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조선왕조 궁중음식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을 한껏 높이는 역할을 했던 인기 텔레비전 드라마 <대장금>에서는 수라상 차림을 궁녀들이 전적으로 담당한 것처럼 되어 있다.그리고 그것은 조선 말기-대한제국-일제강점기에 직접 왕실의 음식 조리를 담당했던 한희순, 김명길 상궁의 증언에 근거하고 있다.당시 고종과 순종 및 그 밖의 왕실 사람들의 음식 조리는 일체 음식상궁들이 맡아서 했다는 것이다.그렇게 되면 [경국대전]에도 버젓이 언급된 사옹원 소속의 숙수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느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이에 대해 한희순의 제자로 조선 궁중음식 문화에 대한 상을 현대적으로 정립하는데 크게 공헌한 황혜성과 그녀의 딸이자 후계자인 한복려, 한복진은 이런 주장을 내놓았다.
역대 왕조의 궁중음식은 궁중에서의 주방 상궁들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 내려왔다.궁중음식의 조리 기능의 전수와 주방 상궁들의 훈련 제도를 알아볼 수 있는 자료로서는 당시의 문헌들은 별로 없으나 조선 시대 후기 실제 궁에 있던 상궁들에 의해 자세하게 알 수 있다.궁중에는 주방상궁 외에 음식을 담당하는 남자 요리사가 있어 궁중의 진연(잔치)음식을 따로 맡아서 하게 된다.이들을 대령숙수라 하고 세습에 의해 기술을 전수한다. _한복려, [조선왕조 궁중음식], 민족과 문화 6호(1997)
궁녀와 숙수들 사이에 일상식 담당, 특별식 담당이라는 '역할 분담' 이 있었다는 것이다.그럴듯한 이야기다.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할 때, 특별한 음식인 연회식이나 제사 음식만을 '전문 요리사' 인 숙수들에게 맡기고 왕은 비전문가들이 차리는 밥상을 받았다는 말은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궁궐에 진연과 제사가 잦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는 특별한 경우인데, 평소 자주 먹는 식사를 그처럼 소홀히 했다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양쪽 다 전문가였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궁녀들은 위의 인용문처럼 손에서 손으로 음식 비방을 전수하며 전문가로 훈련되었고, 숙수들은 세습 과정을 거쳐 전문가가 되었다고 말이다.그런데 굳이 그렇게 두 계통으로 전문가를 양성할 필요가 있었을까?또한 아무리 다 같은 전문가라지만 드라마의 대장금처럼 특별히 탁월한 솜씨를 보이는 요리사는 손에 꼽았을 것이다.그런 천재 요리사가 연회식만 만들고 일상식은 만들지 않는다든지, 반대로 일상식에서만 솜씨를 부릴 수 있고 연회식은 그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음식을 먹어야만 했다면 그처럼 불합리한 일이 있을까?특별식과 일상식 모두 같은 사람들이 조리했다고 보는 게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다.더구나 음식 품목을 보면 일상식과 특별식 사이에 큰 차이도 없다.
그렇다면 궁녀와 숙수들 중 누가 '수라간의 주역' 이었을까?먼저 궁녀들이었다고 생각해 보자.그럴 경우 궁녀들이 보통 왕의 밥상과 잔칫상, 제삿상에 오를 음식을 도맡아 하는데, 큰 연회일 경우 일손이 부족하므로 일종의 '출장 요리사'처럼 숙수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그러면 '일상식은 궁녀, 특별식은 숙수'라는 도식에도 얼추 들어맞는다.하지만 그것은 [경국대전]의 관직 편제와 너무 동떨어진다.이에 따르면 종6품의 재부는 대전과 왕비전에 식사를 내가는 진어를 담당하며, 종7품의 선부는 문소전 친선과 대선에 차를 내가는 진다를, 종8품의 조부는 2명, 정9품의 임부 2명, 종9품의 팽부 7명이 여러 요리를 직접 담당하고 있었다.모두 13명에 이르는 숙수들이 정식 관원으로 녹봉을 받았다는 것인데, 그 정도 인원의 요리사들이 이따금 있는 특별 출장만을 위해 정규직으로 녹봉을 받았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재부는 대전과 왕비전의 진어를 담당하며, 선부는 문소전과 대전의 진다를 맡는다"라는 규정도(명목적인 것이었다고 추정할 수는 있겠으나)무시하기 어렵다.반면 궁녀들의 직급과 역할을 보면, 종5품의 상식과 정6품 상침, 정7품 전선 세 명만이 음식 문제를 담당하게 되어 있을 뿐, 나머지는 각각 의복이나 의약, 소제, 접대 등 전문 역할을 맡고 있다.그러면 결국 수라간의 주역은 남성 숙수들이었고, 궁녀들은 보조 역할을 맡았다고 보아야 타당할 것 같다.김상보 등은 조선의 관제와 남녀 유별을 강조하는 경향 등을 들어 그런 주장을 제시해오고 있다.영조 42년(1766년) 8월 18일자 실록을 보면 선왕의 묘소에 제사를 드릴 때 제사 음식 중 면과 떡, 두부, 탕을 만드는 데 여인들(궁녀를 의미하는지는 불확실하다)에게 돕게 하는데, 숙수는 만들지 못하는 게 없는데 남녀가 서로 뒤섞여 음식을 만드는 일은 엄숙한 능묘에서 부적절하므로 숙수에게 전담토록 해야 한다는 건의가 나오고 있다.중국의 경우에도 요리인들은 남성이었고, 한국과 중국의 관제 편성의 기본 지침이 된 주례에는 선부에서 고인에 이르는 남자 관료-요리인들이 왕실의 음식 문제를 담당했다고 적혀 있다.그런데 이들은 각각 수십에서 수백에 이르는 하인들을 지휘하며 담당 업무를 수행하는데, 술을 빚는 주인, 음료 담당인 장인, 다과 담당인 변인 등은 남자와 여자 하인을 모두 거느린다고 되어 있다.[후략](pp.22~27)
함규진, 왕의 밥상(21세기북스,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