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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누구는 고전음악과 클레식을 좋아하고 누구는 대중가요를 좋아하는 것처럼, 사람의 취향이란 참으로 여러 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책도 그런 것 같다. 누구는 철학서, 역사서, 인문학을, 누구는 과학서, 탐문서, 누구는 생활에 도움 되는 자기개발서를, 또 어떤 사람은 재미있다고 추리소설을 좋아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네 무덤이 침을 뱉으마!」,「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이런 말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사실 무슨 말인지 와 닿지는 않는다. “일그러진 우익의 초상 극우 파시즘의 망령에 사로잡힌 그들의 정신상태를 예리한 철학적 분석과 통쾌한 풍자로 해부한다.”고 한 책의 광고와 소개말을 보면 뭔가 다가오는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이들의 논리를 이들 자신이 내세우는 논리로 반박하려는 거다. 이게 전략이다. 이들은 제 입으로 한 말을 제 입으로 뒤집는다. 이자가 한 말을 저 자가 뒤집는데 제정신이 아니다. 좌충우돌 난리도 아니다. 내 글은 비판이 아니다. 이들은 학적 ‘비판’의 대상이 될 주제가 못 된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문학적 풍자’의 대상으로 삼았다. 책은 논문이 아니다. 난 이 책을 순문학으로 이해한다. 평론가들 관심 좀 가져 주세요. ‘나는 20세기 김삿갓’이예요. 논문과 에세이를 넘나드는 ‘포스트 모던’이예요.”저자가 머리말에서 한 말이다.
20세기 김삿갓이라니 … 그러고 보니 이 책이 처음 나온 때가 1998년, 개정판이 나온 때가 2008년이고 보면 구닥다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나는 왜 구닥다리를 잡고 있는 것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지금, 2022년 현재 윤석열 대통령, 권성동 국힘당 권한 대행, 이준석 전대표(?)... 이런 쟁쟁한 이름들이 떠올라서 그런지, 아니면 책을 쓸 당시의 그 이름들을 기억해 보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경제적 잉여의 지주적 기원을 없앤 게(토지개혁) 박정희의 작품이다. 이런 왜곡과 과장을 통해 박정희를 근대성의 유일한 탐지자로 그는 이제 위대한 부르조아 혁명가 나폴레옹이 되었다. 인생의 즐거움에 대해서는 오직 잠깐의 음주밖에 몰랐던 융통성 없는 위인이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자신의 집무실 가까이에 마련한 안가에서 때로 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그의 헌신을 그토록 전인격적으로 평가절하해야 할 이유의 전부란 말인가? 그 어떤 저능아가 이런 이유로 나폴레옹을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박정희는 나폴레옹이 아니다. 박정희가 나폴레옹이라면 이디 아민*은 알렉산드다. 나폴레옹이 안가를 차려놓고 여자를 불러 술 먹었다는 애긴 들은 적이 없다. 우리 사회의 봉건 잔재를 완전히 청산한 그 위인이 즐긴 이 봉건적 기생문화,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했던 융통성 없는 위인이 국민이 밀가루 막걸리 마시며 힘들게 벌어들인 외화로 양주를 사 마시는 융통성은 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 가혹할 정도로 엄격한 금욕과 절약을 규율했다던 그 위인이 말이다. 나폴레옹은 왜 비난하면 안 되는가?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는 순간 베토벤은 〈영웅〉이란 원고를 찢어버렸다. 또 나폴레옹을 지지했던 고야도 그의 만행을 가차 없이 고발했다. 그들은 모두 저능아였을까?
*이디 아민 : 1971년 쿠데타로 집권한 우간다 대통령,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미화하고 집권 8년 동안 50만 명 이상의 국민을 암살하고, 종신대통령을 선언하기도 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한 「조선일보」의 주장은 원시적 수준의 오류다. 잡지사 「상상」은 애초의 약속을 깨고, 내 글을 검열해서 삭제해 버렸다고 해서 이를 대중들에게 공개하는 그런 옹졸함을 허용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들이 아무 납득할 만한 이유도 대지 못하고 공식해명을 요구하는 내 요청을 거부했다는 사실도 그냥 비밀로 접어두련다. 이들이 내 원고를 삭제한 실제 이유가 “독자들이 이 글을 읽으면 ‘재들 놀고 있네’할 게 아니냐”는 편집위원회의 예리한 판단에 있었다는 사실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며, 그들을 난처하게 할 만큼 내가 남의 처지를 배려 못 하는 사람도 아니다. 게다가 ‘세상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나의 개인적 윤리관을 국가주의자들에게까지 권고할 권리는 내게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불쾌한 경험을, 이 한을 혼자 마음속에 간직한 채 그냥 무덤으로 가져가기로 한다.
