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거리 ‘개코막걸리’
헌책방거리로 불리는 배다리는 저녁 6시만 되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다. 가로등 말고는 딱히 불 켜진 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가로등 불빛을 친구삼아 들어가다 보면 저만치 반가운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이 보인다. 연극인 김병균씨가 운영하는 ‘개코막걸리‘ 집이다.
막걸리 집은 주로 퇴근 후에야 찾는 곳이고, 대부분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 있기 마련인데 외진 이곳과 막걸리 집은 언뜻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 궁금증이 이곳을 찾게 만들었다.
▲개코막걸리 외관
‘개코막걸리‘를 들어서기 전에 눈에 먼저 들어오는 간판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개코막걸리‘라는 이름 앞에 붙어있는 조형물이 재미있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가지런히 놓인 동그란 두리반상에 길게 매달려 있는 노란색 주전자가 인상적이다. ‘개코막걸리‘ 라고 쓰인 커다란 글씨 아래엔 작은 글씨로 ‘(구)디즈니‘ 라고도 쓰여 있다. 간판에서 부터 이곳의 역사가 보인다.
많은 이름 중에 하필이면 ‘개코막걸리’ 라니, 이름이 특이하고 재미있어 물었더니 전에 운영하셨던 할아버지 동생의 제안 때문이라고 했다. 연수동에서 먼저 개코 막걸리라는 이름으로 막걸리 집을 하셨던 할아버지의 동생이, 형님이 밥집으로 운영난을 겪고 있을 때 권해서 그대로 하게 됐다.
‘개코’라는 이름은 할아버지의 동생에 의해서 탄생 됐다. 할아버지의 동생이 어느 날 동물의 왕국을 보다가 개코원숭이를 보고는 그 자리에서 ‘개코‘라는 이름을 붙이셨다고 한다. 의외로 이름 탄생 동기는 단순하다.
안으로 들어서면 주방 쪽에 막걸리 주전자와 잔이 가지런히 놓인걸 보면 분명 막걸리 집이긴 한데, 또 한쪽 벽면엔 연극, 예술, 철학, 경제 등, 특색 있는 여러 권의 책들이 나란히 꽂혀 있는 것이 뭔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밸런스가 안 맞는 느낌이 들었다.
막걸리 집이니 만큼 그에 걸 맞는 얼큰한 안주 코다리찜을 시키고는 또 놀랐다. 순간 잘못 시킨 줄 알았다. 그 많은 술집을 다녀 봤지만 동일한 가격에 그렇게 많은 양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래진 우리 일행의 얼굴을 보고 덩달아 놀라신 주인장님, 동글동글한 얼굴에 뽀글뽀글한 머리가 인상적이다. 호감전, 가지볶음도 푸짐하고 맛도 일품이다.
▲가지볶음 ▲호감전
▲주방에서 요리하시는 김병균님
개코막거리와 새로운 인연 ‘연극인 김병균‘
주인장은 장소가 편하고 좋다는 말에 “편안하기는 할 거에요. 손님이 없으니까요”라고 말하곤 호탕하게 웃는다. 이곳은 손님이 찾아들만한 곳이 아닌데 어떻게 이곳을 선택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돈만 벌 목적이었다면 이곳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곳은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다. 영업시간도 철저히 지킨다. 월요일은 휴무, 그 외의 날엔 오후 5시에 문을 열고 11시면 문을 닫는다. 이 시간 이외엔 절대로 손님을 받지 않는다. 시간은 철저히 지킨다. 이것은 나의 신조다.” 이 말을 하는 그에게서 어떤 결연함 마저 느껴졌다.
“손님은 왕이라고 하는데 주인장님 뜻이 먼저인 듯한 느낌이 든다”라는 말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주인장님이 이런 의지를 보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월요일 하루를 꼭 쉬는 이유, 저녁 5시 이전에는 절대 손님을 받지 않는 이유는 다름 아닌 시민들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 ‘이웃과 함께 만드는 영화2’를 총괄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배우다, 그저 이 거리를 걸을 수밖에, 광장, 100개의 인형’ 이 네 개의 작품을 2018년 12월에 개봉 했다.
