진다. 앞을 보는 정태의 입가에 비시시 미소가 번진다.
미소로 지원을 돌아보다가 마침 돌아보는 지원과 시선이 마주친다. 정태, 얼른 미소를 거둔다. 지원 무표정하게 다시 앞을 본다.
정태도 앞을 보며 손으로 입가를 가리는데 다시 웃음이 나온다.
S#27. 박교수 랩 / 밤
마이클이 들어오다 보면 규한이 혼자 앉아서 정신없이 키보드를 쳐대고 있다.
마이클 : 형 혼자야?
규한 : 말 시키지 마. 그 놈의 게임 땜에 리포트 한 개에 보고서 두 개가 밀려있다구. 오늘 밤에 끝내야 돼.
마이클 : 남희누나는?
규한 : 몰라. 데이트 갔나부지.
마이클 : 남희누나는 남자 없어. 대한민국 남자들 다 눈 멀었어. 지원이 누나는.
규한 : 말 시키지 말라니까. 오늘 안왔어.
마이클 : 지원이 누나는 남자가 있어도 데이트 안해. 마이클은? 이제부터 헌팅이나 가야지. 바이.. 욕봐..
규한 : 뭐야?
마이클 : 욕보라고. 사투리 배운거야. 규한이형. 욕 많이 봐아...
마이클 나가버린다. 규한 성질나서 더 거칠게 키보드를 두들겨댄다.
S#28. 실험실 / 밤
해성이 작동키를 누르고 만수와 함께 재빨리 로봇을 돌아본다. 잠시 후 로봇이 유연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해성 기분이 좋아서 만수를 본다.
해성 : 됐어요. 성공이에요.
만수 근엄한 얼굴로 한손을 올린다.
해성, 어쩌란 말인가 해서 보는데. 만수가 해성의 손을 잡아 올려 하이파이브를 해준다.
만수 : 다시. (손내리고 다시 올려준다)
해성 : (이번에는 자신있게 하이파이브를 맞춘다)
만수 : 잘했어.
S#29. 캠퍼스 / 밤
만수와 해성이 걸어오고 있다.
해성, 여늬때의 버릇처럼 사방치기를 하는 동작으로 깡충깡충 뛰며 걷는다.
만수 : 그게 아니지. 이거 봐.
만수, 두발을 모아 한쪽으로 뛰는 싱잉 인더 레인의 스텝을 시범해보인다. 해성도 따라해보려고 한다.
만수 노래까지 불러가며 다양한 동작을 보여준다. 해성이 따라하느라고 버벅댄다.
만수, 문득 멈추더니.
만수 : 너하구 나 말이다.
해성 : (숨 가빠하면서) 예.
만수 : 너랑 나랑 둘을 믹서기에 넣고 아주 잘 갈아서 다시 둘로 나누면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니 머리하구 내 성격하고 두 개를
믹서해서 나누면, 아주 기가 막히게 괜찮은 인간이 탄생할 거 같지 않냐?
해성 : 그건.. 우리가 잘 맞는다는 뜻이에요?
만수 : 아니지.. 너하구 난 완전히 다른 인간인데... (생각해보더니) 그래. 그런 뜻에서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지.
해성 : (혼자 가만 웃고 있다가) 나 지금 디게 기분 좋아요.
만수 : 기분이 좋다.... 음... 좋은 말이야.
해성 : 이 학교에 와서두 친구를 하나두 못 사귈 줄 알았어요. 그런데.. 선배님같은 친구가 생겨서 너무 좋아요.
만수 : 친구라... 것두 좋은 말이지. 암... 그래서 말인데.. 너 아까 시간 지연 문제 어떻게 풀어낸거야?
해성 : 인터넷 시간지연은 그때 그때 다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어느 정도 시간 지연을 가정해서 짜면 문제가 생길수 있잖아요.
만수 : 그렇지.
해성 : 그래서 시간 지연 말고 다른 방법을 써봤어요.
만수 : 흠... 그래애... (뛰기 스텝을 하며) 그래서 어떤 방법을 썼는데?
해성 : (역시 만수를 다라 이리저리 뛰어보며) 조종기 안에 로봇을 모사한 로봇 시뮬레이터를 장착해서
그 로봇 시뮬레이터를 움직이는 방법요.
