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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잔을
김 동 인
1
그것은 의미 깊은 만찬이었다. 차차 절박해오는 사정은 다시 그로 하여금 제자들과 만찬을 함께할 기회를 주지 않올 것 같았다. 때때로 이르는 믿는 자들의 알림으로 말미암아, 그는 예루살렘의 모든 제사장이 지사(知事) 폰티우스 필라투스(Pontior Piltos, ?∼?) :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 때의 사마리아·이도메아·유대의 제5대 총독(재임 26∼36) 빌라도의 라틴식 이름. 성격이 잔인해서 유대 인들을 탄압하였다. 예수가 유대인들의 고소로 그에게 잡혀오자, 예수의 무죄를 인정하면서도 민중의 강요에 굴복해 예수 대신에 강도 바라바를 석방하고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에게 참소를 하고, 각색 힘을 다하여 그를 잡으려는 것을 알았다. 이스카리엇 유다(Iscriot Juda, ?∼30경) : 예수의 12사도 가운데 한 사람으로 예수를 배반한 사람. ‘이스카리엇(Iscariot' 은 성(姓)을 가리킨다기보다는 라틴어 ‘시카리우스sicarius(살인자·암살차)’ 의 변형태일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그의 열두 문도(門徒)의 하나인)는 벌써 제사장에게 매수된 것도 알았다. 이틀 있으면 이를 유월절(逾越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날을 기념하는 유대교의 축제일. 하늘의 천사가 밤중에 이집트의 각 집의 맏아들을 죽일 때,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 에는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기 때문에 그대로 지나가서 재앙을 받지 않은 일을 기념한 데서 유래한다.) 전으로 그를 꼭 죽이려고 계획한 그것도 알았다. 오늘 이내로 가버나움(Capemaum : 이스라dpf 갈릴리 호수 북서부 연안에 있는 고대 도시. 예수의 제2의 고향으로, 그는 이곳에서 이 지역 출신인 베드로·안드레아·마태오를 제자로 삼고 많은 기적을 일으켰다(⇒ㅏ페르나읍).)이나 막달라5)로 달아나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손에 잡혀서 죽든지…… 다시 말하자면, 그가 아직 모든 괴로움을 뚫고 해오던 일을 성공 미만에 허물어버리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든지, 이것이 그의 앞에 막힌 운명이다. 전자를 취하자면 그의 아직껏 쌓아온 인격과·명성이 무너질 것이다. 후자를 취하자면 십자가 위에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될 터이다.
만찬 뒤에 취미(醉味) 좋은 포도주에 녹아서, 베드로에게 머리를 찧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예수는, 저편에서 쾅쾅거리며 뛰어오는 발소리에 후닥닥 일어나 앉았다.
“선생님, 제, 제사장들이, 횃불과 몽치(짤막하고 단단한 몽둥이. 주로 사람이나 동물을 떼리는 데에 쓰며, 예전에는 무기로도 썼다.)들을 가지고…….”
“음? 개와 같이 빨리 찾아내는 자들이로군.”
예수는 고요히 말하였다.
“베드로?”
“왜 그러십니까?”
“감람산으로, 겟세마네 동산으로. 나두 그리로 갈게. 빨리!”
이 말을 좀 숨이 차게 한 그는, 가만히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날은 저물었지만 아직껏 회색 기운이 남은 빛으로, 제사 준비로 길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올 보고, 마음을 놓고, 케드론(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시내) 시내로 향하여 이삼십 보 갈 때에 길모퉁이에서 갑자기 횃불을 든 사람이 하나 나타났다. 옷으로 보아서 그것은 제사장이었다. 예수는 빨리 몸을 담장에 붙여 섰지만, 그것은 결코 영리한 행동이 아니었다. 제사장은 횃불을 던지고, 몸을 숨기는 사람에게로 달려왔다. 예수는 훌쩍 몸을 피하여, 케드론과는 반대쪽으로 달아났다. 두세 사람의 발소리가 그 뒤를 따르는 것을 들었다.
그도 이때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의 머리에는 도망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힘을 다하여 달아났다. 이 모퉁이 길로 빠지고, 저 샛길로 빠지며, 담장을 넘고 지붕을 넘어서 달아나 이만하면 되었으리라 하고 정신을 가다듬으면, 제사장물의 발소리는 여전히 이삼십 보 뒤에서 그를 따랐다. 감람산으로 가는 다만 하나의 길인 케드론 시내의 다리에도 횃불 잡은 사람들이 지켰다. 그러니까 그리로는 갈 수 없었다.
