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主의 나라와 그 義를 위하여
주일날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은혜를 사모하여 주의 전으로 달려 나왔다.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이 그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에
주님의 사랑이 그 사람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스스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없는 것이다.
마치 달이 태양빛을 반사받아서 밤을 밝혀주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주님도 이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는데,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에서 그 사실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까딱 잘못하면 主客이 顚倒될 수가 있으니 우리는 확실하게 알고 짚고 넘어갈 것은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왜 사람이 믿음이 적어지는가?
주의 은혜를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에 확실하게 그리스도의 은혜에 붙잡히거나 사로잡힌 자는 이상한 행동을 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견고한 믿음에 굳게 서야하는데, 베드로의 사정에서 우리는 잘 알 수가 있다.
또한 오순절날 다락방에서 120여 聖徒가 기도할 때, 성령이 불의 혀같이 날름거리며 임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반신반의하여 핍박을 가하는
로마병정들과 유대인들의 제사장들과 그 권속과 下率들을 피해서 몹시 두려워하고 떨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성령을 받고 나서는 담대한 복음의 증거자가 된 것을 보아도
성령으로 충만해야만이 사실 복음도 전할 수가 있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전도해라,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입으로 강조해도 그것은 口頭禪에 불과할 따름이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되면 누가 전도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 속에서 중심에서 복음을 외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지기 때문이다.
사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능력있는 자들이
주께서 받아서 복음을 힘있게 증거한 결과 오늘날 전세계에 퍼졌고,
영혼 구령의 사명은 지금도 계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간구해야 할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해지지 아니하면 세상 것이 틀림없이 침투해 들어오게 되고,
그러면 우리는 맥빠진 사슴마냥 주저앉고 말 것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름을 받았다.
그 부름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주님의 좋은 가지로서 구실을 못할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노릇이다.
왜 그럴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열매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라서 바깥에 버린다고 했고,
외인들은 그것을 주워다가 불사른다고 했으니,
우리는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접목된 가지로서 열매맺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도 성령으로 충만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성령충만하지 않는 것이 바로 죄인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아니하면 효과적인 복음 전도 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생활이 활기가 없어져서 미지근한 상태가 될 뿐이다.
이러한 상태는 주님이 토하시겠다고 했으니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야되는 이유가 또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죄악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복음을 효과적으로 증거할 수 있는 증인이 되며,
모든 것을 주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 며칠 남지 않은 1900년대의 末尾에서 우리는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어제보다는 나은 현재 그리고 현재보다는 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전진하고 나아갈 만반의 준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世末을 보내는 우리의 반성과 회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 교회의 많은 職分者들을 세웠다.
다 열심히 충성할 것이라고 믿고 주님의 이름으로 任職을 했는데,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는데,
얼마나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고 헌신할 것인가?는
각자의 노력과 열심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열심을 다하는 충성된 종들에게 지혜와 능력과 힘을 주시고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명철도 틀림없이 허락하실 것이다.
세상이 나날이 헷갈려도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 믿음의 절조를 결코 바꾸거나 變易 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는 平康이 임한다. gaeg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