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생명신앙, 희망찬 복음교회
당신과 함께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기독교대한복음교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어떤 특정한 교리나 법규를 고집하지 않으며 모든 회원교회들이 간직하고 있는 참된 교회의 경험들을 존중하고 인정하며 교회연합운동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구세군대한본영, 대한성공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 한국정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순복음교회)]와 연합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kncc.or.kr) 회원교회로서 1935년 <한국인 자신의 교회>를 선언하며 <생명신앙>을 바탕으로 세워졌습니다.
복음교회는 교파로 출발하였다기 보다는, 한국인 자신의 짓과 멋과 선과 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겠다는 각성한 기독인들의 자주 선언이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서양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주입된 근본주의 신앙과 신학, 배금주의와 배타주의가 만연한 기성교회에 대한 반성을 통한 한국교회 개혁 운동이었습니다.
복음교회는 창립과 함께 민족의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교회로서 작지만 반듯하고, 부드럽지만 오롯한 교회가 되고자 '오로지 우리에게 사람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복음교회의 출발은, 아시아의 지성 내촌감삼(우찌무라 간조) 등에게 성서를 배우고 연희전문대 농과교수로 재직중이던 최태용(崔泰瑢) 목사가 1925년부터 ‘천래지성(天來之聲)’을, 1929년부터는 ‘영(靈)과 진리(眞理)’라는 신앙잡지를 발간하면서 전국의 독자를 중심으로 모인 신앙집회가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1935년 12월 22일, 부패한 기성교회의 반발에 대응하며 '기독교조선복음교회' 창립 총회를 가지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주로 호남지방인 이리 / 군산 / 서산 / 김제 / 임실 / 금마 등지의 독자들과, 서울 / 강원 금강산 일대 및 북한 일대 함경도 명천 등지에서의 집회를 통한 교인이 주체를 이루었습니다.
초기 복음교회는 특정인의 독주로 세운 교단이라기 보다, 한국인 자신의 교회를 세우려는 의지로 똘똘뭉친 낮은 자들의 꿈터였습니다.
창립총회에서 순교자 최태용 목사가 대표(감독)로 선출 되었는데, 당시 전국의 교회수는 8개소였습니다.
그 후 2대 감독은 순교자 백남용(白南鏞) 목사, 이사장 제도로 개편되고 나서 지동식 연세대 학장(池東植)(1961~70) / 독일 탄광촌으로 떠난 선교사 장성환(張聖煥) 목사(1970~77), 총회장 제도로 바뀐 뒤로는 범민족대회를 이끈 통일운동가 조용술(趙容述) 목사(1977~), 6.10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오충일 목사 등이 담당하였습니다.
또한 군사독재시절 대표적 조작간첩단 사건으로 이십여년을 복역한 엠네스티 선정 양심수 김성만 집사와 같은, 통일조국과 함께 양심과 신앙을 지켜온 평신도들이 우리 복음교회의 자랑입니다.
복음교회는 아름다운 3대 표어를 지니고 있습니다.
신앙은 복음적이고 생명적이어라, 신학은 충분히 학문적이어라, 교회는 한국인 자신의 교회이어라”가 그것입니다.
한편, 1977년 발표된 77선언문은 복음교회의 어제와 오늘, 내일의 청사진을 보다 분명하게 한 문서로서 2000년 총회 때 다시한번 재천명하여 우리의 달려갈 푯대로 삼고 있습니다.
3대 표어와 77선언문을 가슴에 품고 2005년 현재까지 전국에 50여 복음교회를 세웠으며, 서울복음교회, 군산복음교회, 부산복음교회, 제주복음교회를 비롯한 건강한 도시교회들과 한국교회 역사상 최초로 세워진 민중교회이자 서울 신림동 가난한 달동네의 변함없는 친구 낙골교회, 땅끝 해남 강진 캄캄한 시골동네를 든든히 밝혀온 남녘교회와 같은 작고 따뜻한 교회들이 한반도 곳곳에서 생명신앙의 꽃등을 환히 들고 있습니다.
신학교육기관으로는 기독교대한복음교회 복음신학대학(4년제, 군산)과 대학원 과정으로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신학대학원(3년제, 서울)이 운영되고 있으며, 연세대학교와 강남대학교 등에 저명한 신학자들을 파송하고 있습니다.
사회선교활동 기관으로는 전국의 각 교회에서 노숙자 쉼터, 어린이 청소년 교육센터, 지역을 살리는 문화센터, 공부방, 어린이집, 자활후견기관, 장애인복지시설, 실직자 지원센터, 간디청소년학교와 같은 이름난 대안학교 등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 비슷한 이름을 지닌 복음교회가 여러 곳 있습니다.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식구인지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발자취 돌아보기>
1925 년 <천래지성>창간 신앙혁명가 제창 (민족 자치, 민중의 교회를 가로막는 서양선교사와 근본주의 신학 비판)
1927 년 금마집회 시작
1928 년 최태용 일본 유학 고창덕태랑, 내촌감삼 밑에서 수학
1929 년 <영과 진리> 창간
1932 년 조선신학숙 (신학대학) 계획
1933 년 부활사 복음집회 시작
금강산 일대까지 순회집회
1935 년 한국인 자신의 교회 설립
기독교조선복음교회 제1회 총회
1936 년 종로 6가 부활사 매입 (현 서울복음교회, 총회 사무국)
총 전국 16개 교회 진용
1949 년 제8회 총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로 교단명 변경
1950 년 최태용 감독, 백남용 감독 순교
피난교회 설립, 교회통신 발간
1954 년 제9회 재건 총회
1960 년 한모임 결성 (민주화 운동 주도)
1961 년 지동식 목사 제3대 감독 추대 결의
1966 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KNCC) 가입
1969 년 한국기독교도서관 설립 (WCC 지원)
1973 년 인권신장과 국가, 민권을 위한 금식 기도회 주최
1977 년 총회장 제도 신설, 조용술 목사 선출
<1977년 신앙선언문> 채택
박정희 군사정권에 저항하던
조용술 목사, 오충일 목사, 인원형 총무목사 연행 구금
1978 년 어민선교회 출범 (WCC 지원)
1979 년 복음교회 신학교, 제주 신학교 설립
윤치병 목사 별세
1980 년 5월 광주항쟁, 교단적 군부독재에 저항
1983 년 최태용의 생애와 사상 발간
1985 년 아시아교회협의회 (CCA) 가입
1987 년 6월 민주화 항쟁 교단적 참여
1990 년 범민련 남측대표 조용술 목사 구속
교단적 통일운동 매진
1993 년 복음교회 총회 한국복음신학원 (4년제 신학부 과정 / 군산) 설립
1995 년 교단창립 60주년 축하행사 (군산체육관)
60주년 기념교회 설립 (중앙교회)
2000 년 77 신앙선언문 재천명
복음교회 총회 신학교육원 (대학원 과정 / 서울) 설립
2003 년 복음교회 목회자 정의평화행동 출범
2004년 조용술 목사 소천
2005 년 교단창립 7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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