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시작
- 엊그제 立冬이 지나면서 이제 절기상으로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
푸른하늘,코스모스,단풍,억새풀등 가을을 찬미하고 미화시키는 그 많은 형상들을 한번도 가까이
접하지 못한채 가을은 그렇게 가는가 봅니다.
또한 책한권 제대로 읽지 못했고, 돈우가족들에게 삶의 진행형에 대한 안부를 묻는 전화 한통화
시도해 보지 않은채 더더욱 부끄러운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항상 말했듯이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하고, 그이상 그이하도 아닌 나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돈우마당이 있기에 모든 분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반성하면서, 일상적인 몇가지 생각의 小品을 모아
올리고자 합니다.
2. 思父曲(思夫曲)
- 음력 시월 열나흗날! 아버님이 돌아 가신지 21주기가 되는 날이다. 제사를 모시기 위해 어머님과
오남매가 추석이후 우리집에 다시 모였다. 매년 제사를 모신후에 음복을 하면서, 가신님의 뜻을 기리고
아쉬움과 담소를 나누지만, 올해는 꼬부랑 할머니가 다 되신 어머님을 보면서 지난 21년의 세월이
참으로 무상하다는 생각 밖에 없다.
갑작스런 병환으로 아버지가 세상으 뜨셨을 때, 우리는 망연자실하고 어머니께서 통곡하시는 모습을
보고, 하늘도 울었고(실제로 이날 초겨울인데도 100mm이상 비가 내림), 동네사람 모두가 울었다.
왜 그렇게 슬펐을까? 그것은 아버지께서 생전에 보여주신 의연한 행동과 모범적인 생활자세 때문이다.
우리아버지는 7남매중 막내로 태어 나셨는데, 할머니가 일찍부터 아프신 관계로 가세가 기울면서
따뜻한 사랑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 가운데, 논 한마지기 받은 것 없이, 어머님을 만나 살림을 시작
하셨다. 두분은 부창부수(夫唱婦隨)가 되어 집을 마련하고, 전답을 늘려 가면서, 나중에는 기꺼이
조부모님을 모시게 되니, 동네 사람들로 부터 진정한 효자, 효부라는 칭송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동네 里長일을 보면서 항상 남을 배려하고 화합을 도모하여 長水郡에서 제일 살기 좋은 마을로
지정되는 영광을 누리면서, 표창을 받기도 하셨다.
그러나 한계가 있는 농촌 살림으로 자식들을 상급학교에 진학시키면서, 생활의 여유가 없어 지고
학자금 마련을 위해, 누에치기,담배농사등 무슨 일이든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 하면서, 피로의 누적
으로 급기야는 불치의 병을얻고, 내가 은행생활을 시작 하던해 운명하셨으니, 그 안타까움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또한 가족끼리 술한잔 기울이는 자리가 있을 때마다, 이제는 녹음테이프가 되어 버린 어머님의 思夫曲은 더욱 애절하다.
아이고!/박복한 이 양반아!/ 자식들 가르치는 지극한 정성속에/선물 받은 고급담배 새마을로 바꿔피고
양복한벌 비싸다고 무명한복 고집하며/ 절약하고 절약하다, 불귀의 몸 되셨으니/원통하기 그지없소/
우리아들 직장얻어, 집안형편 풀리나니/ 당신 없는 이 세상에/나 혼자 고기반찬/그 무슨 소용이오?!.
훌쩍 지나버린 세월의 江! 중학교시절 토요일 오후, 가을걷이가 한창일 때, 전주에서 집에 내려가면
일을 하시면서 피곤함을 달래느라 막걸리 한사발에 아버지는 흥겨운 우리가락 『노들강변』을 부르
시고, 어머니는 『아내의 노래』로 화답하시면서 나를 맞이 하셨던 우리 부모님! 이때가 이 분들이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던가 생각할 때, 아버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에 가슴애린다.
