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장군의 삼세인과
남이장군은 세종 때 태어나 (1441~1468년) 세조 때의 장군으로서, 본관은 의령 의산군(君) 휘(諱)의 아들로서 1457년 세조 3년에 무과에 급제 이시애 난을 평정하고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할 때 선봉장으로 적을 무찔렀다. 적개공신이 되고 훈 1등에 책록되어 26세에 병조판서가 되었다. 예종이 즉위하자 유자광의 무고로 옥사(獄事)가 일어나 처형되었다. 그는 아래와 같은 시를 남겼으나 반역자들의 모함에 의해 시(詩)는 바뀌어 역적이 되었다.
白頭山石摩刀 백두산석마도진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서 달아 지고
頭滿江水飮馬無 두만강수음마무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마르게 하고
男兒二十未平國 남아이십미평국
남아 이십에 나라를 편안케 하지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 후세수칭대장부
훗날 누가 있어 대장부라 하리오.
남아이십미평국을 유자광의 무리들이 미득국이라고 하여 남자가 20세에 나라를 얻지 못하면 훗날 누가 있어 대장부라고 이를까 라고 하여 곤경에 빠뜨렸다고 한다.
그런데 남이 장군이 태어나면서부터 글을 읽었다고 하며 전생을 기억하는 불망지가 있는 신동으로 알려졌다. 남이 장군의 삼세인과 즉 삼세전생은 전라도 영광지방의 글 읽는 선비로서 성은 송(宋)씨였다. 잠잘 때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하여 책에 미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40세가 넘도록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여 집안 살림이 말이 아니었고 아내가 품팔이로 끼니를 이어가고 있었다. 아내는 남편의 과거공부의 바라지에 정성을 다 했다. 어느 때는 품팔이로 집을 비운사이 소나기가 내려 마당에 널어 두었던 나락이 다 떠내려가도 모르고 방에서 글만 읽던 서방님이 원망스럽다 못해 얄미웠다. 끝내는 가정의 살림살이에 무관한 서방님과 살아가는데, 가난 때문에 더 이상 생계를 꾸려갈 수가 없어 아내는 집을 떠나 가출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도 모른 채 글만 읽고 있던 송 서방은 끼니도 잊은 채 글만 읽고 있었으나 며칠이 지나도 아내는 보이지 않아서 가산을 정리하고 마을의 뒷동산 바위 밑에다 책을 옮겨 놓고 여전히 책을 읽기 시작하였으나 굶주림에 지쳐 병이 나서 눕게 되었으나 돌보아 주는 이가 없어 죽게 되었는데,
“내가 굶주렸으니 음식만 조금이라도 먹기만 하면 일어나서 글공부를 할 수 있을 터인데" 하고 염려하던 차에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있어 우선 시장기부터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여 동구 밖에 있는 장터로 갔더니, 마침 장날이라 장국밥냄새가 나서 한 뚝배기 먹고, 막걸리까지 먹고 나니, 거나하게 취한 김에 충청도를 향해 처갓집으로 찾아 가는데 도중에 잔치집이 있어 들러 보았더니, 회갑잔치를 하는데,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아무리 먹어도 시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막걸리 마시고 나니 천하가 넉넉하게 보인다. 졸음이 오고 해서 옆방에 들어가 한잠 자는데 갑자기 쏴~하는 소리에 깨어 보니 과년한 처녀가 요강에다 소변을 보고 있었다. 송 서방은 그 사이에 여인에게 팔려 처녀의 곁에서 누워 있다가 그 처녀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그 처녀는 놀라서 꽥 소리를 지르며 까무라쳐 기절하고 말았다. 도리어 놀란 송 서방은 어쩔 줄 모르는데, 옆방에서 잠자던 부모들이 뛰어나와 까무라친딸을 깨워서 영문을 물으니, 처녀는 방의 한 구석에 있는 송 서방을 보고 다시 기절을 한다.
송 서방은 마을 뒷동산 바위 밑에서 몸이 가벼워지는 순간 그는 죽어서 영혼만이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일리가 없다. 송 서방의 영혼은 처녀에게 빙의가 되어 있어 처녀를 괴롭히게 되었다. 그래서 그 집안 어른들이 무당을 불러 굿을 한 마탕 하고 난후 송 서방을 붙들어 꽁꽁 묶어서 귀신 독에다 넣어 다시 단단히 묶어서 하인을 시켜 저 산에다 깊이 파묻어 두라고 시킨다. 그러나 마침 그날 비가 내리는 지라 산에 오르기 곤란하여 집 뒤뜰에 있는 대밭에 들어가 가장 굵은 대 하나를 골라서 그 대나무에다 귀신 독을 매달아 놓았다. 마침 옆집의 노인이 와서 주인어른께 대를 하나만 달라고 하니 “자네가 대밭에 들어가서 골라가게" 한다. 그래서 노인이 가장 굵은 놈을 골라서 베는데 대가 넘어가니 웬 독이 떨어져 깨어졌다. 놀란 송 서방은 도망하여 서울로 향하여 갔다. 선비는 과거의 미련 때문에 서울을 향하고 있었다. 경기도 여주 땅에 이르자 시장기가 드는데, 마침 바람에 실려오는 떡 냄새에 가까이 가 보니 장독대에다 떡시루를 올려놓고 기자기도를 하고 있어, 그 집을 배회하다 그 집의 귀한 아들로 태어나 세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입춘대길(立春大吉)을 써 붙이는 것을 '입춘대길' 하고 읽었더니 부모들이 놀라 어쩔 줄 몰라 의논하여 아들을 죽이기로 했다. 당시는 천재가 태어나면 역모할 우려가 있다고 하여 구족(九族)을 멸하는 나라의 법이 있었기 때문에 저 아이 하나 때문에 멸문이 될 우려가 있어 홑이불에다 숨통을 감싸고 다듬이 돌로 눌러서 죽이고 말았다.
전생에 평생토록 글만 읽었기 때문에 불망지가 있는 신동은 입춘대길을 읽은 죄로 부모에게 죽음을 당하게 된 어린마음에 "앞으로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 하면서 죽어 갔다. 다시 장안에 들어가 여기저기를 기웃 거리는데, 마침 글 읽는 소리가 나는 의선군 휘의 집에서는 벼슬은 높았으나 아들이 없어 늘 걱정이었는데 글 읽는 소리에 끌려 그 집에 태어났다. 귀한 자식을 본 대감 집에서는 큰 잔치를 베풀어 아들의 출산을 축하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커가면서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가 아닌가. 대감의 문중에 큰 누가 되어 아들 자랑도 못하고 있는데, 마침 집에 잔치가 있어 많은 대감들을 초청하여 음식을 먹고 난 뒤 시(詩)회를 여는데, 그 가운데 장원으로 뽑힌 작품에 마지막 종장에 글 한자를 바꾸었으면 하는 여러분들의 의견에 "그럼 다시 한잔 하고 와서 보기로 하자"고 하여 사랑으로 가서 한잔 하고 와서 보니 이상하리 만큼 그 자리에 알맞은 글자가 쓰여 있었다. 그래서 하인들에게 누가 써 넣었냐고 물으니 모르겠다고 하면서,
"방금 벙어리 도련님이 그 방에 들어갔다 온 이후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벙어리 도련님을 불러 물으니, "또 죽이려고?"라고 대답했다. 그는 전생에 글을 읽다가 죽었기 때문에 또 죽음을 당하게 될 줄 알았다. 역시 그 대감 휘의 집에는 경사가 났다. 그 아이가 점점 커서는 바로 남이 장군이시다. 남이 장군의 삼세인과 즉, 삼생의 전생(轉生)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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