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전 부터 달력에 구월 이십삼일에 내생일이라고 동그라미를 크게 그려 놓았다.
혹시라도 잊어버릴까봐, 세상이 얼마나 쓰고 단지 겁도 없이 궁금해서 태어난 날.
일 년에 한 번 돌아오는 소중한 날은 자식이 차려준 생일상에
오순도순 둘러앉아 함께하고 싶었다.
하루 종일 기다려도 아이들은 소식도 없고 스멀스멀 시어미의 심통이 솟아오르려고
하는 순간 폰에서 벨이 울렸다.
“엄마, 내일이 엄마 생일인데 뭐 먹고 싶으세요,
내일 퇴근하고 정민 엄마와 들어갈게요.”
“나가서 고기나 먹지 뭐, 특별히 먹고 싶은 것도 없다 입맛도없고.”
태연한척 혈압을 누르며 대답을 해놓고 하루밤이 지나갔다.
저녁이면 퇴근 후 아들 며느리와 모처럼, 소고기 먹을 생각에
아침도 대충 때우고, 점심도 빵에 우유 한잔 먹고,
아들을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상추쌈 위에 무 쌈하나 깔고 고기 한점 얹어, 고추와 마늘 한쪽씩
넣고 볼이 터지게 먹을 생각을 하며,
하루 종일 속을 비운 탓인지
아들이 오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벌써 시장기가 돈다.
‘생일 잘 먹자고 열흘 굶는다' 는 옛말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혼자 웃었다.
아들은 지금 출발해 가고 있다고 전화가 왔었다.
“엄마. 밥만 조금 해 놓으세요”.
‘아니 고기 사준다더니 웬 밥을 해 놓으라는 거야’
하며 햅쌀을 씻어 밥솥에 안치고 기다렸다.
아들 며느리가 양손에 무언가 무겁게 들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보따리 속에 무엇이 들었을까 궁금했다.
데우고 끓이고 갖은 나물과 들깨가루를 넣고 볶았다는
무나물은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미역국. 찜. 전도 골고루 부치고 주먹만한 케이크에 불을 켜니 금방 한상이 거나하게 차려졌다.
생일이면 며느리가 해오는 음식의 맛이 해마다 좋아지니 대견하기도 하고 자랑스럽다.
정민엄마가 시집 온지도 벌써 25년, 주부 경력이 솜씨를 말해 주는 듯싶다.
이젠 요리사 못지않은 맛을 내니 애미가 아주 훌륭하다.
유튜브에서 배웠다며 김치도 그럴듯하게 입맛에 딱 맞게 아주 잘해왔다.
그동안은 반찬을 해놓으면 주말에 와서 가져다 먹었는데 이제는 안 해줘도 될 것 같다.
“얘, 정민 어미야, 반찬 가져가거라, 버릴 거면 아예 가져가지 말고 ”
하면 왜 버리느냐고 알뜰하게 챙겨가는 며느리가 신통하고 항상 고마웠다.
'아ㅡ니, 나가서 먹자더니 하루 종일 장만 했겠네'
힘들게 하느라 고생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들은 싱긋이 웃으며
“엄마가 다 가르쳤잖아, 한끼 먹자고 나가서 외식 할 돈으로 장을 봐서 음식을 하면
너희들도 싸가고 나도 몇 끼를 먹을 수 있다고”
언젠가 한 말을 아들은 잊지도 않고 두고두고 써 먹고 있었다.
며느리도 귀담아 들었는지 시어미의 습성을 아니 내마음속에 생각까지 읽고 있다.
우리 집은 짠순이 짠돌이만 산다. 며느리도 시어미를 닮아 낭비를 모르고 알뜰하게 생활하며,
지금까지 명품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끼고 절약하며 살아왔기에
이제는 조금도 부족한 것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우리집은 왕소금 짠순이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