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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상의 글 >
하나의 연잎으로...
박 아녜스 (경랑)
안산 초지성당
뚜렷한 동그라미는 아니라고 해도
하늬 연잎으로 머물고 싶다
비록 눈부신 꽃송이를 피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잎사귀로 남아 있고 싶다.
지리한 雨基에도 젖음이 없이
노상 몇 개의 구슬이나 굴리다가도
차오르면 정갈하게 비워 버리는
그런 겸허를 배우고 싶다.
하늘을 받쳐올린 오목한 그릇에는
구름이랑 별까지도 모두 보듬고
흔들리지 아니할 나날을 맞아야겠다
욕심일랑 빗방울마냥
그러다가
어느 날 다행스레도
잎사귀 가득 파란 하늘이 내려오면
구슬처럼 淸雅한 세 울음 속에
끝없이 비우는 몸짓으로 서 있고 싶다.
[성서형제회 여러분 활기찬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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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수원 화서동 본당
한 바오로 (민희)
“ 곧바로 ... ” ( 마태오 4, 22 )
❊ 묵상 : 우선, 언제나 늘 나와 함께 해 주시며 내 모든 것의 주인이신 아버지께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시기적으로 너무 다사다난한 가운데 혼란하고 산만한 나날을 보내고 있고, 또 어느새 내 안에 새롭게 다가오시려는 주님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대림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아침에 가난한 침묵을 허락하시어 들려주시는 말씀을 들어봅니다.
"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진다." (로마서 10,17 )
이 말씀이 바로 요즘 나의 묵상의 주제입니다.
특히 "침묵 중에 들음" 에 대하여~ 이제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마태오 4, 22)
이제까지 간절히 애원하며 많이 하셨던 이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못 들은 척 하고 핑계대고 미루어 왔었습니다. 거기에는 "배와 아버지를 버리는" 아픔과 십자가를 지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모든 것 주님께서 다 알아서 필요한 것 모두 주시고 이끌어주시리라는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과 확신"을 주셨기에, 이제 내 안의 주님께 조용히 응답해 드립니다.
"네, 주님을 따라 가겠습니다." 라고...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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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
❊ 묵상 :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큰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 분의 존재가 우리 눈으로 잘 볼 수 없는 태양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큰 빛이신 데도 불구하고, 감히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그런 높은 하느님이 아니신 누구나 볼 수 있는 그 가난한 빛을 지니셨음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이 세상은 너무도 어둡기에 빛을 볼 수 없다면 점점 더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오니, 결코 빛을 잃지 않게 해 주소서.
그 어두움을 이기는 빛의 현존의 증거인 참 평화를 제 마음에 내려주소서.
세상의 어둠으로 향하는 그 길에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할 때 닫혔던 눈은 열리고 비로소 빛을 볼 수가 있고 어둠을 이기게 하여 주소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자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라는 생명의 말씀을 살아갈 때, 빛을 잃지 않고 그 분이 기다리고 계시는 곳으로 잘 갈 수 있음을 마음 속 깊이 되새겨봅니다. 앞으로 주어지는 시간은 그 동안의 삶의 심판을 유예시켜 주시는 마지막 하루하루라 생각하며 내게 주어진 십자가로 나 자신을 녹이며 작은 빛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 분께 더 온전히 의지하며 살아보려 마음을 다잡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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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의 태양, 떠오르는 샛별, 영원한 빛이신 주님!
