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 긴 글이지만 외국인이 보는 한국에 대한 것이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교회를 세우고 우리 조상들은한국을 많이 도왔지만 저는 거꾸로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이에요. 저에게 도움을 주신 분이 여기 앉아계십니다.
유준 박사님이십니다.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저희 집안은 남부입니다. 북 장로교 출신으로서 한국 땅에오셔서 세브란스의전과 연희전문을 세웠고, 저희 조상은 1895년에 유진 벨(Eugen Bell) 이라는 분이 한국에 도착해서 2년간 언어를 배우고 1897년에 나주에 내려가서 선교를시작했는데 사실 나주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당시 향교가 강해서…. 처음 목포에 가셔서학교를 두 개 세웠어요. ‘영흥’하고 ‘정명’을, 그 다음 1900년도 초에 광주에 올라와서 ‘숭일’과 ‘수피아’ 학교를 세우고 저희 집안의 마지막 큰 업적은 저희 할아버지가 대전에‘한남대학’을 세우신 것입니다. 1899년 목포 태생입니다. 아버지가 1926년 군산에서 태어났고 저는 1959년, 전주에서 태어났지만 전주가 고향은아니고 순천에 계신 부모님하고 같이 저는 순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여기 나오면서정확하게 옛날 기억을 더듬어봤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을, 60년대 초에 어떻게살았는가''' 특히 대한민국을 잘살게 한 후에야 감사함을 알았습니다. 많이 좋아했기 때문에 이제 제가 철이 들어서 그리고 이북을왕래하면서 그런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노대통령 취임 5일 만에이북전문가로 비밀리에 만났습니다. 이제는 좀 얘기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제가 확인시켜드리는 일입니다. 엄청 고민을 하고갔습니다.아침시간에 들어가서 만났는데 제 시간이 돌아와서 ‘긴 얘기를 해 봐야들을 것 같지 않고 너무 많은 사람들과 만나니까 굉장히 짧게 이야기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노대통령께 말씀드렸습니다. “이북의 상황은집안에 정신박약아를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북한사람들이 정신박약아라는 것은아니고…. 북한사람들에게 제재를 가하자니 가족이고, 때리자니 가족이고, 놔두자니 집안을 엎어버립니다. 펴시지 말고 10년, 20년 갈 수 있는 아주 단단한 정책을 펴셔야 합니다. 가슴이 뜨거운 정책을 펴시면안 됩니다. 냉정한 이성으로 정책을 펴십시오.” 이렇게 제가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제 얘기를 딱 10분 듣고 질문을 하나 하는 거예요. “우리가 잘하면 그이들도 우리에게 잘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잘하면 핵도 포기하고···” 러시아가 핵을 가지고있기 때문에 러시아하고 핵전쟁이 붙을까봐… . 중공군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다시 밀고 올라갈 계획이었는데 거기서 주춤한 것은 미국 사람들이 러시아의핵 앞에서 약간 주춤했습니다. 이북사람들이 그것을 다 봤는데 핵을 포기해요? 그 사람들 핵 포기 안 합니다. 절대로 포기 안 합니다. 숨어서 몰래라도핵을 만듭니다.”했습니다. 그이들도 우리한테 잘할거라는 그런 오해, 그런 잘못된 생각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분 얼굴이 벌겋게변하고 누구를 부르더니 담배를 갖다달라고 하더라고요. ‘스트레스를 저 때문에 굉장히 많이 받아서 저렇구나’, 그날 저는 혹시 한국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하고굉장히 고민을 했습니다. 어쨌든 그런 사실이 있습니다. 다시 일으켰던 것은무슨 사상이었느냐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자체이다? 결국은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굉장히 유명한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어렸을 때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말라’ 새마을 사업을일으키면서도 “우리는 잘 살 수 있다!” 