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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抒情의 섬에서 더욱 서정 속으로
동검도에서 열린 詩사랑 예술축제 한마당
시를 낭송하고 춤추고 연주하고 노래하고...
지난 7월 17일, 강화도 옆 작은 섬 동검도 언덕 ‘채플갤러리’에서는 이색적인 축제가 열렸다. 시사랑문화인협의회(회장 최동호, 고려대 명예교수, 전 한국시인협회 회장)가 주관한 시사랑 예술축제였다.
이 행사에는 최동호 시인을 비롯, 김수복 시인(현 한국시인협회 회장, 전 단국대 총장), 김구슬 시인(시사랑문화예술아카데미 대표,협성대 명예교수), 김왕노 시인(웹진 시인광장 발행인), 동시영 시인(전 한국관광대 교수), 이경철 시인(전 중앙일보 문화부장, 동국대 문창과 겸임교수), 이인평 시인(한국가톨릭문인협회 이사장), 이수영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회장), 조명 시인(에버덩 문학의 집 관장), 신원철 시인(연백시사 회장,강원대 명예교수), 김추인 시인(한국시인협회 이사), 박종명 시인(시사랑문화예술아카데미 교수), 정혜영 시인(미래서정 대표), 유태승 시인(주 휘일 회장, 대통령상 수상), 홍보영 시인(국악가수) , 김조민 시인(한국시인협회 기획국장), 임윤식 시인(월간 오늘의 한국 회장) 등 40여 명이 참석했다.
그리고 이 모임에서는 시인 이외에도 특히 동검도 채플성당의 조광호 신부, 홍승길 교수(전 고려대 부총장), 박경아 교수(전 연세세브란스병원 해부학 교수, 전 세계여자의사회 회장), 이경혜 교수(전 안양대 학장), 박주경 대표(한국시설안전협회 명예회장), 정성엽 작곡가(서울미디어대학 특임교수), 강홍준 대한민국 1호 푸드스타일리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사회저명인사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동검도는 강화도 남동쪽 1.6㎢의 작지만 매우 아름다운 섬이다. 세상이 생긴 날부터 어김없이 하루 두 번, 밀물과 썰물이 소리없이 들고 나는 섬이다. 썰물 때는 끝이 보이지않을 정도의 광활한 갯벌이 펼쳐지고, 그 갯벌 속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숨쉬며 살아가는 ‘생명의 보고’이기도 하다.
그리고 행사가 열린 ‘채플’은 동검도 낮은 언덕에 자리한 일곱평의 작디작은 성당이다. 채플 바로 옆 갤러리빌딩 2층에서 시사랑 예술축제 한마당이 펼쳐졌다.
미래서정 김윤식 시인의 사회로 진행된 행사에서 먼저 동검도 채플을 이끌고 있는 조광호 신부는 “오늘 동검도에는 종일 비가 내립니다. 궂은 날씨에도 축제행사를 위해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기쁜 마음으로 환영합니다. 이 축제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시인들의 모임으로 그야말로 ‘시를 사랑하는 모임’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인들을 존경합니다. ‘시를 사랑한다는 것’은 ‘시적 사고를 하며 살아간다’라는 것이 아닐까요?” 라면서, “형식의 해체와 이미지의 모호함과 난해성으로 자연선택이 아니라 돌연변이 만을 추구하는 현대문학에서 시가 다시금 인간적인 감동을 줄 수 있는 예술형태로 자리매김하는데 이들 모임이 우리의 길잡이가 돼주실 것을 기대하고 고대합니다”라며 환영인사를 대신했다.