어서 오시어, 어둠 속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
❊ 묵상 : 잠시 침묵 중에 내 마음 안에 오시는 예수님의 자리가 어떤지 청소하듯 여기저기 살펴보며 준비하는 시간을 좀 가져보려 했습니다. 조금은 형식적이고 준비를 잘 못한 판공을 봤음에도... 지난 시간동안 내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직·간접적으로 부딪히는 세상의 온갖 어두움 때문에 많이 슬퍼하고 미움을 갖고 화를 내고 불평하며 지낸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중적으로 스스로는 주님의 말씀으로 위안과 힘과 평화를 얻으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전에는 막연하게만 느꼈던 - 내게 주어진 그 작고 큰 슬픔과 고통과 십자가가 있었기에 조금씩 더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갈 수 있고, 조금 더 가까이 따를 수 있고, 조금 더 닮아갈 수 있는 -- 것들에 대해 모두 나를 위한 것이기에 정말 감사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게 주어진 어둠이 있기에 빛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더 갈망하고 애타게 부르며 기다릴 수 있기에 내 마음에는 더욱 더 밝은 빛으로 오시게 됨을 확신하며 설래임과 기쁨과 희망의 벅찬 마음으로 찬미를 부르며 오시는 예수님을 마중 나가려 합니다.
" 주님, 어서 오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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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9주일
2011. 3. 6
마태 7, 21~27
♠ 복음 연구
* 21절 :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말로써의 고백은 행위의 고백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된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위이다. 신앙 고백이나 찬미의 말까지도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따라 실천하는 것이다. 모든 행위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에만 따라야 한다.
* 22-23절 : 심판 날에 예수님 앞에 나선 사람들은 예수께서 재판관이시며, 또한 판결을 내리셔야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사도들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 성령을 통해 예언을 하였고, 마귀를 쫓아내었으며, 기적을 행하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주님의 힘에 의존하여 "주님의 이름으로"행했다. 이러한 예는 베드로가 행한 치유에서 볼 수 있다.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가시오." (사도행전3, 6).
그러한 일들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심에서 교회에 봉사하기 위하여 행해진 일들이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지는 않았다. 선고는 놀라울 정도로 날카롭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예수님의 사자는 마땅히 주님의 사업만을 해야 한다. 즉 부활하신 하느님의 손과 팔이 되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사도들이 "당신의 이름으로"라든지 "예수의 이름으로"라고 말할 때, 항상 의미하였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사명에 몰두하셨듯이, 제자는 그분의 사자로서의 생활에 전념해야 한다.
* 24-27절 :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대담한 필법으로 두 가지 그림을 그려 보이신다. 하나는 슬기로운 사람이 바위 위에 지은 집이고, 또 하나는 어리석은 사람이 모래 위에 지은 집이다. 팔레스티나의 집은 돌과 진흙과 나무로 엉성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 지역은 숲이나 목초지가 없기 때문에 폭우가 쏟아지면 삽시간에 길 위로 급류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개천을 이룬다. 그 때 바위 위에 세워진 집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큰물이 집의 좌우로 들이닥칠지라도 기초를 흔들어 놓을 수 없다. 그러나 모래 위에 세워진 집은 모래를 씻어 내려가면 밑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하여 결국에는 무너져 버리게 된다. 예수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아서 심판 날에 안전할 것이다. 너무나도 냉혹한 묘사로 인해서 누구나 역사의 종말이 가져올 엄청난 파국을 연상하게 된다. 이러한 장면은 마지막 날의 가공할 재난에 대한 경고다.
♠ 복음 요약 : 지상 생활에서 사명을 받은 사람들은 주님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았고, 어떤 면에서는 주님을 배척하였으며 도덕적으로도 견실하지 못했다.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 이 말은 시편 6편 8절에 있는 말씀이다. 그들은 생명으로부터 갈라놓는다. 생명을 외면할 때 남는 것은 죽음뿐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심판이라는 사나운 폭풍우를 이겨 내기 위해 어디에 기초를 두어야 할 것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라는 오직 한 가지 유일한 목표만을 생각하며 자기의 인생을 구축한 사람만이 이러한 심판을 견뎌 낼 수 있다.
♠ 대화 방향 : ① 일상 삶 안에서 주님말씀에 기초를 두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 생활을 하고 있는지요?