예루살렘 성내를 몇 바퀴 돌았다. 저녁 먹은 지 오래지 않은 그는 숨이 탁탁 막혔다. 그의 몸은 솜과 같이 피곤하였다. 다리도 몽치와 같이 말을 안 듣게 되었다. 그의 걸음은 차차 완보(緩步)가 되었다. 그러나 제사장들도 피곤하게 되었는지, 역시 이삼십 보를 두고 완보로 그를 따랐다. 쿵쿵쿵쿵 완보로 달아나는 한 사람을 역시 완보로 몇 사람이 따랐다.
언제 그칠지 모르는 띔뛰기를, 그는 어두운 길을 그냥 뛰었다. 그는, 다만 다섯 초 동안이라도 잠을 자고 싶었다. 그는 눈을 감고 더벅더벅 걸었다. 이때에 만약, 그로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잠이 들었으면, 제사장들도 이삼십 보 뒤에 꺼꾸러져서 잠잤을지도 모르겠다.
제사장의 던진 돌 하나가 힘없이 도망하는 예수의 소매에 맞고 떨어졌다.
돌! 그의 파랗게 된 얼굴에는, 놀람과 무서움이 떠올랐다.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하여 뛰었다.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꿈의 일과 같이, 그는 또 달아났다.
한참 뛰었다. 그리고 정신을 먹고 들으니 제사장들의 발소리는 없어졌다. 이리하여 마음을 놓은 때는, 그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힘이 없어졌다. 그는 담장에 둥을 기대고 누웠다.
그러나 제자들은 감람산에서 그를 기다린다. 그는 거기 가지 않으면 안 될 테다. 담장을 기대고 잠깐 쉰 뒤에, 죽게 피곤한 그는 다시 담장을 붙들고, 머리를 늘이고, 반쯤 자면서, 케드론 시내로 예루살렘 성문으로 향하였다.
2
겨우 다리에서 한 1리 상류 케드론에 변(邊)한 성문 밖에 이른 그는 다리에 아직 횃불이 보이는 것을 보고 절망하였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걱정하는 제자들을 생각할 때에, 그는 물을 건너기로 결심하였다. 좁고 얕은 케드론을, 한 여남은 간이나 흘러내려가면서 겨우 건너편 언덕에 기어오른 그는 곧 눈앞에 보이는 감람산으로 한 걸음 가서는 쓰러지고, 두 결음 가서는 넘어지면서 갔다. 그리하여 감람산 밑에 이른 때에, 그의 앞에 어둠 가운데서 뜻하지 않은 사람이 하나 우뚝 나타났다.
“누구냐?”
예수는 곤하고 떨리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이시오니까?”
역시 곤한 소리로 그 어둠의 사람은 반문하였다.
“유다냐?”
“베드로올습니다, 선생님.”
“야곱은? 요한은? 다 어데 있느냐?”
“다 여기 왔습니다, 선생님. 곤해서 자는 모양이외다.”
“자? 유다는, 이스카리엇?”
“안 왔습니다.”
베드로는 말하였다.
“제사장한테 갔는지, 그놈.”
예수는 안심하고 거기 있는 바위에 쓰러져 앉았다. 넘어져 있던 제자들도 일어나서 그의 앞에 둘러앉았다.
“다리가 몽치같이 뻣뻣해지구, 발은 성한 데 없이 찢어졌다.”
그는 혼잣말같이 중얼거렸다.
“좀 주무시지요. 우리 옷 펴드릴까요?”
안드레가 말했다.
“자? 잘 때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자더라도 너희는 자서는 안 된다. 모든 괴로움을 무릅쓰고라도, 깊이깊이 잠든 사람들을 깨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너희의 직책이다.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앞에 놓여 있는 부러진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쓰러지려는 몸을 다시 일으켜서 겟세마네 동산으로 향하였다. 제자들도 그의 뒤를 쫓았다.
겟세마네에 이르러서, 예수는 곤하고 무거운 몸으로 또다시 바위에 걸터앉았다. 베드로가 그에게 가까이 이르렀다.
“선생님, 우리는 이제 어찌하여야 할까요?” :
“너희?”
예수는 무거운 눈가죽을 붙였다.