조광호 신부는 카톨릭 사제로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지만 문학은 물론 그림에 있어서도 대형벽화(당산철교 및 성당벽화), 조각(서소문 순교자현양탑) 등 환경미술 작가이면서 디지털 회화 1세대 작가이다. 그는 특히 스테인드글라스 분야에서 최초의 특수기법 특허를 내는 등 이 분야에서 대표적인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 행사의 주최측 대표인 최동호 회장은 “오늘 축제는 단순히 시만 낭송하는 행사가 아닙니다. 시낭송은 물론, 노래, 악기연주, 춤 등 무엇이든 자유롭게 각자의 끼를 보여주는 모임으로 진행하면 좋겠습니다. 비에 젖은 섬은 서정입니다. 스테인드글라스에 맺힌 영롱한 물방울들 역시 시적 감성을 자극합니다. 비 오는 날, 아름다운 섬 동검도에서 더욱 깊은 낭만과 서정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라고 간단히 축제의 의미를 요약했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김수복 시인(한국시인협회 회장)은 ‘4행시와 양자(量子)의 언어’라는 주제로 길지않게 시론을 펼쳤다.
대낮이었다
자꾸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었다
작은 눈짓에도
웃음 짓는 섬이 있었다
김수복 시 <이승> 전문
김수복 시인은 지난 3월 <의자의 봄날>이라는 제목의 4행 시집을 펴냈다. 그는 “주시경 선생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소리를 ‘고나’라 하고, 뜻을 가진 가장 작은 말을 ‘늣씨’라 하였다. 장식을 덜어내고 ‘늣씨’를 가려뽑아 엮다 보니 시편들이 점점 짧아진다. ‘생명 잇기’를 화두 삼아 줄이고 줄인 몸피에 시원의 기억을 간직한 알을 품고 망망대해 파도를 넘고 굽이굽이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가 된 듯하다. 이제 내 시들의 말은 양자(量子)의 언어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원자를 쪼개어 양자를 들여다보듯 ‘늣씨’를 더 잘게 쪼개 의미의 파편에 이르기까지 눈길을 주고 싶다. 시가 운명적으로 짧아지는 것은 그만큼 강렬하고 즉흥적인 생리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리의 시들이 시의 위기를 뚫고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한다.
고운 한복을 입은 홍보영 국악가수가 흥타령을 부르자 즉석에서 김추인 시인이 나와 돌발적인 춤사위를 펼친다. 흥겹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김추인의 감성이 춤 속에 녹아들었는가. ‘춤 한마당’도 시적(詩的)이다.
웹진 시인광장 발행인인 김왕노 시인은 <너무 쉬운 사랑, 개 같은 사랑>이라는 시를 낭독했다.
사랑을 모를 때
이것이 사랑인지 저것이 사랑인지 모를 때
나무에 기대거나 어두운 창을 활짝 열고
먼 이름 하나 부르는 것이 사랑이다.
내게 목 놓아 부를 이름이 없어도
살짝 난 상처를 아파하듯 먼 이름 하나 아파할 때
그것이 사랑이다.
(중략)
사랑 뭐 별것 있느냐
버리지 못한 이름 뼈다귀처럼 물고 먹을 수 없어도
개 같이 핥고 깨물어대는 것이 사랑이다.
이어서 김구슬 시인은 자작시 <0도의 사랑>을 유창하고 감미로운 불어로 낭송하여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마치 멋진 샹송 한가락을 듣는 듯했다. 정성엽 작곡가도 <아침이슬> 노래를 불어로 번역한 후 불어로 시를 읽고 바이올린 연주까지 했다. 정말 다양한 인재들의 모임이다. 프랑스어는 언어 자체의 운율이 아름답다. 의미를 몰라도 그냥 듣기만 해도 좋다. 이경혜 교수는 이탈리아 칸소네 <Non ho leta>를 불렀다.
0도는 그 자체로 독자적인 세계이다
그림자 없는 오솔길을 걸으며
우리는 가끔 허공을 응시한다
머리 위에는 소리 없는 깃털들이
출구 없는 소실점을 향하고
발 밑을 내려다보며 걷던
가슴이 문득 울고 있는 것 같다
(중략)
그리운 것들은
모두 세상 저편에 있다
시커먼 파도를 타고
출항을 예고하는 뱃고동 소리가
사라지는 수평선에 파랑을 일으키며
이 세상에 없는 사랑을 손짓한다
이경철 시인은 <강화 동검도 채플>이라는 신작시를 선보였다. 봄에도 와봤던 이곳 동검도와 채플성당이 좋아 시로 그렸다고 한다.
