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이 깊은 눈
나는 미담도 소리 내어 읽지를 못합니다.
너무 좋은 내용이라 아내에게 들려주려고 읽다가 두 줄 만에 모기 소리 만하게 작아지고 눈치를 챈 아내가 벌개 지고 그렁그렁한 내 눈을 바라보며 ‘또 운다.’ 하고 놀립니다.
다 큰 애들의 아버지요, 창피하기도 하고 쑥스러워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집어넣으려고 천정을 보며 헛웃음을 웃는데 그 웃음에 박자도 엇박자 웃음에 자칫 더 큰 울먹이는 울음이 나올까 화장실로 도망을 가곤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나를 ‘울보 아빠’라고 했는데 어찌나 감정 조절이 안 되었는지 아내와 아이들이장난으로‘운다, 아빠 또 운다.’하면 어처구니가 없다고 웃다가 눈물이 나와 그런 장난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추억의 아빠 울리기를 내 나이 환갑인 지금도 둘째 장난꾸러기 아들이 써먹곤 합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는 아이들에게 구연동화를 가끔 해 주었습니다. 그중에 ‘가시고기’라는 자작 구연동화를 해주었는데 이야기가 무르익으면 다음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먼저 떠오르고 “어린가시고기는 엄마의 살을 파먹어야 살 수 있는데 엄마의 살을 어떻게 파먹느냐며 우는데 잉잉잉.....” 하다가 먼저 울고 아이들도 따라 우는데 사리판단에 냉정한 아이엄마만 ‘아이 구 아이 구 다들 놀고 있네.’하며 놀림조로 웃었지요.
며칠 있으면 아내의 생일이 돌아옵니다. 나는 빠짐없는 연례행사처럼 편지 아니 연서를 쓸 겁니다. 쓰다가 지난날을 회상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것은 불을 보듯 뻔 한일입니다.
오늘은 아내가 순대를 몹시 먹고 싶다고 하여 사왔는데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골고루 내장과 간 허파가 섞인 순대를 사왔습니다. 하지만 아내를 생각해서 사온 순대에 의미를 두면 나는 간이 벌렁벌렁 내장까지 뒤집힌 감정이입의 눈물 때문에 마주앉아 순대를 먹을 수 없고 먹다가 눈물이 나면 아내가 또 운다고 놀릴 것이고 그러면 허파에 바람들어간 놈처럼 웃다가 울면 그다음은 쑥스러워서 아내를 어찌 쳐다봅니까.
나는 아내가 ‘썩 썩 썩’ 김치 쪽을 소리 나게 씹어도 눈물이 납니다.
“무슨 김치 쪽이 그렇게 맛있다고 썩썩 소리 나게 씹을까 내가 준 것이 김치쪼가리 밖에 없으니 내 잘못이....”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함께 교회를 가면 나란히 앉아 찬송가도 맘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서 부르지를 못합니다. 가사 하나 하나가 내 마음을 찌르는 눈물 때문에 가사에 깊은 신의 뜻을 헤아려 부르기가 겁이 납니다. 이런 거추장스런 눈물 때문에 멍 때리는 찬송을 부른다는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파 맘껏 부른 날은 집에 와서 샤워를 해야 합니다.
오늘은 교회에서 회계 일을 보다가 간식시간에 아이들 이야기보따리를 하나씩 풀어 놓기를 시작했습니다.
나도 언뜻 스치는 장면이 있어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시작은 미약하여 눈물 없이 들을 수 있는 성공이었지만 나중은 심히 창궐 할지도 모르는 미지수였습니다.
“우리 큰애 유치원 때 문방구에서 뽑기를 했는데 반지가 나왔거든요? 가장자리가 오돌톨하고 까칠 까칠 마무리도 엉성한 반지거든요. 근데 여자애가 아니라 끼지도 못하고 누어서 가지고 놀다가 입속에 넣었는데 그만 삼켜버려 컥컥 거리는데 깜짝 놀라 아이의 입을 벌려 보니 잘 보이지도 않고 어찌 할 줄도 모르고 겁도 나고 놀라서 아이 엄마를 불렀어요. 그때 부엌에서 달려온 엄마가 아이 입속에 검지 손가락을 넣었는데 아이는 더 놀라서 컥컥 거리며 엄마 손가락을 물고... 엄마는 입을 찢기라도 할 듯 사정없이 벌리며.... 몇 번이나 시도 한 끝에 겨우 반지를 꺼냈는데..... 목구멍에서 피가 나고......나중에 아내의 손가락을 보니 이빨 자국이 움푹 하여간.......”
여기까지 이야기를 했던 그때야 내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자 급하게 마무리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내 앞에 앉아 대화를 나누던 약사님께서 환자의 얼굴을 살피듯 내 얼굴을 찬찬히 살피는 모습이 들어 왔는데 그렁그렁한 내 눈을 이미 보신 듯 하였습니다.
나는 민망하고 얼굴이 후끈 달아올라 더 이상의 진행을 막기 위해 애써 참는데 그분께서
“아빠는 못해도 엄마는 위대해서 자식 사랑이 더 커요 더 큰일도 한다니까요.....” 하시는데 나는 그 말씀에 이슬방울이 더 굵어지고 굵어진 그 놈을 가두려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는 나만의 ‘눈물 감추기 신공’을 썼습니다.
나는 일상에서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누가 아프다는 말을 들려 주려해도 눈물이나 그 사람과 무슨 썸씽이 있느냐는 오해를 받을까봐 던지듯 영혼 없는 말로 짧게 끝내고 맙니다.
나는 혼자 있을 때만 깊은 생각과 눈물로 아내와 자녀, 인간관계에서 맺어지는 모든 사람, 동물, 꽃, 시나 미담을 맘껏 읽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만이라도 내 눈 속의 깊이가 샘처럼 깊은 웅덩이였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주일오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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