이 책은 “자세히 봐야 예쁘다.”고 한 나태주의 시구 같아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이해가 쉽지 않다. 어쩌면 자세히 봐도 이해가 잘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회개와 고백, 막가파 파시스트, 이데올로기가 수없이 중복되고 단절이 아닌 절제로 자른 것 같아서 그렇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박정희를 나폴레옹화 하거나 우상화한 골통 우파들, 그들을 깍듯이 수용하는 조선일보를 비판하기 위해 그런 어법을 쓴 것이다. 이렇게 비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작가이자 예술가를 자처한 이인화가 「인간의 길」이라는 소설과 그것을 「월간조선」 11월호에 게재한 것을 비판하면서 시작된 것인데, 소설에서 ‘그(박정희)는 50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탁월한 지도자’라고 했다. 박정희는 정말로 그런 위대한 인물이고 영웅일까? 만약에 그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책은 그게 아니라는 쪽에 선 답변서라는 것이다.
이인화에 따르면, “영웅주의는… 영웅을 알아주는 국민들이 탄생하면서 시작된다.”고 하였는데, 그것과 똑같은 것이 나치 철학자 보이물러의 주장이라고 했다. 보이물러는 어느 날 히틀러의 연설을 듣고 그의 영웅적 천분을 알아보는 순간 나치가 되기로 결심했으며, 보이물러는 이렇게 말했다.
“히틀러는 악마적 인간이다. 우리는 그의 본능을 신뢰해도 된다.”
19세기 말 악마주의에 니체의 초인철학을 결합해 허정훈(이인화 소설 속의 주인공=박정희)을 “악마적 초인”으로 만드는 이인화의 멘탈리티와 똑같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비평가 진형준은 말했다.
“그는 선신이 아니라 악신이고, 한국 현대소설사에서 거의 유래가 없는 영웅주의와 악마주의의 극한을 보인다.”
이인화는 박정희 쿠데타가 ‘혁명’이었다고 우긴다. 90년대 한국 문학계를 빛낼 일념으로 문단에 등단한 조갑제가 「월간조선」에 게재한 소설의 부제도 ‘근대화 혁명가 박정희’다. 나치 역시 자기들의 운동에 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히틀러 쿠데타, 박정희 쿠데타는 정치학적으로 보면 분명 보수혁명, 즉 반동혁명(Kontarebolution)에 속한다. 그런데 왜 그들은 혁명이라 부르는 걸까? 박정희가 부르조아 혁명가였다면, 다음 두 가지를 했어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군주의 자의적 통치에 종지부를 찍는 근대법 제정이고, 경제적으로는 경제적인 잉여의 지주적 기원을 없애는 토지개혁을 했어야 한다. 그런데 박정희는 멀쩡히 존재하는 헌법을 파괴함으로써 고도의 인간적 도덕성을 표출했다고 자랑한 바 있고, 토지개혁은 박정희 작품이 아니다. 이승만이 이리저리 미루다 빨갱이가 설치니까 할 수 없이 그것도 무상이 아닌 유상으로 분배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인화는 박정희가 지도한 경제발전은 국내적인 면에서 프랑스 근대화 과정의 나폴레옹의 모습을 보게 된다고 했다.
근거 없는 확신을 우리는 미신이라 부른다. 무지 속에서 폭넓은 지식의 수용 없이 박정희 =‘신의 아들’이라는 미신은 광신이다. 이게 바로 이인화가 말하는 영웅적 확신의 본질이다. 왜 이들은 이성이나 오성을 싫어하는 걸까?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치가 대신 해답을 준다.
“대중은 이성적인 숙고의 능력이 적을수록, 더욱더 행위 쪽으로 기울어지기 마련이다.”
파시스트들의 폭력적인 신화적 세계관은 어떤 독특한 기원을 갖는다. 박정희의 영웅주의, 그의 파시스트 이데올로기는 ‘극한 현상’즉, 전쟁(6.25)의 산물이다. 이인화는 「인간의 길」에서 말했다.
“이 같은 비인간적인 상황… 인간의 길이 완벽하게 소멸된 이 극한상황 속에서 한국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영웅주의가 탄생한다. 6.25를 겪은 허정훈은 자기 자신과 국가의 생존을 향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이데올로그로 다시 태어난다.”고.
