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겨레의 얼, 무궁화를 톺아본다.
정경시사 Focous 2023.09.23
심 의 섭(명지대 명예교수)
우리나라의 국기는 태극기이고, 국가는 애국가이고, 국화는 무궁화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의 상징과 적합성에 대해 분단현실과 통일대의를 차치하고라도 갑론을박이 그치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특히 국화인 무궁화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무엇보다는 무궁화를 공식적으로 국화로 인정한 법규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태극기는 대한민국 국기법에 의해 제작, 게양, 관리 사항이 규정되어 있는 반면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는 관행적으로 국화로 인식돼 왔을 뿐,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다. ‘대한민국 나라꽃에 관한 법률안’도 19대 국회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발의되어 왔지만 국회 상임위에서 계류 중인 상황이다. 비록 법적 근거가 없다 하더라고 무궁화가 엄연히 한국의 국화임을 뒷받침하는 근거와 자료는 방대하다. 1948년 8월 정부수립과 동시에 애국가가 국가로 제정되면서 다음해에 무궁화도 국화로 지정되어 보급되었지만 실제로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 나라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꽃이 된 것은 이미 수 천 년 전부터의 기록이 있다.
무궁화 꽃은 새벽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하루살이 꽃이지만 여름철 내내 새 꽃이 무더기로 피고지고 한다. 하루살이 꽃으로 사라지는 것 같아도 어느 꽃보다도 긴 여름 3개월 동안 피고지고 하여 무궁화라고 한다. 마치 우리의 유구한 역사가 이어져 오는 것 같아서 더 사랑을 받는 것 같다. 무궁화는 우리의 마음과 생활 속에서 사라진 적이 없다. 우리가 매일같이 만지고 생활하는 돈에는 무궁화가 공기처럼 함께 다닌다. 화폐에 등장하는 무궁화 도안의 역사에서 무궁화가 국화의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다. 1892년(고종 29) 인천전환국에서 제조한 오냥 은화에서 무궁화(가지, 枝) 도안이 처음으로 나타났다. 1946년 7월 1일에는 종래 일본정부 휘장의 오동문장을 무궁화 도안으로 바꾸었다. 1959년 제조된 십환 동화에는 주화에 최초로 무궁화의 꽃이 도안되었다. 1962년 영국에서 인쇄하여 발행한 6종의 화폐에는 ‘태극 문양과 무궁화를 의장’화한 마크가 그려져 있다. 1966년과 1983년에 제조된 일원 주화에는 활짝 핀 무궁화 한 송이가 그려져 있다. 1973년 발행한 만원권과 1975년 발행한 천원권 지폐에는 실물에 가깝게 그려진 무궁화가 들어 있다. 그리고 1970년 대한민국 오천년 영광사 기념화가 발행된 이래 1988년 올림픽 기념화까지 각종 기념화에 무궁화 도안이 들어가 있다.
화폐 뿐 만 아니라 전매청에서도 담배의 이름에 무궁화가 빠뜨릴 리가 없다. 국화로 상징되는 무궁화(1946.8~1950.12)가 있고, 국화의 후보군이기도 한 진달래(1957.1~1966.8)와 개나리(1974.4~1979.7)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 겨레의 얼속에 박혀있는 무궁화에 대해 국화로서의 적합성에 대해 격렬한 논쟁이 다시 발화된 것은 근간에 발행되었던 강효백의 저서(강효백 지음/김원웅 감수, 두 얼굴의 무궁화, 이담북스, 2020.06.30)가 쏘시개 역할을 하였다. 그 책의 내용이 무궁화에 대한 왜곡과 거짓이란 주장에 따라서 『두 얼굴의 무궁화』를 출판한 한국학술정보(주)(이담북스)는 2021년 5월에 판매를 위해 서점에 배포했던 책을 수거하고 추가 판매를 중단하며 책에 대한 절판 조치를 취했다. 감수자인 김원웅 광복회장은 2020년 10월에 출판사에 정식으로 감수와 추천을 철회하였다. 사단법인 ‘한국무궁화연구회’는 2020년 6월에 출간 된 책 ‘두 얼굴의 무궁화’에 대한 판매 중지 조치를 환영하였다(2021.5.31).
이처럼 신랄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강효백 교수는 후속 작으로 ‘일본 무궁화 가라 한국 진달래 오라’(하움출판사, 2023.4.7)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강효백 교수는 책머리에서 한반도에는 야생 진달래가 수백만 주임에 반하여 야생 무궁화는 단 1주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에는 야생 무궁화는 수십만 주임에 반하여 야생 진달래는 단 1주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무궁화 대신 진달래를 국화로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보면 국가의 상징인 국기, 국가, 국화가 없는 나라도 있고 모두 있는 나라도 있다. 국가의 상징을 명문화한데도 있고 관습과 관행인 경우도 있어서 국화를 반드시 법으로 정하는 것만은 아니다. 국화가 없는 나라도 있고, 관습으로 인정하는 나라도 있다. 주변국인 일본의 국화는 사쿠라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본에는 국화(國花)가 없고, 국화(菊花)가 일본 왕실의 상징이다. 사쿠라는 일본의 국화는 아니지만 일본을 대표하는 꽃이다.
중국의 청나라 조정은 1903년에 모란을 국화로 정했지만,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이 망하고 중화민국이 건국되면서 1929년 매화를 국화로 결정했다. 그리고 1949년에 중공이 수립되었지만 지금까지도 국화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두 정부가 국화로 여기었던 모란과 매화는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다. 따라서 중국이 국화를 하나로 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모란과 매화에 대한 사랑이 팽팽하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모란은 중국 북부 지역에서 주로 자라고, 매화는 남부 지역에 분포한다. 중국은 전 국민이 동의하는 꽃으로 국화를 정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한 꽃을 선택하기보다 모란과 매화를 모두 국화로 삼자는 의견이 대세일지라도 아직 공식적으로 국화가 결정된 것은 아니다. 중국인들은 이 두 꽃을 모두 국화로 여기는 것 같다. 그리고 연변의 조선족자치주에서는 한때 주화(州花)를 무궁화로 정했는데 발아가 잘 안 되고, 발아가 되어도 생육이 시원치 않아서 주화를 진달래로 바꾼 바 있다.
북한은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로 정권을 수립했고, 그 전날인 9월 8일 국기(인공기)를 제정했다. 비록 남과 북이 서로 다른 국호와 국기를 사용하였지만 국화만은 똑같이 무궁화였다.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 사람들은 무궁화를 국화로 여기었다. 그러다가 북한은 1991년 4월 10일자로 함박꽃 또는 산목련으로 불리던 `목란(木蘭)`을 국화(國花)로 공식 지정하였다. 북한에서 목란을 국화로 삼은 이유는, 김일성이 1964년 5월 황해북도의 어느 휴양소에 들렀을 때 그 곳의 함박꽃나무를 보고 목란이라 이름 붙이며 '향기롭고 생활력이 강해 꽃 중의 왕'이라고 하여 국화로 정하였다. 그래도 무궁화는 북한에서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던 것으로 보인다. 1946년 3월 12일 북한이 최초의 자체 무궁화를 도안한 우표를 발행했다. 1971년에는 ‘무궁화 꽃 수건’이란 가극이 공연됐고, 1983년 10월 평양서 열린 음악제에서 ‘무궁화삼형제’라는 노래가 우수곡으로 선정된 바 있다.
자료: https://www.yjb0802.com/news/articleView.html?idxno=36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