② 매순간 주님께 의탁하며 말씀으로 살 때, 자신이 변화된 것은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 참고 문헌 : ▪ 신약성서 영적독서를 위한 마태오 복음 (성요셉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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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 1주일
2011. 3. 13
마태 4, 1~11
♠ 복음 연구
* 1-11절 : 예수께서는 세례를 통하여 성령을 받으셨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처음으로 예수님을 광야로 인도하신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세례자 요한의 메시아관과 맞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악마와의 대결에서 자신의 메시아 관을 시험해 보는 것이 문제이다. 그분은 세례자 요한이 선포한 하느님의 왕국을 기다리는 데에 순응할 수만은 없다. 구원은 가까이 다가왔을 분만 아니라, 당신 자신 앞에 현존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 예수께서 구원이시라면 그분은 필연적으로 지금 이 세상에서의 구원이어야 하는가?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들이 출애급 때에 받았던 그 유혹을 광야에서 다시 체험하신 것이다. 악마는 출애굽기가 전하는 대로 오래 전 이스라엘 백성이 굴복하고만 크나큰 유혹 앞에 예수님을 서게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신명기를 따라 그렇게 해야만 했던 바대로 유혹을 물리치신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신명기 8,3)
“주 너희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 (신명기 6,16)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신명기 6,13)
이전에는 실패로 돌아간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의 여정이 오늘 예수님 안에서 회복된다. 그분은 당신 앞에 놓인 선택 앞에서 자유로이 결정을 내리신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악마의 세 가지 대답에 신명기로써 대답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모세를 보여 주고 있다. 하느님의 백성이 굴복했던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유혹의 승리자인 새로운 하느님 백성을 탄생시킨다.
♠ 복음 요약 : 하느님께서 연약한 사람이 되신 것도, 사람이 받는 유혹을 똑같이 받으신 것도 하느님다운 선택이었다. 유혹자 사탄을 강압으로 누르지 않으시고, 사탄의 유혹을 견디며 물리치심으로써, 사람이 유혹에 넘어간 것을 갚아 주셨다. 전에는 사탄이 승리하였지만, 이제는 하느님께서 승리하셨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온전한 인간으로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심으로써, 모든 인간이 따라야 할 길이 되셨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히브 4,15).
예수님이 받으신 유혹은 우리가 일생 동안 겪는 유혹을 집약한 것이다.
♠ 대화 방향 :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승리하신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부활절 때마다 세례성사를 갱신한다. 우리가 유혹을 받았을 때 예수님처럼 성경말씀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곧바로 튀어나왔던 체험을 나누어 봅시다.
♠ 참고 자료 : ▪ 마태오복음서 해설 (시몽레가스 르프와트뱅 저 / 가톨릭 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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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 2주일
2011. 3. 20
마태 17, 1~9
♠ 복음 연구
* 1-2절 : 예수님이 엿새 뒤에 최측근인 베드로와 야고보, 그의 형제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 위로 올라가서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예수님의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이러한 변모를 목격한 제자들은 즉시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야훼 하느님의 영광을 본 것을 연상한 것 같다.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난 장면은 산봉우리에서 타오르는 불과 같았다고 했다. 또한 제자들은 시나이 산 위에서 하느님의 현존 속에 있다가 내려 온 모세의 얼굴이 빛나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변모를 보고서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현존을 체험했다.
* 3절 : 제자들은 구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변모하신 예수님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모세와 엘리야는 시나이 산 위에서 하느님을 체험했다. 엘리야는 죽지 않고 하늘로 바로 올려졌다. 랍비들의 전통에서 모세도 하늘로 바로 올려졌다고 한다. 이 두 인물이 다시 예수님의 변모가 일어난 높은 산에 등장한 것은 예수께서 그들처럼 천상에서 오신 분임을 드러낸다. 이는 모세와 엘리야가 그분과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말로 강조되었다. 그들의 대화는 실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천상적인 신분을 강조하기 위한 해설이라고 볼 수 있다.
* 4절 : 베드로 사도는 변모하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며 그분과 모세와 엘리야를 모시고 영원히 그곳에서 살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이어서 베드로는 세 분에게 각기 초막 하나씩 세워드리겠다고 제의했다. 이 제의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초막을 세워 하느님과 함께 살던 시절을 연상시킨다. 그들은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 시절이 재현될 것이라고 희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이 천상의 존재가 아닌데도 그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초막, 즉 영원한 행복을 이 지상에서 누리려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겪지 않았으면서도 영원한 행복을 탐하고 있었다. 더구나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에게 각각 초막을 하나씩 지어드리겠다고 말함으로써 하느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이 두 인물과 같은 부류로 취급한 과오를 범했다.
