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
김윤선
세상사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늘 앞을 가로 막는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코로나19가 온 세상을 가로막고 있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쉼 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우리 몸의 간은 하루에 1,200종의 효소를 생산하고 500가지 일을 하며 혈액은 하루 300번 간을 통과하며 신장은 매 시간 혈액을 두 번 거른다고 한다. 신장 두 개가 180L의 혈액을 거르는 엄청난 일을 한다는 것이다.
삶에 버거운 짐을 지고 끙끙 앓고 있을지언정 내 몸을 지탱해 주는 각 장기와 세포들이 쉼 없는 일을 하는데 어려운 일이라고 피할 수 없다. 자기에게 주어진 책무를 뇌세포가 운전하는 곳으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이룰 수 있다.
민들레 홀씨는 바람이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온 세상에 씨앗을 퍼트린다. 거대한 용기로 더 넓은 이랑을 마련하여 자신의 터전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민들레 홀씨처럼 열정으로 살아간다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
하루의 행복은 새벽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른 새벽 눈을 뜨면 몸 흔들기, 발치기, 손발 흔들기, 이쪽저쪽 허리 돌리기, 약 열 가지 이상 운동으로 밤새 쉬었던 근육을 풀어준다. 그리고 세면장에서 입과 얼굴을 씻고 물 한 컵을 마시며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 형색이 바보 같다. 가끔 흰 머리카락도 생기고 연 밤색 버섯이 언제 자리에 앉았는지 제 집인 양 양쪽 귓가며 눈언저리에 떡 버티고 앉아있고 눈 밑 입 주변 잔잔한 줄무늬가 영락없는 노파다. 그래도 걸을 수 있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기쁨도 줄 수 있으니 오늘도 좋은 아침, 싱긋 웃으며 감사의 손을 모은다.
나는 엄마 몸에서 잉태할 때부터 가난의 업 덩어리가 붙어있었다. 자라면서도 소녀가장이 되어 상자에 담겨진 물건처럼 살아왔다. 결혼하여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고 싶었으나 내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더 힘든 삶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아들 넷을 낳고 국제시장에서 서울 남대문 동대문 평화 시장까지 백 집도 넘는 상점의 거래처들과 상거래를 하며 쉼 없이 살아왔다.
온 세상이 잠든 밤 전쟁터 같은 인간 시장에서 살기 위해 뛰고 또 뛰었다. 삶의 밑바닥에서 그 많은 사람들과 치열하게 발통을 굴러온 지 40년 지나고 보니 언제 인생 팔부 능선에 서 있다.
밤도 낮도 모르고 감정의 노동과 육체적 현장에서 끊임없이 세상을 갈고 체험하며 그늘 속을 배회하며 정신적 고뇌에 싸여 살아왔다.
오랜 나의 기도로 주경야독 공부를 시작하여 내 생에 제일 아름답고 성숙했던 학창시절 약 25년의 사계절은 꿈같은 역사였다.
육십 대 시들어 가는 노구를 청순한 여대생으로 바꾸어 놓았다.
또래 주변 사람들은 눈만 뜨면 아픔을 호소하며 병원에 출석하는 시간, 나는 철없는 여학생이 되어 학교 캠퍼스를 뛰어다녔다.
40대부터 시작한 검정고시는 변화하는 사계절 자연의 동화 속에 싸여 수많은 젊은 학생과 캠퍼스 울안에서 함께 호흡하며 나이를 잊고 공부를 했다.
낮에는 아들 넷과 양가 부모님을 비롯 많은 가족들의 수레를 끌며 나의 의무를 마치고 저녁노을이 물들면 교문에 들어선다.
가끔 씩 점심시간 또는 저녁, 식당 앞에 줄을 서 있는 학생들 틈에 끼어 식사를 할 때 행복해 진다. 나 자신도 당당히 대학교 매점 문방구를 드나들며 노트와 필기도구를 사고 나의 인문학 전공 국문학과 고전 어학, 외국인들의 언어학과 문학, 논문, 역사공부를 해 왔다.
봄이면 학교 입구에 늘어선 벚꽃 터널 속에 개나리가 줄지어 나를 반기며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교정에 들어서면 돌담 사이사이 철쭉꽃이 얼굴을 내밀며 유치원 아이들의 앙증스러운 모습처럼 동심에 때 묻지 않은 해맑은 눈동자와 고사리손 같은 희열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젊음이 넘치는 학우들 대열에서 지성과 고귀함에 나 자신 스스로 충만한 사랑을 느꼈다.
평화로운 숲속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소리, 붉게 물든 단풍과 웃음, 눈물과 이별의 쓸쓸했던 순간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숲길 속으로 걸으며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내 영혼을 맑게 씻어주던 순간이었다. 가슴을 확 틔워주는 순백의 자연에 매료되어 무한정 학교 뒤 산길을 혼자 오르곤 했다.
시간을 쪼개서 뛰어다니며 몸속에 잠재해 있던 배움의 주머니를 열어 알알이 맺어놓은 언어의 씨앗들을 차곡차곡 담아 간다.
교수님의 강의는 내 몸속의 자양분으로 영혼의 쾌감이 울울 청청 향기로 스며든다.
깊은 숲속 계곡의 물줄기가 실핏줄을 타고 이어져 끝없는 넓은 세계로 흘러내린다. 학교 도서관 창문 너머 둘러싼 숲속을 바라보며 거대한 역사에 파묻혀 창의력을 창출해 가던 순간 내 인생 황홀한 시간이었다.
상상 속에 염원했던 학창시절은 살아있는 나의 역사로 영원히 남아 있다.
첫댓글 실상문학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