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어김없이 혹독한 겨울 끄트머리에 따스한 봄을 선사한다. 꽃눈을 틔우고 바깥세상
을 관망하던 벚꽃나무도 팝콘 튀겨내듯 일시에 꽃망울을 터트린다. 진달래, 개나리, 돌복숭
아도 앞다투어 고개를 내민다. 자가용의 속도에 맞추어 다가오는 산들은 각양각색의 빛깔로
출근 길 기분을 한결 북돋운다.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꽃물
든 가슴 밑바닥에서 잊고 살았던 낯선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시골 학교로 전근한지 40여일, 회색빛 시멘트를 보며 출근했던 오랜 시간만의 먼 출근길은
처음엔 힘들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일상의 즐거움으로 다가와 있다.
빈촌에다가, 결손가정이 밀집해있는 지역에 자리잡은 조그만 시골 학교가 아침 긴 여정의 도
착지이다. 열 명 남짓한 반 아이들 중 엄마 없는 아이들이 일곱 명이나 된다. 엄마의 손길
이 그리운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에게서 엄마의 냄새를 찾는다. 선생님보다 일찍 등교를 해서
는 창문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선생님을 기다린다.
습자지에 꽃물 스미듯 그 아이들이 유독 가슴에 남는 것도 하나의 편견일까? 시멘트 벽에
갇혀있던 다소 무뎌진 사명감이 꿈틀거림을 느낀다. 진정한 교사로서의 의미는 시골 학교에
서 찾기 쉽다는 말이 떠오른다. 스티커상으로 받은 색연필 한 다스를 꼬옥 보듬고 잠들었다
던 명아의 일기를 보며 가슴이 훈훈해진다.
'벚꽃이 활짝 웃으면
생각나는 사람
그것 누군가
벚꽃보다 화사한
우리 선생님'
시 쓰기에 가능성을 보이는 역시, 엄마 없는 혜수의 일기장에 쓰인 동시가 눈시울을 뜨겁
게 만든다.
퇴근길, 연둣빛과 몸을 섞는 분홍빛 벚꽃 터널 아래 차를 멈추어 섰다. 아이들과 함께 교
정에서 노닐었을 봄바람이 벚꽃나무 가지를 흔들어 남은 꽃잎 세례를 퍼붓는다. 아기의 살
결내음이 나는 듯한 여린 새싹을 들여다보며 흐르는 세월 따라 결코 퇴색되어져서는 안될 거
룩한 교사로서의 약속을 떠올려본다.
첫댓글 혜수에게 동화책을 선물하고 싶네요 하늘연달님 예쁜글을 읽으니 예뻐질라 해요^^
교사로서 첫걸음을 자그마한 시골의 중학교 1학년 여학생들을 만나며 내딛기 시작했어요. 두 달 보름 동안 얼마나 서로간에 정이 많이 들었던지 군에 입대할 때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더랬어요. 그때가 생각납니다.
애교가 넘치는 이쁜글 잘보구 갑니다.^^
엄마 냄새를 찾는 아이들.....선생님의 포근한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