만수 : 그렇지. 그럼 실제 로봇과 시뮬레이터 사이에 생기는 오차는 어떻게 하지? (다른 동작을 보여주고)
해성 : (그 동작을 따라하려 애쓰며) 시뮬레이터와 실제 로봇간에 생길 수 있는 오차는요. 시간지연이 줄어드는 시점에서 적절히 보정을
하기 때문에 최대한 비슷하게 움직이게 되잖아요. (만수의 복잡해진 동작에 정신이 팔리며) 그건 어떻게 한거에요. 다시 해봐요.
S#30. 세미나실
이교수 비롯한 랩원들 죽 앉아있다. 만수 발표중.
만수 : 이상과 같이 인터넷 시간 지연을 고려하여 로봇을 remote site 에서도 안정되게 제어할 수 있는 제어기를 구현했습니다.
이상,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명환과 중희, 도저히 못 믿겠다는 표정이다.
이교수 : (만족스런 표정으로 둘러보며) 질문 있어?
명환 : 실험은 잘 됐겠지?
만수 : 그럼요. 문제 없었습니다.
명환 : 인터넷은 접속수에 따라서 시간지연이 시시각각 변하는데 어떻게 고려한거야?
만수, 해성쪽을 힐끔 보면 해성, 세미나 자료를 뒤적이고 있다.
만수 : (의기양양) 예, 그래서 시간지연 대신 로칼사이트의 조종기 안에 로봇을 모사한 시뮬레이터를 장착해서 그것을 조종하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중희 : 그럼, 실제로봇과 시뮬레이터 사이에 오차가 날텐데?
만수 : 시간지연이 줄어드는 시점에서 적절히 보정을 하기 때문에 최대한 실제로봇과 비슷하게 움직입니다. 화면에 보이는 로봇의 궤적도
사실 실제 로봇의 궤적은 아니고 시뮬레이터의 궤적 아닙니까. 로봇 속도가 빠르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실제의 궤적과
같아지기 때문에 오차는 신경 안 써도 됩니다.
정태 : 그럼, 시뮬레이터와 실제상황 사이의 피드백은 어떻게 되죠?
만수 : (좀 더듬거리면서) 어... 그건 말이죠... (재빨리 자료를 뒤적이는데)
해성 : (불쑥 끼어들며) 그래서 시간지연 대신 로칼사이트의 조종기 안에 로봇을 모사한 시뮬레이터를 장착해서 그것을 조종하는 방법을
사용했거든요.
잠시 장내가 썰렁해지면서 모두 만수와 해성을 번갈아본다.
해성 그런 분위기에 불안해진다.
만수 : (더듬거리며) 예... 맞습니다.
이교수 : 정만수.
만수 : 예.
이교수 : 그게 어떤 방식인지 보충설명을 해봐.
만수 : (진땀이 난다. 자료만 서툴게 뒤적인다)
이교수 : 이해성.
해성 : (눈치를 보며) 예.
이교수 : 보충설명해봐.
해성 : 저 그게..(모두의 눈치를 보며) 리모트 사이트의 시뮬레이터는 로봇뿐만 아니라 미리 주어진 환경에서도 가상환경을 설정했거든요.
그래서 미리 알려진 장애물은 회피할 수 있었는데....
아이들, 모두 알만하다는 시선으로 만수와 해성을 보고 있다.
이교수 : 수고들 했어. 정만수도 물론 수고했겠지.
만수 : (대답 못하는..)
이교수 : 발표 좋았어. 짧은 시간 내에 기대 이상으로 잘해줬어.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이교수 일어서 나가고. 아이들 일어서서 배웅하고.
만수, 처참한 기분으로 앞에 그저 서있다. 명환, 자료들을 챙기며.
명환 : 어쨌든 교수님께 칭찬도 들었으니까 점심이나 먹으러 가지. (더 말하기 싫어서 나간다. 만수쪽은 보지도 않고)
중희 : (만수 쪽으로 다가서더니 작은 소리로) 야야. 그럴 수도 있지 뭐. 모르면 후배한테도 배우고 그러는거야.
까짓거 자존심만 버리면 되는데 뭐. (큰소리로) 밥먹으러 가자. 먹어야 또 밤새지.
정태, 나가려다가 슬쩍 해성을 돌아본다. 해성은 이제 상황을 짐작할 만큼은 된다. 난처해서 앉아있다.
정태 망설이다가 그냥 나간다.
만수와 해성만 남았다. 해성 머뭇거리며 만수를 본다.