사방팔방
갯벌이다
바다 쓸려간 뻘밭 숭숭
구멍 뚫려 가쁜 숨 내쉰다
질척이며 고꾸라지며 끌고 온
십자가 맞춤한 언덕
산사나무 가시 면류관 못 박혀
빛살이 된 동검도 채플
일곱 평 남짓 뻥 뚫린 성당
갯벌 너머 바다 수평선, 솟아오른 마니산과 하늘
경계를 나는 갈매기 울음소리 그대로
창에 들어와 찬란하게 빛난다
(후략)
동시영 시인은 지난 4월 <수평선은 물에 젖지않는다>라는 제목의 시집을 냈다. 방민호 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동시영의 시는 촌철살인의 강점이 있다. 시인의 수수께끼 놀이에 참여하려면 어울리지않는 것들을 순간적으로 묶어내는 비유법, 은유에 익숙해져야 한다"라고 평한다.
수평선은 물에 젖지 않는다
그리움에 젖는다
없음을 닦아내는 창,
물봉선이 피어 있다
여뀌꽃이 오고 있다
(후략)
김추인 시인은 여행을 참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사막을 특히 좋아한다. 미국의 모하비사막, 중국의 고비사막, 천산북로 천산남로의 실크로드, 세상에서 가장 뜨겁다 싶던 화염산, 이집트 사막, 아프리카 나미브사막, 사하라사막, 나라 전체가 사막으로 보이던 모로코의 전국순례, 그리고 남미 알티플라노고원 등등. 김 시인은 "우리별 사막, 3분의 2는 밟았지 싶다. 참 많이도 다녔지 싶다"라고 말한다. 김 시인은 최근 49일간의 남미 아프리카 기행산문집인 <그러니까 사막이다>를 펴내기도 했다. 놀랍다.
사막에 서면
고향언덕 같아 주저앉고 싶다
바람치는 벌판이 내 속만 같아
그 휑한 가슴 껴앉고 싶다
이번 행사의 간사로서 실무적으로 수고를 많이 한 박종명 시인은 황충국 시인과 함께 ‘Perhaps Love(사랑인가요)’를 이중창으로 불러 축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이 노래는 플라시도 도밍고와 존 덴버가 함께 부른 노래로 1981년에 발표한 동명의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곡이다. 가사도 곡도 정말 감미로운 노래이다. 신원철 교수는 트럼펫을 멋지게 연주하기도 했다.
아마도 사랑은 안식처인 것 같아요.폭풍 속에서의 피난처 같은 곳이요/그건 당신에게 안락함을 주기 위해 존재하며, 따뜻함을 제공하죠/당신이 혼자 남아 외로움에 사무친 힘든 시간 속에서요/사랑의 기억들이 당신을 집으로 안내해줄 거예요/(후략)
한국가톨릭문인협회 이인평 이사장은 <고흐의 아몬드꽃>이라는 시를 선보였다. 아몬드꽃은 고흐가 자기 동생 태호를 위해 특별히 그린 걸작이다.
