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예수께서 겟네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한 시라도 깨어있을 수 없냐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할 수 있다, 없다를 말할 때는 보통 “뒤나마이”를 사용하는데,
이 부분에서는 이스퀴오(ἰσχύω) 동사를 사용했다.
뒤나마이가 능력 자체를 말하는 어감이라면,
이스퀴오는 할 힘, 기운을 말하는 느낌이다.
저자가 제자이거나 직접 그 영향을 받은 마태와 마가에서는 이 표현을 사용하였다. 누가에는 이 동사가 나오지 않고, “슬픔으로 인하여”라고 제자들이 잠든 이유를 설명한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은,
우리가 흔히 그러하듯이, 예수께서는 당위를 위해 제자들을 몰아 세우고 “성취”를 지향하는 분은 아니셨다.
밥도 못 먹고 다니는 것을 안타까이 여기시고(막 6:30-31),
또한 슬픔 때문에 잠든 제자를 측은히 여기셨던 분이시다.
우리말에서 읽는 것처럼 책망의 분위기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슬퍼하다가 지쳐 잠들어 버린, 제자들을 향해 분노와 책망만을 가지셨던 것은 아니기에,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이기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말이다.
한 시라도 기도할 수 없냐고 물어보심에서,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리는 제자들을 이해하시고,
그들을 위하시는 예수님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