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백발마녀전
나는 자객이다. 영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서둘러 접속을 하고
바둑을 둔다. 자객이란 내가 사이버바둑에 접속하는 아이디이다. 5급으
로 시작해서 2급까지 올라갔다가 최근에는 다시 3급으로 추락을 했다.
접속을 하고 누군가 초대해주길 기다리면서 채팅창을 바라보고 있었
다. 아이디들을 보면 참으로 다양한 이름들이 존재한다. 한일타운, 바
돌왕, 성유리짱, 유리언니, 마군자객, 대비마마, 김서방, 멀보니, 김포
백구두, 실비아, 살수, 천마지존, 천마여존, 천하하수, 백발마녀, 겨울
길손,이쁜킬러, 등등의 이름들이 18급에서 7단까지 공존하는 것이다.
누군가 초대메시지를 보냈다. 클릭을 하고 들어가자 백발마녀라는 아
이디의 일급이었다. 두점으로 두자는 대국협상이 왔다. 클릭을 하자
타탁하고 두점이 미리 놓이고 백발마녀가 하변쪽에 날일자로 걸쳐왔다.
백발마녀: 안녕하세요
자객: 반갑습니다
10여수가 진행되었다. 무난한 진행이었다.
자객: 마녀님은 여자신가요?
백발마녀: 남자 마녀도 있나요?
여자라는 이야기였다. 여자로서 1급을 둔다는 건 센바둑이었다. 물론
7단짜리 여자고수도 있고 프로기사들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1급은 센
바둑이었다. 호기심이 일었다.
자객: 실례지만 몇살이세요?
백발마녀: 불혹이외다
자객: 저런 나도 62년 호랑인데
백발마녀: 방가 방가
거대한 흑세력에 뛰어든 백말이 가볍게 수습을 하고 귀환을 했다. 흑
은 졸지에 껍데기만 남았다. 가죽장사를 한 셈이었다. 백의 말들은 모
두 완생이었고 또 두터웠으며 흑은 엷고 도처에 약점이 많았다. 120수
만에 불계패를 신청하고 나자 은근히 화가났다. 재도전을 했다.
백발마녀: 점수가 많이 깎일 텐데요, 전 하수라고 봐주지 않아요
자객: 염려말아요 이번엔 이길테니
백발마녀: 창문밖에 눈이 와요, 이런 날은 백이 이기는 확률이 높죠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정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자객: 거긴 어디죠?
백발마녀:에스이오유엘
자객: 나도 에스이오유엘
백발마녀: 강서구
자객:난 강서구 화곡동
백발마녀 :?
자객: 왜요?
백발마녀: 화곡2동 성석교회앞
자객: 거기 알아요 난 화곡4동 대하마트 옆 골목
백발마녀: 대하마트 알아요 남부시장 입구잖아요
자객: 아줌마죠? 술한잔 하고 싶은데 나오기 곤란할거구
백발마녀: ㅎ ㅎ ㅎ 사준다면 못나갈 이유가 없지
자객: 그럼 지금 버스타는데 연다라호프라고 있죠? 거기로 나올래요
백발마녀: 통닭 사주실래요 나 그거 좋아하는데
두 번째 판은 흑이 이겼다. 미세한 바둑이었는데 백이 끝내기에서 착
각을 하는 바람에 차이가 벌어졌고 계가를 하니 흑이 일곱집을 이겼
다. 나는 서둘러 옷을 입고 거울을 보았다. 뚱뚱하고 사람좋아 보이는
사내가 나를 건너다 보면서 싱긋이 웃었다. 연다라 호프에 도착하니
아직 아무도 없었다. 핸드폰 번호라도 물어볼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발마녀가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열
시가 막 넘어서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여자가 들어섰다. 그여자는 성큼성큼 내게 다가오더니 물었다.
"자객님? 착해보이시는데"
"백발마녀님이시군요, 근데 머리가 검은데요"
그녀가 두터운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정식으로 인사합시다. 나는 이은선이에요"
"난 김 갑봉이에요"
아귀의 힘이 셌다. 아마 팔씨름을 한다면 내가 질 것 같았다.
"키가 크시네요"
"키178에 몸무게77"
"그렇군요 생맥주에 통닭 어때요?"
"좋죠"
그녀가 흐흐하고 웃었다. 옷차림이나 말투로 보아서 아주머니 같지가
않았다.
"집에서 걱정 안해요?"
"혼자 살아요"
"기원에 자주 가요?"
"목동사거리 기원 알죠? 거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그녀가 주머니에서 말보로를 꺼내어 물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왔길래
통닭과 생맥주를 시켰다. 아주머니가 생맥주와 팝콘을 들고왔다.
"이거 잔이 작아서리"
그녀가 500cc 짜리 생맥주잔을 들고 웃었다. 잔이 작아보였다. 그녀가
머리를 한번 흔들더니 단숨에 마셔버렸다.
