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구효서의 단편소설

[duccube]

* 화양연화 (花樣年華) 란 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사랑의 한때를 그린 구효서의 단편을 올립니다.

화양연화

구 효 서

그가 광양으로 매화구경을 간 게 2월이었다. 2월 15일쯤이었을 것이다.

매화는 2월에 핀다, 고 알고 있었으니까. 왜 그렇게 알고 있었을까. 그가 국문과를 나왔기 때문이라고 밖엔 달리 말할 수 없다. 국어교육과였던가?

그는 종종 인용하곤 했다. 고문진보 같은 것. 아니면 완판본 춘향전 같은 것. 홍길동전이라든가 매천야록 같은 것도. 지겨운 인용. 그를 아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었다.

제목 같은 건 국문과 출신이 아니더라도 입시공부 하느라 다들 한 번씩은 들어 알고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제목만 알뿐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는. 언어영역 시험 볼 때 제시문으로나 구경하는 정도였을.

그런데 그는 꽤나 이러쿵저러쿵 아는 척을 했다. 많이 알았다기 보단, 남들이 모르면 아는 척을 더 하게 되는 그런 경우였긴 하지만.

알아도 아는 게 옹글지 않았던 걸까. 2월에 매화구경을 가다니. 국문과와 썩 연관 있는 사태는 아니었다. 연관이 있다면, 전공 보다는 오히려 성격 쪽 아니었을까.

그가 이래저래 읽었던 책 속에 매실나무의 개화시기가 2월로 돼 있었을 거라는 건 짐작할 수 있다. 음력이었을 테니까. 졸업논문도 고전문학 쪽이었다.

그런데 양력 2월에 광양엘 갔으니, 전공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고밖에 할 수 없다. ‘15일쯤’으로 잡은 것도 그랬다. 초순쯤일까 하순쯤일까 생각하다 적당히 중간을 찍은 거였으니까.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여튼 광양 청매실 농원에 도착하기까지 그의 머릿속 문장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매화는 2월에 핀다.’

*

“구례에 가.”

대뜸 말해놓고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는 게 그의 통화방식이었다.

“저 보러요?”

송주였다. 김송주. 서른 다섯. 구례에서 기간제 교사를 하는. 남편은 그쪽 농협 직원. 유치원 다니는 아들이 하나 있다. 송주와는 가물에 콩나듯 통화하는 사이였다. 광양으로 떠나기 하루 전의 전화였다.

“응, 뭐, 그런 셈이지.”

그런 셈……. 이 말 뒤엔 숨은 게 있었다. 여차하면 튀어나올 매화. 광양이 구례에서 멀지 않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매화가 아니라, 송주를 만나러 가고 싶었다. 매화는 핑계였다. 그런 속내가 드러날까 봐 일단 ‘그런 셈’이라 말해 두고, 여의치 않으면 매화를 끌어다 댈 참이었다.

“어쩐 일일까, 바흐 아저씨가?” “내가 왜?”

“생전 온다는 말 안 하더니.” “오라고도 안 했잖아.”

“오호, 그래서 안 온 거군요?”

“그래.”

“그렇구나.”

“그렇다니까.”

“그런데 왠 바람이 불어서 온다는 걸까요?”

매화철이잖아. 꽃바람.

그러려다 내친김에,

“보고 싶어 간다는 데 다른 이유가 더 필요하니?”

슬쩍 밀어봤다. 송주가 선선히 물어왔다.

“아저씨 오리탕 좋아해요?”

“국물이 좋지.” “고기는요?”

“부추 듬뿍 넣으면 고기도 다 먹어 버려.”

“손님 들끓는 집이 있거든요. 예약해야겠네.” 이리하여 매화 얘기는 꺼내지도 않고 구례에 가게 됐다. 천만다행이었다. 매화 얘기 먼저 꺼냈다간 구례든 광양이든 못 갈 뻔했다. 2월이었으니까. 송주마저 못 볼 뻔했던 것이다.

“부추가 듬뿍 들어가야 한다구.”

그가 슬쩍 눙쳤고,

“오리탕에 부추 안 넣는 집이 어딨어요? 그것 보다 그 집 돌미나리 겉절이 한 번 먹어보면 뿅 갈 걸요.” 송주가 맞장구쳤다.

*

송주는 서른 다섯, 그는 서른 아홉이었다. 네 살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송주는 그를 아저씨라고 불렀다. 대학 다닐 때부터.

과에서 그를 아저씨라고 부른 여학생은 송주가 유일했다. 왜 그랬을까. 다들 형, 오빠, 아니면 선배라고 했는데 송주만 그를 아저씨라고 불렀다. 한 해 재수를 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이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그때 나이 겨우 스물 다섯이었는데 아저씨라니.

무슨 상관이냐 싶겠지만, 그가 송주를 이만저만 좋아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아저씨라는 호칭이 딱 막아섰다. 접근을. 옐로카드처럼 딱.

같은 학년인데다 그 친구에 그 교수들이라면 나이 따위 잊은 채 함께 지지고 볶으며 가는 게 대학생활이었다. 그런데 아저씨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거의 경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얼음땡하는 기분이었을 테니까.

“아저씨라니. 스물 다섯일 뿐인데.”

복학하고 두어 달 지나서였던가, 송주에게 간신히 물은 적이 있었다. 간신히 물을 수밖에 없었다. 송주 앞이라면 떨리기부터 했으니까.

“바흐 형은 좀 그렇잖아요. 바흐 오빠도 그렇고. 바흐 선배도 안 어울려.” 송주가 찬찬히 말했다. “바흐 선생님이 딱 인데, 선생님이라 부르기가 뭣하니까 아저씨라고 하는 거예요. 바흐 할아버지 보단 훨 낫잖아요. 응?”