* 5절 : 베드로가 초막 셋을 세우겠다는 제의를 하고 있을 때 빛나는 구름이 내려와 그들을 덮고 구름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들려왔다. 구름은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한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와 구름의 등장은 세상종말이 왔음을 알리는 표징이다. 하느님은 구름 속에 임하여 예수님을 당신이 사랑하는 외아들로 드러내고 구원받기 위해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라고 명하셨다. 이는 모세나 엘리야가 ‘예수님의 수행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는 뜻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변모는 그분이 세상종말에 천상에서 누릴 영광을 이 세상에서 미리 잠깐 보여주는 사건이다. 고난과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예고하신 예수님이 하느님의 영광을 입으실 하느님의 아들이요 유일한 구세주이시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이에 대한 계시를 증언할 사명을 받았다.
* 6-8절 : 제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는 겁에 질려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댔다. 예수님이 와서 그들에게 손을 대셨는데, 이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하고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한 것이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제자들과 함께 있는 주님임을 드러내셨다는 뜻이다. 이어서 그분은 제자들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안심시키셨다. 그들이 눈을 들어보니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지고 예수님만 계셨다. 이제 그들은 정상적인 상황으로 돌아와서, 구원을 베푸시는 예수께만 순종해야 한다. 그분의 영광스러운 모습은 감추어져 있다가 그분의 부활 때 다시 나타날 것이다.
* 9절 : 예수님은 산에서 내려오면서 제자들에게 산 위에서 본 것을 당신의 부활 때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이 함구령은 변모를 통해 드러난 그분 신비의 뜻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써 구원사업을 끝내신 뒤에야 비로소 밝혀진다는 데 기인한 것이다. 부활 이전에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신분을 기적쟁이나 적군을 무찌를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로 오해할 위험이 있었던 것이다.
♠ 복음 요약 :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가시어 당신의 모습을 변화시켜 영광을 드러내셨다. 데리고 간 세 제자들은 당신의 증인으로 특별히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이 사건으로 제자들에게 당신이 천상의 존재임을 알리시며 부활할 육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셨다. 제자들에게 부활 체험을 미리 하게 하신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나라가 당신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신 것이다. 구약의 뛰어난 두 인물 모세와 엘리야는 구세주보다 먼저 오기로 되어 있는 선구자이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어 새로운 자유의 삶으로, 새로운 땅으로 인도한 예언자이다. 엘리야는 백성을 우상들로부터 끌어내어 새 삶을 시작하도록 하였다. 그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이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구세주이심을 알리는 표상이다. 구름이 덮여 있다는 것 역시 하느님의 현존을 알리는 표징이다.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 황홀하여 그곳에 머물자고 제자들이 간청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데리고 세상으로 다시 내려오신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켜 아름답고 황홀한 새 삶으로 데려가기 위해서이다. 그리스도인이란 자기 행복에만 머무는 이가 아님을 보여주신 것이다. 산에서 내려와 예수님께서 가신 길은 십자가에 처형되는 수난의 삶이었다. 산에서 내려온 제자들은 새롭게 변화되었다.
♠ 대화 방향 : ① 지금까지 이어 온 신앙생활동안 그리스도를 체험한 적은 언제였는지 생각해 봅시다.
②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나 자신과 세상 행복을 위해 새롭게 변화된 삶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 참고 문헌 : ▪ 말씀의 등불 (가톨릭 신문사)
▪ 말씀의 두레박 (생활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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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 3주일
2011. 3. 27
요한 4, 5~42
♠ 복음 연구
* 5-6절 : 사마리아는 기원전 721년에 아시리아에 정복되어 이스라엘 사람들은 추방되었고 이방 사람들이 그 땅을 차지했지만 그들은 이전에 그 땅을 차지했던 사람들의 종교를 얼마간 그대로 보존했다. 예수님의 피곤에 대하여 말하는 유일한 성서 대목이다. 여행을 많이 다니시는 예수님을 그려 볼 수 있다. 여인이 물을 길러 오는 시간에 대한 암시로 여인의 정체를 파악하게 한다.
