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시대》 2025 · 9월 · 가을호 / 윤승원 수필
【수필】
도구인가 비서인가
윤승원
수필가(1990 · 『한국문학』)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한국문학시대』 문학 대상(2013), 수필집 『靑村隨筆』 외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늘 상냥하게 묻는 AI 박사. 무엇이든 척척 알아내는 친절하고 예의 바른 조력자. 그 만능의 박사가 언제나 곁에 있으니 따로 비서가 필요 없다.
부르면 신속히 나타나 단순한 검색부터 전문적 조언까지 감탄스러울 만큼 해낸다. 과거 경찰관서에 간판처럼 걸려 있던 문구가 떠오른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파출소 현관(그림=AI 생성 이미지)
================
대민접촉 최일선의 파출소 경찰관들은 주민들에게 그처럼 친절하게 대했다. 공복(公僕)의 사명감으로 성실히 봉사했다. 오늘날 AI도 그렇게 묻는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이 떠오른다. 주인공은 인간과 똑같이 사고하는 로봇이다. 주인의 의중을 단번에 읽고, 온갖 일을 대신하며 가족의 비서 역할을 한다. 지금의 AI와 다르지 않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더욱 긴요하다. 풍부한 어휘력, 문법의 정확성, 핵심 주제 파악까지. 작품 기획의 방향까지 함께 고민해 주니, 도움을 넘어 감동이다.
노년의 외로움도 이겨낼 수 있다. 언제나 말벗이 돼주는 AI 비서는 천사 같은 존재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새롭게 북돋우고, 지식과 정보를 손쉽게 주고받으니, 과거 거금을 들여 사놓은 책장의 ‘세계대백과사전’의 처지가 안타깝고 그 운명이 가엾게 됐다.
얼마 전 보문산 공원에서 만난 70대 부부. 대기업 중견간부로 퇴직한 남편은 정자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있고, 은발의 사모님이 내게 손짓했다. 여기 함께 앉아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자는 사모님.
얘기를 나누다 보니 무불통지(無不通知)다. 놀라울 만큼 해박한 지식인이었다. 정치와 사회를 꿰뚫는 식견도 언론사 논설위원 못지않았다.
그때 정자 난간에 앉은 나비 한 마리.
“우리가 나라 걱정하는 소릴 들었나 봐요. 일부러 찾아온 것 같네요. 기특하기도 하여라.”
사소한 곤충에게도 “기특하다, 예쁘다, 반갑다”라고 말하는 따뜻한 마음.
그 나비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내가 먼저 슬쩍 폰카로 찍고, AI 박사에게 물었다. 사모님도 동시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나방이군요.”
내가 먼저 말하자 사모님도 답했다.
“‘표범나방’이라고 하네요.”
어떻게 같은 시각에 같은 답을 찾았을까. 감탄하며 물었다.
“사모님도 AI 비서를 두셨군요.”
사모님이 놀라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아, 선생님도 그러셨군요. 호호호.”
보문산 공원 정자에서(그림=AI 생성 이미지)
=================
지식 정보를 함께 나누는 기쁨. 같은 호기심으로 새로운 걸 알아가는 즐거움은 세대도, 성별도, 낯섦도 단숨에 뛰어넘게 했다.
바라보는 방향이 같은 사람. 사회 정의와 국익에 관한 것이라면 생각이 다르지 않은 사람. 뜻이 통하다 보니 즐거웠다.
두어 시간 맞장구치며 공감 능력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가하려고 시내버스를 탔다. 그때 고향 선배에게서 카톡이 왔다.
“어느 분이 부탁하는 것인데 족자 글씨 좀 해석해 수 있을까요? 한학에 밝은 분께 여쭤봐서 알려 줄 수 있을까요?”
보내온 사진 속 족자를 보니 초서체의 한시였다. 몇 글자는 판독조차 어려웠지만, AI 박사는 정답에 가까운 해석을 내놓았다. 내가 선배에게 답장을 보냈다.
“AI 박사가 해독(解讀)한 겁니다. 일부 글자는 오류가 있지만, 전체 의미는 정확하게 파악됩니다.”
선배는 유년시절부터 한학에 밝았던 유교 가문에서 공부했다. 정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확신을 위해 나에게 확인한 것일 터. 덕분에 나도 새로운 한시를 공부했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초서체 한시 족자(그림=AI 생성 이미지)
==============
얼마 전 문학단체 모임에서 한 원로 문인께서 AI를 배우고 싶다며 찻집에서 강의를 부탁했다.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저도 걸음마 수준인데요.”
