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NROTC 카페 게시판에 20년의 노하우를 가지고 다소나마 도움이 되시리라 믿으며 올린 펀드 관련 기사를 기억 하실 겁니다. 망설이다가 올린 글들이지만, 저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고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한 결과 2008년 MDRT 정회원이 되었습니다.
MDRT가 무엇인가 생소하시겠지만, 보험업계에서는 누구나 되고 싶어 하는 자리요, 쉽게 달성할 수 없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동안 해상생활 5년을 통해 세계 일주의 꿈을 이룬 후 20년을 한결같이 보험인으로 살아왔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보험업계에서 어느정도 인정받는 자리까지 온 것으로 생각하며 자축하고, 그동안 도움주신 선. 후배 동문여러분과 특히 동기생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저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시고, 격려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래 글은 참조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MDRT (Million Dollar Round Table)
MDRT 란?
MDRT (Million Dollar Round Table) 은 우수 생명보험 에이전트의 국제적 모임으로서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본부를 두고 있다. 엄격한 자격 심사를 거쳐 입회를 허가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회원으로서의 명예가 주어진다.
MDRT의 역사
전미 생명보험외무원협회 (NALU)의 하부기구의 하나로서 1927년 발족
미국 테네시주의 멤피스에서 개최된 NALU의 연차대회에서 부회장이었던 크라크가 32명의 우수 에이전트와 함께 원탁에 둘러앉아 비공식 회의를 개최한 것이 계기가 됨.
1928년 디트로이트 연차대회 때부터 공식적인 활동 개시
미 션
생명보험 판매에 있어 전문적인 접근을 목표로 하며 회원들의 생산성과 고객에 대한 서비스 그리고 그들의 삶의 질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것.
백만불 원탁회의(MDRT). 연봉 1억원 이상의 보험설계사들만 가입할 수 있는 "명예의 전당"이다.
국내 MDRT 회원은 2200여 명. 전체 설계사 중 상위 1%대에 들어야 명함을 내밀 수 있다.
매끄러운 화술, 전방위 고객관리, 해박한 금융지식, 빈틈없는 시간활용으로 정상에 오른 프로 세일즈맨들의 이야기.
연봉 1억원 이상이라야 가입할 수 있는 MDRT 회원들은 "설계사 중의 설계사"로 불린다.
몸뚱아리 하나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를 "행복을 파는 수호천사"라 칭하는 이들은 북극에서도 냉장고를 팔 수 있는 남다른 영업전략과 까다로운 고객도 만족시키는 발군의 재정설계 능력을 갖췄다.
하나같이 최고라는 자부심에 가득 차 있다.
이들은 연봉 1억원 이상의 설계사들만 가입할 수 있는 "백만불 원탁회의(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 회원들이다.
국내 생명보험 설계사 14만4000여 명 가운데 MDRT 회원은 2200명에 불과하다.
상위 1%대에 드는 프로 세일즈맨들인 만큼 이들은 설계사 중의 설계사, 프로 설계사의 꽃으로 통한다.
이 자리에 한 번 오르는 것 자체가 대단한 영광이기 때문에 설계사라면 누구나 MDRT 입성을 꿈꾼다.
< "재정 컨설턴트" 로 불러 주세요. >
= 한국MDRT 한상철 회장 =
MDRT는 1927년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보험 영업을 전문으로 하는 재정 컨설턴트들의 모임으로, 현재 세계 74개국의 500여 개 보험사에서 2만80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한국에서도 1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설계사들이 속속 탄생하면서 지난 2000년 한국MDRT가 출범했다.
황훈선 푸르덴셜생명 재정 컨설턴트가 초대 회장을 맡았고, 올해 9월 한상철(ING생명) 회장을 주축으로 한 2기 임원진이 출범했다.
이들의 목표는 MDRT를 최고의 브랜드로 만드는 것. "MDRT를 통해 보험에 가입하면 확실히 뭔가 다르다"는 말을 듣기 위해 뛰고 있다.
아무나 MDRT 회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간 수입이 미화 6만5000달러, 보험료 실적은 1억5000만원에 달해야 한다.
이같은 실적이 뒷받침되더라도 고객과의 분쟁이 단 1건이라도 발생하면 회원이 될 수 없다.
MDRT는 회원들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세미나 개최, 정보 교류, 성공 노하우 공유 등을 목적으로 삼는다.
또한 불우이웃 돕기, 자선단체 기부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 땀 흘려 일하고 봉사하는 직업인 정신을 실천한다.
MDRT들은 "생활설계사"라는 흔한 명칭을 거부한다. 그 대신 전문적 금융지식으로 무장한 "재정 컨설턴트"로 자부한다.