나치 이데올로기 역시 그 출신이 같다.
“국가 사회주의는 위대한 전쟁의 불과 피로부터 탄생했다…. 국가사회주의는 뒤를 향해서 우리 민족의 가장 폭력적인 행위와 희생정신,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1차 세계대전)을 향해 돌아간다.”
1차 세계대전의 경험으로 나치가 탄생했듯이, 박정희의 영웅주의는 6.25 전쟁에서 탄생했다. 그리하여 그에게 위대한 영웅시대를 낳은 6.25는 위대한 ‘철학적 사건’이었다.
나치 철학의 압권은 인종이론이다. 독일인이 가장 우수한 인종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아리아 인종의 특성을 찾아 규준화하려 했다. 물론 순수 아리아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인도 수많은 교류와 이동 과정에 형성된 혼혈 민족이다. 나치는 순수 아리아인의 특징을 특정하기 위해 ‘골상학’이란 것을 이용했다. 그 골상학을 한국인에게도 끌어들인 것이 「조선일보」고 조갑제다. 순수한 혈통, 토종 한국인의 골상학적 특성이 어떤 것인지 찾는 학문적 노력이라는 것이다. 과연 순수한 한국인이란 게 존재하는가? 만약 존재한다면 이 이상형에서 벗어나는 수많은 한국인들은 과연 누구인가? 잡종?
인류학자도 아닌 그가 한국인 인종 이론을 내세워 말한다.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한민족의 원형은 몽고족이므로 한때 아시아를 재패하고 유럽을 넘보았던 위대한 기마민족의 피를 이어받은 징키스칸의 후예답게 원대한 민족적 기상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아틀란타 올림픽 때 여자 양궁이 4강에 오른 나라 중, 두 나라가 몽골계 한국과 터키로서 활로써 세계를 정복한 기상이 아직도 살아 있다고 했다. 또 전인구의 10% 이상이 매년 해외여행을 떠나는 현상은 유목민의 성격의 발로라고 하기도 했다. 나가도 너무 나갔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이 책의 제목과 비슷하나 상반되는 이 말은 오랫동안 「조선일보」에서 일한 조갑제 선생이 낸 책의 제목이다. 그는 여기서 이인화와 달리 박정희를 의인화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찬양해서 민족의 영웅으로 치켜세우고 있다. 이를 보다 못한 진중권이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고 반격하고 나선 것이다. 이제는 책의 성격이 대략 이해되었다 싶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사람의 성격은 어릴 때 형성되고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래서 아이들이 위인전과 함께 편식하기 쉬운 장르가 영웅전이다. 박정희 어린이의 경우, 어릴 때 익힌 습성이 말똥 세 개를 달고도 변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박 대령은 일본 역사의 영웅들 이야기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오이시 요시오는 … 주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46명의 동지들을 규합한다. 이들은 눈 덮힌 산야에 주군을 죽게 했던 영주 요시나카의 집으로 돌입해 그의 목을 베고 주군의 무덤 앞에 목을 바친 뒤에 자수하여 모두 할복자살했다.”
니폰노(日本の) 시노비가꾸(死の美學), 에이유수기(英雄主義)로 각색된 이런 위인전들이 어린이들에게 어떤 정서적 영향을 끼치는지는 이 증세로 고생하는 한 피해자가 이렇게 말했다.
“소년은 권력, 군대, 정복, 지배, 남자다움을 동경하게 된다.”
이러한 폭력성이 어린이들의 정신세계를 사로잡으면 이미 교화는 불가능해진다. 반에서 급장을 지냈던 박정희는 완장의 위세까지 부렸는데,
“박정희가 급장을 지냈던 3학년 때부터 6학년까지 급우들 가운데 그로부터 맞아 보지 않은 아이들이 드물 정도였다.”
이때 버릇은 평생을 가게 된 것이다.
“특히 어머니의 어릴 때 사랑은 박정희가 성장하여 숱한 난관을 뚫고 나갈 수 있도록 한 용기와 의지의 원천 … 학업에서는 바닥을 기고 … 군사훈련과 체육에는 열성적으로 참여 … 박정희는 ‘아이구치’라고 불리는 작은 칼을 갖고 다녔다 …
대구사범이 대구고보 운동장에서 축구시합을 하여 1:0으로 대구고보에 이겼다. 응원 나왔던 대구고보의 주먹들이 화가 나서 …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박정희가 붕대로 주먹을 감더니 아이구치를 꺼내 들고 ‘한판 붙자’고 나서자 …”
박정희가 대통령을 지냈던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대한민국의 살벌한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못된 싹은 이렇게 일찍부터 싹트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릴때부터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렇게 아들이 못된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데도 부모 형제들로부터 귀여움을 듬뿍 받고 자란 것이 박정희였다. 박정희가 보통학교 4학년 때였다. 자신의 자취방에 놀러 온 김삼수와 의형제를 맺는 의식을 치른다.
