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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旅行): -지린성(吉林省), 창춘(長春), 매하구시(梅河口市), /연변자치주「延边朝鲜族自治州」 [ Yánbiāncháoxiǎnzúzìzhìzhōu ], 투먼(도문=图们), 바이산(백산=白山), 백두산(북파/서파).
길림성은 중국 동북지구 중심에 위치하며, 장춘은 성 소재지이다. 웅장한 장백산 임해설원 그리고 천지, 고구려 역사가 남아있는 집안 지역과, 인삼 녹용 수달피 “삼보”로 유명한 특산물과 농산물이 풍부한 지역이다.
성도 장춘은 겨울이 길고 봄 여름 가을이 짧은 기후 특성 때문에 봄이 길기를 염원하는 뜻으로 장춘(長春)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중국 최초의 자동차 공장과 자동차 타운, 영화타운, 삼림성, 과학기술 도시,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황금 곡창 지대이며 국가 중요 양곡 생산기지중 하나다.
장춘은 유구한 역사 도시로 1931년 9.18 사변 후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 1932년 3월 청 말 황제 부의가 “만주국” 선포 후 “신경”이라 이름 고치고, 1934년에 만주국을 만주제국이라 고치고 황제에 올랐다.
만주국 황궁은 1911년 손중산의 신해혁명으로 부의를 청 황제 옥좌에서 쫓아냈고, 쫓겨난 부의는 복위를 시도 하던 차에 일본제국이 이를 이용 동북을 장기 독점하기 위해 9.18 사변 후에 장춘에 도읍을 정했다. 14년 뒤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부의가 체포되면서 만주국도 역사에서 사라졌다.
정월담(淨月潭)은 장춘 동남쪽 10㎞ 지점, 면적 151㎢로 청산녹수 속에 싸여있다. 전국 중점 풍경 명승 구이다.
*長春市- 매하구시- 通化市, 장춘에서 통화시 중간에 매하구시(梅河口市)가 있다, 이곳 조선족 초등학교에 국제로타리 지원금으로 컴퓨터 40대를 지원하기위해 방문했는데 학생 수가 많이 줄어들었고, 학교 건물이 많이 낡았으나 수리비용이 지원 되지 않아서 거의 방치된 상태였다. 2003년 음력 설 전후였는데 호텔이 텅 비었고 식당문도 열려있는 곳이 없었다. 간신이 점포 한곳이 열려있었는데 살 만한 물건이 없었다. 중국은 당시 춘절(春节) 기간에 도시는 15일, 시골은 30일 정도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여행하여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하얼빈까지 고속도로를 이용 이동하였는데 좌우 경작지가 끝없이 펼쳐 저 있고, 산은 보이지 않아서 그 넓은 평야지대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었다. 여기가 만주벌판 이구나 감탄 하면서 시선을 돌릴 수 가없었다. 전후좌우가 모두 평야지대다. 대단하다!
*长白山( Chángbáishān)=백두산, 백두산을 가기위해 양양국제 비행장을 이용해서 연길 비행장까지 가면 가까울 것 같아 좋아했는데 에어라인이 없었는지 서해로 나가 중국내륙을 통해 연길공항에 도착했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7월에도 백두산 천지 주변은 하얀 백설로 가득 했다. 아마도 백두산 여행은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가 좋은 시기라고 생각되었다. 북파로 천지에 올라 좌측을 보니 3개의 봉우리 높게 솟아 있었고 그중 가장 오른쪽 봉우리가 백두산 정상(2,744m)=[북한은2,750m] 이란다.
제주도 한라산 높이가 “한 번 구경 오십시오” 에서=1950m 로 기억 했다면, 백두산 높이는 뭐라고 기억할까? “두번 7성단에 오십시오” =2,750m 라고 외우면 어떨까? 七星壇이란 적벽가 중 공명이 동남풍을 비는 단으로 제갈 공명이 오나라 손 권 및 주유와 연합하여 조조를 공격 하고자 할 때, 화공에 반드시 필요한 동남풍을 비는 내용이 들어있다. 어쩌면 동남쪽의 한국의 경제민주화가 북한에 새로운 경제와 민주화 두 가지 바람으로 반드시 필요한 칠성단이 될 런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통화시는 서쪽으로 요녕성 무순시 와 단동시, 동으로 장백산 구와 잇닿아 천지로 가는 중계 관광업 기초 기지다. 남으로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에 대한 중국의 3대 무역 항구중 하나다. 북, 동부로는 길림시, 백산시 와 인접해 있다.
고구려 문화유적이 많이 남아있고, 장백산 천지 관광과 압록강 강변유람, 겨울철 장백산 빙설 관광코스를 개통했다.
*연변조산족자치주: 延邊( Yánbiān)朝鮮族( Cháoxiǎnzú)自治州(zìzhìzhōu)= 자치주. (자치구와 자치현의 중간 크기)
연변조선족자치주는 길림성 동부의 중국, 러시아, 북한 3국 접경지대에 위치해 있다. 북으로 목단강시, 동으로 러시아 연해주 하싼구, 남으로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함경북도와, 양강도를 마주 보고. 서로는 길림시, 백산시와 인접해있다.