3. 누이생각
- 아버지기일 다음날이 주말이어서, 우리가족은 시어머니 치매때문에 10여년동안 가보지 못한
금촌에 사는 누이집에 모여 참으로 오랜만에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누이와 나는 3년 터울인데, 자랑이 아니라 똑똑하고 총명하다. 흔히 말하는 똑순이다.오죽하면 아버지
께서 생전에 말씀하시길 "아들 삼형제 다 합쳐도 딸 하나만 못하다고 말씀하셨을까?"
70년대 후반 자식들의 학자금때문에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보고 과감히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돈을 벌기 위해 공단근로자 생활을 시작했던 내 누이! 그때 월급 10여만원을 타서 적금도 붓고, 오빠
공부열심히 하라고 2만원 용돈을 주기도 하면서, 못 먹고 열심히 살기만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동생을 볼 때마다 고개를 들수가 없다. 동생에 대한 업보는 내가슴에 지을수 없는 생채기다. 참으로 못난 오빠다.
(지금까지 내가 동생을 위해 한 일은 조정래씨의 대하소설 『한강』을 읽으면서 70년대 공단근로자
생활이 묘사되는 대목에서 안쓰러운 누이생각에 책장이 다 젖도록 울었을 뿐이다)
그래도 다행인지 착한 성품에 하늘이 감동한 덕분으로, 현 매제인 초등학교 선생을 만나 결혼하여
두 아들 낳고, 음전하신 시어머님을 모시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던중,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시어머니
치매때문에 그로부터 자그만치 약 12년동안 고생이 시작되었다. 치매하면 누구나 아는 내용이지만
여동생 시어머니는 정도가 심하여 무척 모시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특히 매제가 외아들인 관계로 모든
고생을 혼자 떠안고 수발을 들었으니 당해보지 않은 제3자가 이 고생을 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데 있다. 제 아무리 효부라 하더라도 간병의 스트레스 때문에 일상적인 생활에 문제
는 없으나, 가끔씩 신경계통이 마비를 일으키는 병을 얻었다. 주위 사람들로 부터 '고생한다' '대단하다'등 만은 칭찬을 들으면서 고생을 이겨냈던 누이! 빨리 완치 되어 새로운 충만의 생활이 시작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4. 他山之石(1) : 진정한 행복
- 은행거래를 통해 알게 된 고객중 申사장님이 한분 계신다. 이분은 자칭 튀밥장수로서 항상 허름한
옷차림에 나이가 70이신 노인인데, 고향이 전주 완산동인 관계로 몇번 만나는 동안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현재 부동산업을 하고 계시지만 젊어서 부터 안해본 사업이 없다. 60년대 초반 김제에서 정부미 도정
공장을 운영할 당시, 보리쌀 한가마가 500원 이었는데, 가끔씩 전주에 나가 도청직원을 접대하느라
하루저녁 술값으로 20만원을 치루고 먼지나는 신작로길을 혼자만 택시타고 달렸던 화려한시절(?)도
있었단다.
정확한 재산규모는 모르지만 수백억이 훨씬 넘는것 같다.(湖南사람인 죄로 DJ대통령 만들기 위해 기부
한 돈이 수억리라고함)
그러나 이 분에게도 항상 어두운 그림자가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그것은 큰 며느리때문이다.
아들이 주유소를 경영하는데, 성실하기만 했지 제마누라를 다루지 못하여 경제권은 부인에게 다 빼앗
긴 가운데 오직 일만 하고,부인은 밖으로 나돈단다. 스튜어디스 출신으로 인물이 좋아 申사장이 적극적
으로 추천하여 얻은 며느리가 시간이 흐를수록 시부모님 한테 까지 대드는 오만방자한 행동으로, 지금은 가족간의 불화가 생기는 것은 물론 귀여운 손자에게 사랑 한번 못주고 지낸지가 2년이 다 된단다.
집에 있으면 답답하고 화가나서 매일 직접 운전하시며 좋은 땅을 찾아 나서는 사장님의 말씀 "돈이
전부가 아닌데 나는 왜 오늘도 전국의 땅을 보고 다녀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것당게!" 하시는 탄식의
소리에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 본다.