여러 가지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도 있지만 그 생각과 그 사상이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무서운 말로방콕’이라고 하죠. ‘방에 들어가서 콕 박힌다.’ 다 아이들이 인터넷 앞에 가고텔레비전 앞에 가고 정말 무섭습니다. 옛날에는 집안에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어른들 말씀을 많이 들어 배운게 많았는데 그래서 온돌방 문화가 저한테 아주 정말 튼튼한 교육장소가 됐고, 당당하게 누구든지 만날 수 있게 된것도그 소중한, 어렸을 때 그 교육입니다. 10대 경제 안에들어가고 북쪽은 어떻게 된 걸까? 개성에서 평양으로 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차가아주 굉장히 시끄러웠어요. 안내원이 “남조선이 우리보다 좀 앞선 것을 얘기해보라우!”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이거 또 무슨 정보원 아닌가, ?’ 하고 고민을 했지만 저도 전라도 깡패기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보고 “정말 얘기해 보라우?” 그러니까 이 친구가 “얘기해보라우!”, ‘좋다. 무엇이든 물어봐라, 다 이야기해주마.’ 이런 심정을 가지고 이 사람한테 40분을 강의를 했어요. 당신 특혜를 받고 엄청난 공장들을 세우고 국가를 발전시켰다. 우리 어렸을 때는 나는 전라도에서 컸기 때문에 사실 잘살게 ! 된 것도 우리보다 뭐 인권문제 가지고 따지는 사람이 있는데 기본 생계가 보장되어야 인권도 논할 수 있는거다. 남조선에서 보릿고개를 없애 준 사람, 그게 구로공단에서 16시간씩일했다. 자본주의(이 사람은 공산주의자예요. 공산주의자한테 설명하려면 기본부터얘기해야 돼요.)에서 잘 살려면 돈을 모아야 된다. 돈이 있어야 된다. 그래서 돈을모으기 위해서 16시간씩 공장을 돌리고 심지어 남조선 여자들이 머리카락까지 팔았다. 뼈를 깎는 아픔을 겪었다.” 맨 마지막에“세 번째, 남조선이 잘사는 이유는 한국의 여성들 때문이다. 근면·절약정신. 당신한국여자들이 얼마나 대단한 줄 아냐?” 그건 공감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여자들이근면·절약 정신교육. 이런 걸 우선시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잘살게 되었다.” 그러면서 제가 “그것이 한강의 기적이다. 근로자들의 헌신적인 힘! 희생! 그렇게 얘기했더니 이 양반이뭐 좀 시큰둥해요. 그래서“거 무슨 얘기요?”했더니 “남조선 아이들은 미국 뒤에 줄섰고, 우리는소비에트 러시아 뒤에 줄 서가지고 이렇게 돼버렸다.” 중국 얘기는 하지도 안합디다. 그래서 내가 그 자보고 질문을 했어요. 박수 안 칩니까?(웃음) 한국 사람들에게 아부하려고 이 자리에 나온 것이 아니고 객관적인 사실을 가지고 말합니다. 미국에 이민가면 한국 사람들이 1년이면 80% 이상이 새 차를 사요. 5년이면 80% 이상이 새 집을 마련해요. 미국 사람들은 30년이 돼도 그걸 못해요. 대단한 일입니다. 좋은 얘기 많이 했죠? 나쁜 얘기 좀 해도 되겠죠? 거예요. 그래서 “안전불감증, 그것은 다 나쁜 것이 아니다.” 고속성장할 때 자본주의에서 가장 돈을 빨리 벌고 일어서는 방법은 어음을 여기서 끌어서 저기 막고 오늘만 어떻게 넘기면 내일은 돈 버는 거거든요. 웃으면서 제가 “그건 사실이다. 한국 사람들은 유전인자에 안전이라는 것은 빠져버리고 없어져버렸다.” 좀 성급하죠? 참 너무 너무 가슴 아픈 때가 많아요. 미국이 생길 때 한 쪽에서는 주당대표 찍자고 하지요.한 쪽에서는 인구비례로 대표를 세우자! 싸우다 싸우다 상원하고 하원이 생겼어요. 상원에서는 주대표제, 하원에서는 인구대표제 이것이 어떤 대표적인 미국의 타협국회문화입니다. 타협을 배워야 돼요. 지금 한국 사람들이 보수와 진보, 좌와 우, 모든 사람들이 소모를 하고 있어요. 성숙하면 타협을 해야 돼요. 타협하는 것이 서로 이기는 것이지 서로 손해 보는 것이 아니에요. 서로 조금씩 양보해야 돼요. 있어요. 링컨 대통령이 신문사 300개 문 닫았어요. 주의회를 재판도 안하고 연금을 시켰어요. 대법원장 불러 가지고 “당신 까불면 감옥에 넣어 버리겠다!”했어요. 요즘 잣대로 보면 감옥에 가거나 그 이상의 처벌을 받을 일이지요. 미국 사람들은 사람의 업적을 평가할 때 '시대성'을 감안한 평가를 하는데, 대한민국은 당시의 '시대성'은 배제하고서 오늘의 잣대로 옛날을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워싱턴 링컨기념관에 가보면 링컨이 예수님 다음으로 훌륭한 사람으로 되어 있어요. 