“꼭 바흐여야 하니?” “그럼 봉한 아저씨라고 할까요?”

눈물이 날만큼 송주가 야속했다.

“꼭 아저씨를 붙여야 하냐는 거지.”

“전 그게 편하거든요.”

야속한 송주가 예쁘기만 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안 편하거든……. 그 말을 끝내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과제물에 이름을 쓰지 않고 제출한 일로 그는 바흐가 됐다. 그의 이름에 익숙지 않았던 강사가 강의 시간에 물었다.

“첨부파일 ㅂㅎ.hwp 전송한 사람이 누구야? 파일명 비읍 히읗 쩜 에치더블유피!”

그때 누군가 장난스레 외쳤다.

“바흐?”

폭소가 한바탕 휩쓸고 간 뒤 강의실 구석에서 슬그머니 손을 드는 사람이 있었다. 그였다. 그때부터 송주는 그를 바흐 아저씨라고 불렀다. 나중에는 아저씨라고만 했다.

바흐라면 나쁘지 않은 별명이라 생각했다. 그도 봉한이라는 이름이 맘에 안 들어 ㅂㅎ이라는 이니셜을 쓰곤 했으니까. 바흐. 괜찮은 아이디라고 생각하면 될 거 같았다. 문제는 그것이 형이나 오빠라는 호칭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였다. 나중에는 그것마저 위성로켓 추진체처럼 떨어져 나가고 생뚱맞게 아저씨만 남았다는 게 더 큰 문제긴 했지만.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어 복학생이 모두 셋으로 늘어나면서 아저씨 강박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그한테 좀 미안했던지, 송주는 형평성 있게 복학생 모두를 아저씨라 불러줬다.

*

“이제 말해 봐요.”

오리탕을 다 먹은 뒤 송주가 물었다.

“과연. 맛있었어. 돌미나리 겉절이.”

“그거 말고요.”

“말고, 뭘?” “구례까지 온 까닭.”

“말했잖아. 보……고 싶어서라고.”

“그 말을 내가 믿으라구요?”

“믿으면 좀 안 되니?” “내가 아저씨 보고 싶었다고 말하면……믿을 거예요?” “정말야?”

“저것 봐……. 그러니 어서 말해 봐요.”

“어서?”

“네. 어서.”

어서라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빨리 말하라는 뜻으로 들리지 않았으니까. 솔직히 말해라 아저씨야. 그렇게 들렸던 것이다.

물론 송주가 보고 싶어서 갔다. 매화는 여차하면 들이댈 핑계였고. 하지만 송주가 보고 싶어 왔다고 하면 얘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실랑이만 되풀이 될 것 같았다.

실랑이가 되어야만 하는 사정이 조금은 서글펐다. 어서 말하라는 송주의 의중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빨리 말하라는 뜻도 솔직히 말하라는 뜻도 아니었다. 좀 더 진심을 실을 수 없느냐, 그런 뜻이었다. ‘좀 더’ 라는 게 중요했다. 송주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대학 때부터 줄곧 자신을 좋아해 왔고 지금도 그 마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송주나 그나 생각은 비슷했다. ‘좀 더’ 진심을 실어 말한다고 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이전과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는 것. 그가 비록 아직 결혼하지 않은 홀몸이긴 해도 송주는 남편과 자식이 있는 유부녀인데 어떡하겠는가.

어서 말하라고 재촉하는 송주도 어쩌자는 맘이 있어 그러는 건 아니었다. 좀 더 진심이 담긴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뿐이다. 나중에야 어찌되든, 사람의 맘이 그렇잖던가. 그런 말, 일단은 듣고 싶은 것. 굳이 못할 것도 없는 거고.

그렇게 보면 그가 훨씬 소심했다. 구례로 송주 보러 가고 싶었으면서도 매화 핑계나 정성스레 준비하는 깜냥이었으니.

“일어서자.”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딜 가게요?” “갈 데가 있어.”

“그럼 그렇지.”

차를 몰고 강줄기를 따라 남쪽으로 시원하게 달렸다. 매화를 보러 왔다고 해도 될 것 같았다. 구례에 왔고 송주를 만났으니 매화는 이미 핑계랄 것도 없게 되었으니까.

“세상에……저거, 섬진강 아니야? 맞지?”

차창 밖을 내다보던 그가 깜짝 놀라 외쳤다.

“섬진강 보러 온 거 아니었어요?”

왠 능청이냐는 듯 송주가 말했다.

“섬진강 보러 왔으면 내가 놀라겠어? 처음이야. 처음이면서도 왜 나는 섬진강을 잘 안다고 생각했을까. 시인들이 하도 써먹어서 그랬을까. 직접 보니 아, 시 천편으로는 택도 없겠다. 저토록 이쁜 강을 이제야 문득 보다니…….”

“사진 좀 찍는다는 사람이 섬진강이 처음이라니요?” “내가 찍는 건 시계, 보석, 전자제품 일색이잖아. 스튜디오에서. 먹고 살자고 말야. 물론 섬진강도 사진으론 봤지. 많이.”

“섬진강 보러 온 거 아니면 뭐예요? 어딜 가는 거예요?”

“요즘 그림 좀 그려?”

그는 슬쩍 딴소리를 했다.

“언젠간 저 섬진강을 천 개의 화폭에 담을 거예요. 택도 없으려나. 그래도 기어이, 반드시 하고 말 거에요. 내가 왜 이곳 촌 남자랑 결혼을 했게. 지금은 그 남편과 애 때문에 꼼짝 못하지만 하여튼 언젠간……. 아, 시골 살림 만만치 않아요. 서울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거야. 아저씨는 시 좀 쓰시나?”

