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 때리기
요즘은 보기가 어렵지만 옛날에 우리 어릴 때만 하더라도 혼례(婚禮)날을 전후하여 신부의 동리 사람들과 친척중의 동년배 사람들이 몰려와 새신랑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북어나 방망이로 신랑의 발바닥을 때리는 풍속이 있었다. 지방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경상도 결혼 풍습에는 결혼식을 마친 신랑이 신부를 처가에 맡겨두고는 자신의 집을 다녀오는데, 얼마쯤 있다가 처갓집을 다시 방문하는 재행걸음을 한다.
재행한 신랑을 맞이한 신부 집에서는 이때를 기다렸다가 푸짐한 음식을 제공하면서 신부의 친척 오빠들이나 동년배의 동내 청년들이 신랑 달아매기를 했다. 신랑을 거꾸로 달아매고는 신부를 도둑질한 놈이라 해서 북어나 장작으로 두들겨 패거나 패는 시늉을 했다. 어떤 땐, 신랑에게 고약한 질문을 해서 그 답이 신통치 않으면 이유를 붙여 신랑의 다리를 끈으로 묶어 신랑을 대들보에 거꾸로 매달고 요란한 함성을 지르면서 발바닥을 쳤다. 이렇게 하고나면 어색하던 처가집 동내 사람들과 친분이 생기고 사이가 부드러워 진다고 한다. 더러는 신랑에게 시를 읊조리게 하거나 어려운 질문을 하여 신랑의 학식과 지혜를 떠 보기도 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우리 큰 형님이 그런 재미있는 경험을 이야기 할 때의 추억어린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풍습에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원인이 따라붙는지라 발바닥 때리는 일은, 생리학적으로 발바닥에는 중요한 혈이 있어 앞쪽 움푹한 곳에 있는 용천혈에 자극을 주어 성적 기능을 활성화 시키고 새색시와의 잠자리에서 복상사나 그 밖의 탈을 예방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요즘에는 이런 전통을 잘못 발전시켜 결혼식장에서 신부에게 키스를 강제로 시킨다던가 심지어 속옷만 입히고 신랑신부를 억지로 과음을 하게하고 신혼 비행기를 놓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있은 이색 결혼식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는데, 옷을 홀라당 벗어버리고 나체로 성행위에 가까운 장면을 연출하고 신랑신부의 친구들도 모두 나체로 치부를 노출한 체 들러리를 서서 이색 결혼식을 치루는 장면을 보았다. 멀끔히 보고만 있는 신랑신부 부모와 친척들의 얼굴표정이 볼만했다. 고약하고 난처한 이런 결혼 풍습이 이대로 가면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아찔한 기분이 든다.
발바닥 때리기 풍습은 그런 의미에서 미풍양속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혹여 이걸 잘못 악용해서 짝사랑을 했든 처녀를 빼앗긴 동내 총각이 신랑의 발바닥을 사정없이 패서 분풀이로 삼기도 했다는 일화도 들은 적이 있다. 무술 유단자인 신랑은 참다못해서 그 사람을 메어치기 해서 한동안 잔치집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아름다운 풍습이고 잔치집 여흥으로 모두를 즐겁게 했다. 어떤 땐 장인 친구를 신랑 대신으로 묶어서 발바닥에 매 찜질을 하기도 했다. 견디다 못한 사람이 장모 되는 사람에게 살려달라는 시늉을 하면 장모되는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와서 말리는 척 하면 아낙네들은 술과 푸짐한 안주를 대령했다. 옛날에는 이렇게 재미있는 여흥을 하면서 흥겨운 잔치를 했다.
어릴 때의 추억이 아직도 아물거린다. 아마 열 살 전후라고 생각한다.
동내 죽마고우인 친구의 누나가 시집가는 결혼잔치를 할 때가 생각난다.
어쩌다 아버지가 붙들려 다리를 묶이고는 발바닥을 맞는 장면을 구경했다. 장작개비를 든 사람이 죄목을 붙여 일장 연설을 하면 빙 둘러 선 사람들이 환호와 환성을 지르고 죄목 하나 붙이고 한 대, 그리고 또 다른 죄목 붙이고는 한 대....이렇게 재미있게 연출하고 잔치집 흥을 돋우는 관습이었던 것이다. 아마 신부 아버지의 발바닥을 때릴 수는 없고 대신 장인 되는 사람의 친구를 붙들어 발바닥 구경꺼리로 했는데 신부 집 아낙네들은 얼른 푸짐한 잔칫상을 차리고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서 못 이기는 체 하고 풀어줬다. 그러다 다른 사람을 붙들어다 또다시 패고, 또다시 큰 잔칫상 받고.....이렇게 부산한 잔치집 분위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 아버지 시절의 재미있고 흥미 있는 잔치 이벤트였다.
경기도 평택 어느 지역에서 일어났던 실화다. 육이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북한군이 달아난 후의 일이다. 한 동내에서 결혼잔치를 하고는 풍습대로 온 동내 사람들이 모여 신랑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발바닥 때리기 여흥이 한창일 때였다.
마침 미군 병사들이 후방 수색을 하면서 북진을 하고 있었다. 북한 인민군들이 후퇴를 하고 연합군이 샅샅이 뒤지면서 전진을 하고 있었든 모양이다. 하도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 몇 명의 미군 병사가 그 집으로 살금살금 간 모양이다.
보니 어느 젊은 사람을 묶어 놓고 온 동내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사람을 때리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 미군 병사가 영어로
“이 사람 인민군이냐?”하고 물어 본 모양이다.
동내 사람들이 뭣도 모르고 “yes" 하고 대답을 한 것이다.
그 다음에 미군이 “그럼 이 사람 죽여도 좋으냐?”하고 물었다.
영어를 못하는 동내 사람들은 역시 좋은 말인 줄로만 알고는 “예스 오케이"라고 한 모양이다.
미군 병사는 느닷없이 총을 꺼내 “탕”하고 쏘아 신랑을 죽이고 만 것이다.
아름다운 풍습이 비극을 불러 온 케이스다. 이런 큰 불상사를 겪으면서도 그 때는 잔치집 발바닥 때리기는 유행을 했다. 요즘은 다른 모양의 여러 결혼 이벤트로 진화하고 있는 걸 본다.
2009년5월 윤행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