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이씨파보 서 - 경술년(1910) - 곽종석(郭鍾錫,1846~1919)
합천 이씨는 모두 고려의 강양군 휘 개(開)를 봉작을 받은 조상으로 삼는다. 그 후손이 번성하여 온 나라에 두루 퍼졌다. 그 계파가 나뉜 것이 무려 열세 파에 이른다. 그러나 그 계통이 오래되고 멀며 문헌의 전승이 흩어져 없어졌고, 계보의 차례와 상세함에도 서로 다른 점이 있어 이를 고증할 수 없었다.
지난 병자년에 일찍이 대종의 종족을 크게 수합하여 함께 족보를 편찬하였으나, 그 가운데 말할 수 있는 것은 있어도 증거할 만한 것이 부족한 점을 한스럽게 여겼다. 오늘에 이르러서는 세상이 혼란하고 어지러우며 후손의 번식도 더욱 많아졌으니, 이를 수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지나치게 넓게 늘어놓아 고증하기 어렵게 하기보다는, 간략함을 따르되 정밀하게 하여 각기 자기 계파를 안정시키고, 믿을 만한 것은 믿을 만한 것으로 전하며 의심스러운 것은 의심스러운 것으로 전하는 것이 선조를 공경하는 데 유감이 없고 후세 백 세대까지 기다릴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이에 파보를 편찬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는 일부러 서로 소원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친족을 더욱 친하게 하려는 것이다.
단성(丹城)과 진주(晉州)의 경계에 묵호(默湖)라는 마을이 있다. 이씨가 대대로 그곳에 살았으니, 또한 열세 파 가운데 하나이다. 문익공(文翊公) 경복(景福)이 그 가운데 조상이다. 과거와 벼슬, 절의와 행실이 자못 볼 만하여 한 지방에서 이름난 집안이 되었다. 지금 같은 파 사람들이 서로 뜻을 모아 족보를 정성껏 수찬하고 있는데, 나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나는 이씨와 일찍이 삼대에 걸쳐 같은 고을에서 살며 교유하였다. 강가의 언덕과 대나무 숲에서 서로 왕래하고, 문단과 예사(禮社)에서 술잔과 제수를 나누며 서로 어울린 것이 본래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나는 늘 그 집안의 어른들이 질박하고 성실하며 순후하고 검소하게 집안을 다스리는 것을 존경하였다.
그 자제들 또한 빼어나고 단정하며 겸손하고 삼가면서 차근차근 문학에 힘쓰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이씨의 복록이 아직 다하지 않았으며, 앞으로 더욱 창성하여 선조의 명예를 빛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제 족보를 만드는 일을 보니, 또한 그 실제를 살펴볼 수 있다.
족보란 그 세대를 기록하는 것이며, 그 종족을 기록하는 것이다. 선조의 뜻을 계승하고 선조의 사업을 이어받아 그 세대를 욕되게 하지 않으며, 효도하고 공경하며 화목하고 양보하여 종족을 친하게 하는 것이 족보의 참된 실질이다.
송계공이 장릉에서 절의를 지킨 일이나, 황암 부자가 심양과 요동에서 성왕을 돕기 위해 온 힘을 다한 일과 같은 것은 모두 사람의 의리를 격려하고 나라의 기맥을 유지하기에 충분하다. 백 년이 지난 뒤에도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하고 감회를 그치지 못하게 한다. 하물며 그 기혈이 이어져 선조가 남긴 가업을 후손이 계승하는 일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지금 천하가 참으로 어떠한 때인가. 이씨의 후손 된 사람들은 마땅히 어떻게 선조의 뜻을 계승하고 사업을 이어갈 것인지 알아야 한다.
한자리에 누워 자는 형제는 같은 아버지를 둔 형제이고, 이웃집에 사는 가까운 친족은 같은 조상을 둔 친족이며, 증조와 고조가 같을 정도의 친족도 있다.
여러 집에 흩어져 살면서 단문(袒免) 이하의 관계가 되면 매우 먼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족보를 살펴 계통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같은 비조(鼻祖)이다. 나뉘면 비록 만 갈래가 되지만 합치면 하나이다. 그러니 어찌 너와 나를 구별하여 서로의 고락과 화복이 서로 관계없는 것으로 여길 수 있겠는가? 지금 천하의 사람들이 각기 자기 것만을 사사로이 여기고 서로 합하지 못하고 있다. 이씨의 동포 된 사람들 또한 마땅히 힘쓸 바를 알아야 한다.
