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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브리서11 : 24-26 “믿음의 야성을 키우라”
1. 한 남자가 새를 잡으러 숲속에 갔다가 독수리 새끼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 독수리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닭과 오리가 사는 우리에 넣고 닭 모이를 주며 닭처럼
키웠습니다.
5년 후 독수리는 3미터나 되는 날개를 갖고도 여전히 닭 모이를 쪼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동물학자가 우연히 닭장 속에 있는 그 독수리를 발견했습니다.
동물학자는 독수리가 닭처럼 살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독수리를 다시 날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독수리를 잡아 높이 들어 던졌습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날지 않고 다른 닭이 있는 곳으로 뛰어내렸습니다.
지붕 위에 올라가서 시도를 해 보아도 독수리는 날기를 거부했습니다.
동물학자가 “너는 독수리이고 네가 있을 곳은 낮은 땅이 아니라 저 드높은 하늘이야,
그러니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 높이 날아 봐!”라고 격려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독수리의 마음속에 닭의 정신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수리는 자신이 독수리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독수리의 야성이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안되겠다고 생각한 동물학자는 독수리의 야성을 되찾아 주기 위해서 아침 일찍 독수리를
데리고 도시를 떠나 멀리 높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독수리로 하여금 막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게 하고 웅장한 대 자연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러자 독수리는 한 순간 몸을 부르르 떨더니 문득 날개를 활짝 펴고 독수리답게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하늘로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이 이야기는 <날고 싶지 않은 독수리> 란 동화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날고 싶지 않은 독수리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자라면 누구든지 한번쯤은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주님을 섬기며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앞을 향해 돌진하는 믿음의 야성을 불태울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부성교회에 처음 부임했을 때 많은 분들이 정말 열심히 주님을 섬겼습니다.
지금보다 살기가 더 힘들고 아이들도 아직 어리고 그런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는 일에
열심이었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 중에는 지금도 변함없이 믿음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들은 닭이 된 독수리처럼 그 믿음의 열정도 야성도 잃어버린 채 안일한 신앙생활에 빠진 분들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 모두 그 뜨거웠던 믿음의 열정을 회복하고 독수리가 창공을 향해 날개 치며 올라가듯 믿음의 야성을 키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무사 안일한 삶의 현장에서 탈출하여 믿음의 야성을 불태운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모세입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양자가 되어 궁궐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이집트의 왕자로서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역장에서 이집트 사람의 채찍에 맞으며 고통 받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모세의 핏속에 흐르는 유대인의 야성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인식했습니다.
“그래! 나는 이집트 사람이 아니야, 나는 본래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이야!
나는 여기서 이집트인으로 살아서는 안 돼! 나는 유대인으로 살아야 해!
내가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고난 받는 내 동족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해!”
자기 인식을 하게 된 모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는 현장으로 가서 자기 동족을 돕고자 했습니다.
그때 모세의 나이 40세였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내가 누구인지를 바로 인식해야 합니다.
나는 부활의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요,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무사 안일한 믿음 생활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믿음 생활에 매진하는 믿음의 야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때 모세처럼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3. 믿음의 야성을 키우고자 하는 성도에게는 세 가지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1) 첫째는 세상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살고자 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24절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믿음의 사람 모세는 바로의 공주 즉 세상의 아들이 되기를 거절했습니다.
유대인의 아들 즉 하나님의 아들로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이 결단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독수리일지라도 닭으로 살기로 결단하면 독수리가 아니라 닭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자신도 모르게 닭이 된 독수리처럼 세상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의 자녀로 살기를 거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속에 오염되지 말고 오히려 세상을 맑게 하고 정화시키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고,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보다 가치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수 이상우씨가 모교인 부산 동고를 방문하여 후배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커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분명한 삶의 가치관이 없었다.
그런데 강변가요제에서 상을 받고 연예인 생활을 시작하여 5년간 톱 가수로 인기를 누리게 되었는데
그것이 인생의 성공인 줄 알았다.
친구들에게 항상 밥을 사주었다. 그런데 친구들이 나를 싫어했다.
그 이유를 친한 선배한테 들었는데, 밥 사주면서 과시한다고 했다.
그제야 나의 오만함을 깨달았다.
결혼을 하고 아들이 태어났는데, 5개월이 되었을 때 아이가 이상해서 대학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는데
발달장애라는 것이었다.
인간극장에서 보았겠지만 그 의사의 말을 듣고 돌아오는 40분간 차에서 계속 눈물을 흘렸다.
