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원시창작반 야외수업을 다녀와서
4월 18일 오전 10시 40분경 복정역을 출발한 9인승 승합차엔 1시간 이상 출발을 지연시킨 김 모 시인의 「죄송한 이유」가 흐르는 한편에서는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그에 상관없이 차는 송파IC를 들어서며 힘차게 내뻗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여린 봄빛은 지나가고 들뜬 시인들의 수다가 이어지는 가운데 맨 뒷자리 박 모 선생님의 전화벨이 울리고 10여분 정도 통화를 하는 가운데 '카드가 어떻고, 현재 은행잔고가 어떻고 운운...' 보이스피싱에 신상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주변의 만류로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한동안의 입방아에 오르며 즐거운 웃음을 날리는 가운데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 「화서 이항로선생 생가」에 도착하였다. 「화서기념관」은 월요일이 휴일인 관계로 관람을 못하고 기념관 앞에서와 古宅의 돌담앞에서 사진만 찍고 장삼현 교수님께서 기다리시는 별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화서기념관앞에서> 좌로부터 배상운 선생님, 최양숙 선생님, 김옥희 선생님, 최성옥 선생님,
문복희 교수님, 김귀례 선생님, 박형주 선생님

뒤로 보이는 고택이 화서 이항로 선생의 생가
구불구불 깊은 산길을 10분 정도 들어가니 반갑게 맞아주시는 장삼현 교수님과 그뒤로 아담하게 둘러쳐진 작은 봉우리들 그리고 맑은 개울, 풀냄새,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래소리, "너럭바위라고 부르지 말고 꼭 낙천대(樂天臺)라고 불러 달라"시는 장교수님의 당부를 들으며 바위주변을 돌아볼 때 진달래가 활짝 핀 우듬지 밑으로 나무 밑둥을 갖다 놓은 듯 포토존을 만들어 놓은 장 교수님의 섬세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꽃보다 예쁜 그녀 김옥희 선생님
별장에서 초코파이를 곁들여 차를 한 잔씩 하고 문복희 교수님의 詩碑를 찾아가니 장엄한 시비가 봄 햇살을 받으며 우리를 반긴다.

常村李女史華甲詩碑
청옥빛 맑은 常村 백학으로 날아와서
張門의 며느리로 부모공경 형제 우애
가정을 바르게 세워 女流의 君子되다
하얀 날개 깃을 접고 耳順을 지킨 세월
가슴에 묻은 눈물 모여서 강물 되니
뼈저린 자식 사랑에 하늘도 땅도 울다
靑松과 하나 되어 선을 쌓아 베푼 향기
강과 산이 고운 양평 해와 달도 감흥하니
거룩한 백학의 運氣 천년 이을 덕이어라
天命의 섭리 속에 걸어온 가시밭 길
부덕과 절조로서 다져온 높은 공덕
청사에 찬란히 빛나 만세에 이어지리
문복희 교수님이 이정숙 여사의 회갑에 즈음하여 축시를 써 드린 거란다.
남는 게 사진밖에 없으니 가는 곳마다 사진 한 장씩 찍고 발길을 돌릴 때 개울 건너 산 너머 10여분을 달린 후 '풍년목장가든'에서 점심을 먹는데 한 상에 반찬이 22가지씩 세 상을 받으니 반찬접시만 66개가 올라와 있다. 사진을 못 찍은 게 한이 된다. 詩心 좋고 人心 좋은 문복희 교수님의 점심턱으로 왕후장상 부럽지 않은 밥상 받아 점심을 먹고 나니 시간은 이미 두 시를 넘어 알차게 준비해 간 프로그램은 얼굴도 못 내밀고 돌아와야 했다.
이번 여행 중에 특기할 만한 두가지 일이 있었으니 하나는 허필란 선생님이 호주로 출국한 관계로 공석이 된 시창작반의 학생회장을 박형주 선생님으로 만장일치 통과시킨 것과 또 하나는 돌아오는 길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쓴다고 써 봤는데 이게 시라고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김옥희 선생님이 파일을 하나 주시길래 펼쳐 봤더니 시가 6편이나 들어 있는데 모든 시가 하나같이 그 분의 삶이 녹아내린 시편들이다. 이 시를 쓰기 위해 70년 가까이 그 가슴에 담아왔던 숱한 사연,(차를 마시며 뒤풀이 할 때 ‘이 좋은 경원대 시창작반, 이 좋은 사람들’을 만난 감격에 눈물짓던 김옥희 선생님의 일화는 아마 두고두고 전설로 남지 않을까...) 그 모든 희노애락이 그 분의 손끝을 통하여 시로 발표될 것을 믿는다.
여기에 6편 중 1편만 소개한다.
목련꽃
우아하게 왕관 쓰신
목련꽃 여왕님
눈부시게 아름다운
목련꽃 여왕님
가지마다 가지마다
장관을 이루고
새 봄
소식 전해주네
또한 참고가 될까하여 문복희 교수님이 회갑 축시를 써드린 분이 어떤 분인가를 알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신문기사 한 건을 올려본다.
<이달의 인물>
이정숙여사 양평문화원장 표창 받아
역경을 이겨내고 모범적인 삶을 보여
60평생 파란만장한 생애에서도 가정을 지켜온 이정숙(李貞淑) 여사가 지난 11월 23일 양평문화원 김유택(金裕澤) 원장으로부터 표창장과 부상을 받았다.