해성 : 저기... 나도 이젠 내가 뭐 잘못했는지 알겠어요. 아까는..
만수 : (자료들을 챙기며) 아무 말 할 거 없어. 나도 니가 어떤 인간형인지 알고, 너도 내가 어떤 인간형인지아니까 서로 길게 이해시킬 거
없다구. 그리고 너 잘못한 거 없어. 나야 원래 이렇고. 근데...가만 생각해보니까 말야. 선배하구 후배는 친구는 될 수 없겠다. 그치?
만수, 자료들을 안고 먼저 나간다.
해성, 우울하게 혼자 남아있다.
S#31. 민재 사무실
민재, 모터 샘플을 하나 테이블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보며 부품별로 차트에 기입을 해나가는 중이다.
정태는 잠자기 위한 자리를 만드느라고 분주하고.
민재 : 어쨌든 그 친구도 세상 살기 참 힘들겠다. 지금이야 학생이니까 그 정도지만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어뜩하냐.
정태 : (이리저리 누워보고 자리를 다시 정돈하며) 그래도 어쨌거나 머리는 기가 막히게 좋잖아. 너도 봤다시피.
민재 : (문득 일손을 놓더니) 머리 좋은 인간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 자기가 천재인 걸 아는 천재와. 그걸 모르는 천재.
정태 : (의자를 다시 배치하고 있다)
민재 : 지가 머리 좋은 걸 아는 놈은 어떻게든 그걸 숨기려고 하지. 마치 니가 달리기를 잘하는 것 처럼 난 머리가 좋을 뿐이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이런 식으로. 그래서 그런 놈은 어떻게든 살아간다고.
정태 : (겨우 누울 자리를 잡았다)
민재 : 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머리가 좋은걸 모르는 놈이야. 그래서 여기저기 지 머리 좋은 걸 흘리고 다니게 된단 말이지.
야아.. 그건 좀 그러네. 그런 걸 이해해줄 사람을 찾는 건 쉽지 않을거야.
정태 : 니 주변엔 그렇게 머리 좋은 놈이 많냐. 언제 그런 분석을 다해봤어.
민재 : .... 그 중에 한놈은 꼭 너같이 생겼는데 말야. 요즘엔 여자한테 빠져서 친구까지 따돌리고 데이트를 다닌대나 어쩐대나..
정태 : (긴장한다)
민재 : 무슨 콘서트에도 출몰한대지 아마.
정태 : (결국 일어나 앉는다) 그 얘긴 어디서 들은거야.
민재 : (다시 일하기 시작하며) 교수님들 사이에 소문이 쫘아하던데 뭐.
정태 : (보다가 으이그.. 머리를 긁어댄다)
S#32. 전자동 앞 / 낮
만수가 건들거리며 걸어오다가 보면 입구에 해성이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다가 만수를 보고 얼른 자세를 바로한다.
만수 : 왜. 또 길을 잃어버린거야?
해성 : (긴장한 얼굴) 선배 기다렸어요.
만수 : 날? 왜?
해성 : 보여드릴 게 있어서요.
만수 : (무뚝뚝하다) 보여줘봐. 근데 나 시간이 별로 없는데 지금 꼭 봐야되냐?
해성 : 네. 지금 꼭.
만수, 별로 내키지 않아서 보는.
S#33. 캠퍼스 일각 / 낮
봄 햇살이 이쁘고.. 근처에는 오가는 학생들도 있고. 벤치에 앉는 만수.
만수 : 뭔데 여기까지 끌고 오는 거야.
해성 : (그 앞에 서며) 이건 앉아서 보는 게 좋거든요. 자 그럼 시작할게요.
만수 : 나아참..
해성 : (헛기침 하더니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낸다) 이건 동전을 없애는 마술입니다. 아이엠에프 시대에 동전을 없애면 어떻게 하냐구요?
걱정마세요. 없어진 동전이 두 개가 되서 나타날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눈을 크게 뜨고 잘 봐주세요.
만수 : (어이없어 보다가.. 주위를 둘러보면 지나던 몇몇 아이들이 이쪽을 보고 있다) 아니 잠깐 지금 뭘 하구 있는거야 너어..
해성 : 동전을 없애는 마술이요.
만수 : 아니.. (웃음이 나오며) 그걸 지금 여기서 나한테 보여주겠다고?
해성 : 예.
만수 : 도대체 왜애?