때가 왔다
그리움이 도진 고독 속에서
꽃은 한 송이씩 피어났다
무엇을 그리든지 아름다움일 수밖에 없는
생
가난과 고통의 진실 속에서
사랑이 피어날 땐
매화면 어떻고 아몬드꽃이면 어떠랴
손길 닿는 대로
색채가 꿈틀거리면서 피어나는 꽃빛에
마침내 희망일 수밖에 없는 슬픔이 어린다
아우야, 너는 나의 애인이다
너에게 기쁨이 되어 주지 못한 내 처지에서
푸르게 몸부림치는 선묘를 보아라
내 생이 기쁨으로 날뛰는 개화開花를 보아라
(중략)
그것이 내내, 침묵 속에서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인 줄도 세상이 알리라
또, 한국기독교문인협회 이수영 회장은 <누워있는 시인, 마르크 샤갈>이라는 시를 낭독했다. 이 시는 조용진 작곡, 바리톤 송기창이 노래한 가곡이기도 하다. 곧 출판될 이수영 제 9시집에 수록된 시다. 이수영 시인은 <안단테 자동차>, <미르테의 꽃, 슈만> 등 자동차, 클래식 음악 등 특정 테마를 주제로 각각 단행본 시집을 펴냈는데 제9시집은 회화(그림)에 관한 시집이라 한다.
목화꽃 만발한 하늘 머리에 이고
망아지 한가로이 풀을 뜯어라
어미 말의 마음도 달고 달아라
(중략)
그러나 가진 것 없어라
목화꽃구름 피고 또 피어나고
인생은 흘러 흘러서 가고
시는 인생을 사랑한다
시인은 죽어도 살고
인생은 흘러간다
시인은 살아도 죽고
인생은 시를 춤춘다
박경아 교수는 직장 정년퇴임 후 시사랑문화예술아카데미에서 한국명시산책을 공부하는 분이라고 한다. 부채를 들고 나와 김영랑 시인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낭독했다. 단순히 낭독만 한 게 아니라 시의 앞과 뒷부분을 직접 작곡하고 노래도 불렀다. 얼굴이 홍안이라 젊은 분으로 알았는데 1950년생으로 전 연세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대한해부학회 이사장, 한국여자의사회 회장, 세계여자의사회 회장 등을 역임하신 정말 대단한 이력을 가진 의학박사이시다. 이런 분이 퇴임 후 한국명시를 공부한다고 하니 더욱 놀랍다. 이번 축제 참가자 중 인기투표에서 1등을 하여 조광호 신부님의 작품 한 점을 상품으로 수여받기도 했다.
동검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성당인 ‘채플성당’이 위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극장인 ‘365예술극장’도 있다. 이 극장은 현재 시점에서는 보기 힘든 고전영화만 상영한다. 홈페이지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닷가 극장’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객석수도 불과 35석이다. 필자의 여행경험으로는 외딴 섬에 극장이 있기도 어렵지만 특히 고전예술영화만 고집스럽게 상영하는 극장을 작디작은 섬 동검도에 세웠다는 건 참으로 놀랍고 기발한 아이디어라 아니할 수 없다.
필자는 채플성당에서 혼자 조용히 기도드리거나 명상을 하고, 365예술극장에서 호젓하게 예술영화를 보기 위해 종종 동검도를 방문한다. 또, 하루 두 번 바닷물이 나가고 들어오는 갯벌에서 사진 장노출 촬영을 통하여 ‘고요(Tranquility)’의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해서도 동검도를 찾아오곤 한다.
세상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순간순간은 생생하지만 거칠다. 장노출 사진을 찍어보면 그 거친 순간들이 우유빛처럼 부드럽고 잔잔해진다. 마치 수묵화를 보는 것처럼 고요하고 몽환적이다. 거친 태풍바다도 장노출의 세계로 들어오면 순한 양처럼 부드러워진다. 아팠던 순간을 잠재우는 세월처럼 말이다.
영국의 세계적인 사진가 마이클 케나(Michael Kenna)는 흑백사진을 장노출로 찍는 사진가로 유명하다. 케나의 사진은 세상의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 듯한 빛의 독특한 풍경으로 새벽이나 밤 시간에 길게는 10시간에 걸친 장노출로 촬영하기도 한다. 그는 이런 방식의 사진활동을 통하여 ‘고요(Tranquility)’의 깊이를 사랑한다. 그는 “이 순간의 소리없음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이기네”라고 말한다. 동검도는 이처럼 ‘호젓함’과 ‘고요’를 즐기기 위해 찾는 섬이기도 하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