“먹물 먹인 실을 바늘에 달고 팔뚝에 약간 꿰면 평생 지워지지 않는 문신이 되지요. 우리는 서로 오른팔에 문신을 새기고 팔을 걸고 맹세했지요.”‘당장 댁의 자녀의 팔에 혹시 좁쌀만 한 푸른 반점이 있는지 보라. 만약 있다면 학교가 아니라 심리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특수학교로 전학시켜라’저자의 충고다. 사나이 박정희의 공산당 시절 애기다.
“박정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군내 남로당 조직원들의 이름들을 많이 털어 놓았다. 특히 … 사관학교 내의 남로당 세포들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이때 이름이 털린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 죽었을까? 어쨌든 구차하게 제 한 목숨 구하려 동료를 배반하다니, 앞에서 본 할복자살 애기책을 읽고 ‘감동’먹었다는 것도 결국 헛감동이었던 셈이다.
조갑제는 박정희의 인간관계가 우정어린 구타로 끈끈하게 맺어진 장면을 생생하게 중계해 주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조갑제 기자가 현장에 나가 있다. 현장 나와 주세요.
“기골이 장대한 방원철은 주먹으로 따귀를 갈기기 시작했다. 김재풍은 앞으로 쓰러졌다. 그러나 박정희는 달랐다. 주먹을 받고 몸이 앞으로 밀렸다가 금방 원래 자세로 돌아와서 딱 버티고 서서 다음 타격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타격이 가해질 때는 옆으로 혹은 앞으로 쓰러짐으로써 충격을 완화하는 게 좋다. 하지만 박정희는 달랐다. 용수철처럼 딱 버티고 서서 충격을 흡수했다. 어찌 휴유증이 없겠는가. 이런 사람은 두뇌 중추부의 판단능력에 장애가 생겨 사물의 용도 파악에 상당한 지장을 받게 된다.
우리나라 역사에는 유난히 군인 출신 정치가가 많았던 불행한 사태도 따지고 보면 이 착란증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케이스는 1980년 광주에서 보고된 바 있다. 난동에 참여한 한 군인의 수기를 보면, 그는 “우리는 시민군에게 당했다.”고 했다. 정신적 판단능력 교란으로 피해자와 가해자를 혼동하기에 이른 것이다.
박정희도 어린 시절 자아정체성 문제로 상당히 고생했다고 한다. 가령 친일파 → 공산주의자 → 파시스트로 시시각각 변하면서 자기가 충성해야할 국가와 민족을 여러 번 바꾸었다. 그는 그것이 번거롭고 귀찮았는지 나중에는 도착증적으로 해결하려 한다. 자기를 변수가 아닌 상수에 놓은 것이다. 이로써 ‘내가 곧 국가’라는 정신착란이 시작된다. 그는 군정이 공화국(3공)이라고 착각을 했는데, 이 착란증은 이미 그가 만주벌판에서 독립군 때려잡던 시절의 모방 충동에 뿌리를 둔 것이다.
20세기 후반 일제의 괴뢰정부인 만주국을 모방한 것이 바로 우리 현대사의 불행이었고, 그 불행의 단초는 이렇게 아주 사소한 소아병적 경향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세상에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며 헌법을 이리저리 뜯어고치고 부정선거를 해가면서 18년이나 해 먹었던 그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있다.
“이승만에겐 동정할 여지가 전혀 없다. 12년이나 해 먹었으면 그만이지 4선까지 노려 부정선거를 했다니 될 말이기나 하오. 우선 자기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이 돼먹지 않았어요.”
‘두뇌 손상이 이 정도면 더 이상 가망이 없다. 쓸데없이 의사 찾아다니느라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저자가 말한 것은 일단 우익 소아병에 걸린 환자는 주위 사람을 괴롭힐 뿐 아니라, 본인 자신도 괴로움을 겪는다는 데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라고 한 증상으로 평생을 고생한 환자의 처절한 유언이 있다고 하는데, 서울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의 중언이 그것이다.