아쉽습니다. 보니까 왕이 감옥에 넣어 버렸어요. 금속활자가 서양 구텐베르크보다 200년을 앞섰어요. 200년을 앞섰는데 백과사전에 보니까 흐지부지 돼버렸어요. 발견은 200년 먼저 했는데 아마도 금속활자를 못 만든 사람들이 금속활자 만든 사람을 암매장시키지 않았을까, 그렇죠? 사촌이 땅을 사면 유태인들은 잔치를 벌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세력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에 배 아프기는커녕 잔치를 벌여야 될 일이에요. 남 잘 된 것을 축복해 주고 축하해 주고 그런 문화로 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않겠느냐? 서양의 헐리웃이 우리를 점령하지 않느냐?”그래서 제가 뭐라고 했냐면 “걱정을 하지 마세요. 한국문화 튼튼합니다. 절대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안 나오는가 했더니 대한민국 사극을 옹기종기 앉아서 보고 있더라고요. 이란에서도 한국 사극이 최고 인기라고 합니다. 그것이 한류문화입니다. 시대는 지났고 무한경쟁시대에 걱정할 것 없는데 약간의 “ 교육받은 덕분에 제가 중간이 아니라 우수한 쪽에 들어갔어요. 그게 세브란스 교육이에요. 나가서 힘을 겨뤄보니까 까짓것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죄송합니다. 좀 교만하게 들려서…. 희망을 얘기하면 이상하게 그것을 일찍 깔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술이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최고입니다. 1위예요. 특허가 있어서 흉내도 못 내요. 극비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Cokes)라는 그 단계를 거치지 않고 철을 만듭니다. 아무리 철 값이 떨어져도 생산능력이 있고 수익이 남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이게 제 마지막 비판이자 칭찬입니다. 많습니다. 삼성전자가 지난 5년 동안에 소니(Sony)를 앞섰는데 최대 10년을 앞섰답니다 가면갈수록 격차가 마라톤처럼 소니는 출발점에 가있고 삼성은 지금 마라톤의 끝을 뛰고 있습니다. 엄청 앞섰습니다. 삼성, 대단한 기업입니다. 누가 만들었죠? 기아자동차가 미국의 최악 불황일 때 최악의 지난 1년 동안 미국자동차 시장점유율을 6% 올렸습니다.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그게 희망입니다. 같아서 한참 심사숙고하다가 우리 아버지하고 똑같은 결정을 내려서 ‘연금을 여기서 받고 여기서 죽어야 되겠다!’ 그런 마음을 결정했습니다. 이북 사람들이 선택을 잘못해 가지고 이북이 어떻게 저렇게 망가졌는지…. 전쟁 전에는 평양이 서울보다 더 잘 살았다고 그래요. 전기도 남아돌아가고….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됐는지…. 우리는 열린사회예요. 할 말은 하고 죽어야 되겠어요. 그런데 인민은 농노입니다. 그저 협동농장에서 죽어라 일해가지고 그렇게 못 살아요. 3%가 소위 그 사람들이 없애겠다는 지주 쪽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지주는 머슴한테 선을 더 베풀었어요. 먹여 살렸잖아요 최소한. 그런데 먹여 살리지도 못하고 있어요. 스물 몇 번을 다니면서 정말 답이 안 나오고 그 부패한 관료들하고 일을 하면서 아주 질려 버렸어요. 정말 희망이 없어요. 그러나 ‘다 굶어죽어도 싸다’, 이건 심한 말입니다. 죄가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이 더 많아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봉건시대로 간 겁니다. 300년 뒷걸음 해버렸고 하루가 갈수록, 하루가 가면 우리는 일주일 앞서고 북한은 일주일 뒤처집니다. 지금 나이들이 많아요. 이산가족들이 그 유일한 인맥이에요. 통일이 빨리 되어야 하는 이유는 인맥 때문이지 이산가족만 없었으면 그렇게 급하지도 않습니다. 이산가족을 볼 때 꼭 죄를 지은 것 같아서 통일이 빨리 돼야 되겠다 생각합니다. 최고 3일 정도 교육받다가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임플란트 교정치과에서 제일 첨단을 가르치는데 한 3일 지나니까, 아픕니다. 