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
박창원
비영어권 국가 102개국 4만여 명에게 물었다. 당신이 아는 영어 단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가 무엇이냐고? 그랬더니 1위가 mother(어머니)이고, 2위가 passion(열정), 3위가 smile(미소)이었단다. 나한테 물었다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아마도 3위에 오른 smile을 꼽았을 거다.
“웃는 낯에 침 뱉으랴.”하는 속담이 있듯 미소는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명약이다. 집사람을 처음 만난 순간 평생의 동반자로 선택하게 한 것도 그녀의 미소였다. 아내는 내가 결혼을 전제로 선을 본 사람 중 열두 번째 사람이다. 1984년 1월, 대구의 어느 다방에 나온 그녀는 나의 첫 인사에 수줍은 미소로 답했다. 그 미소가 내 가슴을 움직였다.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보경사에 가면 주차장 옆에 스마일식당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단 식당이 있다. 봄엔 두릅튀김으로, 가을엔 송이를 곁들인 요리로 손님의 입맛을 자극하고, 묵나물을 덤으로 얼마든지 주는 두둑한 인심이며, 육회와 수육, 탕, 약밥으로 이어지는 사향조 요리로 명성이 자자한 이 식당엔 늘 손님이 북적댄다. 이 집 손님들은 그저 내연산이나 보경사에 한번 왔다가 들르는 뜨내기 손님이 아니다. 대개는 이 집을 아는 단골들이다. 처음 이 집은 식당 건물도 없이 내연산 계곡 안에 천막을 치고 장사를 했다. 보경사 일대에서 장사를 한 지 십수 년 만인 재작년, 큼지막한 식당을 새로 개업한 이 집의 성공 비결은 ‘스마일’이었다.
1990년대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때만 해도 이 집은 보경사에서 내연산 계곡을 따라 한 오백 미터쯤 안쪽, 등산로 옆에 천막을 치고 장사를 했다. 간판도 없었다. 거기서 산에 갔다 내려오는 등산객들에게 도토리묵이며, 동동주, 파전을 팔았다. 아내는 장사를 하고 남편은 차가 못 다니는 이 곳에 음식 재료를 지게로 져다 날랐다. 남들이 건물안에서 편하게 장사를 하는 동안 장사할 가게가 없는 부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편과 고생을 감수해야 했다.
천막 가게는 시장 좌판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손님은 이어졌다. 이 집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가게와 장사하는 수법이 좀 달랐다. 안주인은 아침 일찍 나와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한테 밝은 미소를 띄우면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잘 다녀오이소.”
이것뿐이었다. 흔히 절 입구 식당가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식당들이 있어 지나는 사람들을 난처하게 하는 일이 있지만, 이 집 안주인은 야단스런 호객행위는 하지 않았다. 그냥 잘 다녀오라는 인사만 할 뿐이었다. 그런다고 산에 오르는 사람이 그 집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누가 산에 올라가면서 도토리묵을 먹고, 동동주를 마시랴. 그런데도 이 집 안주인은 등산객에게 부지런히 인사를 했다.
오전에 줄지어 산으로 오른 사람들이 점심 때가 되면 하나둘 내려온다. 오후 두어 시가 되면 오전과는 반대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내려오는 사람들은 갈증이 나고 배도 출출하다. 달짝지근한 동동주가 침샘을 자극하고, 혓바닥에 찰싹 붙는 도토리묵이 소매를 잡는다. 어느 집에 들어갈까? 아까 올라갈 때 친절하게 인사를 하는 집이 있었다. 그래, 저 집 동동주 맛이 괜찮을 거야. 저 아줌마가 만든 파전이 맛있을 것 같아. 이렇게 사람들은 그 집으로 몰렸다. 올라갈 때 잘 다녀오라는 인사 한 마디 했을 뿐인데….
몇 년 안 돼 계곡 안쪽 천막 가게들이 철거될 때 보경사 입구에 그렇게도 소망하던 가게를 하나 장만했다. 군에서 상가를 새로 지어 분양했는데, 추첨을 통해 분양받은 이 집 가게는 아쉽게도 보경사로 가는 통로에 있지 않았다. 절 진입로를 벗어난 외진 곳이었다. 처음엔 장사가 안 돼 애를 먹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천막에서 확보한 단골들이 소문을 듣고 몰려 왔다. 다른 집이 파리를 날려도 이 식당만은 늘 손님으로 북적거렸다. 모두 신기해 했다.
늘 웃으며 손님을 맞았고, 식사 틈틈이 자리를 직접 돌면서 손님들에게 더 필요한 것이 없느냐고 묻기도 하였다. 돌아갈 땐 식당 밖에까지 나와 밝은 미소를 던지고는
“맛이 괜찮았어예? 다음에 오시면 더 잘해 드리겠심더.”
하며 인정어린 말을 아끼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 맛에 오는 것 같았다. 한번 온 사람은
반드시 다시 오고, 다시 올 때는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오고…. 이래서 이 집은 장사가 됐다. 그렇게 돈을 모은 지 다시 십 년, 이번엔 외진 곳이 아닌 주차장 바로 옆에 식당을 장만했다. 이 집의 성공은 사람들에게 미소와 친절만큼 큰 자산도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나는 몇 년 전부터 교무실 책상 위에 받침대가 있는 조그마한 거울을 두고 있다. 일하다가 한번씩 들여다본다. 남자가 근무시간에 거울이나 들여다본다고 욕할지 모르지만, 욕해도 할 수 없다. 내가 거울을 보는 건 화장을 하거나 얼굴에 뭐가 묻었는지 살피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 얼굴이 찌푸려지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감시하기 위해서다. 교무실에 있는 동료들에게 밝은 얼굴로 대하고 싶고, 학생들이나 방문객들을 미소로 맞고 싶은 소망 때문이다. 기분이 언짢은 날은 더 자주 들여다본다.
재작년에 교감이 되어 내 과목이 없어진 지금, 남이 출장 가거나 결근하여 생긴 빈 시간에 가끔 특강을 한다. 특강을 위하여 준비해 둔 강의 중에 ‘잘 웃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게 있다. 웃음과 성공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웃음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실습을 곁들여 강의를 한다. 전에 어떤 웃음치료사로부터 들은 내용을 아이들 수준에 맞춰 재구성한 거다. 그러면서 미소로 성공한 스마일식당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스마일식당 메뉴에는 산채비빔밥, 칼국수, 도토리묵, 파전, 사향조, 동동주 외에 메뉴판에 없는 ‘스마일’이라는 멋진 메뉴가 하나 더 있다고. 그걸로 부자가 되었다고.
<수필문학 추천작>(2008.4)
첫댓글 관송님께서 <수필문학>추천완료 받은 작품입니다. 축하, 축하드립니다~
웃음의 미학이 성공으로 이끄는 길이군요.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