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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지면 사람들의 생활은 많은 제약을 받는다. 유일한 수단은 다리를 건설해 두는 것이다.
북천에서 제일 먼저 만들어진 다리가 영빈관 다리다.
연원동 사람들도 이 다리를 이용해 천봉산 고개를 넘나들었다. 그 만큼 다리의 중요성이 부각된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옛 이야기로만 들릴 것이다.
너추리길의 출발점은 북천시민공원이다. 무조건 둔치를 따라 제방을 이용해 연원교까지 가야 한다. 여기서 다시 연원천에 있는 철다리를 건너 산모퉁이 오막살이 식당 앞을 거쳐 자산산성 갈림길에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타고 가다가 연원 양수장에서 오른쪽 마을 안 길로 접어들어 골짜기를 통해 천봉산을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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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멀리서 본 너추리길 고갯마루. / (아래) 성황사와 영암각.
- 장마철 동네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넘나들었던 천봉산 영암각 고갯길, 연원동의 자연부락인 안양에서 만산동의 안너추리로 연결되는 산길이다. 고갯마루에 임란북천전적지에서 천봉산으로 연결되는 등산로가 있어 시민들이 즐겨 찾는다.
고갯마루를 넘어서 내려가면 성황사와 영암각이라는 두 개의 건물이 있다. 성황사는 남매상을 모시고 계룡산 갑사의 남매탑과 전설을 공유하고 있다. 영암각은 건물 안쪽에 바위가 있는데, 바위에 집을 지어준 보기 드문 광경이다. 그 위쪽에는 3대 내림굿을 받는 장소가 있다. 그 효험이 대단하다는 국사 남매 성황당이다.
상주 시내도 한눈에 보인다. 아늑한 산세로 보아 이곳이 좋은 장소임을 알 수 있다. 등산안내도와 산불통제소도 그 옆에 있다. 이곳으로 오는 길은 마을 안으로 올라오기 때문에 미로를 통과하는 기분으로 찾아서 와야 한다. 그렇지만 내려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 무조건 내려가기만 하면 마을 진입로인 6차선 큰 도로를 만난다.
도로를 통과하려면 반드시 신호를 지켜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기 때문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 도로를 건넌 후 농로를 따라가면 북천시민공원에 닿는다. 헷갈릴 경우 무조건 앞쪽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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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암각에서 본 상주 시내.
- ▶너추리길 / 총 7.4km, 2시간
북천시민공원~(1.7km·25분)~연원교~(1.5km·20분)~연원6길~(1.2km·35분)~고갯마루~(0.4km·10분)~영암각~(1.7km·20분)~북천시민공원
▶찾아가는 길
중부내륙고속도로 상주 IC → 상주 방향 25번국도 우회전 → 후천교 앞 후천사거리 시민운동장 방향 우회전 → 후천교 건너 법원 방면 좌회전 → 상주시민공원 주차장
▶볼거리
영암각(靈巖閣)
문자 그대로 영험한 바위를 모신 집이다. 바위는 높이 9m, 둘레 18m이다. 본래 이름은 미륵당이었다가 조선 후기 유교의 영향을 받아 영암각으로 바뀌었다. 바위 밑에는 제단이 있고 여러 모양의 불상과 제사도구들이 있어 민속신앙의 대상물임을 알 수 있다.
영암각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에 상주목사들이 북쪽으로 행차를 하면 잦은 불상사가 일어났다고 한다. 어느 날 새로 부임한 상주 목사의 꿈에 큰 바위 하나가 흔들거리며 나타나“원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비록 하찮은 돌이지만 소원을 들어주시면 북쪽의 악귀도 제거하고 상주고을을 평화롭게 하겠습니다”라고 애원했다. 목사는 사람을 풀어 꿈에 본 바위를 찾게 했다.
수소문 끝에 천봉산에서 바위를 발견했다. 지역 유지들이 뜻을 모아 바위를 덮고 에워싸는 집을 지어주었다. 바위는 목사의 꿈에 다시 나타나 “고맙습니다. 앞으로 상주는 악귀가 없는 평화로운 고을이 될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후 상주에 나쁜 변괴가 사라지고 해마다 풍년이 들어 사람들이 바위를 미륵당으로 숭배했다고 한다.
▶성황사 남매상
호랑이가 은혜 갚기 위해 스님께 데려온 처녀
남매상을 모시고 있는 성황사에는 전설이 있다. 천봉산 밑에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예쁜 딸과 같이 살았다. 딸은 산나물을 캐고, 열매를 줍고, 땔감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천봉산에 땔감을 하러간 딸이 내려오다 미끄러져 다치게 되었다. 어느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고, 호랑이를 만난 처자는 기절하고 말았다.
시간이 흐른 후 눈을 떠보니 깊은 산 속 암자였다. 스님의 극진한 간호로 기력을 회복한 처자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게 되었다. 스님이 생각해 보니 몇 해 전 호랑이의 목에 걸린 인골을 뽑아준 적이 있었는데 그 호랑이가 은혜를 갚기 위해 처녀를 데려 왔음을 알게 되었다.
암자에서 겨울을 나는 동안 스님은 오직 불교 공부에만 열중했다. 처자는 흠모의 정을 갖게 되었고, 스님은 봄이 되자 처자를 상주 천봉산 부모집에 데려다 주었다. 그러나 이별을 아쉬워한 처자의 간곡한 부탁으로 의남매의 인연을 맺었다. 둘은 함께 계룡산으로 돌아와 사찰을 새로 짓고, 암자를 따로 마련해 평생토록 남매의 정으로 지내며 불교 정진에 힘쓰다가 입적했다. 후에 사람들이 사리탑을 세운 것이 갑사의 남매탑이고, 천봉산 밑에는 성황사를 짓고 남매상을 모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