“너희는 갈릴리로 가라. 갈릴리 바다, 가버나움 모래 해변에. 너희는 알지, 천국과 같이 맑고 정한 그 모래밭을……. 가버나움 뒷산에서 굴러내려오는, 어린애 입술같이 새빨갛게 벌어진 무화과가 구르는 곳……. 나는 거기서 너희들과 다시 만나리다.”
“선생님, 갈릴리로 가시려면 함께 가시지 왜 따로 가시렵니까? 우리를 버리시렵니까? 선생님밖에는 의지할 사람이 없는 우리인 줄 모르십니까?”
“그러나, 내가 환란을 만나면, 너희가 먼저 나를 버리리라.”
“선생님, 딴 말씀……. 산이 무너질지언정, 예루살렘의 거리가 벌판이 될지언정, 그런 일은 없으리라구 제가 장담하겠습니다.”
“사람이 되어서는 이제 올 일을 단언할 수는 없다. 그저 지내봐야…….”
“그럼 선생님께서는 언제 갈릴리로 떠나시렵니까?”
“나? 글쎄, 언제나 떠나게 될지.”
그는 눈을 겨우 떴다.
“혹은 영구히 갈릴리로 못 가고 말지도 모르겠다.”
예수는 한숨을 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고민의 정이 떠올랐다. 물에 젖어 차게 된 옷을 입은 그도, 이마에는 땀이 배었다.
“선생님, 그 말씀의 뜻은?”
예수는 대답 없이 다시 지팡이를 의지하고 일어섰다.
“베드로, 깨어 있거라. 자면 안 된다. 유다가 오면 내게 알게 해야 한다. 나는 저기서 기도를 드려야겠다.”
“그것은 걱정 마셔요. 제게는 환도가 있습니다.”
“환도?”
그는 한숨을 쉬고 발을 옮겼다.
밤의 고요함을 찬송하던 벌레들이 그의 발소리에 놀라 노래를 감추었다.
3
어두운 길을 더듬어서, 그는 그가 이전 한때 교도들에게 도(道)를 강(講)하던 바위를 찾아가서 앉았다.
지나간 일, 특별히 이즈음 3년(그가 도를 강하느라고 방황한) 동안의 일이 주마등 같이 그의 피곤한 머리에 지나갔다. 모든 것은 꿈이었다.
그는 옛적 수도자들을 본받아서, 40일 동안을 광야에서 도를 닦았다. 음식을 끊고 눈을 감고 단좌하여, 온갖 힘과 정신을 단전에 모으고 있을 때에 처음 사나흘 동안은 몹시도 괴롭고 배고프고 졸음이 왔으나, 그 기간을 지나서는, 그의 전령(全姃)은 묘경(妙境)에 들었다. 옅흘째 되는 날, 그의 온몸은 몹시 떨렸다. 밤중에 시작된 떨림은, 새벽 동틀 때에야 겨우 그쳤다. 옛적 도사들과 같이 자기도 인제는 능히 각 병을 고칠 수 있으며, 예언을 할 수 있다고 깨달은 것이 이때이다.
그의 장래는 목수로 그냥 있을 것이 아니었다. 그럼 자기의 기적과 지식과 두뇌로써는 획득하기 아주 쉬운 권위 있는 왕자(王者)이냐, 혹은 도덕이 쇠멸된 이 사회를 한번 착하고 아름다운 사회로 뒤집을 개혁자이냐, 주지하다가, 아주 그로서는 잡기 쉬운 왕자의 권위를 내던지고, 곤란과 박해를 무릅쓰고 구세자라는 이름 아래서 지금 이 길로 나오게 대오(大悟)한 것은 그때이다.
세례 주는 요한과, 요단강 가에서 먼저 간 수도자들을 느낄 때, 처음 전도를 떠나서 제자를 얻을 때, 무화과 무르익은 뫼에서 무리를 가르칠 때, 혹은 성전을 더럽히는 무리를 가죽 채찍으로 내쫓을 때, 또는 뱀보다도 간사하고, 뱀보다도 영리하고, 뱀보다도 지혜 있는 바리새인이나 사두개 교인들의 연곡(蜒曲:비뚤어짐)한 물음을 설파할 때, 젊고 용감하고 경건한 그 마음은 바람으로 뛰놀았다.
