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 체결일이 들어있는 달
<중주>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새로운 달 7월의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이 달의 27일(목)이 어떤 날인지 알고 계시지요?
맞습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입니다.
남한에서는 7월 27일이 어떤 날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요, 북한에서는 이 날이 무슨 날이 모른다고 하면 눈총을 심하게 받을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이날을 <조국해방전쟁승리의날>, 줄여서 <전승절>이라고 부르면서 국경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 이름을 들을 때마다 ‘과연 타당한 것인가? 너무나 북한스럽지 않나?’ 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북한에서는 무슨 일의 10주년이나 5주년 기념일을 정주년(整週年), 일상적으로 쓰는 말로는 ‘꺾어지는 해’라고 부르며 판을 크게 벌이는데 올해는 정전협정 체결 7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으로 예견되고 있습니다.
이미 6월 초에 적지 않은 규모의 북한군이 열병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이 정전협정 체결 기념행사 연습이라는 설명과 함께 보도된 일이 있었습니다.
판문점에서 행해진 정전협정 조인에 한국 대표는 참석하지 않고 UN군과 북한군과 중국군 대표가 협정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이 협정을 “聯合國軍總司令一方與朝鮮人民軍最高司令官及中國人民志願軍司令員另一方關於韓國軍事停戰的協定”이라는 긴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를 풀면 “'國際聯合軍總司令官을 一方으로 하고 朝鮮人民軍 最高司令官 및 中國人民志願軍司令員을 다른 一方으로하는 韓國軍事停戰에 關한 協定”이 됩니다.
정전협정문은 한글, 영문, 중국어, 세 나라 말로 되어 있는데 한자는 지금 쓰고 있는 간자(簡字)가 아닌 번체(繁體)로 되어 있습니다. 간자가 제정되기 이전이었으니까 자연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정전협정 당사자의 하나인 중국이 정전 70년에 대해 발언을 한 것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집니다.
교회가 바쁘다
정전협정 70년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것은 남한의 교회들입니다.
그럴 이유가 있습니다.
한반도의 분단은 흔히 ‘삼겹 분단’이라고 말합니다.
1945년 8월 15일에 그어진 38선에 의한 분단은 영토분단이고, 1948년 8월과 9월에 남과 북에 별개의 정부가 수립된 것은 체제분단이고, 3년간 치열하게 싸운 끝에 군사분계선을 휴전선으로 해서 정전상태에 들어가 70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정서분단’이라고 하는데요, 그러니까 정전협정 조인은 분단의 완성이라고 할 수도 있고, 강성분단, 또는 진성분단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1953년의 분단을 강하게 말하기 위해 ‘찐분단’ ‘깡분단’ 이렇게 경음(硬音)을 사용하는 분도 있습니다.
올해는 그로부터 70년이 되는 해인데 통일선교 사역자들은 예레미야 29장 10절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라는 말씀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져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포로생활 70년만에 포로시대에서 귀한시대로 전환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생각하며 한국의 역사가 분단시대에서 통일시대로 바뀌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정전협정 체결일이 들어있는 7월과 해방과 영토분단의 날이 들어있는 8월에 이 기도는 더욱 뜨거울 것입니다.
통일선교 사역자들은 또 “중요한 해인 2023년이 한국교회 통일선교 사역의 새 원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2023년을 통일선교의 새 원년으로!”라는 표어를 보거나 들으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분들은 통일선교 사역의 연합과 협력이 부족한 것, 통일 이후 북한복음화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그밖의 여러 가지를 회개하면서 새롭게 출발하자고 힘써 말하고 있습니다.
‘중주 사역’, 이런 뜻입니다
그같은 소식을 듣고, 또 모습을 보면서 중주 사역도 다시 새롭게 출발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지곤 합니다.
참 제목에서 이미 사용했고 여기에 다시 등장한 “중주 사역”이라는 말에 대해 설명을 드려야 하겠네요.
“중주 사역”이라고 하면 ‘오, <중국을 주께로>를 매달 한 번씩 발행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로구나!’ 하시기 쉬울 것입니다.
이 글 제목에 들어있는 “중주 사역”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만일 그런 뜻이라면 ‘중주’의 앞 뒤에 홑화살괄호(< >)를 했을 것입니다.
여기의 ‘중주’는 중국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한 여러 일의 모두, 알기 쉽게 말하면 ‘중국복음화’를 위한 일의 전체를 말합니다.
‘중국복음화’를 줄여서 ‘중복(中福)’이라는 말을 쓸 수도 있겠으나 어색하고 中伏, 重複 등 우리말 발음이 같은 낱말들이 있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중국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중국선교’라고 했습니
다. 제가 이 분야의 일에 부름 을 받은 1970년대 초기에는 ‘중공선교’라고 했는데 이 말은 1990년대 초까지 쓰였습니다.
그때는 중국이라고 하면 대만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중국의 교회가 힘을 갖고 선교강국의 하나로 부상하고, 여러 일을 하게 되자 ‘선교중국’이라는 말이 등장했고 얼마 뒤에 ‘중국사역’이라는 말을 쓰게 되었지요.
이렇게 용어가 복잡해졌는데 문득 “‘중주 사역’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여기에 시험적으로 등장시켜 보았습니다.‘
한국교회의 중주 사역은 장로교가 1913년에 세 분의 선교사를 중국 산둥성에 파송한 것이 출발점이 됩니다.
그 전 해인 1912년 9월 평양에서 장로교 총회가 조직될 때 그 일을 결의했지요.
그러니까 올해는 선교사 파송으로부터 110년이 되는 해인데 ]중주 사역 표준 연표(年表)’같은 것을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방과 6․25 전쟁 후 한국교회의 중주 사역의 출발점을 어디로 잡아야 할까?
초기에는 방송의 역할이 컸는데 중국어 선교프로그램을 송출한 극동방송이 설립된 1956년년, 극동방송보다 다삿 배 강한 출력과 공간파(Sky Waves), 지향성 등의 설비를 갖춘 아세아방송(현 제주극동방송)이 개국한 1973년, 조선족 중심의 선교가 행해진 1980년대 후반, 한중수교로 현장선교가 가능해진 1992년 이후,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올 것입니다.
그때부터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우리가 제대로 하지 못한 것들을 찾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지금 중주 사역은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중국이 기독교에 강한 제약을 가하고 선교사들의 대다수가 비자발적으로 중국을 떠났고 코로나 사태까지 덮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위축되고, 기가 꺾이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신앙적인 태도인가, 성찰이 꼭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을 모아서 저는 지금 “중주 사역 다시 새롭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통일선교 사역과 좋은 짝이 이뤄질 것입니다.
자, <중주> 가족 여러분, 우리 중주 사역,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합시다!
지난 호에 이어 7월 호에서도 “2023 이주민선교포럼”을 특집으로 다뤘습니다.
이번에는 국내 이주민 선교현장들을 소개합니다. 대구 내일교회의 이주민 선교현장, 국내 무슬림 선교현황과 과제 및 전략, 재한 외국인 유학생 사역, 제주 이주민선교를 위한 실태 파악 및 선교전략 등 여러 선교 현장들의 생생한 모습을 정리하면서 ‘참 여러 분야의, 구석구석에서 귀한 사역자들이 헌신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발표해 주신 이관현 목사님, 허은열 선교사님, 이해동 목사님, 송은섭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무척 덥습니다. 더위 잘 이기시고, 휴가철인데 좋은 재충전이 이뤄지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