그리고 돌아갈 때 28개의 뇌물이 필요합니다.” 우리 집사람이 깜짝 놀랐답니다. 도장을 28군데를 받았대요. 뭘 요구했을 것 같아요? 돈? 선물? 남조선 사극을 좀 담아 달라. 최대한 가능하다면 지난 것까지도 담아 달라. 최신 것. ”, “이거 가지고 가다가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 총살 아니냐?” 그랬더니 “아~ 일 없습니다. 이거 가지고 가서 지우고 들어가서 파일을 복구시키면 돼요.” 들어가서 지우고 조작하면 어떻게 또 나온대요.! 그러니까 세관 통과할 때 누가 보면 없는 걸로 되어 있고…. 그래가지고 거기에 있는 고관들한테 최고 인기선물입니다. 이런 것들이 지금 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못했어요. 갤로퍼 수명이 3년이에요. 그런데 어디를 갔느냐면 원산, 함흥, 김책, 청진, 단천, 함경남도의 가장 북부에 가면 단천이 있습니다. 단천휴게소에 들어가서 하룻밤을 자는데 그 다음 날 새벽에 청진까지 한번 가보자 했더니 열 몇 시간이 걸린대요. 아마 한국 같으면 고속도로로 한 두 시간 걸릴 거에요. 그래서 단천에서 김책까지 가는데 혼이 났습니다. 비포장도로 마천령 고개를 넘고…. 함경남도와 북도 사이에 일제시대 때 길이 그대로예요. 변한 것 하나도 없어요. 도착을 했어요. 도착을 해가지고 우리 형님은 가서 항상 말하는 게 있어요. “우리는 남의 돈을 모금해 가지고 오니까 제일 싼 방 주세요.” 그러면 그 쪽 얘기는 항상 똑같아요. “3등실 돈 가지고 일등실에서 주무세요.” 호텔 선임이었거든요. 그래서 이제 “위대한 장군님이 주무셨던 방에 가서 우리 단장은 자라.” 그래서 제가 호기심에 갔더니 몇 월 며칠 위대한 장군님이 거기서 주무셨답니다. 달렸으니 머리에다가 흙을 한 삽 올려놓은 것 같아요. 그래서 프런트에 가서 뭐를 제일 고민했는지 아세요? 그래요. ‘혹시 이 호텔이 격일이 아닌가?’ 하고 고민을 한 거예요. 그래서 프런트에 가서 “나 목욕을 좀 하고 싶은데 더운물…” 말하니까 “우리 십 분씩 쏴주겠습니다.” 얼마나 고마운지...그래서 호텔방에 올라와서 앞에서 기다리는 거예요. 잘 빠트려야 돼요. 사회주의 국가는요, 목욕통 청소를 안 해요. 밑에 진흙이 좀 있어요. 그러니까 그건 찬물을 받아놓고, 그거는 화장실용 물이거든요. 그 다음에 세숫대야 하나 놓고 바가지 갖고 기다리는 거예요. 그런데 영락없이 딱 정각이 되면 물이 나와요 . ‘퀄퀄퀄퀄’하고 물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걸 또 빨리 받아내야 합니다. 거짓말 같으실 텐데요. 거짓말 아닙니다. 갑자기 세상이 새까만 거예요. 정전이 된 겁니다. 온 호텔방을 기어 다니며 배낭 속에 플래시를 찾는데 한 3분 걸렸어요. 찾아가지고 왔는데 처음에 3분 보냈죠, 찾는데 3분 보냈죠, 그래서 한 3분밖에 안 남았어요.
제가 광주항쟁에서 통역한 사람이에요. 하루 통역한 게 화근이 되어 가지고 아주 나쁜 사람으로 되어 있었어요 5공화국 때. 그래서 제가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제가 불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병영훈련을 자원해서 갔어요. 학생 병영훈련을 가서 열심히 9박 10일 동안 산을 뛰어 다니고 총도 쏘고 훈련을 받았는데 그때 그 병영훈련에서 뭘 배웠는고 하니 ‘3분 목욕’을 배웠습니다. .’ ‘3분 목욕’을 가르쳐줬으니까. 아주 불이 훤하더라고요. 갑자기 청진 생각이 나는 거예요. 찬물도 퀄퀄 나오고 더운물도 퀄퀄 나오고…. 제가 벽을 보고 혼자서 울기 시작했어요. 너무 너무 고마워서,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요. 마음껏 목욕하는 거 한 번도 고맙게 생각한 적이 없는데 그냥 눈물이 나는 거예요. 아버지 장례식 때도 안 울었어요.…. 근데 거기서 펑펑 우는데 ‘아! 이것이, 남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거구나’ 제가 깨달았습니다.
세우고, 우리가 가진 것이 엄청 많아요. 우리 다 재벌 같이 삽니다. 여러분들이 손자손녀, 여러분 자녀한테 다 얘기해야 됩니다. 여행갈 수 있는 것, 자기차 운전 할 수 있는 것, 친구 만날 수 있는 것, 가서 통닭하고 생맥주 마실 수 있다는 것, 따뜻한 방에서 자는 것, 여름에는 다 에어컨 켜고 지내는 것, 여러분 소중한 것이 많습니다. 가정의학과 수련의 과정 이수 |
|
첫댓글 전세계에 나가 있는 한국인 선교사들 생각납니다.
50년,100년후에 그들의 자손들이 이런 글을 쓸 수도 있겠구나 하고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