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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 니콜라우스 톨렌티노 (1305년 9월 10일)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은둔 수도자인 이 성인도 연옥의 불 쌍한 영혼들의 위대한 구원자였다. 그는 설교와 고해 성사를 통한 열절한 구령 활동,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개심(改心)을 위한 혹독 한 보속을 실천함으로써 수많은 이들을 회개시켰다." 그 때문에 두 교황은 그를 불쌍한 영혼의 수호 성인이라고 기술하였다. 말하자면 교황 보니파시우스 9세는 1390년 1월 1일과 1400년 3월 1일 자에 발표한 두 교서 ("Splendor paterne gloriae"와 "Licet is de cuius") 에서, 교황 레오 13세는 1884년 6월 10일자의 소교서 (Breve)에서 명문화하여 이 사실을 증명했다. 레오 13세는 그 소교서를 통해 "톨렌티노(Tolentino)의 니콜라우스(Nikolaus) 주보 성인 축제일 동안 고통받는 연옥 영혼을 돕기 위한 경건한 일치"를 카논으로 정하였다. 니콜라우스가 환영(幻影)으로 본 연옥을 묘사한 것과 불쌍한 영혼들을 위한 성미사의 은혜로 정화를 거친 연옥 영혼들이 하늘의 영광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성인의 묘사를 통해 그리스도교 예술 역시 이 성인을 연옥 영혼과 밀접히 연관시켜 놓고 있다.
니콜라우스 톨렌티노는 1269년 싱골리 (Cingoli)에서 벤베누토 오시모(Benvenuto von Osimo) 주교에 의해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성 니콜라우스는 곧 매일 큰 집회와 기도를 경건한 의식으로 진행했는데, 대부분 그에 앞서 참회 예절을 가졌다. 그는 연옥의 불쌍한 영혼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구원을 줄 수 있는 성미사를 자주 올렸다. 그가 특히 그런 일을 하게 된 이유는 어느 토요일 밤에 불쌍한 영혼이 발현하여 그에게 도움을 간청했기 때문이었 다. 그는 다음날 아침 곧 그 영혼과 연옥에서 고통받는 더 많은 영혼들을 위해 성미사를 드렸다. 성 니콜라우스는 이 도움을 갈구하는 목소리가 정말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싶어 그에게 나타난 불쌍한 영혼의 이름을 물었다. 그러자 '나는 죽은 친구 수사 페레그리누스 오시모(Peregrinus von Osimo) 일세"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내 죄의 대가로 내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주님의 지극하신 자비로 인해 나는 영원한 파멸에서는 벗어났네. 그러나 고통스런 연옥에서의 오랜 동안의 정화를 거쳐야 하는 판결을 받았어. 그러니 나와 다른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내일 하느님께 미사 성제를 바쳐 주게. 내가 그것을 원하는 이유는 그런 희생 봉헌이 있을 때, 우리는 이 고통에서 확실하게 벗어나거나 적어도 고통이 경감되기 때문이야." 성 니콜라우스가 대답했다. "주께서 네게 그분의 보혈의 고덕을 주시기를 허락하신다면, ...하지만 나는 내일은 너의 청을 들어주기가 어렵네. 왜냐하면 나는 내일부터 다음 주일 내내 (미사를 드리지 않는) 주간 당번 (Hebdomadarius)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네." 그러자 곧 죽은 영혼들이 울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오는 가운데 죽은 친구가 말했다. "아, 자네가 만약 우리에게 동정심을 별로 갖고 있지 않다 해도, 주님의 사랑으로 적어도 와서 보기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네. 자네가 만일 우리가 고통받고 있는 것을 눈으로 본다면, 자네에게 부탁하는 것을 거절할 만큼 그렇게 몰인정하게 되지는 않을 걸세. 자네는 자네 자신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연옥의 고통 속에서 더 오래 시달리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게 될 걸세."
