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연등국제선원 지도법사 일조 스님
강화의 연등국제선원(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길직리 85-1)은
한국불교에 귀의한 외국인 스님들이 모여 사는 특이한 곳이다.
지금은 대부분 다른 선방과 고향을 찾아 잠시 떠나
두 명만이 선원을 지키고 있지만 평소엔 10여명의 외국인 스님이
각자 소임을 맡아 절집 살림을 꾸리고 수행에 매진하는 이색공간.
이곳에 가면 외국인 템플스테이며 일반인 참선을 지도하느라
늘 상 분주하게 움직이는 눈 푸른 스님이 단연 눈에 띈다.
한국 불교계의 웬만한 스님들이 다 이름을 알 정도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인 러시아 출신 지도법사
일조(日照·34·본명 표트르 가브릴렌코) 스님.
한국에 출가한 외국인 스님 가운데
‘어렵다 못해 혹독하다.’는 서슬 퍼런 강원과 율원 과정을
가장 먼저 마치고 비구계를 받은 푸른 눈의 납자(衲子)이다.
◀일조스님
“한국불교를 제대로 배우자.”며 한국으로 출가해
이젠 여느 한국인 스님과 다를 바 없이
‘한국 스님’이 다 된 일조 스님. 그에게 한국은 배움의 땅이자
소신의 실천처이다.
일조 스님은 시베리아 철도의 지선이 통과하는 러시아 중남부 도시 케메로보에서
태어난 옛소련 출신.
직장을 옮기게 된 아버지를 따라 중앙아시아 북부
키르기스스탄으로 4살 때 이주해 살아
러시아와 키르기스스탄의 이중국적자 신원이다.
비록 국적은 한국이 아니지만 1998년 한국불교에 귀의한 뒤
9년간 줄곧 한국에 몸과 마음을 바쳐 살아온 자칭 타칭 ‘한국인’이다.
한국에 사는 뭇 외국인들처럼 일조 스님,
아니 표트르도 한국과는 참 인연이 깊은 사람이다.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 불제자의 길을 걷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까.
16살 때 우연히 읽은 한 권의 종교서적이 한국과 맺은 인연의 시작이다.
러시아인이 쓴 ‘무신론자’란 제목의 일종의 종교 사전이자 종교 비방서.
옛소련 종교를 탄압하던 시절 발간되어
기독교를 비롯해 불교, 도교, 유교 등 모든 종교를 짤막짤막하게
개괄한 책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스님은 책의 의도와는 달리
불교 부분을 읽고 ‘큰 발견’을 한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두 독실한 정교회 신자이며
자신 역시 정교회의 의식을 따라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침수세례를 받았다는 일조 스님.
그는 모두 다르게 태어나는 중생의 성격과 신분 차를 짓는
근본 원인이 몹시 궁금했다.
그런데 책 ‘무신론자’중 ‘과거 지은 업에 따라 태어난다.’는
구절에 마치 큰 숙제를 푼 것만 같아 말할 수 없이 기뻤단다.
세상의 어느 가르침과 교훈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나름의 답을 찾았다고나 할까.
일반인이라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이른바 윤회의 ‘업(業)’에 신경을 이었으니 분명 예사 사람은 아니다.
그 이후로 늘상 불교와 ‘업’을 머릿속에 넣고 살다가
일종의 예비대학을 졸업하고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 지역 군(軍)에 입대해 소위로 군 생활을 하던 중
결정적인 계기를 맞았다.
지역 신문에서 비슈케크에 한국 사찰 ‘보리사’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마치 오래 기다렸던 그 누군가를 만난 듯했다고 한다. 1992년의 일이다.
당시 보리사 개원식에 참석한 은사 원명(2003년 입적) 스님을 만난 것도 그때였다.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한 학력을 인정받아 장교로 근무한 때문에
병영생활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6년간 보리사를 다니며
일요일 법회에 꼬박꼬박 참석한 것은 물론 평일에도 가끔씩 찾아 법문을 듣고
절집 일도 돕고 참선을 이어갔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보리사는 고려인과 현지인 30명 정도가 법회에 참석할 만큼
보잘것없는 포교원. 불교를 제대로 알고 싶었지만 영 맘에 차지 않았다.
언어 소통도 그렇고 모든 것이 여의치 않았다.
조금이나마 한국불교에 더 다가가기 위해
비슈케크 인문대학에 입학해 아시아 역사와 한국어, 한문을 파고들었다.
“대학 3학년 1학기를 마쳤는데 한국의 원명 스님에게 연락이 왔어요.
머물 곳이 있으니 강화 연등선원으로 오라는 전갈이었지요.”
모든 것을 버린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연등선원으로 들어왔다.
1998년 연등국제선원이 막 개원했을 때의 일이다.
연등국제선원은 성철 스님의 상좌(제자)인 원명 스님이
서울 안국동에서 외국인 대상의 포교원격으로 운영하던
국제불교회관 개원 10주년을 기념해 세운 선원.
현 선원장 겸 주지 원유 스님은 원명 스님의 맏상좌이자
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한 한국인 스님이다.