해성 : 왜냐면.. (우물거리다가) 이건 아직 아무한테도 안 보여준거거든요. 그래서요.
만수 : (점점 어이가 없다) 글세 아무한테도 안 보여준 걸 왜 나한테 보여주냐고. 이런 대낮에. 사람들 왔다리갔다리하는데서.
해성 : 난.. 선배한테 사과하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거면 되겠다고 생각한건데..
만수 : 어이어이. 이해성. 니가 뭘 잘못했다고 자꾸 그러는거야. 그럴수록 내가 더 비참해진다고. 모르겠냐?
해성 : 비참해져도.. 그래도 받아주면 안되요? 왜냐면.. 난.. 선배나 다른 사람들하고 친해지고 싶은데..
역시 안되겠지요? 난 너무 눈치가 없으니까.
만수 : (말이 막혀 보는)
해성 : 그래도 이건 보세요. 어제밤에 해봤는데 다섯 번에 세 번은 성공했어요. 자 그럼...
(다시 자세를 잡으며) 그럼 눈을 크게 뜨고 봐주세요. 여기 분명히 동전이 있죠? 보이세요?
만수 : (그저 보는)
해성 : 두두두두두두..... (작은 북 치는 효과)
그러더니 왼손 손가락에 동전을 끼워서 만수에게 보여주고. 화사하게 웃어보이고.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쌌다가 짜안.. 펴보인다. 해성의 손은 비어있다.
만수 어쩐지 가슴이 짜아해지는 기분....으로 목을 가다듬고..
만수 : 야야.. 그거 속임수잖아. 저쪽 손 펴봐봐.
해성 : (의기양양해서 다른 손을 펴보인다. 역시 비어 있다) 없죠? 동전이 없어진 거 맞죠?
만수, 보다가 두 손을 든다.
만수 : 좋아. 내가 졌어. 니가 이겼다구.
해성, 활짝 웃는데. 쨍그렁 소리와 함께 해성의 옷소매에서 동전이 땅으로 떨어져 내린다.
S#34. 운동장
저 앞에 보이는 넓고 빈 운동장. 그 위로.
만수 : (E) 자 잘봐. 저 앞에 넓고 넓은 운동장이 있지?
해성 : (E) 있어요.
만수 : (E) 저 끝까지 갔다가 나한테 돌아오는거야 알았나!
운동장 이 끝에 해성과 만수가 자전거를 놓고 서있다.
해성 : 네.
만수 : 소리가 작다. 다시 한번 알았나.
해성 : (크게) 예 알겠습니다.
만수 : 좋아 그럼 다음.
해성 : (얼른 자전거에 올라타려는데)
만수 : 아아아 잠깐. 누가 자전거에 타라고 했나.
해성 : (얼른 내린다)
만수 : 일단 자전거를 똑바로 봐라.
해성 : (군인처럼) 봤습니다.
만수 : 바퀴가 몇 개 있나.
해성 : 두갭니다.
만수 : 무신 소리를 하고 있는건가. 다시 한번 똑바로 봐라. 바퀴가 몇 개야.
해성 : (만수를 돌아보며 자신이 없어서) 두갠데요.
만수 : 어허.. 다시 잘 봐. 이 자전거는 바퀴가 세 개다. 보이나?
해성 : (다시 본다)
만수 : 우리 앞에 있는 이 자전거는 바퀴가 세 개다. 두 개는 쇠바퀴. 다른 바퀴는 너의 마음 속에 있다. 이제 보이나.
해성 : (만수를 보고 자전거를 봤다가 활짝 웃는다) 보입니다.
만수 : 좋다. 그럼 이제부터 세발자전거를 탄다. 자전거에 착서억..
해성 자전거에 올라탄다. 만수 교관처럼 폼을 잡으며.
만수 : 그럼 호각 소리와 함께 달려간다. 준비이...
해성 : (앞을 보며 페달에 한 발을 얹고)
만수 : (입으로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를 낸다)
해성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기 시작한다. 만수 긴장해서 본다.
몇번이고 아슬아슬하게 비틀거리던 해성의 자전거가 조금씩 조금씩 균형을 잡으며 달려가고 있다. 점점 멀어진다.
만수 저도 모르게 따라 달려가며 조금만 더. 앞에 봐.. 등등 응원을 보낸다.
운동장을 달리는 해성과 자전거. 그리고. 만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