그러자 곧 이 성인에게는 그가 마치 연옥에라도 와있는 듯한일이 일어났다. 그는 광활한 평야를 보았는데, 거기에는 나이와 신분이 모두 다른 수많은 불쌍한 영혼들이 아주 여러 가지 방법 에 의해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가혹한 모습으로 정화되고 있었다. 묘사하기조차 어려운 고통 속에 있는 이 영혼들이 이 믿음 깊은 사제를 보았을 때 그들 모두가 이구 동성으로 이 사제에게 그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 주기를 비탄 속에서 간청했다. 그때 죽은 친구 페레그리누스 오시모가 성 니콜라우스에게 말했다. "보게나, 이들이 바로 자네에게 나를 보냈던 이들이네. 자네는 하느님의 마음에 들기 때문에 자네가 우리를 위해 성미사를 봉헌해 준다면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확신을 품게 되었지." 이 성인은 밤 중에 보고들은 이 놀라운 사실들로 인하여 크게 흔들렸고 동이 트자마자 즉시 수도원장에 게로 갔다. 원장은 그의 말을 들은 후, 이 성인에게 즉시 그의 "웹도마다리우스"를 면제시켜 주고 일요일 아침뿐만 아니라 그 주일 내내 불쌍한 영혼들을 위한 성미사를 올리도록 허락해 주었다.
이 성인은 그 주일 내내 바치는 성미사가 가능한 한 하느님의 마음에 드시도록 계속해서 아주 혹독한 참회의 고행을 했다. 철저한 단식과 엄격한 참회의 고행은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기도와 참회의 보속을 멀리하게 하려는 악마의 모든 유혹을 용감하게 물리쳤다. 이처럼 성 니콜라우스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한 회개와 보속을 충실히 실천했으며 그의 다른 의무 기도에 덧붙여서 매일 죽은 이들을 위한 성무 일도(Totenofficium)를 바쳤다.
그 후 다시 그 죽은 친구 페레그리누스가 이 성인에게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그전처럼 정화되는 모습이 아니라 경이로운 광휘가 비춰지는 속에서 연옥에서 해방된 다른 수많은 영혼들과 함께 있었다. 그들 모두는 이 성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으며 시편 44편 7절의 말씀을 노래하면서 페레그리누스와 함께 하늘로 높이 둥둥 떠가고 있었다. "우리의 압제자에게서 당신은 우리를 해방시키고 우리를 증오하는 자들을 멸망시켰습니다.""
성 니콜라우스에게는 그가 수도원 생활을 계속하는 동안 아주 여러 번 불쌍한 영혼들이 나타나 그에게 도움을 간청했고 또그 의 도움에 대해 감사를 표시했다.
1. 복녀 크리스티나 슈토멜른(1312년 11월 6일)
쾰른(Köln) 근방의 슈토멜른(Stommeln) 출신인 이 독일인 복녀 에 대한 공경은 1908년에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승인되었는 데, 사람들은 그녀를 틀림없이 불쌍한 영혼들의 친구들에 포함시킬 것이다. 1242년부터 1312년까지의 그녀의 생애에 환영과 엑스 타시(탈혼 경지의 황홀경), 특별한 고통, 성흔이 찍히는 현상 그리고 심지어는 충격적인 마귀의 유혹까지 수많은 놀라운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훌륭한 신학 교육을 받은 도미니코회 수도사이며 성 알베르투스 마뉴스(Albertus Magnus)의 제자인 페트루스 다치off (P. Petrus von Dacien)에 의해 증명이 잘되지 않았더라면, 그 일의 대부분은 전설의 영역으로 돌려졌을 것이다." 그는 역시 그 복녀를 보고자 몇 번이고 슈토멜른을 찾아왔으며,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그녀에게서 직접 그녀가 체험한 사실들과 그녀의 사제인 요한 (Johannes)으로부터 들은 것들을 기록했다.
노련하고 학식이 풍부하며 판단력이 뛰어난 이 신학자는 크리스티나 슈토멜른(Christina von Stommeln)에게 일어난 현상들을 전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페트루스 다치엔이 그 복녀의 엑스타시를 묘사한 것을 보면, 그의 관찰력이 어느 정도로 확실한가를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복녀품에 오른 크리스티나의 환영이나 엑스타시도 아니며 그녀가 고통받아야만 했던 사탄의 무서운 공격도 아니며 그 밖의 많은 고통과, 성흔이 박히는데 이르는 예수님의 수난을 함께 체험한 그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녀가 속죄와 참회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참으면서 이를 통해 영혼들을 구원하고 불쌍한 영혼들을 내세 정화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의도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그에 덧붙여 그녀가 불쌍한 영혼들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떠맡은 혹독 한 보속의 실천을 볼 때,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 영혼들은 그녀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그리고 연옥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후에는 그녀에게 감사하기 위해 종종 무리를 지어 그녀에게 나타났다. 카르투지오회 수사 라우렌시우스 수리우스 (P. Laurentius Surius)는 1570-1575년에 쾰른에서 출간한 그의 저서 성인전론(De probatis Sanctorum bistoriis) 에서 특히 복녀 크리스티나 슈토멜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크리스티나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영혼이 영원한 심판자 앞에 나타났을 때, 그 심판자는 그녀가 곧바로, 자신이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는 영원한 기쁨 속으로 들어갈 것인지 혹은 다시 한 번 지상으로 되돌아가 거기서 수년간을 더 불쌍한 영혼들의 위안을 위해 참회의 삶을 계속할 것인지의 여부를 그녀의 재량에 맡겼다. 그 복녀는 어떻게 했을까?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후자를 택했다. 주님은 즉시 그녀 를 다시 소생시켜 주셨다. 그러자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며 장사지낼 것을 생각하고 있던 이들이 크게 놀랐다. 그 후 그 복녀는 예전의 참회와 보속의 삶을 계속해 나갔을 뿐만 아니라, 거의 믿어 지지 않을 만큼 전례 없는 더욱 혹독한 보속을 실천하였다."