* 7-8절 : 생명을 준다고 믿던 이 우물은 율법과 제도를 상징할 수 있다.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 9절 : 예수님은 사람들에 의해 세워지고 관례와 습관으로 구별되어 차이를 만들고 심연을 여는 장벽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모두를 동등하게 보신다.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창조물이다. 아무런 편견 없이 보면 사실 긴 여행으로 지쳐 샘가에 주저앉아 있는 사람이 두레박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물을 청한 것이다. 여기서 여인은 ‘물을 마셔야 하는 필요성’에는 관심이 없고 당신은 누구고 나는 누구고 하며 지닌 조건을 따지기 시작한다.
* 10절 : 예수께서는 상대방을 ‘한 사람’으로 대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에 대한 그녀의 파악이 부족함을 말씀하신다. 인간 사이의 차별 의식을 깬 다음 여인의 ‘목마름’을 자극한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가장 깊은 목마름을 풀어 줄 수 있는 하느님의 현존이다. “오히려 당신의~주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네가 찾고 싶은 사람은 나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생수란 그 여인의 영혼 깊은 곳에 있는 갈망이며 바람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 11-12절 : 이 여인은 여전히 모른다. 그는 예수님을 파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예수님의 외적인 조건에, 자신이 알고 있는 상황의 주위를 맴돈다.
13~15절 : ‘물’의 질로 당신이 그녀가 파악할 수 있는 상태를 훨씬 넘는 분임을 드러낸다. 여인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도 모르는 채 그렇게 좋은 물이 있으면 달라고 한다. 이제 비로소 그 여인은 예수를 향해 서게 된다. 이제 대화의 주제는 그 사람 본연의 모습으로 들어갈 준비가 된 셈이다.
* 19-20절 : 예수님을 예언자로 인정하지만 자기 삶과 연관이 없는 분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예배’문제를 제기한다. 예배 장소에 대한 분리는 두 민족 사이의 분쟁의 핵심이다. 여인은 ‘우리 조산들’ ‘당신들’ 하며 예수가 유다인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느님의 아들이 그녀의 고통의 신음 소리를 들으신 것을 아직 모르고 있다.
* 21-26절 : “여인아, 내 말을 믿어라” 예수께서는 여인의 상처를 보듬으시며 부드럽게 믿음에 다다르지 못하게 막는 그녀의 장벽을 넘도록 도와주시는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참으로 알지도 못하면서 예배한다고 지적하시며 그것은 그들의 예배가 민족적 정치적 명예심에 근거한 것임을 밝히신다. 예수께서는 참된 예배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당신을 드러내신다. 장소가 관건이 아니라 어디서건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 40-42절 : 요한 복음서에서 함께 머문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예수와 함께 머문 제자들은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체험하고, 포도나무 가지는 나무에 머물러야 열매를 맺는다. 예수께서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는 보편적인 구원자라는 신앙고백은 유대와 갈릴래아 밖에서 이루어졌다.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을 주시기까지 세상을 사랑하셨다.
♠ 복음 요약 : 세상 욕망의 목마름에 방황하던 사마리아 여인은 육신의 갈증을 해소할 물만 생각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물만 청한 것이 아니라 만남의 대화를 원하셨다. 그녀는 부끄럽고 괴로우며 사람을 피하고 싶어 인적이 드문 한낮에 물을 길으러 왔다. 그때 주님께서 만나 주셨다. 하느님을 거스르는 삶을 살고 있을 때나 평범한 일상 안에서 아무런 준비가 없을 때도 주님은 우리와 대화를 나누고자 하신다.
♠ 대화 방향 : ①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말을 걸어오시는 때는 언제인가 나누어 봅시다.
