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릴듯 말듯… 애간장 태우는 시간도 행복하여라
전남 광양 봄마중
중흥사 위쪽의 자그마한 저수지 중흥제. 주위를 둘러친 상록활엽수와 소나무의 초록빛이 드리워져 물빛이 더할 나위없이 곱다. 저수지 주변은 봄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이 저수지를 끼고 위쪽으로는 짧은 편백나무 숲길이 있고, 제방 아래에는 중흥사가 있다.
# 올해는 광양에 매화와 동백이 함께 온다
외지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광양 사람들이 첫손으로 꼽는 제 땅의 명소가 바로 백운산의 지맥인 백계산 자락의 옥룡사지다. 신라 말 풍수지리 대가로 일컬어지는 도선국사가 35년 동안 머물다 입적했다는 절집 옥룡사는 터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지만, 도선국사가 절집을 지으면서 땅의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심었다는 동백나무는 1000년의 시간 동안 대를 이어가며 뿌리를 내리고 서있다.
주춧돌이 흩어진 옛 절집으로 향하자면 울창한 동백나무 숲을 관통해야 한다. 숲은 뒤틀린 동백나무 둥치와 무성한 잎으로 어둑하다. 풍수를 읽어냈다는 도선국사가 땅의 기운을 보(補)하려고 심은 것이라니 동백나무 숲에서는 왠지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예년보다 매서웠던 지난 겨울의 추위 탓인지, 올해는 이곳의 동백꽃 소식이 유독 늦다. 꽃망울은 맺혔으되 붉은 기운은 단단하게 닫혀있다. 간혹 하나 둘 성급하게 꽃을 틔운 것도 있었지만, 그것들도 붉은 기운이 그다지 선명하지 않다.
동백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렇겠지만, 이곳 옥룡사지가 가장 화려한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때는 봄의 한가운데 꽃이 떨어질 무렵이다. 그때쯤이면 동백의 꽃모가지가 툭툭 떨어져 길을 흥건하게 붉은빛으로 적신다. 화려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처연하기도 한 그 모습이 가히 동백숲의 백미의 풍경이라 할 수 있겠다. 이즈음 옥룡사지에서는 울창한 동백숲 사이로 관람데크를 놓는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는 이달 말쯤이면 마무리된다.
아마도 올봄의 옥룡사지 동백소식은 섬진강변 매화와 함께 당도할 모양이다. 매화가 한창일 즈음에 이곳의 동백도 절정의 풍경으로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올봄에 봄꽃 소식을 좇아 광양을 찾게 된다면, 고결한 순백의 매화에다 비장한 선홍색 동백꽃의 맛까지 함께 느낄 수 있겠다. 말 그대로 ‘금상첨화’다.
맑은 물빛을 내려다보고 서있는 옥룡면 동곡리의 학사대. 조선 중종 때의 사림파 신재 최산두가 10년 동안 은거하며 공부를 했던 곳이다.
# 중흥사 그리고 고운 물빛과 짧은 편백나무 숲길
옥룡면에는 아담한 절집 중흥사가 있다. 건물은 근래들어 새로 지은 것이라 옛맛은 전혀 느낄 수 없지만, 절집의 내력은 깊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통일신라 때까지 짚을 수 있다. 1000여년의 내력을 지닌 절집 마당의 고색창연한 삼층석탑이 그 시간을 증거한다. 그 오랜 시간에도 석탑의 몸돌에 돋을새김된 사천왕상이 또렷하다. 석탑 곁에는 쌍사자가 받치고 선 석등이 서있다. 말끔한 화강석 몸돌과 경박한 자세가 한눈에 봐도 요즘 만든 모조품이다.
애초에 이곳에 국보로 지정된 쌍사자 석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석등이 본래의 자리를 잃고 이리저리 떠돌던 내력이 기구하다.
석등은 일제강점기 대구 사는 일본인 부자가 집 정원에 두려고 면사무소 앞까지 가져다놨는데, 관청에서 이를 제지하고 도지사 관사로 옮겼다가 1937년쯤 서울로 가져갔다. 이어 이승만 정권 시절에는 경무대 안으로 가져갔다가 1960년에는 덕수궁으로, 1972년에는 다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했다. 그러다가 1990년 8월 국립광주박물관까지 가게 됐다. 사자가 등을 이고 선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감탄을 금할 길 없다는데, 석등은 이즈음 박물관이 공사중인 관계로 박물관 수장고에 분리 보관중이어서 오는 9월 이후에나 볼 수 있단다.
사실 중흥사에서는 절집보다 절집 위쪽의 자그마한 저수지 중흥제와 그 저수지를 끼고 있는 편백나무 숲이 더 매혹적이다. 저수지의 크기는 자그마하지만 워낙 물빛이 고운데다, 물가에 둘러선 나무들이 고요하게 수면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모습이 더할 수 없이 낭만적이다. 절집이 제방 아래 자리잡고 있어 물빛 너머로 중흥사 팔작지붕의 기와가 걸쳐진다. 저수지를 끼고 중흥산성 옛터가 있는데, 그 너머로 이어진 편백나무 숲길이 제법 운치있다. 하늘을 찌를 듯 선 편백나무 숲은 좋긴 하되 너무 짧아 아쉬운 길이다.
