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자를 그리면서 신태인읍의 '남부 산악지역(?)'을 통과한 대수로는 동진강과는 조금씩 멀어지면서, 이제 거침 없이 북서쪽을 향해 달립니다.
물의 기세는 강합니다. 폭도 넓어서 20미터가 넘어 보입니다.
곧은 둑길을 걸어가기를 약 3킬로미터.
우령리 입구를 만납니다.
(위 사진 : 인교암거 출구 쪽에서 바라본 신태인읍 시가지. 높은 다리는 철로 위를 통과하는 오버 브리지 신태인육교.)
(위 사진 : 수로 둑길에서 땅을 파뒤집고 있는 여성들. 무허가 농업을 시작하려는 듯. 내가 다가가자 작업을 중단하고 딴전을 피우면서 눈치를 보았다.)
(위 사진 4장 : 폐수를 내보내는 하천. 직각으로 만나는 두 하천을 동시에 커버하는, 기역자로 꺾인 다리. )
- 우령리 -
우령리 입구에서 마을로 들어갑니다.
처음 만나는 것이 떡방앗간과 커다란 정미소.
두 집이 모두 '영풍'으로 상호가 같은 걸 보니 원래는 같은 사람이 경영했던 듯합니다.
떡방앗간은 아직 영업중인데 정미소는 이미 문 닫았습니다.
정미소를 들어가 보니 시설이 대단합니다.
지붕을 받치는 트러스는 삼각형으로 얽은 것이 일본식인데, 기계는 그 당시의 것은 이미 없고 거의 국산화된 것들입니다.
정미소 기계들을 보고 있으면 어릴 때 생각을 강렬하게 하게 됩니다.
소리소리 질러야 겨우 사람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엄청난 기계음.
그 소음 속에서도 차분하게 어느 가마니가 어느 집 나락을 찧은 것인지 기막히게 구분해내고 딱딱 정확하게 실어내는 방앗간 아저씨는 초능력자였습니다.
가끔 기계를 멈추고 '피댓줄'을 벗겨내어 왁스를 칠할 때는 "저런 일은 나도 할 수 있는데... 나 좀 시켜주지..." 그런 선망에 싸이기도 했습니다.
기계를 오래 돌리고 있으면 왁스가 엷어져 커다란 '동테'에서 미끄러져 벗겨질 수 있기 때문에 끈끈한 왁스를 보충하는 것이지요.
때로는 '피댓줄'을 X자로 교차시켜 거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두 '동테'가 서로 반대방향으로 돌도록 해야 할 때였습니다.
한참 구경하고 있다 보면 기계음에도 일정한 마디와 리듬의 반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쪼그리고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계 돌아가는 구경에 빠져 있던 시절.
"그 시절이 좋았다"고 흘리곤 하는 것은, 내 몸으로 해야 할 일도 딱히 없고 스스로 책임져야 할 걱정거리가 없던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닐까요? 다시는 그 때로 돌아갈 수 없는 안타까움 때문이기도 하겠죠.
방앗간은 비교적 최근까지 현역이었던 듯, 외벽의 진흙도 새로 이겨 바른 지 얼마 오래지 않고, 지붕 또한 말짱합니다.
( 위 사진 : 원래 목조 2층의 일본식 주택이던 것이 사무실로 변모했다. 기둥 따위가 모두 목재다. )
마을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마을구경에 시간 좀 더 보내다가 아예 이 마을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입니다.
(우령리 우항마을의 동쪽에 새로 난 마을을 동녘말이라 했나보다. 비교적 빈한한 동네였던 듯. 집들은 거의 비었고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