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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시장 근처 / 차승열
새벽 무렵 가락시장 근처를 지날라치면 밤새 먼 길을 달려와 막 부려놓은 풋풋한 고향 냄새가 난다
그래, 우리 부모님 토끼 같은 새끼들 당신처럼 무지렁이는 만들지 말자고 닳은 삽날로 다랑논을 가꿔 이놈을 키우셨지 가난만은 대물림하지 않으마 하고 무딘 호미날로 산비알 돌밭을 일궈 이놈을 키우셨지 밤콩처럼 야물딱지게 생마늘처럼 독하게 고추처럼 맵게
하지만 당신의 등을 넘지 못하고 결국 당신의 꿈이 되지 못하고 도시의 이방인으로 변변하게 살아가는 못난 이놈을 어디에 쓰시려구 그 고생을 하셨나요 아, 가여운 나의 부모님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늦은 저녁무렵 가락시장 근처를 지날라치면 아련한 고향 생각도 잠시 부패한 꿈들이 풍기는 심한 악취가 밤공기를 타고 온다
【 시작 메모】 가락시장은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농수산물 도매시장으로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는 전국 최대규모의 시장이지요. 새벽이면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싱싱한 농수산물을 실은 차량과 인파로 장관을 이루는데, 워낙에 물동량이 많은지라 저녁무렵이면 폐기물에서 나는 악취로 심한 몸살을 앓는 곳이기도 합니다. 늦은 저녁무렵 가락시장을 지나며 미처 팔리지 못하고 시들어가는 저 농수산물들처럼 서울살이 30년, 부모님의 꿈이 되지 못하고 나이만 들어가는 초라한 저의 자화상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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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밤콩처럼 야물딱지게
생마늘처럼 독하게
고추처럼 맵게
이렇게 고이 키우셨을 부모님
지나친 겸손이 깃든 귀한 시에 머물렀습니다
돌아보는 세월은 왜 후회만 남는 것인지
그 중에도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은 지울 수가 없데요
뒤늦게 철이 드는 것인가?^^
답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