▲개코막걸리 주인장 김병균
이곳은 지역민들과 이 지역을 중심으로 커뮤니티 활동을 하시는 분들의 염원이 인천토박이 연극인 김병균 이라는 한 사람의 인연과 의지가 맞물려 있었다. 주인장은 1999년도에 창영초등학교 근처에서 연습실을 갖고 있었는데 그 때부타 개코막걸리를 다녔다고 한다. 개코막걸리가 1980년대 후반에 문을 열었으니 거의 초창기부터 다닌 셈이다.
2000년도에 연습실이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고, 그 이후에 극장을 운영하다가 운영난 때문에 극장 문을 닫으면서 지속적으로 작업을 할 공간이 따로 없었다. 집을 연습실로 사용했다. 나이가 들면서 연극 공연 이외에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나 마을과 관련된 커뮤니티프로그램들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그런 활동을 하면서 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던 중, 이왕이면 운영비가 좀 나올 수 있는 복합적인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 생각한 것은 와인 카페였는데 다른 지역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연히 이곳과 인연이 되었고, 고민하는 데는 딱 삼일 걸렸다. 인연은 사람과의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전에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 졌었더라면 다른 곳에서 먼저 시작했을 것이라고 하니 말이다.
▲비깥에서 본 개코막걸리 내부
올 봄, 30여 년 동안 개코막걸리를 운영해 오셨던 전 주인인 할머니께서 교통사고로 팔을 다치시는 바람에 요리하기 힘든 상태가 되어 결국 가게를 내놓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배다리 지역민들에게나 이곳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는 가볍게 막걸리 한 잔을 할 공간이 없어지게 됐다.
지역에서 커뮤니티 활동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꼭 필요한 공간이었고, 어찌 되었든 30여 년을 이어져 내려온 가게인데 간판을 내리고 다른 업종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30여 년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과, 사람들이 서로 만나 소통할 수 있는 주점이라고 하는 공간이 없어지는 것에 대해서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커뮤니티씨어터 팀들이 SNS를 통해서 운영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조건은 개코막걸리를 이어가는 것이었다.
▲개코막걸리 간판에는 두리반상에 길게 매달려 있는 노란색 주전자가
인상적이다.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코막걸리는 그저 막걸리를 마시는 공간 그 이상의 것이 되어 있었고, 새로운 주인장 김병균씨는 개코막걸리를 인수하는 순간 그 모든 것을 함께 품었다. 주인장을 만나던 날도 커뮤니티활동을 끝낸 팀들이 통과의례처럼 모여들고 있었다.
근처에서 모임 끝낸 팀들 개코막걸리에서 한 잔
주인장은 이곳에서 할일이 참 많다. 우선 올 봄에는 ‘개코인문학’을 시작 할 예정이고, 또 작년에 이어서 ‘이웃과 함께 만드는 영화3’를 제작해 상영할 계획이다. 이제 ‘개코’는 이 곳 주인장에 의해서 새로운 브랜드로 재탄생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김병균, 이곳을 거점으로 자리 잡게 된 그는 도로 건설이 중단 되어 방치되고 있는 송현터널을 뮤지엄으로 하여 이 곳 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재탄생되기를,
배다리 주위 공터엔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을 심어서 미세먼지에 대응하는 쉼터가 조성되기를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30여 년을 이어온 개코막걸리에 김병균이라는 새 주인이 어떤 이야기를 담아낼지 몹시 궁금하고 기대도 크다.
최시연 i-View 객원기자
첫댓글 막거리와 인문학이 잘 어울리는것 같아요
전통이 있는 주점이네요~^^
서민의 술~~??
배다리 헌책방 근처에 있는 곳이랍니다.
이곳을 떠나온지 30여년이 되었네요.
시간이 허락하면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