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
정두환의 음본세-2
시민 모두가 예술가인 도시를 꿈꾸며...
정두환 (문화유목민)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Jeder Mensch ist ein Künstler.) 이는 독일의 예술가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 1921-1986)가 한 말이다. 그는 ‘사회적 조각(Social Plastic)’이라는 확장적 예술 개념을 이야기하였다. 그는 사회 전체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예술가적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럼 “예술은 무엇일까?” 학문적 의미나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일상에서 예술은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필자의 답은 간단하다. “지속적인 물음이다.” 대상을 두고 끊임없이 솟아나는 물음이 일어난다면 그것이 예술이다. 이는 근원적인 질문을 통해서 나타난 표상이 예술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자문자답한다. 이러한 현상을 보다 근원적인 문제로 확대해 볼 수 있는 상황을 우리 사회가 만들어 준다면 모든 사람은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예술가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신과 이를 둘러싼 주변 사회의 영향력으로 이루어진다. 책을 볼 수 있는 환경, 산책할 수 있는 공간, 무엇보다도 생각의 힘을 키울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이러한 여유를 찾고자 하는 마음 등 여러 가지가 함께하여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생활하는 도시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다시 요제프 보이스의 이야기를 잠깐 하겠다. 그는 ‘7,000그루의 떡갈나무 심기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나무와 더불어 현무암을 나란히 두었다. 무슨 의미일까? 떡갈나무 한그루와 현무암 하나가 나란히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의미는? 시간에 따라 성장해 나가는 떡갈나무와 변하지 않는 돌의 상관관계를 통해서 우리에게 하고픈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결국, 또다시 질문으로 돌아온다. 예술이 추구하는 근원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좋은 질문이든 그렇지 못한 질문이든 우리는 끊임없는 질문의 연장선에서 살아가고 있다.
부산은 예술하기 좋은 도시다. 바다와 산 그리고 강이 어울려 있는 천혜의 도시다. 그렇지만 과연 예술하기 좋은 도시인가? 도시가 긴 일자형으로 뻗어있어 산을 찾기는 비교적 수월하지만 바다는? 강은? 물론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어느 도시보다도 좋은 환경임은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공연장과 미술관, 개인 갤러리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다. 하지만, 불편한 대중교통으로 개인 자동차를 이용하여야 할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황이 이러니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운전으로 보내는 시간 속에 사색할 수 있는 생각과 시간, 마음의 여유는 멀어진다. 여기서 필자는 새로운 제안을 하나 하고자 한다.
현재 공사 중인 부산오페라하우스에서 부산시민회관까지는 약 십리 조금 넘는 4.5Km의 거리다. 대략 걸어서 가면 1시간 정도의 거리가 되는 것이다. 이 길을 떡갈나무든 플라타너스 나무든 아니면 부산광역시의 시목(市木)인 동백나무든 한 시간을 걸어도 다 못 볼 만큼의 나무 길을 조성한다면 부산오페라하우스에서 부산시민회관으로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질까?
나무숲 거리를 걸어가면서 만나는 부산 시목 동백꽃은 3번 핀다고 하지 않는가! 나무에서 한번, 떨어진 거리에서 한번, 나의 가슴에서 한번, 이러한 꽃을 부산시민 모두의 가슴에 다시금 꽃 피울 수 있다면 300만송이가 넘는 동백꽃이 시민들의 가슴에 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부산시민회관과 부산문화회관도 십 리 정도의 길이며, 부산국제아트센터에서 부산시민회관까지도 십 리 정도의 길이다. 결국, 도심 곳곳에 생각하며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문화 활력소로 자리 잡을 것이다. 도심 속 나무 사이 길을 걷다가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걸으면서 던지는 수많은 질문이 도시를 예술문화로 풍요롭게 살찌울 것이기 때문이다.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를 단계별로 나누어 매슬로의 욕구단계설(Maslow's hierarchy of needs)을 만들었다. 제일 기본이 되는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에서부터 ‘안전의 욕구(safety)’, ‘애정/소속 욕구(love/belonging)’, ‘존중의 욕구(esteem)’ 마지막 다섯 번째 ‘자아실현 욕구(self-actualization)’까지 이중 ‘자아실현의 욕구’에 ‘심미적 욕구’가 포함되므로 예술 행위도 있다. 이러한 학설에 비추어보아도 도시가 더욱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아실현’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를 조성하여야 한다. (여기서 단계별은 한 단계가 끝나면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만은 아니다.) 최종 단계인 ‘자아실현’은 모든 사람이 꿈꾸는 것이며 이는 스스로의 만족도와 사회의 신뢰도를 높이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최고의 영역이다.
우리가 상상한다는 것은, 꿈꾸는 세상이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같은 꿈을 꿈꾸는 세상은 없을 것이나, 많은 수가 동의 할 수 있는 세상은 있다. 이러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힘은 다수의 동의와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문화예술이 시민들과 먼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예술진흥법에 “문화예술이란 문학, 미술(응용미술을 포함한다),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演藝), 국악, 사진, 건축, 어문(語文), 출판 및 만화를 말한다.”고 제2조에 정의하고 있다. 사람들이 이중 어느 한 가지라도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이 있는가? 결국 읽고, 쓰고, 말하는 것부터 놀고, 즐기는 행위가 문화예술인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읽고, 더 잘 쓰고, 더 잘 말하며, 더 잘 놀고, 더 잘 즐길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더’라는 단어다. 타인과 비교하는 ‘더’가 아니라 자신에게 물어보는 힘, 스스로 다지는 힘, 이러한 힘과 여유를 만들어 주는 것이 공동체를 이루는 우리의 몫이다.
그럼 이러한 일들을 언제, 어디서, 누가 시작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이러한 일은 누가 먼저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먼저 지금부터 바로 시작하는 것이다. 길을 먼저 걷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같이 해결하자는 토론의 장을 만들어 함께 생각하고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나 지역사회는 이러한 일들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시민들과 더불어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면 된다. 여기서 보다 발전적인 의견이 도출되면 시민들과 더불어 시행하면 된다. 하지만, 여기서 개인별 생각과 여건이 다르다는 이유와 다양한 관계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이권들이 발전 단계별 발생하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워진다. 모두가 동의하는 세상은 없다. 그렇기에 다양성을 인정하는 예술 교육과 예술 현장이 필요한 것이다.
문화예술은 다양성과 창의성을 먹고 자라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다양성과 창의성을 인정하는 사회. 이곳에는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감과 동시에 타인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것도 인정하는 사회. 이러한 세상을 우리는 원하는 것이다. 시민 모두가 예술가인 도시. 이러한 도시가 되면 다양성과 창의성은 서로 존중하며, 존중받게 될 것이다. 지금 바로 도시를 걷는 것부터 시작하자. 두 다리로 부산 곳곳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도시부터 만들자. 이곳이 예술이 살아있는 현장이요, 시민이 예술가가 되는 현장이다. 거리의 예술가들과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출 수 있는 도시, 또 다른 공간에서는 열띤 토론이 열리는 공간. 나무숲 사이에서 만나는 도심의 공간을 상상해보라. 이 얼마나 멋진 현장인가!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Jeder Mensch ist ein Künstler.)라고 외친 요제프 보이스는 다양성과 창의성을 존중할 수 있는 시민들의 내재 된 힘을 보았을 것이다. 시민 모두가 예술가인 도시 우리 부산에서부터 시작하자. 시민 모두가 예술가인 도시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