② 예수께서 주시는 물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증을 풀어 주는 물입니다. 그리스도인인 나는 그 물을 듬뿍 마시고 있는지 이야기 해 봅시다.
♠ 참고 문헌 : ▪ 성서가족을 위한 요한복음해설 <나오너라> (성서와 함께)
▪ 말씀의 두레박 (생활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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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의 글 >
2011년 새로운 사순을 준비하면서...
안산 원곡동 성당 FB
권 토마 (순)
사순시기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 재의 예식이 3월 9일(수) 미사 중에 있습니다.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축복해 머리에 얹는 예식에서 ‘재의 수요일’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오늘은 지난 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축성한 나뭇가지를 태운 재를 머리나 이마에 얹습니다.
재는 구약(욥 2,8: 요나 3,6)이나 신약(마태 11,21)에서 참회의 상징으로 사용됐습니다.
사순 시기는 회개와 참회의 시기이며 부활을 준비하는 희망의 시기입니다.
<사순시기>는 ‘회개하며 자비와 은총을 구하는 시기’로 ‘은총의 사순시기’라 불립니다.
겨울동안 땅속에 잠들어 있던 어린 새싹이 그 두터운 땅, 아직도 차가운 땅을 뚫기를 몇 차례 했건만 사람들은 그냥 쑥 올라온 것처럼 여길 것입니다.
오래전의 얘기입니다.
회사일 때문에 이른 아침에 출근해서 늦은 시각에 집에 들어오곤 해서, 아가가 눈 뜬 모습을 거의 보기가 어려웠지요. 그리고 간혹 먼 곳으로 출장을 다닐차시면 며칠 동안의 모습도 까맣게 잊고 살아갑니다. 기어 다니던 아가가 언제인가 내 앞으로 어설프게 걸어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저는 그 아가가 수백 번 수천 번 넘어지고 일어나고 하는 것을 반복했다는 것을 훨씬 나중에야 알게 됩니다. 조물주의 조화는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한다고 합니다.
봄을 기다리면서 매번 돌아오는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되는 사순절은 아마 봄의 전령사인 까닭이고, 부활을 기쁨을 더욱 더 진하게 느끼기 위한 감초일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지난주에 성령기도회에서 늘 자주오시는 농사꾼 선교사님이 오셨다. 그분의 설교에는 대부분 자연에서 오는 것이고, 생활 속에서 나온 것이다. 물에 관한 것이다. 생명이 온통 물로 구성되었고, 이 물이 인간이 시작되는 남자와 여자의 단일세포로부터 비롯됨을 얘기한다. 그 단일세포로 출발할 때에 그를 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 세포 내의 물을 맑게도 탁하게도 한다고 합니다.
고통 속에서 출발하는 그 세포처럼 땅을 수없이 두드리면서 헤집고 나올려는 그 새싹의 아픔처럼 우리도 모태의 좁은 길을 헤쳐 나왔으리라 상상해 봅니다.
저는 남자라서 잘 모르지만, 출산의 고통을 겪은 아낙내는 그 아이를 보는 순간 사랑으로 변화되고, 그 고통으로 인하여 잠시 터득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흐르는 세월로 다시금 그 고통을 겪는 체험을 하게 한다고 합니다.
저나 아내나 숙맥일 때가 있었지요. 배는 남산 예정일은 지났건만 그를 품고 있는 아낙내는 걱정이 태산, 시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분만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나중에 듣게 됩니다. 그 귀한 아들이 요즈음 저에게는 또 다른 고통으로 시작됩니다. IMF 때문에 그 애가 한창 저를 필요로 할 때에 저는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한창 피어 올 때에 저는 세상에서 잠시 버려진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세상이 어수선합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도무지 보이지도 않는 안개정국과 같아 보입니다.
또 올해도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다시 오는 사순절이지만,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아이는 학교를 끝내고 세상으로 홀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진 집도 없는 우리 집은 봄이 끝나기 전에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합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레지오는 어떻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내는 요근래 보기 힘든 물가고이며, 의류업계의 큰불황은 잠을 설칩니다. 도무지 저희들 힘으로 회복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주님은 스스로 낮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몸에 이 땅에 오셔서 수난 받으시면서 이를 우리에게 손수 보여주셨습니다.