크리스티나 슈토멜른은 바로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자신이 맞이한 통절한 속죄의 고통으로 인해 극히 주목될 만한 독일 신비 주의자 중의 한 사람이 된 것이다.
1. 복자 프란치스코 파브리아노(1322년)
사람들이 연옥의 불쌍한 영혼들에게 보인 특별한 사랑을 보여 준데 대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Franz von Assisi)의 제자 중의 한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안코나(Ancona) 근방의 파브리아노 출신이며 의사의 아들인 프란치스코 베님베니 (Francesco Venimbeni)의 경우가 확실히 그런 사람이다. 그는 16세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들어갔고, 더욱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친구이자 고해 신부인 복자 수사 레오(Leo)를 통해 확고 한 신덕을 갖추게 되었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아 자기 고향과 국경 지방에서 대단히 많은 활동을 했다."
특히 그의 생애에 대해 전해지는 일화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그가 어느 날 그의 성직 생활 중에 매우 자주 그랬던 것 처럼 불쌍한 영혼들을 위한 성미사를 드렸다. 미사가 끝날 무렵 전례의 최종 개혁 때까지 통용되던 기도문인 "주를 믿고 살다가 떠난 죽은 모든 이들의 영혼이 주의 평화 안에 영원히 쉬게 하소서(Requiescant in pace)"를 그가 외었을 때, 수많은 이들이 기쁨에 찬 목소리로 "아멘" 하고 대답하는 것을 들었다. 교회 안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다. 그 음성은 바로 미사 성제를 드리는 동안 함께 기도했던 불쌍한 영혼들의 음성이었다고 한다."
교황 비오 6세에 의해 1775년 4월 1일 복자품에 오른 프란치스코수사에 대해 더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곧 그는 자기의 모든 참회의 보속과 기도를 예외 없이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하느님께 바쳤다. 더욱이 그는 최소한의 공덕조차도 자기를 위해 염두 이 둔 적이 없었다. 따라서 그를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처음으로 '숭고한 사랑'을 실천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 복자 하인리히 조이제(1366년 1월 25일)
보덴(Boden) 호수 근처의 콘스탄츠(Konstanz) 혹은 위벌링엔 (Überlingen)에서 태어난 하인리히 조이제(Heinrich Seuse)는 참으 로 사랑받을 만한 도미니코회 수사로서, 그가 좋아하는 마이스터 에케하르트(Meister Eckehart)와 같이 사변적인 사상가도 아니며, 수사 요한 타울러(Johannes Tauler)와 같이 사람을 사로잡은 설교 자도 아니지만, 신비 체험의 은혜를 많이 받고 숱한 외적, 내적 고통을 통해 성숙한 영혼의 인도자가 된 고해 신부였다. 그는 신 비적 현상과 환영을 통해 천사와 성인들 및 불쌍한 영혼들과 통공할 수 있었고, "성인들의 통공"에 대해 매우 깊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통공이 이루어지는 이 공동체에는 "개선(凱旋)교회” 의 성인들과 "순례 교회"의 지상의 신자들 그리고 "고통받는 교회"의 아직도 정죄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영혼들이 속해 있다."
