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가리 - 그 꽃과 씨방
흔한 식물이지만 한방에서 귀한 약재로 쓰이는 박주가리의 꽃말은 '먼 여행'이다.
긴 표주박처럼 생긴 울퉁불퉁한 열매는 가을이면 익어 저절로 갈라지는데, 박이
쪼개졌다하여 '박쪼가리'가 되었고 이것이 '박주가리'로 변했다고 하는데, 글쎄다.
12월 28일(일), 흐리고 바람이 부는 날이지만 오후 시간에 카메라를 메고 집을
나섰다. 참 오랜만의 출사다. 걷고, 타고, 생각 나는 데로 향하는 ..........
지난 겨울에는 엄동설한이지만 눈 속에 핀 양지꽃을 본 적이 있었다(아래 사진).
혹시 이번에도 햇볕 좋은 곳에서 곱고 부드러운 꽃잎을 볼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돌아다녔지만, 금년 12월 날씨는 몹시도 매워서 양지바른 곳에서도 야초들의 푸른
기운을 찾을 수 없었고, 검푸르게 얼어붙은 것들만 눈에 띌뿐이었다.
한겨울에 핀 양지꽃, 2014. 1. 20. /불암산에서
한겨울에 야생화를 만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오늘 박주가리 씨방주머니(열매)가 터지면서 그 갓털(관모)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오랜 동안 관찰할 수 있었다.
박주가리의 꽃말은 '먼 여행'이라 하는데 아마, 그 갓털이 바람에 멀리 날아가
떨어지면서 번식하기 때문에 지은 말인 것 같다.
박주가리 씨방 주머니가 절로 터지지 않는다면 아마 그 종은 멸망할 것이다.
좀 시기가 늦은 것 같지만, 그 주머니가 열리면서 그 속의 갓털들이 씨앗을
한개씩 달고 쏟아질듯 터져나와 솜털처럼 뭉쳐 있는 모습은 아름다움을 넘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깨끗하고, 순결한 표상이 아닐런지.........
문득 삼독(三毒)에 쪄든 내 모습이 비추어졌다.
박주가리 넝쿨이 높이 감고 올라가려는 것은 자신의 종자를 더 멀리 퍼뜨릴려는
이유에서일 게다. 묘한 연기로 오늘이 택해지고, 내가 볼 수 있는 그 시간에
갓털들은 '먼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오늘이 그들에게 길일(吉日)이었으면 좋겠다.
모두들 아름다운 인연을 만나 싹 트고, 뿌리 내리고, 꽃 피우고, 그로 인해
탄생한 백결한 천사들이 하늘을 나르며 춤추는 그런 예덴동산이 만들어졌으면
참 좋겠다.
박주가리 갓털
원죄 없는 영혼
처음 세상에 질겁하며
모태를 붙잡는다.
그 가냘픈 손으로
헤어져야 한다.
떨어져야만 산다.
그 외침이 들릴 리 없다.
찬바람은 사정없이 몰아쳤다.
힘에 겨워 지쳐
여린 손가락이 스르르 풀리면서
순간, 가는 비명이 허공을 가른다.
이젠
경계를 넘었다.
스스로 받아들이고(受)
행(行)하는 세계로.
원죄 없는 영혼의
원죄 없는 삶
원죄 없는 새 생명의
길을 찾아서.
글, 사진 / 최멜라니오. 2014. 12. 28
박주가리는 참 생명력이 강하여 어디에서도 잘 자라며, 그 줄기나 잎을 자르면
우유 같은 액이 나와 어릴 적에 그 잎을 따서 가지고 놀기도 했다.
박주가리 꽃(사진/ 2014. 8. 6. 불암산에서)
박주가리 씨방. 씨방 주머니가 벌어지면서 그 속의 갓털이 바람에 날려 퍼져가는 모습.
(사진/ 2014. 12. 28. 별내면에서)
갓털이 낭아초 가지에 걸렸다.
하지만 언젠가 떨어져 발아할 거라 믿는다.
* 박주가리
산과 들에 자라며 줄기는 3m가량 된다. 넝쿨식물로 다년생이다.
줄기와 잎을 자르면 하얀 젖 같은 즙이 나온다. 잎은 마주나며 잎끝은 뾰족하나
잎밑은 움푹 들어가 있다. 잎가장자리는 밋밋하며 잎자루가 길다. 꽃은 통꽃으로
엷은 보라색을 띠며 7~8월 사이에 잎겨드랑이에서 총상꽃차례를 이루어 피는데,
별 모양의 5갈래로 깊게 갈라진 꽃부리 안쪽에는 연한 흰 털이 촘촘하게 나 있다.
열매 속에 들어 있는 씨에는 흰 솜털이 깃털처럼 달려 있다.
봄에 어린줄기와 잎을 따서 삶은 다음 나물로 먹으며, 한방에서는 가을에 열매를
따서 말린 것을 나마자라고 해 위장을 튼튼하게 하는 데 쓴다. 잎에서 즙을 내어
종기에, 혹은 뱀이나 벌레에 물린 데 바르기도 한다.
또 정액, 골수, 기혈을 보하고, 산모의 유즙분비에 도움을 준다. /브리태니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