오직 그 선대를 욕되게 하지 않고 종족을 친하게 하는 데 힘써야 할 뿐이다. 그렇게 한다면 족보의 참된 뜻을 얻은 것이다. 문벌의 성쇠와 높고 낮음에만 얽매이고, 친족 관계의 친소를 따지는 데만 애쓸 뿐이라면, 그것은 족보를 수찬하는 일에서 특별히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이 아니다. 나는 이씨에 대하여 이 점을 간절히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머지는 다 말할 겨를이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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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주]
저자 곽종석(郭鍾錫, 1846~1919)은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이다. 자는 명원(鳴遠)·연길(淵吉), 호는 면우(俛宇)·유석(幼石), 본관은 현풍(玄風)이다.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문인으로, 이른바 주문팔현(洲門八賢)의 한 사람이며 허유(許愈)·이종기(李種杞)·이승희(李承熙) 등과 교유하였다.
[부주 보충]
이 서문은 합천 이씨의 파보 편찬 경위와 목적을 밝히는 동시에, 곽종석의 족보관과 종족관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글이다.
곽종석은 합천 이씨가 고려 강양군 이개를 공통의 근원으로 삼으면서도 열세 파로 분화하였고, 오랜 세월 동안 문헌이 산실되어 계보에 서로 다른 기록이 생겼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모든 계통을 억지로 하나의 확정된 계보로 만들기보다, “信以傳信,疑以傳疑”, 곧 확실한 것은 확실한 것으로, 의심스러운 것은 의심스러운 것으로 전하는 태도를 제시한다. 특히「甞大收宗盟,合修譜編」은 이러한 파보 편찬의 역사적 배경을 보여주는 중요한 구절이다. 이미 병자년에 대종의 종족을 크게 수합하여 통합적인 족보 편찬을 시도하였으나 고증의 한계가 있었고, 이후 계파별로 보다 치밀하게 파보를 편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곽종석이 생각하는 족보의 궁극적 목적은 단순한 계보의 정확성이나 문벌의 과시가 아니다. 그는 「譜者,譜其世也,譜其族也」라고 하고, 족보의 참된 실질을 繼志述事·毋忝其世·孝悌睦讓·以親其族에서 찾는다. 즉 선조의 뜻과 사업을 계승하고 선대를 욕되게 하지 않으며, 효제와 화목과 양보를 통해 종족을 친하게 하는 것이 족보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또한 「分之雖萬,而合之則一」이라는 명제는 이 서문의 종족관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계파가 아무리 많이 갈라져도 하나의 비조로 귀결되므로, 종족 사이에 ‘너와 나’를 나누어 서로의 고락과 화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 글은 합천 이씨의 계보 자료인 동시에, 조선 말기 성리학자의 족보관·혈연관·종족윤리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할 수 있다.
출처 > 전통의명문 경주이씨종친회 카페 ㅣ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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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陜川李氏派譜序 - 庚戌
李之陜川氏,莫不以麗朝江陽君諱開爲受封之祖,而其後蕃熾,遍于國中。其派分之殊,至十有三之多,而世緖玄遠,文獻逸傳,系次詳略,互有異同而莫能質也。往在丙子,甞大收宗盟,合修譜編,而猶以其能言而不足徵爲恨也。其迄于今,世亂騷然,而生息之繁,又不可以不攝也。則與其泛濫難核,無寧從約致密,而各靖于其派,信以傳信,疑以傳疑之爲無憾於尊敬而可俟於百世也。於是而派譜之役興焉,非故相踈逖也,乃所以益親其親也。有庄於丹晉之交,曰默湖,李氏世其居,卽亦十三派之一,而文翊公景福其中祖也。科宦節行,頗不寂寥,爲一方著族。見方協謀同派,敦修譜事,問序于鍾錫。鍾錫與李氏甞三世同鄕曲,江臯竹樹,巾屨迭翩,文垣禮社,觴豆相徵逐,固非一日矣。恒服其父老質愨醇儉以治于家,其子弟秀雅遜飭,循循從事於文學之間。竊意李氏之福未艾,而將昌大以光于前也。今於爲譜也,亦可以觀其實矣。譜者,譜其世也,譜其族也。繼志述事,毋忝其世孝悌睦讓,以親其族者,譜之實也。有若松溪公之殉節于莊陵也,篁庵父子之殫勞翊聖于瀋遼也,皆足以激勵人義,維持邦脉。百載之下,有令人感慨而不歇者,况於其氣血之灌注而弓冶之貽業者哉。今天下誠何時也,爲李氏者,宜知所以繼述矣。聯床而兄弟也,同一父也比屋而功緦之親也,同一祖也同一曾而高也。列閈而袒免以下,疑於遠矣,而按譜推系,同一鼻祖也。分之雖萬,而合之則一。夫焉有爾我之判,而苦樂禍福之不相及乎今天下各私其私而不能合矣,李氏之爲其同胞者,亦宜知所勉矣。惟毋忝其世,以親其族而已矣,則譜之實得矣。規規於閥閱之沉昇,屑屑於屬聯之親踈而已者,則非修譜之足多也。余於李氏,不能不惓惓於是焉爾。餘不暇云。<끝>
俛宇先生文集卷之百三十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