"아줌마 1000짜리로 갔다줘요"
"직업은요?"
"동사무소에서 호구조사 나왔어요?"
"그게 아니라"
"난 백발마녀구 댁은 자객이구"
처음에는 어색했으나 바둑이야기가 나오자 비로소 화기애애 해졌다.
"멀보니는 매너가 별로에요 그쵸?"
"시간을 제로에다 두고 시간승을 거두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실비아님은 좀 수다스러운 거 같애요"
"한일타운님은 하수들한테 자상한 복기를 해주더라구요 어찌나 고맙
던지"
우리가 바둑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을 때 문
쪽이 시끄러웠다. 싸움이 벌어진 것이었다.
"야 이년아 거기좀 만진다구 닳길 하냐? 왜 유난을 떨어서 술맛 떨어
지게 만들어"
와장창 하고 생맥주잔이 벽에 부딪치고는 바닥에 떨어졌다. 중년의
사내가 주인아주머니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따귀를 후려쳤다. 주인아주
머니가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졸지에 분위기가 험악해지면서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 정적을 깨고 그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식들 좀 조용히 하지"
중년사내가 성큼성큼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야이 쌍년야 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
사내가 테이블로 다가와서 그녀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피워물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말보로를 꺼내어 물고
는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야 이년아 뭐라고 말 좀 해봐"
사내가 그녀의 머리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내가 인상을 쓰면서 몸을
일으키자 그녀가 손을 뻗어서 내손을 잡아 다시 앉히면서 말했다.
"김형은 구경이나 해요"
허허 하고 사내가 코웃음을 쳤다.
"김형이라구 니가 남잔줄 착각하나 본데 이거 미친년 아니야 이거?"
사내가 머리위로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다른 테이블에 앉아서 상황을
지켜보는 일행인 두면의 젊은 사내들에게 말했다. 사내들이 빙긋이 웃
었다.
"어르신들 기분좋게 술 마시는데 술 맛 떨어지게 만들지 말고 집에가
서 니 마누라 아랫도리나 쑤셔 임마"
경악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듣기 민망한 욕설이 나온 것이었다.
"에이 씨팔 년"
사내가 그녀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그 순간 그녀가 벌떡 일어서면
서 사내의 팔을 비틀었다. 사내는 졸지에 팔이 꺾인채 신음소리를 내
었다. 그때 사내와 같은 좌석에서 술을 마시던 사내둘이 다가왔다. 험
악해보이는 인상의 젊은이들이었다.
"그 손 놓으시지 다치기 전에"
"여자가 말이야 흑장미파 뭐 그런건가?"
사내하나가 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내서 스위치를 눌렀다. 찰칵 하
고 날카로운 칼날이 튀어나왔다. 사내는 칼로 손톱을 긁어서 호 불었
다.
"형님 팔 아프시니까 얼릉 놔 다치기 전에"
사내들이 천천히 다가섰다. 순간 그녀는 중년의 사내를 밀면서 몸을
공중으로 날리더니 한 발로 벽을 짚고 그 탄력을 이용해 한사내의 얼
굴을 강타하고 떨어지면서 몸을 회전시켜 다른 사내의 복부를 걷어찼
다. 눈깜박할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바닥에는 세명의 사내가 쓰러져
있었다.
"김형 빨리 달아납시다"
그녀가 나의 손을 잡아끌었다. 우리는 허둥지둥 호프집을 나와서 목
동사거리쪽으로 달렸다. 목동사거리에 가서 뒤를 돌아다 보니 아무도
우리를 뒤쫓는 사람이 없었다.
"에이 술을 먹다 말아서리, 어디가서 한잔 제대로 합시다"
마침 호프집이 눈에 띄어서 우리는 거기로 들어가 다시 술을 마시면
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운동 했어요?"
"절에 있었어요. 몸이 아파서 절에 갔었는데 거기서 스님한테 배웠지
요, 열 일곱 여고시절에 몸이 너무 아파서 죽을 지경이 되었지요. 그래
서 여고를 그만두고 절에 들어갔는데 어느날 저녁에 산책을 나갔더니
스님들이 무술을 하시더라구요, 그동작이 어찌나 세련되고 멋있던지
그날부터 주지스님한테 졸라서 무술을 시작했어요, 절에서 12년을 운
동했어요, 열일곱부터 스물 아홉 살까지 있었는데 몸의 병은 다나았는
데 세상에 내려오기가 싫더라구요, 그 사이에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
아가시고 오빠는 이민가고 그래서 심각하게 스님이 되는 문제로 고민
하고 있었는데 한 남자를 만났어요, 고시공부를 하러 내려온 사람인데
나보다 두 살 많은 서른 하나였지요, 그 절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서
로 정이 들었고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어요. 그리고 그 남자는 고시를
포기하고 나랑 결혼을 하고 살림을 차렸지요, 조그만 출판사에 취직을
해서 교정도 보구 그러면서 살림을 키워나갔지요, 그남자도 가난한 사
람이라 우리는 열심히 일했지요, 그런데 어느날 그남자가 들어오지를
않더라구요, 전화두 없구 열흘을 안들어 와서 걱정을 태산같이 하면서
찾아보니 종적이 묘연하더라구요, 회사에서 분명히 여섯시에 퇴근 했
고 버스를 타는 걸 본 동료도 있는데 집에는 안 온 거에요, 여기저기
수소문 하다가 파출소에 가출신고도 내고 그리고 여태까지 안 나타나
는 겁니다. 결혼한지 이년만에 일어난 일이지요, 그 남자는 어디로 갔
을까요?"