“시 없인 하루도 못 살지.”

“푸…….”

대학시절부터 ‘낙방의 시인’으로 불렸던 걸 송주가 모를 리 없었다. 그는 언제나 시를 썼고 언제나 낙방의 쓴잔을 마셨다. 언제나 시 없이는 못 산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걸 행복해 했다. 이제껏, 시 쓰는 일 보다 시를 향한 짝사랑을 더 사랑했달까.

“전신응시명월 기생수도매화, 라는 구절이 있어.”

“왜 안 나오나 했어요.”

“1백수가 넘는 퇴계 매화 시 중 하나야. 내 전생에는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크으. 본인을 달로 비유하는 것도 쩌는데 매화는 감히 도달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는 말 아니겠어. 어찌 매화를 보지 않을 수 있나.”

결국 매화를 입 밖에 내고 말았다.

그런데 송주의 반응이라는 게,

“그런 거 외우는 거 여전히 재밌어요?”

정도였다.

“매화에 얽힌 퇴계와 두향이라는 관기의 스토리를 들으면 정말 가슴 저린다 너.”

라고 말해도 송주는,

“아무리 많이 외우면 뭐해, 써야지.”

라고 말했다. 아하, 매화 때문에 온 거였구나! 이런 말이 송주의 입에서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

청매실 농원 입구에 다다랐을 때야 그는 문득 알았다. 섬진강을 따라 내려올 동안 전혀 매화를 구경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매화가 그 농원에만 피었을 리는 만무했다. 휑한 길을 달렸으면서도 그는 눈치 채지 못했다. 섬진강 때문이기도 했고 그 보다 예쁜 송주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목적지가 그 농원이었으니까 더 이상 달릴 수 없었다. 차를 세웠다. 황당하고 참담한 맘으로 농원의 둔덕과 섬진강을 휘둘러보았다.

“알겠다 이제.”

송주가 말했다.

그는 시침을 뗐다.

“뭘?”

“헛탕 친 거죠?”

“매화는 평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신흠의 글이야. 매화는 추울 때 피지 않나? 아니었니?”

“추위 보다 향기에 맞춰진 글이네요 뭘.”

“뼛속 사무치는 추위 없이 코끝 찌르는 매화향기 얻을 수 없노라……. 이래도?”

황벽선사의 시라는 말은 뺐다. 자신 없었으니까.

“그것도 추위가 아니라 향기에 맞춰진 글.”

송주도 만만치 않았다. 자기가 아닌 매화를 보러 왔다는 바흐 아저씨 아니었던가.

“보우선사가 거짓말 하겠어? 섣달 눈 허공에 가득한데 매화꽃 활짝 피었네. 눈송이 조각조각 흩날리니 눈인지 매화인지 모르겠더라……. 이래도?”

“섣달이랬어요?” “맞아. 섣달 눈. 납설(臘雪)이라 했으니까. 납은 섣달.”

“그런데 아-저-씨.”

“지금 이 상황에서 그 아저씨란 말 왠지 제대로 어울리는 것 같다.”

“그쵸. 아저씨도 그렇게 생각하죠?”

“응. 좀 쪽팔리려고 하니까.”

“신흠이든 보우선사든, 지금 엄연한 건 여기에 매화가 피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그러게 말야.”

“설중매는 수사일 뿐이에요. 매화는 다음 달에나 펴요.”

“그러게 말야.”

*

그는 무슨 상관이랴 싶었다. 당초부터 매화는 핑계였을 뿐인걸. 송주가 보고 싶어 왔고, 봤으니, 매화 따위 가을에 핀들 대수겠는가.

서른다섯의 아이 엄마인데도 송주는 여전히 그의 눈에 쏙 들어올 만큼 예뻤다. 촌살림이 만만치 않다고 했지만 송주에게는 애교로 봐줄 주름이나 군살마저 없었으니까. 눈부시게 고운 그녀를 눈앞에 두고 있는 거였다.

어느 학기 초 엠티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강물이 느리게 흘러가던 양평 어디 미루나무 밭이었을 것이다. 포플러였던가?

전후 사정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워낙 충격이 커서 그만 앞뒤 사정들이 기억에서 깨끗이 증발해 버린 거겠지. 화인처럼 뇌리에 박힌 건 오로지 송주의 격렬한 몸짓뿐. 겨우 더 생각나는 게 있다면 양귀비처럼 생긴 1년생 주홍 풀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었다는 정도였다.

무슨 게임을 하다 송주가 걸렸다. 벌칙이란 것도 게임만큼이나 지겨운 거였다. 노래 아니면 춤. 노래나 한 마디 하겠지 싶었는데 송주가 갑자기 지랄스럽게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지랄이라는 표현은 좀 그렇긴 하지만 그때 그는 굳이 그렇게 받아들였다. 억하심정 같은 거였겠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으니까.

송주를 볼 때마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곤 했다. 일제시대 국민학교 여선생이 꼭 저랬을 것 같아……. 그만큼 송주는 선생님이라는, 그것도 몇 세대 과거적인 틀로 찍어낸 인물 같았으니까. 가장 국어교육과(국어교육과가 맞다)다운 학생이라고 생각했다.

팀을 대표해서 과제물을 발표할 때도 어쩜 그리 상냥하고 반듯하고 낭낭했던지. 살짝살짝 벌어질 때마다 언뜻언뜻 비치던 입 안의 핑크빛은 갓 씻어놓은 잘 익은 복숭아 같았다. 치마든 청바지든 언제나 금방 옷장에서 꺼내 입은 듯 정갈했다. 지진이 일어나도 송주만큼은 뛸 것 같지 않았다.

