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 끝에 ‘죄송합니다’란 메모와 함께 집세와 공과금을 놔두고 자살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은 지난 해 우리 가슴을 매우 아프게 했다. 한 사람, 한 가정에 대한 관심과 돌봄이 필요한 시대, 집집마다 안부를 살피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교회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달동네 착한 교회’로 소문난 옥수중앙교회 호용한 목사(59)를 만나 ‘사람을 생각하는 교회’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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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동 가파른 골목길을 오르니 언덕 위 낡은 주택 사이로 옥수중앙교회가 보인다.ⓒ뉴스미션 |
집집마다 안부 묻고 찾아보는 나눔사역 ‘특별해’
60년대 도시 빈민이 모여살던 옥수동. 2년 전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고급 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섰다. 고층 아파트가 둘러싼 옥수동 가파른 언덕에는 떠밀리듯 내쳐진 고단한 이웃들의 삶이 남아있다.
낡고 오래된 주택이 밀집한 언덕 한 곳에는 옥수중앙교회도 자리하고 있다. 40년 세월 이곳을 지켜오며 달동네 이웃들의 쉴 곳이 되어주었다.
14년 전 호용한 목사는 이 교회에 2대 담임목사로 부임해 왔다. 150명 남짓한 성도 대부분이 가난한 이들이었다.
“심방을 해보니 모두들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었어요. 가난했지만 신앙만큼은 뜨거웠죠. 그 때는 다들 똑같이 어려웠는데 지금은 이 동네도 잘 사는 사람, 못 사는 사람 빈부차가 커진 모습이에요.”
그런 환경 때문이었을까. 옥수중앙교회의 이웃에 대한 관심과 나눔은 자연스러웠다.
“부임하고 3개월 지나서 한 권사님 팔순 잔치에 갔었는데 권사님이 목사님 자녀들도 있으니 생활에 보태 쓰라며 2천만 원을 주시는 거예요. 이걸 어떻게 쓸까 하다가 교회에 장학기금으로 내놨죠. 그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그렇게 분위기 조성이 됐어요.”
이 일을 시작으로 호 목사는 심방을 갈 때마다 교인들이 담임목사에게 도서비 명목으로 쥐어주는 5만원, 10만원을 차곡 차곡 모아갔다. 1,500만원이 모였다.
“일당 5만원 일용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심방만 가면 그렇게 헌금을 내놓는 거예요. 이걸 쓰지 않고 모으니 1,500만원이더라고요. 이것도 장학기금으로 내놔서 총 3,500만원이 우리 교회 나눔운동의 씨드머니가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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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필품 상자를 들고 지역 주민을 방문한 호용한 목사 |
호 목사의 결단에 감동을 받은 교인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뜨거워진 마음으로 헌금을 하고 전도를 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자’는 운동이 교회 안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교회는 300개 가정에 쌀을 나눠주고,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을 위해 급식비를 내놓고 옥수동과 금호동에 도서관을 운영했다. 가난 때문에 밥을 못먹고, 공부를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게 호 목사의 생각이다.
“쌀 나눠주는 날은 동네 골목 골목마다 손수레를 끌고 다니는 노인들을 볼 수 있어요. 얼마 전 일어났던 ‘송파 세 모녀 사건’ 있죠? 우리 동네에선 일어날 일이 없어요. 교회가 이 동네 가정들을 다 아니까요.”
요즘 빈번하게 발생하는 독거노인의 고독사도 이 동네에선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옥수중앙교회의 가장 큰 사역 중 하나로 자리잡은 ‘365일 사랑의 우유배달’이 매일 집집마다 방문해 그들의 안부를 묻기 때문이다.
“총 250가정이 매일 우유를 받고 있어요. 우유가 3개 이상 쌓이면 그 집을 방문해요.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실제로 혼자 돌아가신 분이 있었는데 우유 배달로 발견한 일도 있었어요.”
옥수동의 20개 장애우 가정도 교회가 돕는 대상 중 하나다. 호 목사는 교역자들과 성도들과 함께 격주로 10개 가정씩 방문한다. 쌀, 라면, 세제, 휴지, 비누 등 필요한 생필품을 가져다 채워준다. 한 가구당 5만원 상당으로, 가장 질 좋은 제품으로만 구매한다.
호 목사는 한 장애우 가정을 이야기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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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용한 목사(59)ⓒ뉴스미션 |
“척추를 다쳐 몸져 누운 이가 있는데, 당뇨로 두 발이 썩어들어가요. 아들 둘이 있지만 능력이 없어 돈을 못벌고 정부 지원도 못받는 형편이고. 늘 사람이 그리워 우리가 가기만 하면 이야기를 많이 해요. 교회를 안다녀본 분이어서 기도를 해줄까 물어봐요. ‘하나님 아버지’만 꺼내도 우시는데, 그런 분들 보면 가슴이 막 뜨거워질 수 밖에 없죠.”
옥수중앙교회의 이러한 사역들은 10여년이 지나도 멈춘 적이 없다. 지금은 나눔에만 연 1억 5천만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365일 우유배달’만 해도 7천만원이다. 경상비 등 교회 재정과 별도로 관리되는 이 기금은 나눔을 위해 내는 장학헌금만 따로 모은 것이다.
“무조건 ’들어온 건 다 쓴다’는 방침으로 해요. 장학헌금으로 들어온 것은 하나도 저축하지 않고 매년 다 써버려요. 그럼에도 늘 모자라지 않고 채워졌어요. 교회 안에서 쓰는 돈은 최대한 줄이고 이런 데 쓰는 거에요. 우리는 사택, 사무원, 사찰이 없어요. 경비 절약해서 이웃 돕기에 쓰자는 거죠.”
지금은 나눔 잘하는 ‘착한 교회’로 소문나 있지만, 호 목사는 그냥 해오던 일을 해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뭔가 ‘큰 의식’(?)을 가지고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에요. 하다 보니 계속 꾸준히 해온 거고. 요즘 들어 이런 사역이 주목을 받는 건 시대적으로 필요한 일들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지만, 사회를 평균케 하는 일을 교회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혼 구원이 가장 큰 목적이지만, 빚진 마음으로 조건 없이 나누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