복자 하인리히 조이제의 생애 (Lebens)」의 제6장에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그에게는 환영을 통해 미래의 숨겨진 많은 일들이 알려졌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와 통교하시면서 천국과 지옥과 연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가능한한 그가 알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이 세상을 떠난 많은 영혼들이 그에게 나타나 자기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고, 어떻게 자신들의 참회와 보속을 실천했으며, 어떻게 자신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와 하느님 안에서 자신들의 삶이 어떠한지를 알려 주었는데 이것이 그에게는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죽은 이들 중 어떤 영혼들이 복자 하인리히 조이제에게 나타났는지에 대해서는 그는 일반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특히 자기의 죽은 부모와, 스승 마이스터 에케하르트와, 학업 동료이자 친구였던 한 사람이 자기에게 나타났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언급을 했다. 부모와 마이스터 에케하르트의 출현에 관해서는 복자 하인리히 조이제의 생애」의 제6장에서 다음과 같이 보고되어 있다." "순전히 세속적인 삶을 살았던 그의 친아버 지가 죽은 후, 그는 아들에게 나타나서 고통스런 얼굴로 연옥에서 자기가 받고 있는 무시무시한 형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특히 왜 그러한 벌을 받게 되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도 아들이 자기를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해 알게 해 주었다. 하인리히 조이제는 물론 그렇게 했다. 그 후 그의 아버 지는 그에게 다시 나타나서는 그의 도움으로 벌을 면하게 되었음을 알려 주었다. 그의 어머니는 믿음이 깊은 사람이었는데 생전에 하느님께서 그녀의 몸과 마음을 통해 기적을 드러내셨다. 그녀 역시 환영을 통해 그에게 나타나서, 자기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큰 보상을 보여주었다. 그 밖에도 수없이 많은 다른 영혼들이 그에게 나타났고 많은 환영을 보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복자 마이스터 에케하르트가 그에게 나타났다... 마이스터는 자기의 영혼이 완전히 하느님 안에서 행복이 흘러 넘치는 영광 속에서 살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러자 하인리히 조이제는 그에게 두 가지 일을 알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첫째, 깊은 평화 속에서 지고(至高)의 진리를 위해 기꺼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하느님 안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대해 물었다. 그는 그러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측량할 수 없는 깊은 복락 안에 몰입되어 있어 아무도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는 그러 한 최고의 일치에 도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노력이 가장 필요한가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얻었다. '자기가 본래 처해진 현실에서 그대로 깊은 평정 안으로 몰입해 들어가 모든 것들이 피조물로부터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받아들이며, 이와 같은 모든 사람들에 대해 굳건히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복자 하인리히 조이제의 학업 동료이자 친구였던 죽은 이에 대해서는 그의 생애의 제41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하인리히 조이제가 상급 학교에 들어갔던 그의 젊은 시절에, 하느님은 어느 날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랑스러운 동반자를 그에게 보내 주셨다. 그들이 언젠가 은밀한 대화로 하느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 동반자는 솔직한 우정으로 그의 가슴 위에 그려진 사랑스런 예수님의 이름을 보여 달라고 청했다. 그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의 훌륭한 신앙심을 보았으므로 그의 청을 들어주었다. 그는 가슴 위의 옷을 열어 젖혀서 오랫동안 갈망해 온 그 귀중한 것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 두 친구는 몇 년 동안을 경건한 유대 속에 함께 지내고 나서 헤어져야 했을 때, 서로 신의로써 축복을 해주고는 먼저 죽은 사람에게 남은 사람이 친구의 신의를 지켜 나갈 것과 일 년 동안 매주 두 번의 미사, 곧 월요일에는 죽은 이를 위한 미사를, 금요일에는 주님의 수난 미사를 올릴 것을 약속했다. 그 후 몇 년 뒤에 그(하인리히 조이제)의 동료(친구)가 죽었는데, 그해가 언제인지는 모른다. 