“이화여대 강당에서 열린 기독교 교육자 대회에 참석한 박의장은 축사를 통해 ‘나도 주일학교에 다녔는데 요사이는 다니지 않고 있다. 여러분들이 교육을 잘해 주어서 나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하더라”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교육을 잘해 주어서 나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해달라.”는 이 말뜻은, 문제는 교육이라는 것이다. 아동기의 올바른 정서교육을 통해 박의장의 소원대로 다시는 이 나라에, 우리 조국에, 그와 같은 불운한 군인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박정희 역사관은 본질적으로 일제 식민사관(조선시대 양반문화에 대해 일면적으로 부정하는 태도, 해석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 사학자들이 학문의 객관성을 위장하느라 오래도록 참고 참았던 애기다.
“조선의 국정이란 우리나라에서 정한론까지 대두할 정도인데도 여전히 쇄국양이(鎖國洋夷)의 방침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먹을 수밖에 없었다. 정한론을 부르짖고 있는 때 너희는 문을 걸어 잠그고 있지 않았느냐? 너희는 자력으로 문호를 개방할 능력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앞선 우리 일본이 너희를 근대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다른 대안이 없었다. 오늘의 한국을 만든 게 누구인가? 일본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감사해라. 박정희 소년은 이런 걸 읽고 자신의 역사관을 형성했고, 이인화는 또 그걸 써먹었다.
“이러한 열망이 사회 어떤 영역에서도 구체적인 출구를 발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열망에 부응할 국가 개조의 과제는 … 군인에 의해 착수되어야 했다. 다른 대안은 없었다.”
군부독재 시대의 학교를 생각해 보자. 시커먼 제복에 빡빡 깎은 머리, 국민교육헌장 암송, 국기에 대한 맹세, 시도 때도 없는 노력동원, 군대식 경례, 복장단속, 구타, 기합, 제식훈련, 총검술, 검열, 원조 일본에도 없는 이런 교육제도를 20세기 후반까지 온존히 유지, 발전시킨 게 대한민국의 극우 파시스트들이다. 이것들을 대체 어디서 배웠을까? 식민지 시대 군국주의 일본의 파시스트 교육을 본 딴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박정희가 자랑한 「국민교육헌장」은 일제의 「교육칙어」를 베낀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박정희! 하면 당장 떠오르는 이 노래와 함께 논에 들어가 모내기하는 흉내를 냈던 밀짚모자 대통령 모습이다. 흔히 박정희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하는 〈새마을 운동〉은 어디에서 비롯된 발상인지 조갑제가 말한다.
“운동의 이념이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이 자조·자립·협동, 충효애국이고, 그것의 집약적 표현이 국민교육헌장이었던데 대해서 우가키 총독의 농촌진흥은 자립·근검·협동공정, 충군애국과 교육칙어였다.”
조선 좌익의 준동을 막기 위해 우가키 총독이 실시한 ‘농촌진흥’운동이 바로 ‘새마을운동’의 모태라는 것이다. 그 요란했던 새마을 운동은 일제 군국주의 파시스트들이 더러운 정치적 목적으로 실시한 농촌개혁운동의 연장 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폭동, 사태, 소요, 소동, 난동, 광란, 시위, 데모, 지랄, 이런 것을 정치학에서는 ‘혁명’이라고 부른다. 시민계급이 민중과 연대하여 봉건귀족과 연합한 독재자를 몰아내는 ‘근대화 혁명’이 그것이다. 6월항쟁이 프랑스 대혁명에 비유될 수 있다면, 한국의 근대화 혁명은 4.19에서 시작하여 79년 박정희의 몰락을 가져온 부마항쟁, 80년 광주항쟁, 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운동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사기는 그만 치는 게 좋겠다. 민중의 근대화 혁명의 공까지 훔쳐 가겠다는 그 뻔뻔한 인간을 전문용어로 생도(生盜), 날도둑놈이라 부른다.
파시스트들은 강인한 체력을 가진 남성상을 이상적으로 보았는데 이에 비해, 이상적인 여성상은 생물학적으로, 자연법칙에 맞게 강한 남성에게 복종하고 생물학적 특성에 충실하게 집에서 가사를 돌보며 애를 낳아서 잘 키우는 여인으로 보았다. 파시스트 예술에 등장하는 여인은 수동적이며 순종적인 특성을 보인다. 사회적 특성보다는 생물학적 특성이 강조된것이다. 그들에게는 사명 빼면 아무것도 없다. 남자는 태어나기 전부터 일률적으로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떠맡긴다면, 여성에게는 이처럼 민족을 중흥시킬 인물을 낳아서 키울 사명을 뒤집어 씌운다. 이런 작업은 이후 이문열이 했는데 그에 앞서 조갑제는 말했다.