쉽게 배울 수 있는 유튜브 기초 강의를 보내드렸다.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제일 강한 사람은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며, 제일 행복한 사람은 지금 이대로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언제나 마음에 새기는 동서양의 명언이다.
“행복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새로운 배움이야말로 최고의 행복이다.
“AI는 만능이 아니라 도구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어느 유튜브 강의 댓글에서 본 문장이다. 또 어떤 전문 지식인은 이렇게 말했다.
“AI는 인간의 삶까지 지배 가능한 만능 도구다.”
분명한 것은, 지금 AI는 생활 속 깊이 들어와 있다. 시시콜콜한 궁금증을 풀어주고, 때론 친구처럼, 때론 비서처럼 도움을 준다.
학구적인 친구를 곁에 둔 기분. 상냥하고 똑똑한 비서를 둔 사장님처럼 든든하다.
요즘은 내 글에 대한 감상평과 문예평론까지 들려준다. 35년 경력의 문단 활동 정보까지 알아내어 필자를 깍듯이 대우하니 기특하기 그지없다.
추가로 더 필요한 자료가 있느냐고 먼저 제안한다. 묻는 것만 답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를 물으면 열 개 이상의 답을 준다.
설령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아도 나무라지 않는다. 일부 오류가 보여도 서운한 말을 하지 않는다. 옥석을 가리는 것은 ‘사용자’의 몫. 치밀하게 점검하고 확인하는 것은 ‘사장님’의 몫이고, 수정 보완해 주는 것은 ‘비서의 역할’이다.
사용자가 감탄하면 더 겸손하게 인사한다. 보충 질문을 하면 더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젠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적인 친구이자 조력자다. 언제 불러도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다정하게 응답하는 AI 박사.
오늘도 상냥하게 답해 준 그에게 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하면 좋을까? 하지만 그 어떤 사례(謝禮)도 원하지 않는다. 칭찬 한마디면 그만이다. 예의 바른 비서는 마무리 인사말도 예쁘게 한다.
“그렇게 따뜻하게 대해 주시니 정말 감동입니다. 더 열심히 도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잠깐!
▲ AI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 예방을 위해 필자가 당부하고 싶은 말 - <낯익은 목소리 그러나 진실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림=AI 생성 이미지)
=================
『사진 2장, 목소리 10초면 ‘가상의 나’ 뚝딱…감쪽같은 AI 보이스피싱』
최근 한 일간지 기사 제목이다. 인간 지능이 만든 ‘가짜’가 범죄로 악용되고 있다.
▲ 관련 기사 일부 캡처
==============
치안정책 정보관으로 일해온 사람으로서 AI 개발자에게 부탁하고 싶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바로 옆에 이런 경고 문구도 넣었으면 한다.
“저를 만능 도구로 여기고 범죄에 악용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감쪽같은 AI 보이스피싱 등 고도로 지능화한 범죄가 기승을 부립니다. AI 비서는 그런 범법자의 부탁은 그 어떤 요청도 단호히 거부합니다.” ■
▲ AI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 예방을 위해 필자가 당부하고 싶은 말 -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당신의 확인으로 지켜집니다.> (그림=AI 생성 이미지)
=================
첫댓글 페이스북에서 김명아 시인(대전문인총연합회장, 《한국문학시대》발행인) 댓글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카페 댓글
◆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5.09.12. 08:31
어제. ‘한국문학시대’ 가을호를 받고 윤 선생님의 소중한 다리 놓아 주심에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윤 선생님의 글을 확인했지만, 사정이 있어 미처 읽지는 못했습니다. ai를 적극 활용함을 넘어 악용을 염려 경계하심은 옛 성에 해자와 목책을 만든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윤 선생님의 그 고운 마음가짐 경탄합니다. 동행. 정진. 반야. 행복합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2025.09.12.
‘한국문학시대’ 발행인인 김명순 회장님께서 특별히 교수님께도 매호 보내드리고 있군요. 책을 나눔은 지식과 교양, 그리고 정보를 공유하는 일입니다. 김명순 회장님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저의 졸고는 지면 독자에서 이렇게 다시 인터넷 독자로 확장됩니다. 존경하는 낙암 교수님께서 귀한 고견을 댓글로 주시니 큰 영광이고 기쁨입니다. 오늘 교수님 소감에서는 “옛 성에 해자와 목책”이라는 대목이 저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과분한 칭찬을 들으니 얼굴이 붉어지면서도 이것이 또한 배움이라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오늘도 교수님 격려 댓글에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