더욱이 몇 천 명의 문도를 모아놓고 강도(講道)를 할 때나, 혹은 제자들을 전도하러 각 곳에 파견할 때에는 그의 모든 바람은 거반 이룬 것같이까지 생 각되었다.
애인 막달라 마리아와 밟기 좋은 물에 젖은 모래 위를, 갈릴리의 해변을 산보하던 것도 진실로 행 복스러운 꿈이었다.
사오 일 전에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에, 예루살렘의 뭇 사람은 모두 성밖까지 마충 나와 자기네들의 옷을 벗어서 그의 길에 깔며 종려잎을 두르며,
“호산나여, 호산나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은 복되시이다.”
고, 미칠 듯이 기뻐서 그를 맞았다. 그것도 지나간 즐거운 꿈이었다.
피곤한 몸을 겨우 일으켜서, 예수는 그 바위에서 내려서 굴복하고 앉았다. 그의 얼굴에는 괴로움이 똑똑히 새겨졌다.
“여호와여. 제가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이여. 당신은 왜 이리 저를 괴롭게 하십니까. 저는 아직껏 당신을 위하여 일하였습니다. 당신의 뜻에 거슬린 일은 하나도 없을 줄 압니다. 당신을 위하여는 제 어머니와 막달라 마리아까지토 버려두었습니다. 온갖 핍박과 곤란을 무릅쓰고라도 당신의 뜻을 펼칠 곳이 있으면 갔습니다. 제가 마음만 있으면 능히 얻을 온갖 영광도, 당신의 뜻을 펼치는 데 거치적거리는 것이라면 저는 눈을 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제 죽음까지 요구하시니 웬일이오니까. 제 죽음이 저 불쌍한 무리를 착한 길로 인도할 유일의 방책이라면 너무도 야속한 일이외다. 하나님이여, 여호와여. 바랍니다. 참으로 바랍니다.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이 참혹한 잔을, 제게서 떠나게 해주십시오. 제가 이 쓴 잔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너무 잔혹한 일이외다. 아멘.”
그는 일어나 앉았다. 고민과 고통이 그의 얼굴을 덮었다. 구슬땀이 뚝뚝 떨어졌다.
죽음? 삶? 이것이 사람에게는 그중 아프고 엄숙한 문제에 다름없었다. 그가 이제라도 잘만 피하면 살 도리가 없는 바는 아니라, 죽음, 삶, 모두 그의 마음 하나에 달렸다. 정정당당히 죽음으로 향할까, 몰래 도망하여 살기를 도모할까. 구슬땀에 젖은 그는 몸을 사시나무와 같이 떨었다.
4
그는 몸을 일으켜 유다를 망보는 제자들 있는 데로 갔다. 제자은 곤함에 못 이겨 모두 쓰러져서 잠자고 있었다.
“베드로!”
그는 작으나 힘 있는 소리로 찾았다.
“네? 아직 안 왔습니다.”
베드로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딴 제자들도 깬다.
“그것을 못 참고 잔단 말이냐?”
“안 자렸더니, 그만…….”
“네 몸이 약하다. 곤한 모양이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거라.”
그는 또다시 아까 자리로 돌아왔다. 구슬땀은 멎지 않고 그냥 흐른다. 그는 괴로워하고 두려워하였다. 그는 꿇어앉아 하늘을 우러러보며 또다시 오장이 녹는 기도를 드렸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며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신 여호와여, 저는 괴롭습니다. 제 마음은 아픕니다. 제 앞에 이른 쓴 잔으로 말미암아 저는 고민합니다. 당신은 구슬같이 흐르는 이 피땀을 보실 줄 압니다. 제 이 젊은 눈에서 흐르는 피눈물을 보실 줄 압니다. 온갖 고생과 박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나아가던 이 예수가 지금 사시나무와 같이 떠는 것도 보실 줄 압니다. 하나님이여, 저는 피할 도리가 있습니다. 이 싫은 잔을 쏟아버리기는 쉬운 일이외다. 이 감
람산만 넘어서면 예루살렘의 제사장들도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여, 어떠한 백성들은 피를 요구합니다. 산 제물을 요구합니다. 이 인자(人子)의 죽음을 바랍니다. 잔혹한 것을 보지 않고는 깨지 못할 만큼 어리석은 그들이외다.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는 끔찍한 피 제물이 필요한 줄을 압니다. 그러나 제가 죽으면 어린 양과 같이 모질고 씀을 모르는 저 제자들은 누가 가르치고 누가 돌봅니까.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제 처지이외다. 어찌하오리까?”