“영웅을 만드는 것은 훌륭한 어머니다.”
파시스트들이 역사에도 관심을 갖는 건 학문적 동기에서가 아니다. 그 바탕에는 시커먼 정치적 속셈이 깔려있다. 이인화, 조갑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우리의 민족사를 제멋대로 주무른다. 민족사를 자기들 취향대로 재단해서 자기들 것으로 만든 후에 이를 자기들이 역사적 정통성을 가진 민족사의 계승자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다. 이문열의 「선택」과 이인화의 「인간의 길」같은 소설을 폄하하는 건 ‘서구문화의 주변화 책략’이고, 서구 제국주의의 앞잡이 노릇이라는 것이다. 이미 나치가 수십 년 전에 써먹었던 수법이다.
박정희를 영웅시하거나 존경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조국 근대화를 이끈 사람으로 장기집권의 야욕만 없었다면 우리나라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아니었겠느냐고 막연히 생각해 오던 나로서는 이 책이 여러 가지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우리 근대 역사를 다시 보는 것 같은 긍지는 생긴다.
앞에서도 살펴보았지만 20세기 말에 쓰진 이 책을 지금 읽는 것이 무슨 상관이겠느냐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에서 돌아보면 21세기도 한참 지난 2022년 현재의 정치 상황을 엿보는 데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고 또 앞으로 몇 년 뒤에는 오늘의 역사와 지도자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궁금한 마음은 없지는 않다.
[이순신과 박정희]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기 전에는 전국 국민학교 교정에는 ‘반공소년’이승복과 나란히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이 두 개의 동상은 박정희 정권의 상징이었다. 이승복 동상은 파시스트들의 광신적 반공주의를, 이순신 동상은 역사를 제멋대로 각색해 만든 국가주의 이념을 상징한 것이었다. 천진난만하기만 한 어린아이들에게 입이 찢어져도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라 가르치고, 이순신은 박정희가 ‘민족의 태양’이라고 가르친 파시스트 국가주의 이념의 상징이었다.
이 헤프닝을 거슬러 올라가면 경상도의 한 소년은 위인전과 영웅전을 좋아했다. 당시 신문에 춘원 이광수의 「이순신」이 연재되고 있었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이광수가 이 소설을 진정으로 그리고 싶어 했던 것은 왜적과 용감하게 싸우는 이순신이 아니라 문약하고 시기심 많은 선비 정치인들에 의하여 당하고 마는 비극적 군인이었다.”는 것이다.
이 소년이 자라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는데 물론 여기에 반발이 없을 수는 없었다. 대개 지식인들이었으며, 이런 상황 속에 그를 위로해 준 건 그가 어린 시절에 읽었던 바로 그 소설이었다. 소설 속 ‘비극적 군인’은 마치 자신을 가르킨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년은 이순신을 alter ego, 즉 자기 자신의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주문자의 요구로 영웅주의가 채색되었고, 허구와 과장이 뒤섞이자 이순신은 졸지에 인간을 넘어선 신적 존재가 되었다. 그냥 영웅이 아닌 신성한 영웅 ‘성웅’이었다.
이제 영웅주의로 채색된 구리동상 이순신은 자기 혼자서 모든 왜적을 물리치고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했다고 자랑한다. 명나라 군대는 쌀만 축내는 존재였고, 조정은 놀거나 피난 가기에 급급했고, 원균은 모함하는 장수였고, 간신의 모함을 받아 백의종군을 회상하는 대목에서는 원통했던 나머지 자제심을 잃고 자기를 모함했던 문약하고 시기심 많은 선비정치인들에게 무한한 분노를 터뜨렸다.
영웅 이순신전을 덮으면 책 밖엔 박정희가 있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밤잠을 설치고, 강력한 지도력으로 북괴의 도발을 저지하고, 오직 조국 근대화 하나만을 위해 달리고 있는 영웅, 그런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오직 한 사람뿐이라고 했다. 미국은 쓸데없이 참견하고, 경제는 혼자 다 발전시키고, 야당과 학생들이 데모를 하거나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을 보면 문약하고 시기심 많은 선비정치인들에게 무한한 증오와 경멸의 말을 퍼부었다. 그때 우리들은? 우리가 뭘 알겠는가 그저 열심히 일하고 노래나 불러야지. 오! 충무공 민족의 태양이시여!
