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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64동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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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동기회 알림방 스크랩 성태는 착한 애였다.
forever 추천 0 조회 87 16.09.06 22:46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나는 성태와 봉원동에 같이 살며 이대부속 중고등학교에 같이 다녔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곤 단 둘이 서강대학으로 갔다. 그땐 봉원동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없다 해서 반시간 정도를 걸어 다녔는데 성태는 학교가 끝난 후에는 친구들과 당구도 치고 술도 마시곤 했다. 내가 집으로 먼저 오면 저 혼자 걸어 오는게 싫어서 나한데 당구를 가르쳐주곤 "야 너 참 잘친다. 소질이 있다" 고 추켜세워줬다. 학교 앞 주점에도 끌고 들어가 막걸리를 시켜주기도 했다. 나는 학교를 일찍 시작해 같은 반 애들보다 두살 정도 어렸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만 17살. 17살 아이가 술집을 드나들어도 대학생이어서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었다.


집안에 술담배를 하는 어른이 없고 교회에서 그런건 불량배들이나 하는거라고 배워서 그걸 하는 애들을그리 좋게 보지 않았는데 성태는 애가 나빠서 그런게 아니고 워낙 순진해 친구들이 하는건 다 좋은 거라고 생각해 그런걸 빨리 배웠다고 생각했다. 성태는 항상 능력보다 너무 마시고 "아그그 아그그"하며 애를 먹곤 했는데 한번은 대낮부터 마시고 이대 입구에서 뻗어서 지나가는 이대생들이 킥킥 웃고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다시는 술을 마지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가 저녁이 되니 "다시는 '많이' 마시지 않겠다"고 말을 바꿨다.


성태가 대학을 다니다 군대를 가게되어 걔네 집에 갔더니 역시 같은 동네에 살던 정호와 몇 친구들이 빼갈 한되병을 마시고 있다가 한두명씩 나갔는데 나는 반병 이상 남은 빼갈을 성태 작은 외삼촌과 다 마시고 일어났다.


성태가 군에서 돌아와 복학했을 때 나는 졸업하고 입대해 자주 보지 못하게 됐다. 그후에 카나다로 이민을 가서 연락이 끊겼다. 내가 76년에 무작정 도미해 디트로이트의 가발 가게에 다닐 때 가게 주인 조 사장의 부인이 한국에 있을 때 이대부속 유치원 선생이었다고해서 성태 어머니를 아냐고 했더니 물론 잘안다고 하며 전화 번호를 줬다. 토론토에 살고 계셨다. 성태 어머니를 통해 앨버타 주의 칼가리에 사는 성태의 전화 번호를 받고 통화를 했다. 얼마후 토론토에 어머니를 뵈러 온다고 해서 거기 가서 만났다. 작은 외삼촌도 거기 계셨다. 성태는 나를 만나더니 하는 말이 "그래 감회가 어떻냐?" 감회란 말을 그렇게 쓰는게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반갑다는 표현을 그렇게 하는것이려니 생각했다.


성태가 사는 곳은 카나다 로키산맥외 관광지라서 캠퍼가 많이 쓰이는데 캠퍼 수리하는 곳에서 일한다고 했다. 그후에 미국의 7-11과 같은 편의점을 부부가 운영한다고 했다. 카나다인 부인 Judi와의 사이에 Patti라는 딸이 있었고 나중에 딸 Cori를 하나 더 낳고 세번째로 아들 Kevin을 낳았다.


정호가 아틀란타로 이민을 온 후에 (79년이나 80년 정도 였을까) 차를 몰고 디트로이트로 왔고 성태는 직장을 바꾸는 도중이라며 애를 배서 배가 산더미만한 Judi와 함께 칼가리에서 그 먼길을 차로 왔다. 봉원동 세명이 참 오래간만에 한잔 나눴다. 성태는 그때도 술을 너무 마시고 "아그그 아그그"하고 고생을 해 그버릇 개 못준다고 했다. 며칠후 정호는 아틀란타로 돌아가고 성태는 어딜 갔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다시 들려 또 만났다.


다시 집에 돌아가 친구가 석유회사에 일자릴 얻어줘 drafting을 한다고 했다. 한창 기름값이 오를 때라 대우를 잘 받있을 것 같다. 2004년 고교졸업 40주년 기념으로 동창들이 하와이에서 모였을 때에 Judi와 같이 왔는데 아직도 그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성태가 있는 칼가리엘 한번 가봐야지 하다가 40년이 지났다. 거길 가려면 Salt Lake에서 비행길 갈아타야하는게 성가셔 가게 않됐다. 그런데 엇그제 동창 카톡방에 사망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뭔가 잘못 된거려니 생각하고 카페 동창록에 나온 번호로 전화를 했는데 엉뚱한 집이다. 구글 검색을 하니 그곳 신문의 부고가 뜬다. http://www.legacy.com/obituaries/calgaryherald/obituary.aspx?pid=181218279 역시 성태는 갔다. 어머니 안희옥 선생님은 2013년에 별세하시고 성태는 석유회사에서 35년을 일하고 2015년에 은퇴했다는 내용이다. 패티는 뱅쿠버에 살고 코리와 케빈은 칼가리에 살고 희정 이모도 칼가리에 살고 희상 이모는 토론토에 산단다. 손주 얘긴 없는걸 보니 애들이 결혼을 안했나보다.


성태야 잘 가라.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이젠 편히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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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6.09.08 12:01

    첫댓글 성태? 누구인지 우리 동기
    명단에 없는데...
    친한 친구의 죽음앞에
    다시한번 인생의 허무함을 느꼈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고인의 명복을 나도 빌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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