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로프 산에서, 위로 오르며 아래를 바라보다
— 리우데자네이루의 케이블카 위에서 쓴 마음의 기록
이른 아침을 서둘러 마치고 우리는 슈가로프 산을 향해 움직였다. 차창 사이로 바닷바람이 스치고 지나갈 때, 나는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았다. 사진보다 오래 남는 것은 눈으로 담은 풍경이라는 걸, 여행이 가르쳐 주곤 한다. 유리창 밖으로 흐르는 리우의 아침은 겉으로는 여느 해안 도시와 다르지 않아 보였지만, 사람들의 발걸음과 도시의 호흡은 유난히 빨랐다.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케이블카 입구에 다다르자 묵직한 철의 몸체들이 오르내리며 묵묵히 제 일을 하고 있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케이블카에 오르니, 이미 창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두의 마음이 같았을 것이다. 저마다 가장 좋은 각도에서 리우를 품고 싶었을 테니까. 이곳은 리우데자네이루를 찾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오르게 되는 자리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두 번의 상승으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모루 다 우르카. 잠시 내려 아래를 내려다보지만, 위로 한 번 더 오를 때 비로소 시야는 완전히 열렸다. 앞선 산에 가려 보이지 않던 도시의 얼굴이, 마치 오래 숨겨 두었던 고백처럼 한순간에 드러났다.
마침내 정상에 내리자, 리우는 한 폭의 파노라마가 되어 눈앞에 펼쳐졌다. 광활한 도시,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삶의 흔적들, 그리고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화물선들. 이 배들 덕분에 세상은 서로를 오가고, 물건과 이야기가 건너다닌다. 멀리 로컬 공항 활주로에는 비행기가 착륙하고 있었고,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오래전 한국 공군 시절, 조종간을 잡던 기억이 조용히 되살아났다. 시간은 흘렀지만,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만은 그대로였다.
정상에서 바라본 리우는 거대한 도시였다. 해변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 웃음과 휴식은 저마다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대가처럼 보였다. 그러나 산등성이를 따라 빼곡히 들어선 작은 집들 또한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들으니 빈민가라고 했다. 한때 한국에서도 산꼭대기는 가난한 이들의 터전이었고, 지금은 부유한 이들이 오르는 자리다. 언젠가 이 도시도 그렇게 변할까. 창가 너머로 보이던 그 집들은, 폭우가 쏟아지면 산사태가 날 것 같아 마음 한켠을 무겁게 했다.
나무 사이로 독수리들이 유유히 날고 있었다. 거대한 암벽 틈새마다 뿌리내린 식물들은 누구의 돌봄도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나는 나 자신을 보았다. 낯선 땅에서, 도움 없이 홀로 서야 했던 시간들. 나 역시 암벽 사이에서 자라난 풀처럼 버텨 왔다는 사실이, 문득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졌다.
정상에는 카페와 기념품 가게, 잘 정비된 시설들이 있었다. 이 높은 곳의 일상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기술 위에 놓여 있을까. 케이블카 하나를 세우기까지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머리를 맞대었을 것이다. 뉴욕에서 타는 작은 케이블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와 거리. 인간의 지혜와 자연의 위대함이 이곳에서는 조용히 공존하고 있었다.
멀리 구세주 그리스도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팔을 벌린 채 도시를 내려다보는 그 형상은, 축복이라기보다 경계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높이 올라와 있든, 결국 우리는 내려가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듯.
그래서였을까. 이 꼭대기에서 나는 겸손을 배웠다. 올라섰기에 보이는 것들이 있었고, 내려가야만 다시 삶이 이어진다는 것도 분명해졌다. 슈가로프 산의 정상은 단지 전망대가 아니라,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나는 다시 케이블카에 몸을 싣고 내려왔다. 마음 한편에 작은 다짐을 품은 채. 인생에서도, 오늘처럼 — 오를 수 있을 때 감사히 오르고, 내려올 때를 잊지 않으며 살아가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