지난 2월에 운명을 달리한 이어령 선생은 “이제까지 이순신 장군의 삶을 극대화한 작품들이 실패한 이유가 그를 너무 영웅적인 인물로만 묘사한 데 있었다.”고 했다. 결국 오래 전 현충사에서 공연되었던 오페라 〈이순신〉도 박정희가 만들어 세운 구리 이순신이었다는 것인데, 죽은 박정희가 드리운 그늘에서 우리 사회가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영화 〈맹랑〉의 성공은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박정희를 영웅과 초인으로 묘사한 이야기는 또 있다. 조갑제, 이인화, 이문열 ‘이들이 만약에 정권을 잡는다면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조갑제 소설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국장 영결식이 중앙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 이때 국립교향악단이 연주한 교향시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다. … 독일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이 곡은 … 철학자 니체가 쓴 같은 이름의 책 서문을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조갑제는 생각했다. 혹시 박정희=초인? 신이 난 조갑제는 이 곡을 선택한 … 국립교향악단의 … 상임지휘자에게 달려랐다. “짜라투스트라가 뭐라고 말했데요? 박정희가 초인이랬죠? 맞죠?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분 왈.
“박 대통령과 초인의 이미지를 연결시켜서 생각하고 말고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곡을 연주한 것뿐입니다.”
이들의 사상적 아버지인 텐노헤이까의 미고토노리(말씀)를 빌리면, “오, 짐은 통석의 념을 금할 길 없노라”이건 짐의 외교적 입장인가?
위키백과에 이문열의 「선택」에 대해 여성=어머니로 등치되다 보니 아이를 안 낳는 여성은 본성이 배반자가 되는 이문열을 정의의 법정에, 인류의 배반자로 고발한다고 저자는 말했다. 이문열의 말이다.
“그것은 … 출산과 육아 자체를 거부할 명분은 되지 않는다.”
그는 여성들이 자기 배(腹)의 주인이 될 권리를 부인하고 제 것 아닌 남의 배에 대해 주제넘게 왈가왈부한다. 제 말대로 애를 낳고 안 낳고는 여성들이 알아서 결정할 문제다. 그런데도 그는 여성이 ‘출산과 육아’를 거부하는 데에 자기가 납득할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모양이다. 이상한 성격이다. 나치도 그랬으며 심지어 협박까지 했다.
“독일제국은 장래 민족공동체의 불완전한 분자로서 결혼을 했든 또는 하지 않았든 간에 아이가 없는 여성을 주시할 것이다.”라고.
우리 조상들은, 여인의 존빈(尊賓)되시는 군자께서는 여인들이 ‘서책 한 번 못 펴고도 하루해가 짧을 지경’으로 ‘안채와 부엌’에서 일생을 보내는 동안 어떤 일을 하셨을까?
맑은 냇물에 두 발을 씻고
푸른 소나무 아래 바람을 쐬네
마음에 바깥 생각 전혀 없으니
구름 또한 한가로운 모습이구나.
이문열이 자랑하는 소설 「선택」은 가문을 통한 자아의 확대 논리를 내세운다. 자아를 없애는 게 곧 자아를 확대하는 길이라는 거다. ‘죽는 게 곧 사는 것’이런 논리를 논리학에서는 ‘모순’이라고 부른다. 사람을 죽여놓고 영생을 선사했다고 생색내는 격이다. 그는 여성이 차별을 당해도 마땅한 이유가 결국 ‘허무’와 ‘고독’때문이라고 했다. 잘 나가다가 정말 ‘허무’하게 만든다. 이문열의 애기다.
“순절을 포상해 세워지는 열녀문과 비각은 시집 가문의 영예일뿐더러…
친정집의 자랑이기도 해서 순절은 양가 모두에게 장려되었다.… 순절은 가문의 명예를 더함과 아울러…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어서 시집의 방조 또는 은근한 협력 아래 이루어지기 일쑤였다.”그리고 또,
“내게는 순절이 그릇된 이념화의 희생이라 해도 감동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최고의 작가라고 떠들고 있으니 … 아무리 생각해도 우습다.