북한과 국경선 522km, 러시아와 국경선 232km, 나진항과 93km ,청진항과 171km ,블라디보스토크와 180km 떨어져있다. 연변에는 연길시, 용정시, 화룡시, 도문시, 돈화시, 훈춘시= 6개시와, 안도현, 왕정현 = 2개현이 있다.
도문에서 북한 남양까지, 훈춘에서 러시아 마하린노까지 국제 철도가 통하고 있다. 일본침략지배 시기에는 연길시를 “간도시”라고 했다. 연길시는 1952년 조선족 자치구를 창립하였고, 1955년 12월 조선족 자치주로 고치고 연변 자치주 소재지가 되었다. 연길 비행장은 동북5대 민용 비행장의 하나로 북경, 장춘, 심양, 대련 등 국내 주요도시와 직항로가 개설되었고, 서울, 양양, 블라디보스토크 등 외국 도시와 정기 항선이 개설되어 국제항공으로 발돋움 하고 있다.
연길시 인구 39만 명중 절반 이상이 조선족이며, 조선족은 예로부터 깨끗하고 검소하며 노인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며 서로 도와주고 손님을 잘 접대하는 미덕과 춤과 노래를 잘하는 민족 전통을 갖고 있다.
연길 비행장 - 도문(圖们(Túmén)=31km : 두만강변공원: 豆满江(dòumănjiāng)边(biān)公园(gōngyuán)
도문 시 동쪽 두만강 변에 있는 5km 강변공원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남양 과 마주하고 있다. 유람선을 타고 남양 지역 과 도문 지역 두 나라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도문에서 백두산 천지에 이르는 길은
图们(도문) - 룡정(龍井)( lóngjǐng:용정)=41km, 龙井(용정) - 松江鎭(송강진)( sōng jiāngzhèn)=100km,松江镇(송강진) - 이도백하(二道白河鎭)=25km,
얼다오바이허 진 - 장백산 풍경구 = 35km, 장백산 풍경구 - 장백산 국가급 자연보호구=24km, 백두산 천지.
*용정시에서 윤동주 생가에 들려볼 기회가 있었다. 1941년 11월 20일에 창작되었고 그의 유고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에 수록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시는 윤동주의 좌우명 격 시 인 동시에 절명 시에 해당하며 또한 ‘하늘’ ‘바람’ ‘별’ 의 세 가지 전체적 심상이 서로 조응되어 윤동주 서정의 한 극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서시란 ‘책의 서문 대신 쓴 시’ 라는 뜻.
尹東柱 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하늘: 인간 본질 또는 천주님,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잎새: 억압받는 한국인, 바람: 일제 식민정책,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별: 나의 의지(별 하나 나하나.....,) 희망과바램,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계몽교육, 독립과해방의 길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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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나의 의지가 일제억압에 괴롭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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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1917년 12월 30일생, 1945년 2월 16일 사망.>
이 작품은 식민지 상황에 처한 젊은 지식인의 고뇌, 또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적절한 상징과 시각적 심상을 활용해 담아낸 시로써 더욱 서정적이며 진솔한 느낌을 줍니다.
윤동주 시인의 키워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시대적 상황의 투시와 양심으로부터 비롯된 ‘부끄러움’ 의 인식입니다. 암담한 현실 가운데 지성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뇌와 아픔을 그는 시심으로 드러내려고 하였으며, 이 부끄러움의 미학은 본인 혼자만 행복하게 살 수 없다는 아픈 자각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는 조국에 대한 역사, 민족적 사명을 다하지 못 한 데에 대한 송구스러움과 죄책감, 도덕적 순결성의 욕됨과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결국 서시는 조국 독립을 위해 28세라는 젊은 나이로 후쿠오카의 어두운 감옥에서 눈을 감은 그가 하늘과 양심 앞에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했던 번민과 의지의 결실로, 아직까지도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명시 로 남아 있습니다.
*용정중학교: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 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무대인 룽징(용정)에 있는 학교이다. 시인 윤동주(1917~1945)의 출신 학교로 많이 알려져 있다. 윤동주가 다닐 때에는 '대성중학교'라는 이름이었으나, 현재는 '룡정중학'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대성중학교는 일제강점기 때 민족주의 교육의 산실로서 윤동주를 비롯하여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를 배출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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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아름답다. 배낭을 벗고 안주와 술잔을 준비해서 천지신명께 소원을 빌기로 했다. 각각 술잔을 올리고 빌었다.
액운을 없애고 풍요와 행운이 오도록 천지신명에게 고사를 지내니 기분도 훨씬 좋아졌다.
백두산 3개 등정코스는 중국쪽에서 북파코스와 서파코스가 있고, 하나는 북한에서 오르는 동파코스가 있다. 언젠가 기회가 오면 북한에서 오르는 동파코스로 백두산 천지를 꼭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