이번에 표창을 받은 이 여사는 1946년 5월 28일(음)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정배리 상촌에서 부친 가남(珂南) 이광학(李光學) 선생과 어머니 박순채(朴順采) 여사의 2男 4女 중 맏딸로 태어났다. 27세에 같은면 노문리 결성장씨 가문의 보헌(保軒) 장기덕(張基德) 선생의 3남 장삼현씨(현 경원대학 교수)와 결혼하여 34년을 동고동락했다. 장 교수는 수입초등학교 5학년 때에 이광학 선생이 담임을 맡았던 제자이기도 하다.
이날 시상식에는 양평문화원 류금렬(柳金烈)·문순철(文順喆)·조찬희(趙讚熙) 세 부원장과 경원대학 문복희(文福姬) 교수가 참석했다. 김유택 양평문화원장은 시상식 인사말에서 "이 여사님은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시부모님에 대한 효행이 지극하고 형제간 우애와 여성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에도 좌절하지 않고 부덕과 절조를 지켜 극복함으로써 그 품행이 사회에 귀감이 되어 표창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김 원장은 "우리 고장의 훌륭한 분을 진작 찾아서 표창했어야 했는데, 먼 곳에서 추천하여 알게 되어 부끄럽다."고 했다. 부원장들도 이에 공감하면서 윤리도덕이 빛을 보지 못하는 시기에 숨겨진 훌륭한 분을 찾아내어 표창하게 되어 기쁘고 고맙다고 했다.
이정숙 여사는 "별로 대단치도 않은 당연한 일로 표창을 받아 부끄럽다."고 답례인사를 했다. 이 여사의 표창을 추천한 양평문화원 향토사료 조사위원 문복희 교수는 "장 교수님과는 15년이나 한 직장에 근무하였는데, 과묵하시어 사정을 전혀 몰랐습니다. 3년 전에 대화 끝에 우연히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여사의 행적은 현대여성으로는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사회의 귀감이 되기에 그냥 무관심할 수 없어 표창을 추천하게 되었습니다."고 추천 동기를 밝히며 감사하다고 했다.
이정숙 여사는 가난한 농촌의 맏딸로 태어나 어머니의 집안일뿐만 아니라 남자들이 해야 할 아버지의 밖의 일도 도우면서 고생을 남달리 많이 하였다. 결혼 후에는 서울 답십리 달동네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비록 분가하여 살았지만, 연간 4차례나 10여기의 묘소에 차릴 제사어물을 장보아 나르고, 손수 포와 적을 정성껏 만들어 올리는 등 며느리의 몫을 다하기에 노력했다. 또한 가족 간의 화목을 도모하고 친정 동생 셋과 시동생 셋, 그리고 조카 등과 수십 년간 동거하면서 돌보았다. 그런 가운데 5남매를 탈 없이 잘 길러왔으며 지금까지도 장남 왕순(王淳) 군을 보살피느라 26년간 각골통한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고뇌와 슬픔과 갈등, 복잡하고 파란만장한 생활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굳세게 가정을 다스리고 인자하고 너그러운 마음씨를 가족이나 이웃에게 베풀어 주위의 칭찬이 자자하다. 그래서 이 여사는 1976년 2월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권영찬 원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은 바 있으며, 지난 5월에 정배초등학교 홍순교 기별 동문회장으로부터 '모범회원상'을 받았다.
한편 이 여사의 이런 아름다운 행실을 알게 된 시조생활 주간 최순향(崔順香), 한국여성교양학회 김정신 회장, 양평문화원 향토사료조사위원 문복희 교수, 재한 몽골학교 교감 이강애 선생 등 수십 명은 "뼈를 깎는 아픔과 피눈물 나는 시련을 극복하며 아름다운 삶의 모범을 보여 온 이 여사의 회갑은 의미있는 행사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이들은 이정숙 여사의 회갑이 되는 2006년 5월에 '상촌이여사화갑기념시비(常村李女史華甲記念詩碑)'를 건립해 회갑을 기념하는 한편, 그 행실을 세인이 귀감으로 삼도록 하고 기리기 위해 시조생활 최순향 주간을 건립위원장으로 추대해 시비(詩碑)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이정숙 여사의 가족은 부군 장삼현 교수와 슬하에 2남 3녀.
김미란 기자
문화경제신문 2006년 1월 2일 월요일 2면
첫댓글 생생하고 자세한 보고서...멋지고 훌륭합니다.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일행이 되지 못하여 죄스런 마음입니다.. 일 보는 내내 마음은 함께 떠났었는데 모르셨지요?^^
모두들 멋지십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딱 걸렸다.
희노애락----------->희로애락
보고서만도 대단한데, 2006년 문화경제신문을 어디서 구해오셨는지 정말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야외수업 간다고 했을때도 나도 가야하는지 망설이였는데.......
저같은 사람이 이렇게 훌률한 대열에......
꿈만 같아요 감사합나다
살에 멋을 창조하는 시우님들 .....! 참 멋진 순간을 아름답게 만드셨어요.즐거운 한 때 였구요.
다음 행사 땐 많은 선생님들 함께 하였스면 합니다.모두 행복 하세요.
잠시쉬어갑니다
아... 넘 잼나고 유익한 시간 이셨겠군요... 눈에 선합니다. 여기는 눈부신 햇빛과 자연이 죽여주는 나라 호주의 골드코스트 입니다. 항상 응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