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과 인간을 읽다]⑥보성 복내면
꼬막을 먹으러 벌교를 가거나 다원을 가기 위해 보성을 가곤 한다. 키조개 우는 소리가 들리는 율포 포구와 염상구의 덜퍽진 목소리가 갈대숲에서 들릴 것 같은 벌교, 그리운 남쪽 보성을 오가는 사이에 뭐가 두렵거나 수줍었는지 꼭꼭 엎드린, 숨어있는 복내를 들리지 못하고 살았다.
복내면 소재지 앞에 처음으로 섰다. 어디가 복내일까. 복이 넘칠 것 같은 복내, 이웃집 여동생 이름 같은 복내, 회전교차로 화단 베틀에 열심히 베를 짜고 있는 어머니 곁으로 다가간다.
예전엔 집집이 작은 골방이 있었다. 우리 집에도 있었다. 그건 베틀을 놓기 맞춤이게 지은 방이다. 마치 독방 같은 골방에 앉아 여인들은 시나브로 베를 짰다. 잠결에 소변을 보러 일어났다가 철커덩거리는 소리를 듣고 골방문을 열고 빼꼼히 내다보면 베틀에 앉아 베를 짜던 어머니가 환히 웃어주던 기억이 아련하다.
복내 면사무소 앞 배 짜는 여인 동상
그러면 '아라크네'가 앉아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늘의 여왕 아테나와 베를 짜는 경쟁에 도전했던 용기 있는 여인, 부조리한 올림포스 신들의 막장 행각을 풍자한 직물로 신과 대결에서 승리한 유일한 인간, 그런데도 여신의 질투로 거미로 추락한, 부패한 권력에 희생당한 최초의 여인 아라크네를 보는 것 같았다.
복내는 비봉산과 천마산이 양팔을 벌려 마을을 껴안듯 성곽을 이루고, 세 마리 용인 복내천, 유정천, 일봉천이 꿈틀꿈틀 보성강으로 흘러드는 자연적인 성(城)이다. 그 복성(福城)이 성의 안에 있으니 복내(福內)다.
그래서 복내에는 곳곳에 복이 숨어있다. 비봉산의 비봉포란(飛鳳抱卵), 유동의 유기행사(柳技鶯舍), 도화의 도화락지(桃花落之), 풍치의 풍취나대(風吹羅帶)형국, 주평의 행주순풍(行舟順風)은 비경이자 찾아내지 못한 복내의 비기이기도 하다.
옥평 마을에 들어서니 어르신 한 분이 입구 정자에 앉아있다. 자전거도 그늘에 잠시 쉬고 있다. 면사무소와 농협에 들러서 신문을 보러 갈 참이란다. 보성삼베랑 대표 삼베의 장인 이찬식(81) 어르신이다.
삼을 살피는 이찬식 옹
64년도에 전남대 농대에 입학했을 때는 한 과에 25명 농대 5개 학과 1학년 전부가 125명이었고 여학생은 한 명도 없었단다. 입학시험을 이틀 보았는데, 시험 본 날 계림파출소에서 황금마차(전대 스쿨버스가 노란색이어서 그렇게 불렀음)에 치여 6개월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고, 매일 연애편지를 받았는데 답장을 한 적은 없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학 사각모를 쓴 사진이 계림동 어느 사진관에 4년 동안 전시된 덕분이었다며 흐뭇하게 웃으신다.
그 청년의 행복도 잠시, 한학을 했던 조부 영향을 많이 받아서 학구열이 높아 당시에는 몹시 어려운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는데 다른 사람과 달리 자기는 기다려도 발령이 나지 않더란다. 뒤에 여순 사건으로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부역자 가족으로 연좌제 법에 걸린 것을 알고 이곳저곳 전전하다 많이 방황도 했다고 한다.
유년 시절, 여인네들 시집살이처럼 자신에게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조부님의 말씀을 그때야 이해했단다. 뒤에 안 일이지만, 그들은 아버지를 억지로 보도연맹 책임자로 임명했고, 아버지는 울력이고 공출이고 시키는 대로 했단다. 그날은 밥 먹고 숙소에 들어갔는데 밖에서 방문을 잠그더란다. 다음 날 6월 1일이 아버지 생신이라 아침 일찍 허락받고 갔다 다시 지서로 돌아오니 즉시 차에 태우더니 녹차밭이 있는 갈목마을 앞에서 드르륵 드르륵 총으로 난사해 버렸단다. 그렇게 30여 명이 전부 죽고, 가족들은 울고불고하며 시신을 주변에 암장했다.
복내는 안규홍 의병이 일제와 맞서 싸운 동소산과 소설 태백산맥의 마지막 해방구 율어의 길목이다.