그랬던 송주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지축을 흔들며 춤을 췄던 것이다. 어깨와 가슴, 허리와 엉덩이가 모질고도 모질게 움직였다. 둘러 앉아 있던 애들이 미친 듯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의외였던 만큼 반응이 뜨거웠던 것이다.

그때 그가 느낀 기분은 수치와 모멸 같은 거였다. 나만의 애인이 취객들의 벌건 눈앞에서 함부로 속살을 드러내며 천박하게 춤추는 것 같은.

그러나 송주는 그의 애인도 아니었고 더구나 천박한 춤도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그림도 배우고 무용도 배웠던 사람의 자연스런 재능이었을 뿐이다. 그 혼자 충격 받고 수치스러워했다. 송주의 엄청난 관능을 독점하지 못한 설움, 남학생들의 번득이는 시선을 고스란히 허용한 수치, 그 모든 걸 백분의 일조차 통제할 수 없었던 패배감. 그런 거였다.

그는 수백 수천 명한테 밟히고 얻어맞은 것처럼 앓았다. 손끝만 닿아도 비명이 튀어나올 듯, 온몸(마음이었겠지만)의 상처는 풍선처럼 부풀었다. 그러나 송주에 대한 실망은커녕, 열에 들떠 혹독한 홍역을 치루는 동안 그의 몸 안에는 불가항력의 송주로 가득해졌다. 몸을 추스르고 난 뒤 그가 깨달은 건 그거였다. 자신의 몸이 송주의 온전한 숙주가 돼 버리고 말았다는 것.

그리될 거라는 걸, 그는 복학하자마자 예감하고 있었다. 휴학한 지 이년 반 만에 돌아간 강의실에는 처음 보는 얼굴들뿐이었다. 그 중에 송주가 있었고, 송주를 보자마자 그는 곧장 돌발성을 동반한 지속적 의욕상실증에 걸리고 말았다. 그런 병증이 있다 치면 말이다.

*

“하이쿠다!”

그가 외쳤다. 하릴없이 청매실 농원 사잇길을 걸어 올라가던 중이었다.

“비약하는 건 여전하네요.”

“시는 비약이잖아.”

“아저씨 비약 따라가다간 가랑이 찢어지겠네. 뜽금없이 하이쿠는……”

“봐, 저기.”

그가 가리킨 곳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모여 있었다.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매실나무 빈 가지 아래 둥글넓적한 자연석들. 한 두 개가 아니었다. 농원 여기저기 수도 없이 널려 있었다.

“매화밭이 아니라 돌밭이네요.”

“매화는 져서 자개처럼 박힌다, 검은 상머리.” 약간의 비음을 섞어 그가 읊었다.

“하이쿠?”

“작자 이름을 잊어 먹었어. 요사 부송인가? 검은 상에 박힌 자개를 보며 매화를 떠올린 거지.” “어쨌다는 거예요? 그게.”

“나도 그게 어쨌다는 건가 싶었는데, 저걸 보라니까.”

송주의 눈길이 딱 멈추었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많은, 커다란 바위들 위에, 하나같이, 매화가 떨어져 쌓여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일부러 이런 돌밭을 찾아 매실나무를 심진 않았겠지. 이건 분명.”

“정말로 매화가 바위에 떨어져 스민 거다, 오랜 세월. 그 말 하려는 거예요?”

“매미소리가 바위에 스며들어 고요해지듯.”

“그것도 하이쿠?”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알지. 바쇼. 정확인 인용은 아니지만.” 두 사람은 바위 무더기로 뛰어갔다. 가까이 가니 돌 속 매화문양은 외려 더 선명해졌다. 사방을 둘러보았다. 돌마다 매화가 가득했다.

“믿을 수 없어…….”

송주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얼마나 보고 싶은 얼굴이었던가.

“오랜 세월, 널 사랑했어.”

“제 안에 깊이 스며있거든요, 아저씨도.”

하마터면 그런 장면이 연출될 뻔 했달까. 그토록 서로의 눈을 깊이 응시한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이 너무도 짧아서 마치 서로를 완강히 외면하는 꼴이 돼 버리고 말았지만.

*

그가 매화를 핑계로 구례에 가게 되었던 건 송주가 보내오는, 뭐랄까, 여지 때문이었다. 매번은 아니지만 먼저 전화를 걸어오는 쪽은 송주였으니까.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어요.”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아저씨 생각이 났다며 송주는 전화를 했다.

“차가 신호등에 걸려 잠깐 숨을 고르는데 문득 운전대 위의 내 손가락이 보이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오른 쪽 손가락 두 개의 손톱이 그대로 있는 거예요. 아침에 손톱을 깎았는데 두 개를 빼먹은 거죠. 약지와 새끼손가락. 아이 참.”

그럴 때 그가 보인 반응이란,

“시골 신호등이 길지는 않을 텐데 전화하기 괜찮아?”

이런 식이었다. 송주는 대뜸 소리를 높였다.

“지금 갓길에 세운 거거든요! 참 내.”

그도 알고 있었다. 송주도 자기를 싫어하지 않았다는 걸. 대학 때부터 죽. 그런데 캠퍼스 커플이나 연인 사이로 발전하진 못했다. 지독한 소심증, 얼마간의 방어강박, 그로인한 실기(失期), 송주의 결혼과 낙향, 나중에는 ‘부적절할 가능성’과 서울 구례 간 거리 따위를 원인으로 여겼으나 진짜 이유는 그도 송주도 잘 몰랐다. 우물쭈물 하다가 그리된 거였다.

