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현재처럼
계속한다고 하더라도 러시아 경제가 완전히 무너지는 데는 2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 연합뉴스© 제공: 한겨레
6일(현지시각) 독일 공영은 서방 국가의 대러 경제 제재의 영향, 효과에 대한 학계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이렇게 전했다. 이 매체는 “서방 국가들이 부과한 전례 없는 제재 이후 러시아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으나 이번 주 러시아 통계청은 러시아 국내총생산(GDP)가 올해 상반기 0.4% 줄어드는 데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며 “전쟁 초기 치솟았던 물가 상승 움직임도 진정되기 시작했다. 이번 주 러시아 정부는 올해 국내총생산이 3%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보도했다.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고 있지만, 러시아가 유럽연합(EU) 회원국에 에너지를 팔아 벌어들이는 돈은 계속해서 러시아 재정을 지탱하고 있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가스프롬은 올 상반기 2조5천억 루블(413억6천만 달러)이라는 기록적인 이익을 냈다고 발표했고 이 때문에 가스프롬 주가가 30%나 뛰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아이이(IE) 비즈니스 스쿨의 막심 미로노프 교수는 에 “러시아 경제가 6개월 전보다 나빠지더라도 푸틴이 전쟁에 비용을 대는 것을 막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러시아 경제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는 점 자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국 예일대는 지난 8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수입이 급격히 줄었고 제조업체들은 반도체 및 다른 첨단 부품 등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가 아시아 국가들한테 가스와 석유 등 에너지를 보다 싼 가격에 더 팔아야 할 상황에 부닥치는 등 러시아의 입지는 낮아진 상황이다. 보고서 공동 저자인 제프리 소넨필드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최근 영국 라디오 방송에 나와 서방이 러사아에 경제제재를 지속해도 “러시아가 어마어마한 어려움 속에서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부 무역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경제적으로 완전히 몰락하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한다. 독일 비영리 경제 연구기관인 ‘세계 경제를 위한 킬 인스티튜트’ 부사장 골프 랭해머는 이 매체에 “장기적으로 러시아는 중국의 주유소에 불과하다”면서도 “그러나 러시아 경제가 2년 안에 무너질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러시아가 지난 수년 동안 전쟁을 위한 체력을 기르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서방으로부터의 ‘경제적 분리’를 잘 준비했다는 것이다. 랭해머 부사장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쓴 보고서 내용을 언급하며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발생한 분쟁과 크림 사태(크림반도 강제병합) 이래로 현금을 많이 모아뒀으며 전쟁을 준비해왔다”고 했다.
그는 독일이 올해 상반기 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하면서 200억 유로를 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늘어난 수치’이며 수입 물량이 줄더라도 가격이 오르면 독일은 여전히 매달 약 30억 유로를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유럽이 대러 경제 제재 및 에너지 의존도 줄이기에 나서지만, 여전히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으며 이는 곧 러시아의 전쟁 장기화에 동력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는 예일대 연구를 인용하며 러시아가 전쟁 초기 여러 달 동안 보유 외환에서 6천억 달러를 빼냈는데 이 돈이 ‘완충 역할’을 했다고 짚었다. 예일대 연구원들은 러시아가 800억 달러를 이미 사용됐고 보유 외환의 나머지 절반은 서방에 의해 동결됐다고 분석했다.
알렉산더 미하일로프 영국 레딩대 경제학 부교수는 서방이 대러 에너지 의존도를 완전히 끊을 수 있을 때가 돼야 푸틴 대통령의 전쟁 자금이 부족해지는데, 여기에는 향후 2∼3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푸틴은 선택지가 줄어들 경우 군사 비용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돈을 찍어낼지 모르는데, 이는 루블화 가치 하락 및 극심한 인플레이션 그리고 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서방의 대러 제재가 제대로 통하려면 튀르키예와 인도는 물론이고 무엇보다 중국의 태도 변화가 핵심적이라는 시각이 많다. 다만 중국이 현재의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실시한 2차 제재, 곧 ‘세컨더리 보이콧’(제재 효과를 높이기 위해 러시아와 정상거래하는 국가의 기업·은행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는 것)을 러시아 제재에도 활용할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지만 전문가들은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경우 원유와 가스 가격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