그녀가 술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백발마녀전이라는 무술영화를 봤어요?"
"봤습니다, 장국영하고 임청하든가 나오는 무술영화"
"그래서 백발마녀라고 아이디를 지었어요, 그 영화에도 백발마녀가
남자를 기다리다가 머리가 하얗게 세었지요."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다림의 흔적이 얼굴에 주름살로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런데 작년에 그 남자를 찾았어요"
"예?"
"그 남자가 병든 몸으로 굶어 죽었다는 거에요, 노숙자 생활을 하다
가 말입니다, 그 남자는 왜 나를 떠나서 노숙자 생활을 했을까요, 내가
싫었을까요?"
"참 알 수 없는 일이네요"
"절에서 스님한테 배운 실력으로 통신바둑을 두어요, 요즘은 무협지
를 써서 먹고 살아요, 그렇지만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씩은 꼭 바둑을
두어요 바둑을 두지 않으면 아마 난 미쳤을 지도 몰라요. 외로움을 달
래주는 바둑이 참 좋아요"
"그렇군요"
"언젠가는 일주일간 아무도 만나지 않고 일도 안하고 오직 바둑만 두
었지요, 처음에는 이기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눈도 아프고 집중도 되지
않아서 연패를 당했어요, 그런데 지면서도 자꾸 두는 거에요 아마 15
연패쯤 될꺼에요. 그냥 습관적으로 두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까 7
승 23패더라구요, 삼일간 컴퓨터를 끄지 않고 계속 바둑을 둔거에요.
그래서 컴퓨터를 끄고 한참동안 엉엉 울었어요, 글세 왜 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허전해서 였을 겁니다. 사이버바둑을 두는 상대랑 직
접 만난건 자객 당신이 처음이거든요."
"저는 한 상대랑 연속해서 열다섯 판을 둔적이 있어요, 6승8패1중지
대국이더라구요, 그런데 더 둘수도 있었는데 갑자기 서버가 다운되서
접속이 끊겼는데 들어가지를 않았어요, 아마 그 상대도 내가 다시 들
어갔다면 더 두었을 겁니다."
술을 마시고 일어나니 새벽이었다. 거리로 나서니 함박눈이 펑펑 쏟
아지고 있었다.
"또 눈이 오네요, 정말 올해는 눈이 엄청 오는군요"
"집까지 바래다 드릴께요"
"안 그래도 되는데"
나는 그녀랑 나란히 걸었다. 말없이 눈을 맏으면서 한참을 걷다가 문
득 돌아보니 그녀의 머리가 하얗게 눈으로 덮여있었다.
"앗 진짜로 백발마녀가 되었다"
내가 큰소리로 외치자 그녀가 쓸쓸히 웃으면서 머리를 흔들어 눈을
털어내면서 말했다.
"이젠 아이디를 바꿔야 겠어요, 머리가 하얗게 세면서 까지 기다릴
사람도 없으니"
"어떤 아이디를 쓰실 건데요?"
"글쎄요? 좋은거 있으면 전화해줘요"
"전화번호도 모르는데 혹시 명함있으면 주실래요"
내가 명함을 건네자 그녀가 내 명함을 받아서 핸드백에 넣고는 자신
의 명함을 건네면서 아무래도 어색한지 흐흐흐 하고 진짜 백발마녀처
럼 웃었다. 그녀가 집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돌아섰다. 백발마녀의
흰 머리카락이 온천지를 흩날리고 있었다. 어쩌면 늘 외롭다고 느끼면
서 살아가는 이 김갑봉이보다 백발마녀가 코딱지 만큼은 더 외로울 지
도 모른 다는 생각을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 막 잠을 청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그녀였다.
"지금 한 수 할래요?"
"좋죠 흐흐흐"
(끝)입니다 약간 섭하죠^^!!!!! 전 힘들었는뎅...
*그동안 애독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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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詩, 창작소설..
김갑봉전. 마지막회. 백발마녀전.
백발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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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1.07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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