5. 他山之石(2) : 그래도 夫婦
- 우리지점 VIP고객중 姜사장님이 계시는데, 금년 4월부터 갑자기 연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집과 핸드폰으로 아무리 연락을 취해도 두절이었다. 직원을 시켜 집을 심방토록 한 결과, 집에는 80이
넘은 노모가 혼자계신 가운데 가족들의 근황을 물은 결과, 姜사장은 집나간지 오래고 며느리는 식당을
운영한다고 한다. 수소문 긑에 부인과 연락이 되어 자초지종을 물은 결과 사실은 이러하였다.
남편과 결혼하여 30년이 지난 지금, 10년동안은 행복하게 살았으나,나머지 20년은 남편아닌 천하의
남봉꾼이라고 하였다.
처음 바람을 피기 시작할 때는 한두번 참아주고 이해도 했단다.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도는 지나치기
시작했고, 지금은 자신에게 폭행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정확하게 기억은 못하지만 거쳐간
여자가 20명는 넘은 것 같고, 식당수입을 남편이 제대로 관리만 하였다면 남부럽지 않은 부자가 되었을 텐데~ 하며 눈물을 글썽인다.
이제는 아이들도 아버지를 포기하였고 어머니만 모시고 살겠다며, 은행대출금 정리를 위해, 담보잡힌
집은 은행마음대로 처분하라고 말한다. 그로부터 몇달후, 부인한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남편이 잘못
을 빌기 시작했고, 가족들이 설득하여 남편을 용서하기로 했단다. 그래서 은행대출금을 모두 정리하되
혹시 또 바람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집을 자기앞으로 돌리기로 했다고 말이다.
우리가 물었다. " 사모님 용서가 그렇게 쉽게 되던가요?" 이분은 말한다. "어떻합니까? 그래도 부부인데
살아야죠!" "자식들이 부끄럽지 않기 위해, 시어머님을 모시기 위해 말입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지만 수만은 한을 간직한채 살아가는 전통적인 우리어머님들의 모습을 보는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였고, 흐뭇하기도 하였다.
6. 詩하나 추가(제목 : 가을일기,시인 :이해인수녀님)
- 잎새와의 이별에/나무들은 저마다/가슴이 아프구나
가을의 시작부터/시로 물든 내마음/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잎에/
조용히 흔들리는 마음이/너를 향한 그리움인 것을/ 가을보내며 비로소 아는구나
곁에 없어도/늘 함께 있는 너에게/가을 내내/단풍위에 썼던 고운 편지들이
한잎 한잎 떨어지고 있구나
지상에서 우리가/서로를 사랑하는 동안/붉게 물들었던 아품들이
소리없이 무너져 내려/새로운 별로 솟아 오르는 기쁨을
나는 어느새/기다리고 있구나
7. 마무리
- 몇번의 글을 올리면서 말과 글의 차이를 생각해봅니다. 지금까지 올렸던 나의 글들이 서로 만나
말로써 전달할 때, 글처럼 전달되었을까?하고 말입니다.
"가슴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라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글의 효과는 말보다 더 진할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돈우가족 여러분!
우리들의 글은 자랑도 아니고 과시도 아닙니다.살아가는 소리,또는 일상에서 접하는 평범하고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할 때 주저마시고 돈우마당에 올려주십시오.
말과 글이 통하는 모임만이 진정한 모임이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끝으로 돈우마당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요.
최소영: 노랗고 뿌연 빛바랜 사진에서 칼라영상으로 넘어오는 한편의 찡한 드라마 같습니다. 감화감동!! 2003-11-10 13:39:45
노병섭: 애잔한 감동... 그리고 멍하니 먼 산을 , 먼 하늘을 응시합니다. 나는..... 2003-11-10 21:34:59
정남숙: 기다려지던 종보씨의 글이 역시 기대의 저버림 없이 마음을 순화 시키며 진한 감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누이에 대한 사랑에 저도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2003-11-11 09:0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