복내면 옥평마을
약자들이 쫓기고 쫓겨서 마지막으로 숨어 은신할 수 있는 곳 복내, 이 땅의 가장 깊은 변방이었으니 상처 또한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아버지가 그렇게 살다 간 것을 뒤늦게 안 어른은 여러 차례 모진 마음을 먹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새롭게 세상을 살자. 참된 세상을 만드는 어른이 되자. 그것은 다름 아닌 나부터 세상을 바르게 사는 것뿐이다. 그래, 늘 올바로 생각하고 먼저 실천하는 사람이 되자.
마을 앞 쓰레기도 항상 먼저 줍고, 청소도 매일 한다. 마을 일은 앞장서서 행하고 돕는다. 동시에 어른은 우리 몸에 가장 적합한 옷을 위해, 자신의 전공을 살려 36세 때부터 대마 연구에 전념한다. 복내와 미력, 율어, 겸백, 문덕 5개면 전통삼베 법인체를 만들어서 산업 분야로 발전시키기 위해 분투했으며, 법고창신으로 노력한 결과, 예술작품용 마지(麻紙)를 창조하기에 이르렀고, 영국 황실은 물론 러시아, 일본 등에서도 관심을 보이며 특히 화가들이나 서예 전문가들에게 호평받고 있다.
평소 정을 나눈 함석헌, 도올 김용옥 선생의 책과 삼베에 관한 서적이 진열장에 가득했다.
여순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찬식 옹
여순을 다룬 책과 신문 스크랩 기사가 수북했다. 80이 넘은 노구에도 대부분 시간을 독서에 활용한다는 어르신은 "남 줄 것은 반드시 메모하고, 받은 것은 적지 말라"는 빚은 꼭 갚고 받을 것은 잊어버리라는 조부님의 말씀을 명심하며 산다.
예전엔 여기저기서 베틀 소리가 들렸고 옥평 마을에서 가장 최근까지 할머니들은 삼베를 짰다. 하지만 지금은 이찬식 어르신만 삼을 재배하고 그나마 그 재배 면적도 줄었다.
삼베가 사라진 것은 너무 당연한지 모른다. 형과 누나에게 물려받은 옷만으로도 좋아서 깡충깡충 뛰던 시절은 저 너머 전설이다. 옷 수거함조차 넘쳐난다. 이제 옷은 쓰레기가 되고 있다.
여순 사건도 저 푸른 물결 너머에나 있는 이야기처럼 여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은 가슴에 총알보다 지독한 응어리를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알고 고개를 숙인다. 삼베 짜는 여인들은 한 올 한 올 베틀에 앉아 짠 베는 베가 아닌 한이었는지 모른다.
좋은 삶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한 금기(禁忌)에 도전하고, 금기를 타파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편협한 이념과 정치나 종교는 대부분 일부의 기득권을 위해 조작되었을 뿐, 모두를 위함은 분명 아니다. 오히려 명분만 앞세워 수많은 사람을 고통 속에 집어넣었다.
복내 시장
복내 장에 들렀다. 시골 장치고 제법 손님들이 복작인다. 대부분 늙은이로 예전에 베틀에 앉아 시름을 달랬을 할머니들이다. 그분들은 베틀 모형을 보기도 싫다며 일부러 눈길을 피하다가도 성큼 다가서서 '영락없다'라며 옛날을 아련히 떠올리신다.
주암호 생태공원 파크골프장에는 손님들이 제법 있다. 여느 생태공원과 비슷했는데, 건물에 들어가니 입구에 '작은 도서관'이 인상적이었다.
책 한 권을 꺼내 펼친다.
"자네, 지리산서 멋을 위해 목심을 걸었능가? 민중을 위해서 아니었능가? 저이가 바로 자네가 목숨 걸고 지킬라 했던 민중이여, 민중!"
소쿠리 팔러 다니는 여인을 하룻밤 재우려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설득하는 장면이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 일지'를 덮고, 두 번째 책을 꺼냈다. 보성에선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이다. 난 숨을 죽이고 읽었던, 그리고 그처럼 금기에 부단히 도전하는 대작가가 되겠다며 다짐했던 대학 시절로 잠시 되돌아간다. 복내는 숨조차 복식으로 쉬어야 한다. 박용수 시민전문기자
박용수는 화순 운주사가 있는 곳에서 태어났다. 전남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줄곧 수필 쓰기만 고집해 왔다. ‘아버지의 배코’로 등단하여, 광주문학상, 화순문학상, 광주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하였다. 광주동신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며, 작품으로 꿈꾸는 와불, 사팔뜨기의 사랑, 나를 사랑할 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