학창시절 그도 썩 괜찮은 쪽이었다. 그가 학술답사 보고회장에 발표자로 들어설 때는 뒷자리의 여학생들이 요즘 아이돌 가수 반기듯 함성을 지르곤 했으니까. 그 때문에 한 여학생이 앓아누워 장기결석을 하는 바람에 직접 그 여학생 자취방을 방문해 출석을 권유하기도 했다. 우크렐레(작은 기타처럼 생긴 이 네 줄짜리 악기를 그는 다룰 줄 알았다)를 들고 가 이적의 ‘거위의 꿈’을 들려주자 다음날 그 여학생이 학교엘 나왔다.

내내 성적 장학금을 받을 만큼 공부도 잘 했고(암기력이라면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 인용의 귀재였으니까.) 선배나 교수에게 덤빌 만큼 꽤 결기도 있었다. 무엇 보다 당시 케이비에스 드라마 ‘프러포즈’로 데뷔한 현빈을 살짝 닮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살짝’은 본인의 오만한 겸손이었고 남들은 ‘많이’라고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고서야 송주라고 그를 싫어할 턱이 없었다. 문제는 그가 송주 앞에서만은 거의 모든 의욕을 상실한다는 거였다. 상실이 아니라, 의욕이 지나쳐 오금이 꺾이는 현상이었다.

복학 후 두 번 째 고시조론 시간이었을 것이다. 숙종 영조조 가단(歌壇)의 이세춘에 대해 조사해온 걸 그가 발표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새로운 얼굴들을 거의 익히지 못했을 때였다.

이세춘은 영조조의 유명한 가객으로서……. 입을 떼자마자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다음 시간에 발표할 기회를 다시 주신다면……. 그 말마저 채 끝내지 못하고 단상에서 엉거추춤 내려섰다. 그리곤 고개를 숙이고 제자리로 급히 돌아갔다. 송주 때문에. 그땐 송주 이름도 몰랐을 때였다. 강의실 한 가운데 작고 환하고 바알간 꽃으로 가만히 피어있었을 뿐이다. 오연하게.

오연하다, 라는 말은 그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것 같았다. 성미가 거만해 보였다는 말이 아니다. 그 과목의 수강을 신청한 학생으로서 그저 담담하게 강의에 임하고 있었을 뿐이다. 차분하고 평온했을 따름인데 그의 눈에만 돌올하게 보였던 것이다.

디엔에이라든가 무의식 같은 데에 그만의 동그란 원을 갖고 있었다면, 송주는 그 원을 에누리 없이 온전히 가득 채우는 존재로 와락 들어와 박힌 것이었다. 요즘말로 뻑간 것. 그래선지 지금도 이세춘이란 이름만큼은 잊히지 않는다. 전광석화처럼 송주의 모습이 들어와 박히던 그 얼떨결에 덩달아 각인된 이름이니까.

송주와 가장 친했던 단짝의 이름마저 이세춘으로 착각하는 것도 그 때문 이었다. 송주의 단짝 친구 이름을 그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송주와 맥주 한 잔이라도 나눌 기회가 생긴다면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고 황홀한 생각에 잠겼을 때 그가 떠올렸던 이름이었다. 이세춘. 이세춘은 아니나 이세춘으로만 기억되는 이름. 그래서 이세춘에게 말했다. 오늘 맥주 한 잔 어때? 내가 완전 쏜다.

송주를 생각하면 이세춘이 떠오르듯 이세춘 곁에는 언제나 그녀의 단짝인 기숙사 룸메이트 송주가 있었다. 그도 기숙사생이었다. 오후 여섯 시쯤 도서관 앞에서 만난 셋은 교정의 긴 중앙로를 걸어 교문을 빠져나갔다. 중앙로 양쪽으론 너무나 많은, 너무나 활짝 핀 장미들이 붉은 거품 시럽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저녁 바람은 시원했고 학교 앞 술집들이 하나 둘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천천히 걸어 먹자골목 끝 맥주 집에서 생맥주를 마시고 독일식 소시지를 먹었다. 이세춘의 고향은 강릉이었고 아버지는 중학교 국어 교사였다. 이세춘에게 국어교육학과를 권했던 것도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피아노 학원 원장님. 손가락이 짧아 피아니스트가 되지 못했다고 아직도 가끔 어린애처럼 우셔. 이세춘이 말했고, 손가락이 짧으면 피아니스트가 되지 못하나? 그가 물었다.

이세춘과의 대화중에 간간히, 송주의 고향이 전주라는 사실 따위를 얻어들을 수 있었다. 그랬던 것이다. 대화는 주로 그와 이세춘 사이를 활발히 오갈 뿐이었다. 송주에 대한 궁금증이 터질 듯했지만. 맥주집에서도 송주는 꼬박꼬박 그를 아저씨라고 불렀다.

그래서 이세춘이 오해했다. 자기를 좋아하는 줄로.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세춘은 분통을 터뜨렸다. 사과와 위로의 진심을 담아 그는 이세춘에게 노래를 선사했다. 그런데 그 노래라는 것이 우크렐레 반주의 ‘거위의 꿈’이었다. 이미 다들 알고 있었다. 장기 결석 여학생과 ‘자취방 위로공연’에 얽힌 사연을.

재탕에 불과한 노래를 듣고 속이 상할 대로 상한 이세춘은 송주와 예전처럼 붙어 다니지 않았다. 한 달쯤 지나고 나서 다시 단짝이 되긴 했지만 그는 오래오래 미안했다. 이세춘이 아닌 송주에게.

*

“넌 몰랐을 거야. 내가 기숙사 식당가는 걸 얼마나 두려워했었는지.”

매화 무늬 점점이 박힌 큰 바위에 걸터앉으며 그가 말했다. 섬진강 백사장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였다.