그는 무겁고 떨리는 몸을 다시 일으켜서 제자들 있는 데로 가보았다.
피곤한 그들은 또 벌써 잠들어 있었다.
“베드로!”
“네? 아직 안 옵니다, 선생님.”
베드로는 벌떡 일어나 앉는다.
“이만 것을 못 참고 또들 잔담. 만약 이 뒤에 더 큰 괴로움이 이르면 어찌들 할 테냐?”
그는 기도하던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두 팔로 머리를 움켜잡고 그는 또 고민하였다.
그는 자기의 잔혹한 운명을 원망하였다. 그리고 운명을 저주하였다. 찬란히 빛났지만 불행하였고, 바람으로 찼었지만 만족하지 못한 자기의 젊은 생애까지 뉘우침에 가까운 느낌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귀로는 수없는 사람이 앞길을 잃어버리고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어둠에 헤매는 군중의 애원을 들었다. 그들의 길을 비출 빛이 나타남을 바라는 목마른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그들이 능히 믿을 만한 헌신적 행동의 증거를 요구하였다. 그들을 깨울 만한 종소리를 요구하였다.
피땀은 그냥 흘렀다. 그는 더욱더 고민하였다. 그대로 만약 물에 자기 얼굴을 비추어보았다면, 얼굴빛 이 시꺼멓게 되고 다른 사람같이 늙어진 것을 보았을 터이다.
그러나 좀 뒤에 그는 마침내 마음을 정하였다. 그리고 다시 기도를 하려고 꿇어앉았다.
“여호와여, 알았습니다. 인제는 깨달았습니다. 제 몸을, 미련하고 눈 어두운 무리를 위하여 산제사(하나님께 헌신하며 섬기는 일)로 내놓겠습니다. 그럴 것이외다.
저는 너무 이 몸에 집착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인을 어두운 데서 구할 데 필요하다 하면, 요만 것을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뜻대로 하겠습니다. 아멘.”
예수는 일어났다. 용감하고 경건한 그의 혼은 뛰놀았다. 아까의 고민과 피곤은 차차 없어지고 새로운 용기가 그의 몸에 찼다.
그는 일어서서 제자들 있는 데로 갔다. 제자들은 곤함을 못 이겨 또 잠이 들어 있다. 그는 고요히 베드로의 곁에 가 앉았다.
“아직 안 옵니다.”
베드로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
“웅, 인젠 마음 놓고 자라. 내 마음도 결정 되었다.”
“네? 결정?”
“음…… 다……그럴 것이다.”
“그럼 갈릴 리로 가시렵니까?”
“아니.”
말소리에 다른 제자들도 차차 깨었다.
“사마리아로?”
“아니.”
“그럼, 어데로…….”
“십자가로!”
예수는 침통한 소리로 고요히 대답하였다.
“십자가로? 십자가?”
야곱이 고함쳤다.
“산제사를 요구하는 자들에게는 제물이 있어야 한다. 언젠가 너희들한테 이야기했지,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라고. 내가 빛이 되고종소리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십자가로 가야겠다. 내 한 목숨을 바쳐서, 시방, 장래 할 것 없이 몇 억만 사람이 구원된다 생각하면 아주 싸고 쉬운 것이다. 오히려 기뻐할 일이 아니냐?”
“그래도, 우리는…… 선생님, 우리는 어찌합니까?”
“너희! 마음만 든든히 먹고 나아가면 무서울 것이 없느니라.”
“선생님, 그러시지 말구 이제라두 갈릴리로 가셔요, 갈릴리루.”
“갈릴리로?”
예수는 손을 들어 서편 쪽을 가리켰다.
“저기 보아라.”
저기는, 케드론 다리 있는 데쯤. 횃불 든 사람의 무리가 지저거리면서 이리로 오는 모양이 보인다. 이것을 보고 베드로가,
“이놈, 제사장들이!”
하며 벌떡 일어섰다.
“앉아 있거라. 모든 일이 순서대로 나아간다.”
예수는 고요히 일어섰다. 그의 얼굴은 용감과 경건으로 빛났다. 그는 횃불이 오는 편으로, 고요히 발을 옮겼다.
-끝-
2016년 10월 27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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