과거의 "보험 아줌마"와는 분명하게 차별화하고 있다.
MDRT는 보험상품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친화력을 최고의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인맥에 의한 상품판매보다는 철저한 재정설계를 통해 고객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활동한다.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것은 기본이고 노트북 컴퓨터와 PDA, 디지털 카메라 등 첨단 장비를 활용해 고객을 위한 최적의 재정설계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고객의 경조사를 빠짐없이 챙기며, 고객이 어려운 일에 처하면 즉시 보험금을 들고 달려간다.
MDRT 회원들은 한국 보험산업의 선진화와 국제화를 선도한다는 자부심에 차 있다.
이들은 어떤 성공 노하우로 정상의 자리에 올랐을까?
한국MDRT 한상철 회장은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미국 보험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계기가 돼 "보험인생"을 시작했다.
한씨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영업직에 큰 매력을 느껴 보험업을 택했다"며 "내가 일한 만큼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직업은 아름답다"고 했다.
그는 1996년 ING생명에 입사, 이듬해에 MDRT 대열에 합류한 뒤 지금까지 6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다.
ING생명 연도대상 금상을 세 차례 수상했고, 2001년에는 MDRT의 6배 업적을 달성해 TOT(Top of the Table) 회원이 됐다.
지난해에도 COT(Court of the Table·MDRT의 3배 업적 달성) 회원에 올랐다.
1999년에는 재정 컨설턴트 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한씨의 "주무기"는 누구를 만나도 술술 대화를 풀어나가는 말솜씨와 "순박한 인상". 고객을 편안하게 만들면서도 그들이 갑갑해하는 부분을 정확히 진단해주는 "개인 주치의"를 자처한다.
무역회사에 다니던 한씨는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위기를 맞았다.
그러다 "연봉 1억원에 도전하라"는 ING생명 재정설계사 모집광고를 보고 도전해 1년 만에 목표를 달성했다.
주변에서는 "6개월 이상 못 버틸 것"이라며 싸늘한 눈길을 보냈지만, 갓 태어난 딸 앞에서 "성공한 아빠가 되겠다"고 맹세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는 "무엇보다 초기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 "여기에서 좌절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강한 신념으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앞으로 금융.보험 전문가로서 저와 인연을 맺은 고객님들과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의 흐름에 따라 수 많은 펀드 상품과
수 많은 재테크 기법을 연구하여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인생의 미래를 계획하고 실천 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는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언제라도 도움이 필요하시면 연락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MDRT 김상곤 (15기) 드림
첫댓글 보험업계의 설계사 중의 설계사, 프로설계사 의 꽃인 MDRT의 회원이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고생한 결과라 생각이 듭니다. 계속 정진하시어 꽃중의 꽃에도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선배님 파이팅!!! (인도 치토르에서)
멀리 인도에서 글을 올려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고국을 떠나 있으니, 고향 생각이 많이 나시겠네요. 부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누구나 부자가 되고자 하지만 누구나 부자가 되지는 않습니다. 부자들만의 특징은 구체적인 재무설계를 갖고 있으며, 저와같은 재정 전문가와 함께 한다는 점을 알려 드립니다. ^^
선배님 뵐 때마다 너무나 자랑스럽고, 작은 몸에서 큰 힘이 나오는지 존경 스럽읍니다. 선배님처럼 세계일주 한 번 해보는게 꿈입니다. 조언 부탁드립니다. 22기 김영호...
영호 후배~ 반갑네. 우선 새해를 맞아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해 보게나.우선 재무설계를 한번 해 드리고 싶네. 부담없이 시간만 내 주게나.난 지난해에 이어 금년에도 MDRT회원이 되었다네. 이젠 또 다른 꿈을 위해 정진하고 있네.
지난 2010년2월1일자로 저희 AIA생명의 꽃으로 불리는 SM으로 승진했습니다. 그동안 성원해 주신 선.후배 여러분께 이 공간을 통해 감사 드립니다. ^^
31년을 지낸 이곳 제주도...하지만 부친께서 갑작스럽게 뇌경색으로 입원하시게 되어 고향 광주에서 모시고 지내기 위해 저의 아내와 두째 아들을 광주로 보냈습니다. 저는 직장일로, 큰 애는 제주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있기에 아직 제주에 남아 있고 주말이면 광주를 다녀오곤 합니다. 우리 인생에 "나중"이라는 시간은 실제로는 없기에 지금 당장 모시고 지내야만 했습니다. 평생 후회없는 삶을 위한 저의 생각을 실천 했을 뿐입니다. 송별회를 해 준 15기 동기생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