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전시실
1구역 ..... 천주교 수용과 자생적 신앙공동체 (1602~1801년)
외국 선교사들은 16세기부터 중국과 일본에서 활동하였지만, 조선에는 아직 신앙이 전해지지 않았다.
17세기에 들어와 중국을 왕래했던 조선의 사신들이 서양 문물을 접하게 되면서 서양 종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이하게도 조선에서는 남인계열의 유학자들이 서양 학문과
서양 종교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과정에서 천주교 신앙이 싹터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자생적 교회로 출발하였다.
2구역 ..... 천주교 박해와 교회의 발전 (1801~1866년)
천주교가 학문적 호기심을 넘어 종교로 발전하자 조선의 정치.사회.사상적으로 마찰을 빚으며
교회는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박해 속에서 신자들은 교회 재건과 사제 영입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였고, 김대건 신부가 조선인 최초로 사제로 서품되면서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3구역 ..... 한국의 성인.순교자
천주교가 조선에 전래되고 신앙의 자유를 얻기까지 100여 년 동안 끊임없는 박해 속에서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흘렀다. 순교자들이 흘린 피는 이 땅에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보이지 않는 씨앗이
되어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의 밑거름이 되었다.
천주실의
중국 명나라 때인 1593- 96년에 예수회 선교사 마태오 리치가 편찬한 한문으로 된 책으로 중국과
서양학자가 질문 대답하는 대화체 양식으로 기술된 천주교 교리서이다. 1603년 북경에서 간행된
후에 전 한문 문화권으로 전파되어 갔고 한국 초기 교회 창설 과정에서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천주실의
마태오 리치
예수회 선교사로 중국 교회의 창설자이다. 그가 저술한 "천주실의"를 비롯한 서적들과
그의 보유론적(補儒論的) 선교방식은 천주교의 조선 전래에 큰 힘이 되었다
주교요지
[주교요지]의 목판본이 간행되기 이전 박해시대 신자들은 이를 필사하여 읽었다
주교요지 목판본
[주교요지]는 정약종이 한글로 쓴 최초의 교리서이다. 필사본으로 전해져서
읽혀지던 이책은 병인박해 직전인 1864년에 목판본으로 간행되었으며, 그
목판본 판목들이 남아서 박해를 이긴 신앙을 증언해 주고 있다
강세황의 천주당 시문
강세황(姜世晃, 1712-1791)은 당대의 예단(藝壇)의 총수로서 시서화(詩書畵)에도
뛰어났으며 감식에도 출중하여 정조의 아낌을 받았다. 그는 칠순을 맞이한
청국 건륭황제를 축하하기 위해 조선 왕조에서 파견한 천추사(千秋使)의
부사(副使)로 북경에 파견되었으며 북경에서 천주당을 견문하고 한편의 시를 지었다.
김상기(金庠基) 박사 기증품
황사영 백서
황사영(黃嗣永, 1775-1801) 알렉시오는 1801년 신유박해 직전에 가장 활동적인
교회지도자였다. 그는 박해가 일어나자 충청도 제천 배론의 교우촌 토굴에 몸을
숨기고 조선 교회의 박해 현황과 그에 대한 대책을 비단에 써서 이를 북경교회로
보내려고 했다. 비단에 쓴 편지이므로 이를 <백서(帛書)>라고 한다. 황사영 백서는
북경교회로 보내기 전 사전에 압수되었다 이 문서의 크기는 가로62cm, 세로38cm
의 흰 명주에 작은 붓글씨로 씌여진 것인데 모두 13,384자에 달한다. 원본은
로마 교황청에 보관중이다
이승훈의 간찰
이승훈(李承薰, 1756-1801)은 1784년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후 그해
9월 서울 수표교 부근에 있던 이벽의 집에서 이벽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는 새로운 신앙공동체의 출발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이수광의 간찰
이수광(1563-1628)은 3차에 걸쳐 사신으로 북경을 왕래하면서 서양 학술을
[지봉유설]에 소개하였으나 [天主實義(천주실의)]나 [交友論(교우론)]등 천주교
서적을 소개하였다
전시실 내부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전시실 내부
전시실 내부
전시실 내부
성모목각상(출처- http://info.catholic.or.kr/)
전시유물
전시유물
전시유물
전시유물
전시유물
전시유물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서적 및 유품들
천주교 수용과 자생적 신앙공동체 (1602~1801년) , 이승훈, 정약용 이 보인다.
이승훈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천주교 박해와 교회의 발전 (1801~1866년)
명례방
1785년초 서울 명례방 김범우 토마스의 집 사랑 대청에서 정약전, 정약용, 정약종
형제와 이벽, 권일신, 이승훈 등이 모여 주일 집회를 갖고 있다. 경상 위에는
'천주실의'나 '칠극' 같은 천주교 교리서가 펼쳐져 있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수난상도 눈에 띈다.
성 유진길 유대철
성 정정혜 유소사 정하상
성 현석문
김대건 신부 흉상(출처- http://info.catholic.or.kr/)
성 김대건
윤유일
주문모
한국의 성인.순교자 , 김대건 신부 성광(머리털, 치아 등 신체의 일부
제 2전시실
4구역 ..... 한국 천주교회의 근.현대사 (1866~1984년)
조선은 19세기에 잇따른 문호개방의 격동기 속에서 1886년 한불조약으로 선교사들에게 선교의
자유가, 1905년에는 비로소 일반인들에게도 신앙의 자유가 공인되었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회는 일제 침략과 남북 분단이라는 또다른 과제를 짊어지게 되었다.
5구역 ..... 역대 서울대교구장
1831년 조선교구가 설정된 이후 임명된 역대 서울대교구장을 통해 살펴보는 한국 천주교회사
6구역 ..... 전통 인형으로 빚은 한국 천주교회사
인형 장인, 임수현이 한국 천주교회사 12대 사건을 80여종의 인형으로 형상화하였다.
7구역 ..... 200주년 기념대회와 103위 성인 시성식
1984년 5월 6일 여의도광장에서는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대회와 103위 성인 시성식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집전으로 거행되었다. 103위 성인은 김대건 신부와 평신도 92명,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 선교사 10명(주교 3명, 신부 7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8구역 ..... 박해시대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제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년) 이전에는 사제와 신자가 벽면의 제대를 향하여 미사를 드렸기때문에
사제는 신자들에게 등을 보이고 미사를 집전했으며, 라틴어로 된 경문을 읽었다.
충남 해미 순교지 호야나무로 만든 구유, 제2 전시실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