「선택」에서 주의할 점은 또 있다. 멸문의 화를 당한 사육신 하위지(河緯地)의 조카 원(源)을 구해낸 충성스런 비복(婢僕)의 감동 스토리다. 금부도사가 하위지의 가솔들을 끌고 갈 때 여종이 자신의 아이와 주인집 아들을 바퀴치기 해 주인의 아들을 살려냈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에 피를 토할듯한 충성에 감복하고 … 바꿔치기를 생각해 낸 그 기지를 칭찬했다. 그러나 내게는 왠지 그렇도록 비복을 돌본 선생의 인품이 먼저 떠올랐고 아울러 진정한 주종관계란 어떤 것인지를 따져보게 해 주었다.”
이렇게 말한 이문열은 ‘진정한 주종관계’라는 말로 조선시대 5백년동안의 야만적 착취와 사회적 모순을 슬쩍 덮어버리고, 한술 더해 주인이 평소에 오죽 잘해 주었으면, 비복이 제 핏줄을 바쳐 주인 아기를 구했을까하고 호들갑을 떤다.
고대 노예사회에서는 남자가 부인의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었고, 봉건제 사회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머슴이나 하인처럼 부렸다. 근대사회는 법적으로 남녀평등권이 생겼으나, 경제권을 쥔 남자가 실질적인 결정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렇듯 남녀 관계가 사회관계의 거울이라면 나치와 이문열, 이들의 시대착오적인 가부장주의 선전이 그들의 정치적 프로그램과 관계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인다. 그들은 진정한 주종관계를 조작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명가(名家)에서, 바람 부는 몽골벌판에서, 수신(修身)한 그 양반들을 이문열은 가부장제로 찬양하고, 마초들에게 제가(齊家)의 필요성을 설교하면서, 이인화는 스케일을 한 차원 높여 어버이 박정희 치국(治國)의 도를 찬양하고, 조갑제는 칭기스칸의 후예로 대한 남아들이 몽골벌판을 마구 달리며 평천하(平天下)할 그 날을 야무지게 꿈꾼다. 일본 제국주의가 일본을 남편에, 조선을 아내에다 비유했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제국 찬미자 미시마 유키오가 ‘남성의 아름다움’운운하며 좌익들은 남자의 아름다움이 없다고 하고 그래서 우익에 선다고 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최소한 동물들은 ‘양반’이라고 부르지 않고 해괴한 수컷들처럼 그까짓 ‘시집 가문의 명예’때문에 암컷 더러 죽으라고 ‘장려’하거나, ‘방조’하거나, ‘협조’하는 치사한 짓은 하지 않는다. 오죽 답답했으면 호랑이가 거름통에 빠진 양반을 질타하려 박제가 될 위험을 마다 않고 산을 내려왔겠는가? 인류사 진행이 중단 되는 걸 우려하는 숭고한 시간을 갖는 틈틈이 가끔 짬을 내어 이 영물(靈物)이 제 식단에는 왜 ‘양반’을 제외했는지 그 깊은 뜻을 헤아려 보아야 할 것이다. 영양학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위생학적 이유에서 말이다.
일본은 민주주의를 선물 받았는지 모른다. 우리처럼 민주혁명의 경험이 없어선지 그 나라 국민들은 정말 잘 길들어져 있다. 정치문화의 후진성은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다. 국민이 열심히 투표해도 수상은 이상한 누군가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래서 선진국 수준의 경제력을 갖고도 저 모양 저 꼴로 사는 거다. 은행에서 거액을 대출해 주는 일이 서류 한 장 없이 술집에서 사케 마시며 이루어지고, 야쿠자한테 돈을 꿔줘 은행이 날아가고, 회사 속 인간이 되어 과로사 하면서까지 회장님께 효성을 다하고, 회사 옮기면 배신자 취급받고, 유럽으로 유희를 가서 몇 주 동안 자리 비웠다가 돌아오면 의자가 치워져 있을 거란다. 그래도 찍소리 않고 잘 산다. 어디서 파업했다는 소리 못 들었다. 인터넷 통해 들어간 어느 웹사이트 규칙이란 게 ‘생리 중인 여자는 포스팅하는 거 금지’란다. 이것이 선진국 일본의 수준이다. 조갑제는 이런 일본인의 말을 인용하고는 본받잔다.
“보통 일본인들도 개인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이 충돌하면 일단 회사를 위해서 참아야 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지난 2주 동안 거론하기도 이상한 책을 읽었다 싶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이상한 시대를 아무 거리낌 없이 잘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이런 노래와 맹목적으로 왠 ‘국민교육 헌장’과 반공을 국시로… 하는‘혁명공약과 교련훈련을 받는 동안에 더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지혜를 배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2022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