“모르긴요. 등 뒤로 다 느꼈는걸.”

“등 뒤로?” “아저씨가 나 보다 먼저 식당에 도착하는 경우는 없었잖아요.”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지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송주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멀찌감치서 배돌았으니까. 유일한 접근로였던 이세춘은 그와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식당에서 늘 송주 뒤에, 최소한 열 명 정도의 간격을 두고 줄을 섰다.

“식탁에 함께 앉은 적도 거의 없었지. 않게 되더라도 너랑은 대각선 끝 쪽에 앉았고. 그때 학교 기숙사 식당 식탁이라는 게 10인용인가 그랬을 거야.”

“12인용.”

“내가 밥 먹는 거, 되게 어색하고 불편하고 그랬었다는 것도 다 봤어?” “봤죠. 대각선 끝이었으니까요.”

“대각선 끝이라서 라니?” “늘 대각선 끝일 수 있었던 건…….”

송주가 잠깐 숨을 멈추었다.

“끝일 수 있었던 건?” “혼자 그러기는 힘든 거잖아요. 둘이 마음이 같아야 ‘늘 대각선 끝’이 가능한 거 아닌가?”

갑자기 추워져서 그는 몸을 움츠렸다. 12인용……. 송주의 기억이 더 선명했다.

그는 밥 먹는 송주를 차마 보지 못했으나 송주는 봤던 것이다. ‘같은 마음’이었지만 그가 훨씬 소심했던 셈이다. 송주는 다 알면서 먼저 식당에 도착했고, 뒷줄에서 자신의 등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감당한 거니까.

섬진강에서 눈길을 거두어 송주의 옆모습을 슬쩍 바라보았다. 송주는 그걸 어째서 이제야 말하는 것일까. 묻고 싶었으나, 또 그 두려움 같은 게 문득 앞을 막아섰다. 그러던 차에 송주가 불쑥 말해 깜짝 놀랐다.

“밥을 먹지 말지. 식당가는 게 그토록 두려웠다면요.”

원망 같이 들려 그제야 송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송주는 꽃처럼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도 웃으며 말했다.

“그 두려움이란 건, 꼭, 반드시, 식당엔 가야 한다는 전제에서 오는 거였으니까.”

“꼭, 반드시?”

“응. 꼭, 반드시.”

그처럼 기숙사 밥을 꼬박꼬박 먹는 학생도 없었을 것이다. 특히 아침만큼은 반드시 제 시간을 지켜 식당엘 갔다. 학생들이 등교하기 훨씬 전, 막 깨어난 기숙사 여학생들이 새벽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고즈넉한 아침 공기를 헤치며 공동식당으로 모여들었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엔 철마다 목련과 수국 칸나와 등꽃이 피었다. 미처 다 마르지 않은 여학생들의 머리카락에선 샴푸향이 났고. 그런 아침, 금방 세수하고 나온 송주의 발그레한 뺨을 보는 것은 굉장한 두려움이었다.

결코 피하고 싶지 않았던 이상한 두려움. 그 많은 날들, 그 많은 밥을 먹으면서도, 그는 가슴 두근거려 무슨 맛인지도 몰랐다. 그런 것까지 정말 송주가 다 알고 있는 걸까. 궁금했으나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질문은 엉뚱했다.

“이세춘은 뭐해?” “이세춘?”

“네 단짝 말야.”

“아-저-씨.”

“응?”

“혜진이거든요, 이혜진!”

여전히, 뭐가 두려운 걸까. 그는 다시 느린 강물을 바라보았다.

*

이세춘 아닌 이혜진은 안성의 한 고등학교에 적을 두고 있다고 했다. 송주 보다 이태 늦게 결혼한 이혜진은 교사연수회에서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져 몇 년 전에 이혼을 했다고 했다.

“지금은?”

그가 물었다.

“여전히 그 학교에.”

“잘 살아?”

“잘 사는 게 뭘까요. 그냥 사는 거지.”

“그냥?” “혼자 그렇게 살아요. 애는 친정에 맡기고.”

서둘러 이혼을 했지만 남자 쪽에서 차일피일 이혼을 미룬다는 거였다. 가정을 깨고 싶지 않다는 거겠죠 뭐. 송주가 말했다. 그렇고 그런, 지겨운 신파 있잖아요.

“신파.” “그러면서도 죽어도 못 잊겠다니까 더욱. 온갖 핑계를 대서 몰래 몰래 아직도 만나니까. 얼굴이 반쪽이에요, 완전. 봐도 알아볼 수 없을 걸요. 지겹지도 않은가 봐 걘.”

“그렇구나. 이세……이혜진.”

“그래도 정규교사인 걔가 난 왜 그렇게 부러운지. 기간제 교사라는 거 참 더러워요. 땜빵도 이런 땜방이 없어. 땜방 교사는 인권도 없는 거 알아요?”

“그 정도야?”

“여교사들이 임신하기만 기다리는 신세를 알까. 출산 휴가 끝나고 돌아오면 얌전히 자리 내 줘야 해요. 그 동안 정들었던 애들과 헤어지는 것도 한 두 번도 아니고. 차 몰고 경상도까지 출퇴근한 적도 있다니까요. 그러니 손톱도 제대로 못 깎고 허둥지둥이지. 다 때려치우고 그림이나 실컷 그릴까 싶어요. 교감이 밤 열 시에 만나자고 하질 않나.” “돈 벌어오는 남편 있는데 인권까지 무시당한다면서 꼭 그 일을 해야 돼?”