눈물샘이 터진 것처럼 어디서 그렇게 많은 눈물이 흘러나오는지 몰랐다.
그때서야 ‘나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라고 깨달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자신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린 아들이 나에게 귀중한 깨우침을 준 것이다.
남을 돕고 사는 것이 내 인생의 가치관이다.
너희들도 가치 있는 삶을 살기 바란다.)
누구나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하겠지만 특히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세상의 빛이 되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요,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세상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2) 둘째는 안일한 삶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고난 받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24-25절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공주의 아들로 있으면 그는 궁궐에서 얼마든지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공주의 아들이기를 거절했습니다.
궁궐에서 누릴 수 있는 평안하고 풍요로운 안일한 삶을 거절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평안하고 안일한 삶을 거절하지 않는 한 야성을 길러질 수 없습니다.
야성은 안일한 생활을 거절하고 모세처럼 광야로 나아갈 때 길러지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바로의 궁궐에서 편안한 삶을 누리는 것을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고난 받아야 할 때는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게으른 것은 곧 악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고 게으름을 피운 종에게 어떤 불호령이 떨어졌습니까?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모세는 바로의 궁궐에서 하나님의 일을 외면하고 죄악의 낙을 누리기보다는 그 자리에서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 동족과 함께 고난 받기를 각오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나 자신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에 헌신하며
고난 받기를 기뻐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셋째는 세상의 보화보다 주님을 위해 받는 고난을 더 가치 있게 여겨야 합니다.
26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자신이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기를 거절하고, 그리스도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신의 동족을
구하는 일을 하고자 할 때, 자신이 어떤 수모를 당하게 될 것인지를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님을 위해 당하는 고난을 이집트에 있는 모든 보화보다 더 가치 있게 여겼습니다.
참으로 오늘의 세상을 보면, 돈 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돈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살아갑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돈보다 가치 있는 일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요, 돈 보다 가치 있는 일이 의를 위해 고난 당 하는 일이며,
돈 보다 가치 있는 일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며, 돈 보다 가치 있는 일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땀 흘리며 봉사하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온통 돈에 마음을 빼앗기고, 돈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돈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돈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은 단지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해야 합니다.
단지 의식주를 위해 돈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주님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우리 모두 모세처럼 세상의 보화보다 주님을 위해 수고하며 고난당하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기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4. 지금 세상은 온통 신종 플루 때문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왜 사람들은 신종 바이러스 때문에 병들고 죽어가는 것일까요?
그것은 인간 스스로 만든 공해를 먹고 마시고 그 결과 면역력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홍삼과 같은 면역력을 높이는 식품들을 먹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면역력을 높여야 합니다.
어떤 고난도 역경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야성을 길러야 합니다.
고난과 역경은 믿음의 야성을 키우는 훈련장입니다. 고난과 역경 중에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믿음의 야성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야성을 기르기 위해 광야로 나아갔고, 어떤 사람은 타의의 의해 야성의 광야로
끌려 나갔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질투와 증오심 때문에 타의의 의해 이집트에 종으로 팔려갔지만 거기서 그는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으로 믿음의 야성을 키웠고 마침내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한편 갈렙은 가나안 정복전쟁시대에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하며 그의 믿음의 야성을
나타내어 마침내 미정복지였던 헤브론 땅을 정복하여 그 땅을 차지했습니다.
세례요한도 제사장의 아들로서 누릴 안일한 삶을 포기하고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믿음의
야성을 키우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위대한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집트 궁궐의 부귀와 평안한 삶을 버리고 믿음의 야성을 불태운 모세는
“주님께서 주실 상을 바라보며”세상의 낙을 포기하고 주님을 위해 당하는 고난을 이집트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 받는 일을 선택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야인생활을 하며 믿음의 야성을 키웠습니다.
그의 믿음의 야성이 키워지자 하나님은 호렙산 불꽃 가운데서 그를 부르시고 그의 백성들을
바로의 압제로부터 구원하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세상의 안락과 주님을 위해 수고하는 것 중에 어느 것에 더 가치를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한때 주님을 위해 불태웠던 그 믿음의 열정과 어떤 어려움도 넉넉한 믿음으로 이겨내었던
그 믿음의 야성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이제 다시금 열심을 내어 어떤 고난도 역경도 능히 극복하고 꿈을 이루는 믿음의 야성에
다시금 불을 지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