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정보화시대를 연 괴짜 수학자
이 책은 수학자 클로드 섀넌에 대해 컴퓨터, 인공지능 등 최근에 우리 생활을 온통 휩싸고 있는 용어들에 대한 깊이가 없어도 읽을 수 있도록 담담하게 그려놓았다. 세상을 바꾼 천재들에게서 나타나는 괴짜 근성이 그에게도 충만한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섀넌은 저글링을 하기를 좋아하는 저글러였고, 어릴 때부터 주변 물건들을 이용해 무엇이든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땜장이였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생각을 하는 놀이꾼이었다. 그런 다소 엉뚱해 보이는 면이 그의 창의적 사고가 용솟음치게 하는 원천 구실을 했던 모양이다.
그런 반면에 한 가지 일에 호기심이 발동해서 꽂히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사람이었으며, 동시에 호기심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는 다른 접근을 보였다. 아마도 그의 그런 기질이 그로 하여금 정보화시대를 열개 한 모양이었다.
오늘날을 일컬어 우리는 정보화시대라고 규정한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 인터넷 등은 모두 정보를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정보라는 용어를 20세기 초에도 사용하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했다. 합의된 정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 정보에 대한 개념 정의
이러한 정보를 정의하여 현대적 의미를 제시한 사람이 바로 클로드 섀넌이다. 섀넌이 스물한 살 때, 그의 MIT 석사학위 논문 ‘계전기와 스위치 회로의 기호학적 분석’에 그 내용을 담았다. 논문에서 그는 전기회로로 모든 논리 연산이 가능함을 보인 것이다.
섀넌이 증명한 바에 따르면 논리연산을 전기회로로 구현할 수 있으므로, 전기회로로 구성된 기계가 인간의 합리적 행위를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는 인간이 행하는 모든 중요한 합리적 의식 과정은 논리적 문제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문이 세상에 나온 것은 그는 대학원 시절 여름 벨연구소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 덕분이라고 한다. 그는 그곳에서 바네바 부시의 해석기, 그레이엄 벨의 네트워크(전화기), 불 논리의 공통점을 한데 엮으려 노력한 결과다.
섀넌은 박사학위를 받은 후 벨연구소에서 암호학 연구를 하게 되고, 그때 앨런 튜링과 접촉하게 되었다. 앨런 튜링은 모든 수학적 문제를 기계로 해결할 수 있음을 보였다. 튜링과 섀넌의 꿈을 이룬 것이 바로 컴퓨터이다.
클로드 섀넌은 정보의 개념을 최종 확립하였다. 일찍이 19세기에 ’메시지를 어떻게든 정량화할 수 있다면 좀 더 정확한 장거리 통신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인식하에 시작됐던 연구가 몇 단계 성숙하여 ’새로운 과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다. 효율적인 정보 전달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잉여성을 낮추어야 한다. 섀넌의 첫 번째 정리에 따르면 복잡한 메시지원(오디오, 비디오, TV, 웹페이지)도 효율적으로 압축될 수 있다. 만약 메시지를 압축할 수 없다면, 오디오 파일 하나를 다운로드 받는 데 몇 시간이 걸릴 것이다.
벨연구소
웹 비디오를 스트리밍하는 것은 너무 느려 꿈도 구지 말아야 할 것이며, 수 시간짜리 TV프로그램을 저장하는 데 작은 상자에 담긴 디스크 몇 장이 아니라 책꽂이 하나를 가득 채운 테이프가 필요할 것이다.
마침내 섀넌에 의해 디지털 세상이 창조되었다. 우리는 시계를 만든 다음 세상은 시계 장치처럼 움직인다고 생각했고, 증기기관을 만든 다음 세상은 열을 처리하는 기계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정보망을 건설한 다음, 세상을 정보망의 이미지 속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논문이 발표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마침내 그의 ‘정보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경제 전문지 ‘포춘’지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과학자 20명’ 목록에 클로드 섀넌을 포함시켰다.
라. 인간과 기계에 대한 섀넌의 전망
섀넌은 기술 진보에 대해 철저히 낙관적인 전망을 갖고 있었다. 기계의 능력, 책임감, 정보가 모두 증가할 것이라 철석같이 믿었다. 그는 자신의 로봇 연구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현실 세계에 대한 감각적 지식을 얼마나 향상시킬 것인가? 둘째, 정보를 출력하는 것 외에 그들이 아는 것을 우리에게 얼마나 잘 전달하게 할 것인가? 셋째, 그들로 하여금 현실 시계에 얼마나 잘 반응하게 할 것인가?”
섀넌은 이미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바와 같은 미래 세계를 거의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다. 인간의 몸에 문제가 생기면 의사는 도려내는 것만을 할 수 있지만 기계들은 망가진 것을 도려낼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것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젊은시절의 섀넌
오늘날 많은 장기들이 대체되고 뼈나 근육들 역시 대체되고 있다. 의족과 의수 또한 마찬가지로 새로운 것으로 갈아 끼워지고 있다. 오늘날은 섀넌의 목표는 절반쯤 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2001년까지는 그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라 예측했지만 그의 예측보다 4년 앞선 1997년 딥블루가 인간 체스 챔피언을 격파했다. 오늘날 전 세계 주식의 상당 부분을 컴퓨터들이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섀넌은 인공지능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 인간 클로드 섀넌
그는 수학자이기도 했고 공학자이기도 했으며, 때로는 저글러, 외바퀴자전거족, 기계공, 미래학자, 도박사이기도 했다. 섀넌은 이러한 다양한 관심 분야가 상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잡식성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행동했다.
외발자전거 타는 섀넌
그러므로 그가 정보이론에서 인공지능, 체스, 저글링, 도박으로 수시로 건너뛴 것은 전적으로 일관된 행동이었다. 그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의 재능을 단일 분야에 투자하는 것은 당찮은 일이었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다방면의 관심사를 추구하는 태도는 그의 생활 방식에 여과 없이 드러났다. 그는 조금은 괴짜 성향을 지닌 것 같다. 하기야 명성을 드높인 과학자들 가운데 그런 괴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더러 있는 것을 보면 섀넌만의 독특함은 아닐 것이다.
후학들은 그의 그런 성향은 용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의 용기는 ‘내가 좋으면 그만이다’라는 식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연구가 남의 눈에 어떻게 비춰지는가는 그에게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천재들만이 가질 수 있는 자부심일 것이다.
섀넌에게 그의 일생은 지속적인 놀이의 연속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세상을 바꾼 특출한 천재인 동시에 놀기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가 발명한 외발자전거 같은 물건들로 돈을 벌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것은 그에게 놀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