# 500리 섬진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광양만. 그곳에서 만나는 시인 윤동주
광양을 섬진강으로만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새삼스럽겠지만, 광양은 넓은 만을 이루며 바다를 끼고 있다. 제철소가 들어서면서 잊어지고 말았지만, 한때 광양만은 전국 최대의 김 생산지로 이름을 날렸다. 광양만은 조선시대 김양식이 처음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묘비 비문을 통해 조선 인조 때 김여익이라는 사람이 당시에는 섬이었던 태인동 일대에서 김 양식을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산죽과 밤나무가지로 김 양식을 창안했다는데, ‘김’이라는 명칭도 김여익의 성에서 따왔다고 알려져 있다.
이제 더이상 광양만에서 김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대신 섬진강 500리 물길이 끝나는 강 하구 태인대교와 망덕포구 일대에서는 이른바 ‘벚굴’이라 불리는 강굴이 나온다. 굴껍데기가 어찌나 큰지 손바닥이 다 가릴 정도다. 큰 것은 웬만한 어른 신발보다 더 크다. 강굴은 봄이 제철. 이제 막 강굴잡이가 시작됐다. 다이버가 잠수해서 따낸 강굴을 까서 입에 넣으니 바다의 싱그러운 냄새와 봄의 향기가 입안에 가득하다.
광양에서 바다의 정취를 만나려면 진월면 망덕리 망덕포구 쪽으로 향해야 한다. 망덕(望德). 덕유산이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망덕포구 앞에는 소나무가 우거진 배알도가 있다. 섬이 망덕산을 향해 절하는 형상이어서 ‘배알(拜謁)’이라고 불린다. 가을철 전어로 유명세를 누리고 있는 망덕포구를 찾아가면 예기치 않게 ‘시인 윤동주’를 만나게 된다.
일제강점기이던 1941년 윤동주는 시집을 발간하려 했으나 일제 탄압으로 여의치 않게 되자, 자필원고를 절친한 후배 정병욱에게 맡기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일본 유학중 시인은 항일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검거돼 1945년 2월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그러나 시인의 유고는 마룻장을 뜯어내고 보관했던 후배에 의해 1948년 간행됐다. 이로써 ‘서시’ ‘별헤는 밤’ 등의 시가 담긴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빛을 보게 됐다. 포구에는 훗날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된 고 정병욱씨가 시인의 육필원고를 숨겨두었던 가옥이 남아있다. 포구 한쪽에는 윤동주 시인의 시비도 서있다. 광양=글·사진 박경일 2010-02-24
가는 길
수도권에서 가자면 여러 경로 중의 하나를 택할 수 있다. 대전-통영선을 타고 진주갈림목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광양나들목으로 나가도 되고, 호남고속도로 고창갈림목에서 고창-담양간 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다시 호남고속도로에 올라 순천을 지나 광양까지 가도 된다. 광양의 매화마을에서 매화를 보겠다면 행락객들이 붐비는 시간을 피해 섬진강변의 매화마을을 들르는 것으로 일정을 짜는 것이 좋겠다. 매화가 필 무렵이면 일대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오전에 서울을 출발한다면 첫날은 옥룡사지 일대를 돌아보고, 이튿날 오전 일찍 매화마을로 향하는 편이 낫다.
묵을 곳 & 먹을 것
광양에서 가장 깨끗한 숙소는 호텔 필레모(061-761-8700). 호텔 예약 인터넷사이트 등을 이용하면 아침식사를 제외하고 12만∼13만원에 묵을 수 있다. 광양읍의 그랜드모텔(061-761-3600)과 새천년모텔(061-762-8345) 등도 시설이 깔끔하다. 중마동과 광영동 일대에도 로비스힐(061-793-9932) 등의 모텔들이 즐비하다.
광양의 먹을거리라면 단연 광양불고기. 유배된 선비들이 백운산의 숯막에서 숯을 가져다가 구워먹었던 것이 유래가 됐다고 전한다. 보통 불고기와는 달리 국물없이 양념을 바른 쇠고기를 석쇠에 구워먹는다. 광양불고기 맛은 고기 질보다는 감칠맛 나는 양념과 숯맛이다. 가격은 식당마다 별 차이가 없다. 1인분에 1만3000원짜리는 호주산을 쓰고, 1만7000원짜리는 한우다. 매실한우(061-762-9178), 금목서(061-761-3300), 대중식당(061-762-5670), 삼대광양불고기집(061-762-9250) 등이 있다.
섬진강 옆 매화랜드 오세요
광양매화마을에 오시어 쉬어갈 곳이 필요하시거든 이곳에 한 번 들러 쉬어가시지 않으실런지요! 비가 잦은 어느날, 언제나 지나치기만 하던 그곳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이가 있어 그와 동행하여 담은 사진입니다. 흐린 날 담은 사진이라 그 곳의 아름다움이 흡족하게 담기지 않아 아쉽다. 섬진강의 고품격황토펜션 매화랜드(http://www.mhland.co.kr ) 홈에 들어가 보면 이런 인사말이 적혀있다. ''''섬진강의 아침 풍경이 아름다운 곳 - 매화랜드 - 자연의 품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 곳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질러 흐르는 섬진강을 따라 팔십리 드라이브길이 펼쳐지며, 화합의 다리라 불러지는 남도대교가 강을 사이에 둔 마을을 하나 되게 하는 정겨운 곳이다. 굽이굽이 마다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안개 낀 섬진강의 새벽. 백운산과 지리산의 맑고 영롱한 아침 이슬. 그곳에 은어와 참게가 살고, 잔설의 이른 봄 계곡마다 매화꽃 활짝피고 화사한 남녘의 햇살에 청매실이 익어가고 재첩이 사는 풍요로움의 땅. 아름다운 섬진강 곁의 매화랜드에서 자연이 주는 또다른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강선자 -전남 광양 매화마을 2011-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