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서
곽 준(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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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불완전한 행복과 완전한 행복
2. 완전한 행복을 찾는 길은 명상이다.
3. 완전한 행복의 원인은 관용, 자애, 지혜다.
4. 완전한 행복을 얻기 위한 실천은 보시. 지계, 수행이다.
5. 몸과 마음을 통찰하는 명상
행복을 찾아서
1. 불완전한 행복과 완전한 행복
누구나 행복을 원하지 불행을 원하지 않습니다. 예외적으로 불행을 선택하는 자학적인 사람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행복을 얻지 못해서 좌절을 한 뒤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런 마음의 기저에는 오히려 행복을 바라는 더 강한 욕구가 숨겨져 있습니다. 결국 행복하지 못해서 극단적인 불행을 선택한 것입니다.
인간은 행복을 원하면서도 불행하게 사는데, 이것은 과연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바로 이것이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입니다. 이 세상에는 세상의 질서가 있어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만일 내가 원하는 대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오히려 그 순간부터 행복에 취해 매우 빠르게 파멸을 맞이할 것입니다. 우리는 힘이 있는 자들이 힘을 남용해서 맞이하는 파멸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행복이 더욱 어려운 상황을 만들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 나의 행복은 남의 불행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나와 남이 더불어 누리는 행복은 행복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직 나만 누릴 수 있는 행복만이 행복이라고 알 수도 있습니다. 이런 마음에는 남의 불행이 오히려 나의 행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행복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인간이 불행하게 사는 것은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어서 불행해질 만한 일을 스스로 선택하여 행했기 때문에 불행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길을 모릅니다. 안다고 해도 살아온 습성이 불행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얻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욕심을 부리고, 계속해서 미워하고, 계속해서 다투기 때문에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사실 이렇게 살아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인류역사가 거듭되면서 이러한 삶의 방정식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습니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것은 이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기를 원하면서도 유감스럽게 행복에 대한 정의가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진정한 행복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혜가 없고,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지혜가 있으면 옳은 것을 옳다고 알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압니다. 하지만 어리석으면 옳은 것을 그르게 알고, 그른 것을 옳다고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리석으면 하는 일마다 거꾸로 합니다. 그래서 불행하고, 이런 불행 때문에 행복을 갈망하지만 정작 행복을 찾는 바른 길을 몰라 얻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행복은 매우 많겠지요. 그 중에 부귀영화를 가장 많이 바랄 것입니다. 그리고 무병장수도 행복을 결정짓는 조건입니다. 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영원히 변하지 않고 살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재산이 많고 높은 지위를 얻어서 세상에 이름을 빛내는 것만이 행복일까요? 과연 아무런 병이 없이 오래오래 사는 것만이 행복일까요? 사랑하는 사람과 알콩달콩 깨가 쏟아지게 사는 것만이 행복일까요?
네, 이것들이 행복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것들만으로는 완전한 행복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행복은 아무리 가져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런 행복은 완전한 행복이 아닙니다. 얻어도 만족할 수 없다면 이런 행복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얻은 행복에 만족할 수 없다면 오히려 자신이 가진 행복이 불행의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지 못해서 불행하다면 행복이 오히려 불행의 원인입니다. 이것은 행복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요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행복이냐가 중요합니다.
이런 행복은 이기적인 욕망에 속하기 때문에 얻을수록 갈증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이 갈증이 고통이 됩니다. 또 얻었다고 하더라도 사라질까봐 두렵습니다. 바로 이 두려움이 고통입니다. 그리고 가진 만큼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독선입니다. 그렇다면 이 행복은 이미 행복의 가치를 상실한 것입니다. 행복을 얻어도 더 얻기 위해 괴롭고, 얻어도 사라질까봐 괴롭다면 이것은 행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세상의 행복이기 때문에 이러한 행복을 세간의 행복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못 가져서 괴롭고, 가져도 만족하지 못해서 괴롭고, 가졌는데 사라질까봐 괴롭다면 행복과 불행은 항상 함께 있는 동전의 양면처럼 이중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양면의 구조를 가진 행복이 바로 이 세상의 행복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세간의 행복은 감각적 욕망에 의해 충족되는 감각적 쾌락입니다. 그러므로 세간에서는 행복하지 못한 것도 문제고, 행복한 것도 문제입니다. 이런 행복은 불완전한 행복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을 사는 우리가 가진 행복의 실상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사는 우리는 언제나 웃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울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처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혼돈 속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2013년에 묘원법사께서 원광대에서 강의한 행복과 명상학 자료입니다.
모든 자료를 공개해주시는 묘원법사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무주선원 도반님들께 일부 소개하고자 합니다.
묘원법사님이 말씀하시길
우리의 목표는 하나입니다.
우리 머리에 붙은 불과 가슴에 박힌 화살을 뽑는 일입니다.
우리의 머리는 온갖 잘못된 견해와 괴로움으로 항상 불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슴에는 온갖 괴로움의 화살을 맞고 항상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바로 지금 당장 머리에 붙은 불을 끄고,
가슴에 박힌 화살을 빨리 뽑는 것입니다. 이것이 명상입니다.
머리에 불붙고 가슴에 화살이 박힌 사람이 바로 요즘의 저입니다.
제 머리에 붙은 불과 가슴에 박힌 화살을 뽑기 위해 이 자료가 저에게 급히 왔나 봅니다.
제가 읽는 책이나 보는 글은 우연히, 저절로 옵니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신기한 일이기도 합니다.
요 며칠 극도로 힘든 나날을 보내던 중 묘원법사님의 <허공을 나는 새는...> 을 찾아 읽고 편집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정신을 차려가다가
이어서 이 원광대 강의자료를 접하게 되어 지금 공부하며 편집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도움이 많이 되는 글입니다.
가능한 만큼 연재해드리겠습니다.
달마의 불교공부방이 단 한분에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큰 기쁨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법사님의 법문이 불법에 철저히 뿌리를 두고 있군요...
나무아미타불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무한한 감사함을 느낍니다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_()_
불법을 전도하기 위해서 애쓰시는 dalma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