“남편 얘기 하지 말아요. 속 터져. 사람이 없어 자기랑 결혼한 줄 알아. 촌구석 농협 과장인 주제에. 라면도 꼭 끓여 바쳐야 해. 김치 계란 파 김 따로 넣어서. 화장실에 샴푸고 린스고 떨어지면 빈 용기는 내가 치우지 않으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요. 그런 식으로 칫솔 비누 수건이 한정 없이 늘어나고. 화장지 떨어지면 다시 새것 걸어놓는 일도 결국 내가 해야 한다구요. 없으면 티슈 뽑아들고 다니는 꼴이라니 차암. 나 같으면 갈아 끼우겠구만. 머리카락은 뭉텅 뭉텅 빠지는 주제에 샤워 후에 수채에 걸린 머리카락 집어내라고 해도 절대 안 해요. 한번 꺼내 신은 신발은 현관에 계속 늘어놓아 또 결국은 내가 정리해야 하고. 휴대용 전화기 쓰고는 그 자리에 던져놔서 충전 안 돼 삑삑 거리니 제자리 다시 세워놓는 것도 결국은 나……. 진작 임용고시 봐서 살림에서 손 딱 떼는 건데 이젠 다 늙었고.”

“그렇게 말해 봤자 하나도 안 불행해 보여. 그리고 너 서른 다섯일 뿐이야.”

“속 모르는 사람에게 더 말해 뭣해.”

“말하면서도 웃고 있거든, 너.”

“웃는다구요? 기가 막힌 거겠지.”

“매화 없어도 네 웃음 때문에 세상이 다 환하다 야.”

“세상이 환한 건 섬진강 때문이겠죠. 언젠간 저걸 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내겠다는 오기가 있으니까. 내가 사는 이유가 그거니까. 저 물길을 바라보고 있으면 숨통이 트여요. 정말 이쁜 강이야. 아주 이쁜 강.”

니가 이쁘니까.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대학 때도 그랬지만 송주의 표정은 여간해서는 어두워지지 않았다. 송주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다. 그나저나 아저씨는 혼자 살기 적적하지 않아요? 송주가 물었다.

“그렇지…… 뭐.”

“어떻다는 거예요?”

“적적해 죽겠다는 뜻.”

“하나도 안 적적해 보이거든요. 오만하고 이기적으로 보여. 자기 분야에서 이름 얻은 사람답게.” “쓸쓸해.”

“연애할까요. 아저씨는 독신이니까 나는 혜진이처럼 속 썩지는 않을 것 같아.”

퍽 소리를 내며 그가 웃었고 조금 있다 송주가 깔깔 거리며 따라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에 각성됐는지 둘 다 웃음을 뚝 그치고 서로를 마주 바라보았다. 위선 혹은 위악 뒤에 숨긴 열망마저 온전히 기만할 순 없었던 걸까.

웃다가 웃음이 끊긴 자리에 들어선 침묵이 날카로웠다.

하나 둘……. 3초도 채 안 됐을 눈길이었지만, 그날의 두 번째 깊고 생생한 응시였다. 매화 한 송이 열리는 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정말 놀랍지 않아?”

먼저 눈길을 거둔 것은 그였다. 바위마다 새겨진 매화 문양을 가리켰다.

“이것들이 매화가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송주가 응답했다.

“그렇지? 이게 매화지?”

“매화에요.” “2월에 와서도 나는 매화를 본 거야.”

“본 거예요.”

“언제 와도 우린 매화를 볼 수 있는 거야.”

“그런 거예요.”

“그렇다면 그런 거야.”

“그렇지요.”

두 사람의 응대가 하릴없이 이어졌다. 화강암에 점점이 박힌 차돌들이 어찌 매화일까마는, 두 사람 중 누구도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우겼다. 아직은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었고, 강물은 천천히 흘렀다.

*

마음 바쁘게 그는 서울로 올라왔다. 송주의 말 한 마디를 안고 떠나왔기 때문이다.

처음 만났던 오리집 앞에서 그들은 헤어졌다. 이를 쑤시며 오리집을 나서는 한 무리 중년 남자들을 배경으로 서서, 송주는 손을 흔들었다.

“시 열심히 쓰세요.”

송주가 차창 밖에서 말했다.

“그림 열심히 그려. 넌 꼭 할 수 있을 거야.” 그가 고개를 빼고 말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두 사람의 작별인사는 간절하지도 진지하지도 않아 보였다.

그의 마음속에 줄곧 남아 있었던 건 송주의 작별 인사가 아니었다.

“궁금한 거 있어요.”

라고 했던 송주의 질문이었다.

“뭐?”

그가 되물었다. 송주는 말없이 그를 얼핏 바라봤다. 장난기 가득한 눈이었다. 매화가 피면 다시 올 수 있을까 어쩔까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청매실 농원을 천천히 걸어 내려올 때였다.

“뭔데?”

그가 다시 물었고

“왜 답장 안 했어요?”

송주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동안 가끔씩 그한테 메일을 보냈다는 거였다. 자신의 마음을 담아. 윤주는 분명 말했다. 자신의 마음을 담았노라고. 시간이 날 때마다. 가끔씩.

“못 받았으니까. 어디로 보냈는데?”

“천리안. 사진 잡지에서 간간이 아저씨 글 읽었어요. 글 뒤에 적혀 있던 이메일 주소로.”

어이쿠. 천리안 주소라면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 됐다고 그는 말했다. 많은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헷갈려 이제 하나의 포털만 사용한다고. 천리안은 아니라고. 뒤늦게 송주에게 명함을 건넸다.

“그렇구나……그랬던 거네요.”

“근데 정말이니, 그거?”

그가 물었다.

“뭐가요?”

“이메일 보냈다는 거.”

송주는 잠시 대답을 유보하는 듯했다. 매실 농원을 다 내려와 큰 길에 이르렀을 때 입을 뗐다.

