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인생 굵은 삶" 의 고인을 추모하며...
대전 현충원에서 목사님은 이렇게 기도를 시작했읍니다.
"짧은 인생 굵은 삶을 살다간 두 고인을 추모하며 함께 기도하자"는 말씀으로 시작한 목사님은 "진시황이 누리고 얻은 것은 무엇인가? 부귀영화 누린다고, 진수성찬 먹는다고 의미있는 삶 인가?" 라며 "이웃을 위해, 이웃을 향한 삶을 살다간 고인을 잊지말자."라고 당부합니다.
그리고 모두 나지막한 목소리로 합창했습니다.
"몇일 후, 몇일 후.....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59기 동기생들로 부터 경례를 받는 두 고인 (사진 : 공군제공)
이런 소식을 전하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두 분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사고현장을 주민의 안내를 받아 둘러보며 안타까움에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위치는 212 비행교육대대 활주로 남쪽 끝자락에서 불과 1KM 남짓 위치한,
고은4구 마을회관과는 100여M 정도의 거리 입니다.
공사 정문 입구 앞 삼거리에서 청주시내 반대방향 보은 속리산 방향으로 내려가 만나는
첫 삼거리를 200M 정도 지나서 우측 마을로 들어가면 바로 마을회관을 만나게 됩니다.
마을회관 마당을 지나쳐 약 100M 거리의 콘크리트 도로 위 입니다.
도로 위에는 폭발의 흔적이 생생합니다.
활주로에 진입하기 위해 선회하던중 엔진이 멈춰 활강비행을 위해 수평을 유지하고
도로 오른쪽 논밭으로 비상착륙을 시도하려다 도로 좌측 전선에 바퀴가 걸려
도로 위로 곤두박질한 것 같다는 말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위 내용은 일부 언론 기사 등의 추측 보도 등으로 공군에서 조사결과 발표가 있기전 까지 기다려 보아야 합니다.
공군은 현재 성일환 참모차장(전 공사교장)을 책임자로 하여 조종사와 관제사 간의 교신 내용을 포함한 모든
자료들을 대상으로 사고조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정확한 사고원인은 조사가 모두 끝나야 알 수 있으니 기다려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사고조사 및 결과발표 과정은 세계 공통의 기준입니다.
마을주민들의 말씀에 의하면 매우 낮은 고도 상태에서 차량 통행이 많은 인근도로와
마을을 피하기 위해 낮은 야산과 논밭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안간힘을 쓴 것 같다고 합니다.
도로 위가 아니라 논밭이었다면 하는 안타까움,
하필이면 전선에....
주민을 향해 구조요청을 하던 남 교수의 생존모습.....
그러나 바로 기체의 폭발로 인해 순직하고 말았던 당시 상황을 그려보면
더욱 안타까움에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검게 그을린 도로 뒤로 흰색건물이 마을 회관입니다.
마을회관과 정자 입니다.
그날도 마을 주민들께서 이곳에 모여있다가 평소보다 낮은 저고도로 비행하는 모습을
이상하다 여기던중 사고 순간을 목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조요청을 하던 곳으로 달려가려던 중 폭발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기지착륙을 위해 저고도 선회비행 상태에서의 엔진 멈춤,
전선에 걸림, 콘크리트 도로 위 추락, 이어진 폭발.....
계속된 최악의 상태로 말미암아 소중한 두 분을 잃고 말았습니다.
떠나는 두 분을 지켜보는 참모총장님과 참모 여러분...
빈소였던 항공의료원을 떠나
아침 8시 30분경 성문문화관에서 영결식이 거행 됐습니다.
두 고인 모두 기독교 신자 분들이어서 목사님께서 진행하셨고
신부님과 스님도 참석하여 함께 애도하였습니다.
30기 대표, 59기 대표의 조사낭독과
유족과 참모총장님, 차장님, 교장님 등과 육군, 해군에서 오신 조문대표단과
30기 일부, 59기 일부의 헌화가 있었고
중앙에 자리한 59기 동기생도들의 흐느낌 속에 진행되었습니다.
영결식을 마친 후 대전현충원으로 출발하는 두 분
밖에서는 엄청난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하늘도 슬퍼하는 것 같았습니다.
전날 저녁 10시경에 도착한 저는 사정상 영결식후 돌아오려 했으나
도저히 돌아설 수 없어 일정을 포기하고 안장식에 따라 나섰습니다.
故 남관우 교수님은 퇴임직전 공사 행정실정으로 재직하신 분 입니다.
공사모 필명은 SOUTH 였습니다.
카페에 흔적은 남기지 않으셨으나
수시로 생도 부모님 여러분의 말씀을 주의깊게 읽어보시고
생도들을 친자녀 처럼 보살피려 노력하신 분 입니다.
워낙 인자하신 분이셨기에 그분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대전 현충원 정문
줄기차게 내리던 비는 멈췄습니다.
버스와 승용차들이 속속 도착합니다.
육군, 해군 조문 대표단의 헌화 모습
이어서 장례위원장이신 오창환 공사 교장님께서
"우리가 두 분의 몫까지 빈틈없이 채우자."는 말씀으로 모든 절차를 마치고
묘역으로 이동합니다.
천안함 46용사의 묘역 입니다.
바로 옆 312 장교묘역에 두 분께서 영면하시게 되었습니다.
안장식이 진행되는 동안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조문객 여러분....
현충원을 떠나기 전 둘러 본 호국영령들께서 잠든 모습.
마치고 공군본부 정훈실장님과 아침을 겸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공사로 돌아왔습니다.
회원님들의 마음에 상처가 될까 염려하며 마음이 편치 않아 폭탄주를 들이키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분들 모두 한결같이 남은 분 들의 상처를 걱정하였습니다.
학교에서는 교장님을 비롯해 전 교수진, 참모진, 훈육관, 중대장님들께서 생도들의 안정을 위해 밀착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짬을 낸 교수분들과 순직하신 고인들을 추모하는 자리를 갖고 오늘 아침 귀경했습니다.
저에게 조의금을 보내주신 분들...
문자메세지로 안타까운 심정을 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남은 유족들께서 평정을 찾아 열심히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기를 바랍니다.
황소생각의 하늘사랑
첫댓글 "짧은 인생..굵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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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
마음을 뭐라 표현할 말이 없군요..
...
주변을 봐도 사회에서 더 널리 필요한 사람들이 우리곁을 떠나는걸 보면..
아마도 천국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라 빨리 데려가셨나봅니다..
ㅠ
황소생각님도 정말 고생 많이 하셨네요..
사진 보면서 눈물이 막 나네요........
공사에 지원하게될 아들의 애비이지만.....꼭 내일처럼 , 내가족 처럼 느껴지는군요......
가족들의 상심은 더 하다는걸 생각 해 보니 정말 많이 슬펐습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정말 가슴아픈 일입니다. 왜 ? 이런 일이 있을까? 정말 신이 존재 하신다면 왜 훌륭하신 교수님과 채 피워보지도 못하게 전도양양한 젊은이를 저토록 가시게 방관하였을까요? 정말 원망스럽습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황소생각님! 언제나 무슨 일만 있으시면 앞장서시고 수고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장마철에 건강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