미련투성인 제자들은 그주님이 얼마나 많은 힌트를 주셨지만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성서에 그 정도로 쓰여질 정도이라면 정작 나타나지 못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라 여깁니다. 어떻게 말로는 표현이 안됩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해결책은 보이지 않을 뿐더러, 이웃사람들, 친적들, 가족들을 더욱 더 불안하게 만들 뿐입니다.
주님께 속삭여봅니다.이제 당신께 드릴 힘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이제 제가 그동안 수없이 당신에게 불평을 드렸습니다.그러는 당신은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그러는 동안 당신의 지혜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해결됨을 알려주십니다.
주님!당신이 주신 고통이 연료가 되고, 당신이 주신 기다림이 이정표가 되게 하시고, 당신이 계심을 이로 인하여 자각하게 하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심으로, 수백 번 수천 번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어서, 당신 앞으로 찬양하며 나아갈 수 있음에 늘 감사하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은 너무나도 부드럽기에 늘 상처받기 쉽나니, 당신께 찬양하며 나아갑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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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의 글 >
아낌 없이 주는 나무
수원 화서동 본당
한 바오로 (민희)
사랑하는 전국의 F·B 형제자매님! 좀 지났지만 새해 인사드립니다.
항상 주님의 크신 사랑 안에 기쁘고 행
복하고 건강한 나날 되시기를 부족한 기도 중에 기억하겠습니다.
부족한 저는 오래전부터 좀 더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나름대로 봉헌하고, 주님의 이끄심대로 순명하며 지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복지를 어렵게 공부하고 그동안 요양원에서 근무하며 많은 주님 체험과 시련과 시행착오를 통해 많이 다듬어지는 은총의 시간이었다고 봅니다. 지나고 보니 새로운 준비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오래 전 부터 기도해왔던 것은 제게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아낌없이 나누는 것이었고 그렇게 살지 못하는 현실에 많이 힘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에 대한 응답인지 제게 1달 여 전에 새로운 이끄심을 주셨습니다.
" 가장 보잘 것 없는 자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그 곳이 바로 수원교구 사회복지법인 산하에 있는"노숙인 쉼터" 입니다.
이곳으로 이끄시기 위해 그동안 오랫동안 준비시켜주시고, 수많은 사랑으로 돌보아 주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구정 전 영하 17도 정도의 추위에 현장 순찰을 돌던 중 주로 겨울에는 노숙인들이 지하철역에서 계시는데 고가도로 다리 밑에서 판자로 바람을 막고 허술한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을 발견하고 매우 놀랐습니다. 애써 설득하여 모시고 가려해도 고집을 부리며 괜찮다고 하여 그냥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그 이후로 오랫동안 그 분 생각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우리에게 소외된, 배신당한 예수님이라는 강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이곳에 근무한 지 얼마 안되어 많이 힘들고 정신없지만, 예수님처럼 이 세상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아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져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이 자포자기한 가장 불쌍하고 가장 가난한 이들이 사는 이곳이 바로 내가 그동안 갈망했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살수 있다는 확신이 들고, 또한 도저히 부족한 제가 할 수 없음을 자인하며 , 바오로 사도처럼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라는 고백을 하며 살려고 합니다. 또한 항상 변함없이 제 곁에서 전구해 주시는 성모님과 함께 또 무엇보다 성령을 통해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받아 먹으며 진정으로 참 기쁨과 참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또한 그동안 많은 시간 F,B를 통해 이끌어 주셨음도 조금의 의심없이 확신하고 영원히 감사드릴 것이며, 무엇보다 우리 회원님들의 기도로써 협조해주셔야만 가능하리라 봅니다.
다시 주님 체험을 나눌 것을 약속드리며, 잘 만나지는 못해도 기도 중에 항상 만날 수 있기를 빕니다.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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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재정 회계 보고 >
✟ 2011년 1월 1일 ~ 30일 수입 지출 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