“응.”

네, 가 아닌 응.

그의 마음속에 줄곧 남아 있었던 건 어쩌면 응, 이라는 송주의 한 마디였는지도 몰랐다.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가슴 밑바닥에서 자꾸 울려오는 듯했으니까. 응. 응.

*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컴퓨터를 열 수밖에 없었다. 옛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떠올려 몇 차례 천리안에 접속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시간이 흘러 자동 해지되었거나 비밀번호를 잊은 거였다. 아이디는 과월호 사진 잡지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그는 이틀을 흘려보냈다. 송주의 ‘마음’은 오래된 메일 계정 깊이 갇혀 있거나, 우주 공간 어딘가로 감쪽같이 사라진 거였다.

이메일이 아닌 종이편지였다면 비록 읽을 수 없었다 해도 어딘가에는 처박혀 있을 텐데. 불에 탔다면 재라도 있을 텐데. 온라인상의 삭제된 정보라는 것은 질량불변의 법칙에도 해당하지 않는 끔찍한 방식의 부재였다.

구례를 다녀온 지 사흘 째 되던 아침이었다. 토스트와 계란 프라이와 커피로 아침을 먹으면서 티비를 보다가, 저 밑바닥 어딘가에서 서서히 부상하는 단어 하나가 점차 오롯해지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아일랜드였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아일랜드편이었다. 나레이션 속의 아일랜드라는 말을 거푸 들으면서도 어째서 그 나라의 이름이 금방 확연해지지 않고 시차를 두고 점차 오롯해졌던 걸까.

저 밑바닥에서 떠오른 게 나라 이름이 아닌 영화 제목이었기 때문이었다. 철자는 다르나 한국말로는 둘 다 아일랜드로 쓰는.

그 영화를 본 직후여서였을 것이다. 비밀번호를 아일랜드라고 했던 것은.

그는 토스트 조각을 입에 문 채 천리안에 접속했다. 굳게 닫혀 있던 빗장이 마침내 열렸다. 하마터면 토스트 조각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송주에게서 온 메일이, 마흔 여섯 통이었다. 저 홀로 와서 오랜 시간 기다리다, 마법에서 풀리길 고대하며 잠들어 버린 많은 메일들.

마우스를 쥔 그의 손이 떨렸다. ‘비가 오네요’ ‘두 번 몹시 화난 날’ ‘감자를 쪘는데’ ‘커피가 떨어져서’ ‘심심하다’ ‘캔맥주 두 개 마셨어요’ ‘아저씨 죽었나?’ ‘여름이 싫다’ ‘부침개를 너무 많이 부쳐’……. 금방이라도 반짝 눈을 뜰 것처럼 메일 제목들이 클릭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제목을 읽어 내려갔다. 제목만 천천히. 한 개에 20초 정도씩 할애해서.

오래 오래 다 읽고 나서 그는 문득 매천(梅泉)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것은 매화가 있는 샘도 아니고, 샘가의 매화도 아닐 거라고. 매천이란, 매화가 샘처럼 솟아나거나 샘이 되어 흐르는 것일 거라고. 마흔 여섯 통의 메일을 클릭하면, 매화가 샘처럼 터져 나와 끝도 없이 흐를 것 같았으니까. 무진장한 꽃잎에 홀연히 압도당해 뇌졸(腦卒)하고 말 것 같았으니까.

소원한 듯했으면서도 사실은 땅 밑 수맥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서는, 기다리고 지연된 시간만큼의 탄력을 간직하게 된 송주의 마음일 테니까.

서둘러 그는 <학림옥로(鶴林玉露)>를 클릭해 어렴풋 알고 있던 어느 비구니의 오도송을 검색했다.

진일심춘불견춘(盡日尋春不見春)

종일토록 봄을 찾아 헤맸건만 봄은 보지 못하고

망혜답변농두운(芒鞵踏遍隴頭雲)

짚신이 닳도록 산 위의 구름만 밟고 다녔네

귀래소염매화후(歸來笑拈梅花嗅)

지쳐 돌아와 뜰 안에 웃고 있는 매화향기 맡으니

춘재지두이십분(春在枝頭已十分)

봄은 여기 매화가지 위에 이미 무르익어 있는 것을

그는 다시 ‘메일’로 돌아갔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받은 메일’의 ‘전체’메뉴를 선택했다. 메일 제목들 앞에 삽시간에 일제히 체크 표시가 떴다.

열 다섯 개씩을, 세 번에 걸쳐, ‘삭제’했다.

나머지 하나까지, 모두.

*

청매실 농원에서의 눈 마주침. 짧긴 했으나 깊었던 두 번의 응시. 몇 년이고 또 그녀를 그리워하며 행복해 하기엔 그 생생함만으로도 충분한 자양이 될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메일 안 들어왔던데.”

송주에게 전화했다.

“안 들어갔다구요?” “비밀번호 쥐어 짜내서 들어가 봤더니 꽝.”

“아무것도 없었어요?”

“아무것도 없었어.”

그러자 송주가 깔깔깔 웃었다. 길게.

하도 웃어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아저씨도 차암.”

송주가 딸꾹질 하듯 웃음을 멈추며 말했다.

“내가 뭐?”

“그걸 믿었어요?”

“믿었지.”

“좋다 말았겠네.”

“장난 그만 쳐라 좀.”

넌 정말 나와 너무 똑같아서 슬프다, 라는 말은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고 싶지도 슬프지도 않았으니까. 피차 행복한 삶을 위해, 그 삶을 사랑하기 위한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어쨌든 이렇게 전화하니 좋네.”

송주가 말했다.

“나도.”

그가 말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