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었더니 멀리 산에서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주말 아침입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매미소리는 예전과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네요.
지난 한주간은 너무 더운데도 에어컨도 없이 샤워를 하거나 선풍기를 틀어놓아도 등에서 땀이 흘러내릴 정도로 무더웠습니다.
전기가 부족해서 우리 국민 5천만 모두가 절전을 생활화해야 한다고 ‘엘리베이트를 타지 않고 계단을 걸어가는 당신은 또 하나의 발전소’라는 멘트의 재미난 라디오 공익광고도 등장했더군요.
예전에 제가 살던 진주 시골 마을에는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이전에는 전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토요일 저녁이면 동네 아이들이 10여 명이 모여서 3키로미터 정도 떨어진 아랫동네로 텔레비를 보러 다녔습니다.
아마 그 텔레비 프로그램 이름이 배우 ‘나시찬’이 출연했던 ‘전우’였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시골집에는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1978년에 12인치 빨강색 엘지 텔레비가 들어왔습니다.
당시 텔레비전 안테나는 우리 집 뒷산에 세웠습니다.
바람이 불어 안테나가 돌아가기라도 하면, 작은 형과 내가 700-800미터나 되는 가파른 산을 30분 정도 올라가서 수신방향이 맞도록 안테나를 돌리곤 했습니다.
그땐 KBS, MBC외에도 TBC라는 채널도 있었습니다.
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큰 형이 주말에 시골집으로 돌아오면 꼭 일요일 오전에 TBC에서 방영했던 주말의 명화를 보았는데, 한참을 보다가 꼭 중요한 순간에는 그 놈의 안테나가 돌아가서 화면이 순간적으로 “찌지찍”하면, 큰 형의 명령(?)을 받아 작은 형과 나는 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산을 오르내려야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2013년 여름, 이 시대의 아이들은 아이스크림, 치킨, 햄버그, 피자, 콜라를 먹으면서 동시에 스마폰을 끼고 게임을 하면서 여름을 납니다.
이맘때면 고향 집에서 아버지가 꼭 장닭을 잡아 주셨습니다.
닭의 목을 비트는 일은 큰 형이 하거나 늘 선친의 몫이었습니다.
마당에 돌아다니는 닭을 잡을려면 한바탕 씨름을 해야합니다.
어떤 놈은 담장 위로 도망치고, 어떤 놈은 지붕위로 날아올라 아예 내려오지를 않습니다.
가마솥에 물을 끊여 그것을 부어서 닭의 털을 뽑고 칼을 갈아 내장을 꺼내고 그것을 토막토막 내어 놓으면, 어머니께서 무시(무우)와 파를 썰어서 넣어 삶아주셨습니다.
아직도 눈썹을 내리고 다리를 파들파들 떨면서 똥을 누며 죽어가던 그 장닭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큰형과 아버지가 닭의 목을 비트는 그 힘이 얼마나 세게 느껴졌던지.
작은 형과 나는 그 참담한 광경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나는 여태껏 한번도 닭 모가지를 비틀어 본 적이 없습니다.
당시 우리 집은 지붕이 양철로 되어있어서 낮 동안 뜨겁게 달구어졌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먹을 때가 되면 아버지는 앞마당에 목캐불(모기를 쫓아내는 불)을 피우셨습니다.
소를 키우는 헛간, 평상, 대청마루, 안방 할 것이 연기가 자욱했지만 신기하게도 모기들은 연기를 따라 하늘로 따라 올라가더군요.
자욱한 연기속에서 눈이 매워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아버지 어머니와 그리고 4명의 형제들이 평상 위에서 닭을 잡아서 맛있게 먹고나면, 아버지는 ‘새마을’이라는 필터없는 담배를 한 대 피우시고 그 동안에 어머니는 자식들 방에 모기장을 쳐 주셨습니다.
늘 어머니는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밭으로 가서 신선한 전구지(부추)와 고추를 따서 부침개(파전)를 만들어 반찬으로 내 놓으셨는데,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 도시락 반찬도 늘 부침개(파전)이였습니다.
여름 날 해가 뜨고 동네가 무더워지기 시작하면 동네 아이들은 앞산 자락에 있는 또랑(냇가)으로 가서 첨벙첨벙 연일 멱을 감았습니다.
그땐 수영복도 수경도 주브(튜브)도 없이 알몸으로 풍덩풍덩 잘 놀았습니다.
가끔 저녁때면 어머니께서 냇가에서 소라(다슬기)를 잡아서 옷을 깁는 바늘로 알맹이를 꺼내 다슬기 탕을 해 주셨습니다. 그 녹색을 머금은 파란 국물이 얼마나 시원했던지.
소 꼬리에 있은 긴 털을 뽑아서 올가미를 만들어 나무에 올라가 매미도 잡았고, 가끔 밤에 산중턱에 있는 과수원으로 몰래 들어가 복숭아 쓰리도 하고, 집 앞 또랑(새냇가)에 가서 미꾸라지도 소라(다슬기)도 잡고, 어두침침하고 깊숙한 산속의 계곡까지 가서 가재도 잡고 윗 동네 저수지로 원정까지 가서 고동도 잡아왔습니다.
어릴 때 장난이 심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네 친구 그리고 형들과 하루 종일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 많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농사일에 늘 바쁘셨습니다. 부모님께서 논일과 밭일을 마치고 밀짚모자를 쓰고 목에는 수건을 걸치신 채로 지게를 지고 집으로 돌아오시면, 어머니께서는 늘 아버지께 등물을 쳐 주셨습니다.
아직도 업드려계셨던 부친께서 “어이 시원하다!”라는 그 소리가 들릴 듯 하네요.
연일 전기가 부족하다고 정부에서 홍보하고 있는 와중에 서울 도심에 나가봅니다.
거리에서는 양산을 쓰고 다니는 젊은 여인네들의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입니다.
도심 속에서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축구경기장에서 반바지에 축구화를 신고 축구시합을 하는 아이들도 너무 건강한 것 같고.
하지만 소금물에 열무를 절여서 열무동치미도 해먹고 미꾸라지를 좀 사서 추어탕도 해 드시고, 부추를 사서 파전을 해먹는 것도 이 무더운 여름을 건강하게 나기에는 좋은 방법인 듯합니다.
토요일 하루, 항상 건강하세요.
글 작성
백철우 베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