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이 카카오에 통합되면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카카오는 한 마디로 말해서 돈이 되면 택시기사들 등을 처도 된다는 식이고 돈이 안되면 처다볼 필요도 없다는 식의 경영을 하는 것 같다.
다음 블로그 서비스를 종료해 버린 것도 그 일례이다.
그런 식으로 해서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를 하루 아침에 잃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면 앞날이 내다 보인다.
다음 블로그에서 건져온 글 하나를 옮겨 적어 본다.
아비멜렉과 입다
사사기 8장 후반부터 등장하여 9장 전체를 차지한 아비멜렉의 기사와 10장 후반부터 12장까지에 등장하는 입다의 행적은 비교할 부분이 있다.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첩이 낳은 서자로서 출신지인 세겜 사람들을 선동하여 비정상적으로 집권하고 독재를 감행하면서 이복형제 70여명을 참살하는 등 폭정을 일삼다가 반란이 일어나고 여인의 손에 죽음을 당하고 마는 비뚜러진 인간상의 표본이다.
입다는 길르앗이 기생에게서 낳은 서자로서 형제들에게서 쫒겨나 잡류들과 어울리다가 암몬과의 싸움에서 이스라엘이 밀리자 본가 사람들이 다시 찾아 군권을 잡고 암몬을 물리친 후 사사의 직분을 잘 감당한 훌륭한 위인으로 나온다.
입다는 기생의 아들이고 형제들에게 극심한 차별을 받으면서도 사람이 흐트러지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길르앗은 므낫세의 장자인 마길의 아들로서 므낫세 지파의 유력한 인물이며 꽤나 넓은 땅을 가진 사람으로서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인데 입다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버지의 신앙과 민족에 대한 책임감 등을 본받으려 했으리라 추측된다.
입다가 유랑하는 동안 잡류들과 어울려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이 주목을 끄는데 우선 잡류가 무엇인지 따져 보아야 한다.
잡류는 다른 한글 성경에서는 건달패 비적 부랑자 등으로 번역되고 영어성경에서는 정통적인 번역에서는worthlessman 등으로 번역하기도 하였으나 NIV번역에서만 adventurer라고 하여 긍정적 의미로 번역되어 있고 그밖에 독일어 성경은 상실한 사람(Loseleuter)이라는 의미로 번역하고 있다고 한다.
입다가 거느린 사람들이 문제아들이었다면 민족적 위기를 맞아 쫒아내었던 입다를 다시 부를 상황이었을까 의문이다.
입다는 건달패들의 우두머리가 아니라 입다처럼 불우한 환경을 딛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도자였던 것이다.
입다를 따르는 사람들의 바탕이 그러하다면 입다의 인물됨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입다는 싸움만 잘 하거나 용맹만 믿고 나서는 사람이 아님을 성경은 잘 설명해 준다.
암몬사람들이 역사적 사실을 들어 자신들의 침략을 정당화하려 했을 때 입다는 출애굽에 대한 정확하고도 해박한 지식을 내세워 그들의 말문을 막는 것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요셉의 차자로서 야곱에 의하여 형인 므낫세의 장자권을 갖게된 에브라임은 므낫세에 대하여 항상 우월성을 주장하여 왔는데 기드온이나 입다 모두 므낫세 지파에 속하고 이들의 성공에 대하여 에브라임이 각각 도전해 온 것도 특이하다.
기드온의 승전에 대하여 에브라임이 시기심에서 도전을 해 오자 기드온은 에브라임이 우월함을 인정하여 무마시켰는데 입다의 승전 후에도 에브라임이 다시 시비를 걸어오자 입다는 에브라임을 과감히 쳐 부수어 버린 것을 볼 때 입다는 결단력 있는 지도자라고도 여겨진다.
입다는 아비멜렉과 달리 출신상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극심한 차별과 소외를 슬기롭게 이겨내 마침내 구국의 위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정상적으로 활약한 위인들보다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면 인간적 관점에서 모자라는 것 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들어 크게 사용한 사례가 많다.
다윗왕도 형제들 중 가장 비천한 처지에 있다가 왕이 되었는데 입다와 유사한 행적이 발견된다.
다윗왕이 사울왕에게 쫒겨 다닐 때 그를 추종하던 무리들은 사울왕에게 핍박을 당하던 소외계층이었다.
결국 다윗왕이나 입다는 어려운 여건에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모아 강력한 집단으로 변모시켰고 민족적 영웅이 되었는데 이러한 배후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람이 처한 환경에 따라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고 만다는 상황론자들의 주장이 옳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환경을 극복하고 변화시킬 힘을 주신 것이다.
아비멜렉은 주어진 환경에서 마음까지 비뚤어져 결국 자신과 민족에게 큰 화를 가져온 반면 입다는 환경에서 나타날 수 있는 원한과 분노와 독기를 삭이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환경을 무릅쓰고 모두의 주목을 받는 사람으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사회적 소외계층이 늘어나고 그 자녀들의 앞날이 우려되며 빈곤의 대물림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우리 민족 위에 머무시는 한 그러한 소외계층에서 훌륭한 지도자들이 배출될 수도 있음을 믿고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 시대 우리 앞에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 위 말씀은 예전에 국회기도회 수요 예배에서 지형은 목사님이 전하신 말씀에 필자의 생각을 덧붙여 작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