그런데 그 종은 약속한 미사를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에 대한 신의만은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어느 날 아침 교회에서 생각에 잠겨 앉아 있었을 때, 그 친구가 환영을 통해 그에게 나타났다. 친구는 그의 앞에 서서 탄식하는 음성으로 외쳤다. '아, 친구여, 자네가 그다지도 신의가 없다니! 어떻게 나를 잊어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형제(하인리히 조이제)는 대답했다. 나는 자네를 매일, 미사 때마다 생각하고 있네.' 그 친구는 대답했다. '그것으로써 되는게 아닐세. 미사에 대한 우리의 약속을 실행해 주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의 불에서 나를 구할 수 있는 순결한 피가 여기서 나에게 베풀어져야만 되네. 그러면 곧 나는 정죄화(淨罪火)로부터 벗어나게 될 걸세.' 그래서 그 종(하인리히 조이제)은 가슴에서 우러나온 성실함과, 자신이 약속을 잊어버린데 대한 큰 참회를 가지고 그렇 게 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친구는 곧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밖에 복자 하인리히 조이제는, 인간은 연옥에서 받게 될벌을 여기 지상에서 미리 속죄할 수 있거나 적어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이 복자는 인간이 어떠한 고난을 받을 때 가장 많은 보속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하느님을 가장 많이 찬미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그의 생애의 제39장에서 고통의 여러 가지 종류와 함께 특히 다음과 같은 것을 언급하였다. "약간의 고통은 하느님에 의해 인간에게 주어진다. 하느님께서는 이를 통해 보다 큰 고통을 인간에게 말해 주고자 하시는 선한 의도를 갖고 계신다. 이러한 것은 하느님에 의해 연옥 고통을 지상에서 미리 속죄받게 될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이다. 이들은 나중의 연옥 고통을 면하기 위하여 지상에서 병과 가난 등등으로 수난을 받는다..."" "이승에서 많은 시련을 견디어 내는 것이 하느님의 종에게는 얼마나 유익한 일인가"라는 말이 표제에 달려 있는 그의 저 서지혜의 시계(Horologium sapientiae)」의 제13장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시련은 매우 유익하다. 그래서 초보자, 진보된 자, 완성된 자의 부류 중 어디에 들어가게 될지에 대해 충분한 영향을 미치는 시련을 피할 자는 거의 없을 정도이다. 시련은 죄의 녹을 깨끗하게 없애 주며, 덕성을 키워 주며 은혜의 충만을 가져다 준다. 이 귀중한 보물보다 더 유익한 것이 어디 있으랴. 이것은 죄를 없애 주고 정죄화를 감해 주고 유혹을 물리쳐 주고 탐욕을 식혀 주며 정신을 새롭게 해주며 소망을 강하게 해 준다."
「지혜의 시계의 제14장에서 복자 하인리히 조이제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혹한 수난에 대해 자주 주목해 보는 것이 매우 유익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로 인해 우리에게 베풀어질 다른 많은 위안들 중에서 그는 특히 연옥의 고통이 감소되는 것에 대해 언급한다. 그것은 두 가지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하다. 첫째, 우리에게 장차 다가올 연옥을 여기 지상에서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보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우리가 이를 통해 불쌍한 영혼들에게 연옥 고통을 줄여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자연의 창조주는 자연에 있는 어떠한 것도 무질서하게 놓아 두려 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또한 하느님의 공의하심은 어떤 악한 것도 벌을 받지 않은 채 놓아 두지 않으신다. 이승에서든 저승에서든 그에 해당하는 것을 고치게 하신다.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그에 대한 보속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죄화의 고통 속에서 한 점도 남김없이 그것을 씻어 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죄인의 벌이 그때서야 비로소 끝나 버린다. 그대들은 언제 생각해 보았는가? 아, 이러한 영혼은 얼마나 많은 날을 기다려야 되는가! 아, 너무나 무서운 끊임없는 저 고통이여! 끊임없는 저 고통의 크기는 잴 수가 없구나! 통회는 지상에서의 어떤 고문보다도 엄하구나! 자, 이제 이러한 벌을 아주 쉽고 간단한 보상을 통해 면할 수 있음을 보라. 이것은 순결한 어린양의 수난의 보화로부터 그것을 얻을 줄 아는 자가 가질 수 있다. 지극히 고귀한 인간의 지극한 고통을 통해 지극히 위대한 사랑이 가장 거룩하게된 이 보화의 은총은 항상 충만한 상태에 있다. 그 보물은 매우 쉽게 얻을 수 있고 그 공덕과 보상을 경건한 방법으로 매우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정죄를 위해 수천 년이 걸릴 경우라도 인간은 이 보물을 통해 단시간에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영원한 지혜를 담은 그 작은 책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하여 영혼은 연옥을 거치지 않고 영원한 기쁨 속으로 들어 갈 수 있다."