“처음 연등선원에 왔을 때 체코 스님과 한국인 스님 한분을 빼곤
도무지 사람 구경을 할 수 없었어요. 정말 아무 것도 모른 채
무서울 만큼 갇힌 상태에서 행자생활을 했지요.
그러던 중 선원을 찾은 한 스님의 ‘공부 제대로 하려면
송광사로 가라.’는 말에 솔깃한 것이지요.”
행자생활 1년을 마치고 절집 살림을 꾸리는 원주 소임 1년째였다.
“한국 스님들과 몸을 부대끼며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란 생각에
송광사 강원으로 가기 위해 봇짐을 쌌다.
함께 수행하던 스님들이 “틀림없이 중도에 포기할 것”이라며
“못 견디면 언제든지 연등선원으로 돌아오라.”는 말과 함께 봇짐을 챙겨주었다고 한다.
강원 공부는 한국인 스님들도 절반가량이 도중에 포기할 만큼 어려운 과정.
일조 스님과 함께 공부를 시작한 한국인 동기 스님 37명 가운데 16명만 졸업을 했다고 한다.
이를 악물고 치문, 사집, 사교, 대교의 4년과정을 견뎌냈다.
한국어가 서툰 데다 생활방식도 다르고 선배들이 너무 무서워
눈칫밥을 먹고 잠 자는 것은 물론 숨쉬는 것도 수행의 연속이었다.
하루 다섯 시간 잠을 자지만 선배들에게 불려가
밤새도록 엄한 참회(일종의 단체기합)를 받거나 절을 하느라 꼬박 밤을 새운 날도 부지기수.
가장 낮은 과정인 치문 때는 화장실 청소며 밥짓기 같은 힘든 소임도 도맡아야 했다.
강원을 졸업한 2004년 마침내 원명 스님을 은사로 비구계를 받아 정식 스님이 됐지만
내쳐 송광사 율원에 들어 2년간의 힘든 과정을 마치고
‘제2의 고향’인 이곳 연등선원에서 뜻을 펴고 있다.
“나는 대수롭게 인터뷰할 사람이 못된다.”며
묵묵히 차를 따르던 스님이 은사 스님의 유언을 불쑥 꺼낸다.
“세상 만사 모두 헛되니 오직 수행에만 정진하라.”
한참 공부에 빠져 있던 송광사 강원 학승시절,
병중의 원명 스님이 마지막 대면에서 남긴 한마디는
거역할 수 없는 생활의 처음이자 끝이 되어 있는 듯했다.
“인생에서 마음공부를 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것만 해도 큰 행운인데
나는 큰 스승을 만났으니 선택받은 사람이 아닙니까.”
많은 불교 가운데 한국불교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불교는 원 속성을 잃은 채 명맥만 유지하고 있고
일본불교는 정통의 수행방식에서 비켜났지요.
티베트 불교가 밀교성격의 복잡한 의식에 치우쳤다면
남방의 소승불교는 보살사상이 빠졌습니다.”
오랜 공부 때문일까 스님의 입에선 온갖 불교의 속성들이 술술 풀어진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를 존중하는 ‘중생’개념과
내가 아닌 모든 중생을 돕기 위해 산다는 ‘보살사상’이야말로
대승 한국불교의 핵을 이루는 백미가 아니냐고 묻는다.
무릇 불가에 귀의한 모든 중생들의 귀착점은 ‘아누다라 삼먁삼보리’,
즉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일 터.
‘더 이상 갈 곳 없는 최고의 완벽한 깨달음의 경지’를 향한 수행이야말로
일조 스님에게도 예외없이 가장 큰 목표일 것이다. 그런 스님에게 지금 할 일이 너무 많다.
“‘보살행’의 큰 가르침을 오롯이 담은 한국불교의 제 가치를 만방에 알리는 것이야말로
나에게 주어진 큰 업(業)입니다.” 그래서 안거(案居)가 아닌 산철엔 틈날 때마다
러시아며 우크라이나 등지의 한국 사찰을 돌며 참선지도와 법회를 이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불교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틈틈이 전통의 한국불교 수업기관인 강원·율원 등의
교육시스템 안내 책자 짓기와 번역작업에도 매달린다.
“죽을 날을 생각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중생일수록
속된 것들과의 반연(攀緣·집착)을 버리지 못한다.”는 일조 스님.
“부처님이 되는 성불(成佛)은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모두 버려가는 과정인데
아직도 이렇게 버릴 것이 많으니 부처님 되기엔 아직 멀었다.”며
선원 문을 나서는 기자에게 두 손을 모았다.
■ 일조 스님은
●1973년 옛소련 케메로보 출생.
●1977년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로 이주.
●1992∼1997년 비슈케크 한국사찰 보리사 신도로 활동.
●1998년 한국행, 강화 연등국제선원서 출가.
●2000년부터 4년간 송광사 강원생활.
●2004년 원명 스님을 은사로 비구계 수지.
●2004년부터 2년간 송광사 율원생활.
●2006년 송광사 율원 졸업 및 러시아 등지 만행.
●현재 강화 연등국제선원서 선원장 원유 스님을 도와
내외국인 상대로 참선지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