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하이웨이” 에필로그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이 하계휴가에 휴대해서 읽었다고 해서 유명세를 더한 에이모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를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그래서 그가 2021년에 출간한 “링컨 하이웨이”를 방금 독파했고 이야기는 기대에 부합하게 흥미진진했다.
그러나 800쪽에 달하는 소설을 창작하다보니 힘이 딸렸는지 마지막 장에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나온다. 내가 이해하기 힘든 것은 그렇다고 쳐도 작중 인물인 더치스가 말도 안 된다며 발끈 화를 내는 것은 어찌 할 터인가? 더치스는 당하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니까 틀림없이 어떤 짓을 했으리라. 그래서 나는 더치스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짧은 에필로그를 원작에 덧붙이는 것을 상상해 보았다.
< 에필로그: 에이모 토울스
선약이 없는 방문객은 나를 짜증나게 한다. 더욱이나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중이라면 짜증은 배가되며 방문객은 성별, 나이와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쫓겨난다. 이 축객령은 생시뿐만 아니라 꿈속에서도 유효해서 실제로 나는 꿈속에서 사교계의 여왕이라는 P부인을 내쫓은 적이 있다. 그런 내가 비록 꿈속일망정 선약도 없이 더치스가 나를 찾아왔을 때 허둥지둥 현관으로 나가 그를 서재로 안내했음은 무의식중에 내가 그에게 빗을 졌음을 느꼈던 탓일까.
더치스는 제법 격식을 차려 “링컨 하이웨이”의 성공을 축하해 주었고 나는 그의 축하에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표정을 표변하며 나에게 비난을 쏟아 부었다.
“설마 내가 이런 변변치 않은 축하를 하기 위해 명부에서 스틱스강을 건너왔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지요. 간단히 말해 나는 내가 받은 부당한 대접과 모욕에 대해 항의하려고 왔습니다. 나는 이야기의 마지막 장에서 내 행동에 대해 당신이 기록한 부분이 전혀 터무니 없는 중상모략이라고 느꼈습니다.”
“이보게, 더치스! 작가는 최상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기 싫어도 작중 인물을 죽이기도 한다네. 자네가 비극적 종말을 맞은 건 유감이지만 이야기를 위해서 어쩔 수 없었네. 자네가 양해하게나.”
더치스가 갑갑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손가락으로 나를 지목했다.
“이해를 못하는 건 당신이예요. 나는 내 죽음에 대해 항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에 이르는 내 사고와 행동을 당신이 앞과 뒤도 안 맞고 이치에 어긋나게 서술해서 내 인격을 훼손했다는 것이지요. 자! 눈썹에 침칠하고 잘 들어보세요. 빌리는 50달러 지폐 묶음 15개를 금고에서 발견했어요. 각각의 돈다발은 1만 달러였지요. 맞지요? 그런데 에밋에게 얻어맞아 정신을 잃었던 내가 구멍난 보트의 선미에서 깨어났을 때 뱃머리에 현금뭉치가 있었죠. 맞죠? 자! 집중하세요. 그런데 바람이 세게 불어오자 지폐뭉치의 맨 위에 놓인 50달러 지폐 한 장이 날아가 물위에 떨어졌지요. 잠시 후 다른 지폐 한 장 날아가고 이어서 또 한 장이 날아갔죠. 무언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에밋은 내 몫 5만 불을 주었으니까 그 지폐뭉치는 1천장이고 1만 달러 돈다발로는 5개이군요. 그런데 에밋이 나에게 돈을 주면서 5개 돈다발의 띠를 일일이 풀어서 1천장을 탑처럼 쌓아놓았단 말입니까? 그 바쁜 시간에? 그리고 그런 행동을 에밋이 할 것 같습니까? 에밋은 그 돈을 내 호주머니에 집어넣어 줄 사람이예요. 비록 내가 빌리를 인질로 삼은 행동 때문에 화가 났겠지만 그런 술수를 쓰는 인간이 아니라고요.”
“에밋이 구멍난 보트에 자네를 실어놓은 걸 보면 돈을 그렇게 처리했을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않겠나?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니까.”
“이중 부정이 들어간 의문문이라, 참 복잡하게 말씀하시네. 아무튼 당신 잘못은 없다는 말씀이네요.”
“으음! 그리고 자네가 화를 낼 상대는 내가 아니라 에밋이 아닐까?”
“좋아요! 에밋을 탓하기로 하죠.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하시겠어요? 내가 돈이 날려가지 않도록 뱃머리로 달려가 돈을 움켜쥔 다음 보트 안으로 물이 확 들어오기 전에 다시 제 자리로 물러나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하다가 익사했다는 부분은 문제가 없다고 보나요?”
“무슨 문제가 있나?”
“토울스씨! 난 알파벳 하고는 담을 쌓았지만 세상 살아가는데 겪는 잡사에는 빠삭한 놈이거든요. 당신이 잘 서술했듯이 내가 사람들을 추적하는 솜씨라든가 사람이나 물건을 다루는 재간이 대단한 놈이란 건 당신이 잘 알잖아요? 그런 내가 지폐가 날아간다고 덥석 앞으로 나아가 물에 빠진다고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서술은 나의 지능과 인격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욕입니다.”
나는 그의 분노가 점층법에 따라 증대되지 않도록 그가 말을 그치자 바로 끼어 들었다.
“자네가 현명하고 신중하더라도 그런 특수한 환경에서는 평정심을 잃고 그릇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네. 그게 인간의 한계라네.”
“천만의 말씀! 나는 그 경우에 내 셔츠를 벗어 물에 적신 다음 돈 뭉치 위에 던져 덮었을 거예요. 그 위에 신발도 던졌겠죠. 셔츠 밑의 돈은 날아갈 수가 없지요. 나는 최소한 병속에 있는 물을 마시기 위해 조약돌을 병속에 넣는 까마귀 정도의 지능은 있는 놈이요. 나를 그 물을 마시기 위해 부리로 병을 깨뜨리고 물은 바닥에 흘러 못 먹게 되고 부리는 부서져 죽게 된 그런 멍청이 까마귀로 표현한 당신은 정신이 번쩍 들게 까마귀가 머리를 한 번 쪼아주면 좋겠네요.”
나는 마냥 수비만 하는 내 태도가 마뜩찮아 대범하게 행동하기로 작정했다.
“까마귀는 잠 들었을 테고 푸라이 팬이라면 아래층 부엌에 있네.”
“폭력이라니 천만의 말씀입니다. 당신은 현대 미국 문학의 거장이고 베스트셀러 작가이잖아요. 그러니 계속 안녕하셔야지요.”
“그럼 내가 무얼 하길 바라나? 어떻게 도와줄까?”
“당신이 소설을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된 후 죽기 바로 전에 이 ”링컨 하이웨이“ 끝 부분이 이런 저런 결함이 있다는 메모나 한 장 남기라는 것이 내 요구입니다.”
“시간을 두고 고민해 보겠네. 약속하지.”
“내가 너무 늦게 찾아왔군요. 동이 틀려고 하네요. 그럼 이만 안녕히 계십시오.”
멀리 까마귀의 까악거리는 울움소리를 들었다고 느끼고 순간 정수리에 통증을 느끼며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진정한 문학도들은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사람이 소설을 읽으니 이렇게 헛된 시비를 거는 폐단이 있구나라고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관심이라도 소설에 대한 무관심보다는 작가들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여겨 더위 속에 몇 자 적어 보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