복자 하인리히 조이제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성찰에서 연옥 고통 기간의 축소와 고통의 경감을 위해 그토록 많은 것을 기대했다. 그 까닭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성미사에서 재현하는데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순결한 피를 통해 가혹한 정죄화가 꺼지도록" 죽은 이를 위해 성미사를 올릴 것을 권한다. 복자 하인리히 조이제의 독일어 기록들을 출판한 데니플레 (H. Denifle)는 바로 위에 인용한 부분과 그 복자의 기록에서 그와 비슷한 부문에 관해 그의 소견을 진술했다. 그에 따르면, 연옥과 불쌍한 영혼들을 위한 미사 성제의 효력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어떤 기록도 조이제의 것보다 더 아름답고 더 적절하게 나타날 수는 없을 것이다.
복자 하인리히 조이제는 불쌍한 영혼들과의 친밀한 교제에 고무되어 연옥에 대한 성찰을 자주 시도했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더욱더 열심히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속죄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 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는 지혜가 담긴 자신의 작은 책을 통해, 영혼의 인도를 받고 있거나 자기한테 조언을 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고한 것을 항상 먼저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였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좋은 충고, 가장 큰 지혜와 가장 좋은 준비는 그대가 완전한 고해로써 준비를 갖추고 오늘이나 늦어도 이 번주 안엔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될 것처럼 처신하는 것이다. 그대의 영혼이 심판을 받은 후 연옥으로 가서 자기가 저지른 악행 때문에 10년간을 거기에 머물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상상해 보라. 그대의 영혼은 다음과 같이 탄식할 것이다. 아, 슬프도다. 때가 왔구나. 아, 슬프도다. 나는 이제 그것이 부득이한 일임을 안다. 나의 손의 감각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얼굴이 창백해진다. 두 눈이 흐려진다. 무서운 죽음의 충격들이 빈약한 심장과 싸운다. 나는 숨을 아주 깊숙이 들이키기 시작한다. 이 세상의 빛이 꺼지고 있다. 나는 저편 세계 내부를 보고 있다. 오 하느님, 이 무슨 광경입니까? 소름 끼치는 형상들이 모여들고, 지옥의 짐승들이 날 에워싼다. 그들은 나의 영혼이 자기들한테 나누어지게 될지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아, 슬프도다. 엄정한 심판의 의로우신 재판관이여! 당신은 사소하다는 이유로 아무도 주의하지 않았던 가장 작은 일까지도 엄중하게 재어 보시는군요. 식은땀이 흐른다. 아, 슬프도다. 엄격한 재판관이 진노하시는 모습이 보이는구나. 그의 판결은 너무나도 엄밀하구나. 나는 이제 생각을 연옥으로 돌린다. 나는 곧 그곳으로 내려가게 된다. 나는 고난받는 나라에서 공포와 고통의 모습들을 본다. 아, 슬프도다. 뜨거운 불꽃이 사납게 치솟아 벌을 받는 이들의 머리 위에 덮쳐지는구나. 그들은 대장간 화로 속의 불꽃 같은 암담한 화염 속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그들은 소리친다. '우리의 불행은 쓰리고 슬프고 엄청나오 우리의 곤경이 얼마나 가지각색이고 쓰라린지 어떤 지력 (知力)으로도 파악할 수 없을 것이오' 자주 '도와 주시오. 도와 주시오' 하며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친구들의 도움은 대체 어디 있나? 신의 없는 친구들의 거짓된 약속은 또 어떠하나? 그들은 우리 곁을 완전히 떠나 버렸어. 아, 슬프도다. 그대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우리를 최소한 불쌍히라도 여겨 주오...! 아, 슬프도다. 우리는 그것(지금 우리가 당해야 되는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는 면하게 할 수 없다오. 우리가 조금이라도 손쓸 수 있다면 좋으련만, 여기서의 가장 작은 벌도, 지상의 어느 순교자가 받는 것보다 더 가혹하다오. 아, 슬프도다. 연옥의 한 시간은 백년의 시간이라오!...그러나, (우리가 지금 견뎌야 되는) 이 모든 것보다 더 아픈 것은 (거룩한 삼위 일체를) 뵙는 기쁨에 찬 관조 없이 그토록 지내야 하는 일이오!"
죽음과 심판과 연옥에 대해 고찰해 본 것에 덧붙여 그 영원의 지혜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이러한 것을 그대는 꾸준히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대는 젊고 건강하고 강인해서 그것을 잘해 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임종의 때가 와서 그대가 더 이상 그것을 잘할 수 없다면, 그대가 희망을 잃지 않도록, 지상의 그 어떤 것도 염두에 두지 말고 오직 주님의 죽음과 주님의 무한하신 긍휼만을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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