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은 한글의 날이 있는 달이다. 그런데, 인식도 못하는 사이 그날은 후다닥 지나가버렸다. 한글의 날에,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날을 맞을까. 물론 대부분이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하겠지만, 이렇게 지금 이 순간도 읽고 있는 '한글'에 대한 고마움을 너무 오래전에 잊은 것은 아닐까?
과거에 휴일이던, 꽤나 크게 기념했던 날이, 지금은 그저 까만 날 옆에 덤덤한 '한글의 날' 표시만 되어 있을 뿐이다. 꼭 휴일로 지정되어야 그 날을 의미 있게 기리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세계적으로 그 우수함을 널리 인정받고 있는 이 '한글'의 소중함을 우리는 너무 등한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세계화가 한글 잡네
지난 9일 한글날을 맞아 '우리말 지키기 겨레모임'이 우리말 훼방꾼의 하나로 ‘서울시’를 선정하여 눈길을 끌었다. 버스 옆면에 색을 뜻하는, B(blue), G(green) 등의 알파벳을 큼직하게 달고 다니게 했고, ‘세계화’를 표방한다는 취지 아래 공식포스터에 떳떳하게 영어를 섞어 사용했다는 등의 이유다. 우리말 보호에 앞장서도 시원찮을 형편에 이런 행동을 보면, 서울시가 우리말 훼방꾼이란 불명예스런 평을 얻은 것이 무리는 아닌 듯 보인다.
외래어의 무분별한 사용, 외국말로 모자라 ‘외계어’까지 등장해 우리말의 파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발표된 ‘우리말 훼방꾼과, 지킴이’ 선정은 더 눈길을 끌고, 의의가 있다. 그런데, 한나라의 수도가 그 나라 말의 훼방꾼이라니,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말 오염을 이끄는 것으로는 늘 인터넷과 텔레비전이 언급되어 왔다. 인터넷의 채팅용어와 온라인 소설, 그 속의 이모티콘과 외계어의 무분별한 사용들. 텔레비전에서의 은어, 비속어 사용들이 교육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며 한글 파괴에 일조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번 ‘우리말 지킴이’ 선정에서 한 텔레비전 프로가 선정돼 눈길을 끈다. 5분 혹은 10분단위로 지나치듯 방송되는 이전의 한글교육 프로와는 달리, 퀴즈형식으로 재미와 공익성의 모두 달성한다는 평을 받고 있는, KBS 2TV <우리말 겨루기>가 그것이다.
익숙한 한글, 퀴즈로 색다르게 느끼기
매주 수요일 7시. 가족들이 저녁식사를 하거나, 식사를 끝내고 도란도란 텔레비전 앞에 모여 있을 시간 즈음, KBS 2TV <우리말 겨루기>는 시작된다. 우리말 사랑으로 유명한 정재환과 귀여운 웃음으로 차분하게 방송을 이끌어가는 서민정이 그 진행을 맡고 있다.
총 5단계로 점점 난이도가 높아지는 퀴즈를 가족 또는 친구와 함께 2인이 한조를 이뤄 문제를 풀어가는 형식이다. 각 단계마다 상금이 걸려있고, 5단계까지 모두 맞추면 우리말 달인이라는 명예와 함께 1000만원이라는 큰돈이 상금으로 지급된다.
이 프로의 장점은 시간제한 내에 단계별로 문제를 푸는 출연자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청자들도 문제를 풀어보게 된다는 것에 있다. 퀴즈형식이라 ‘긴장감’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어 여느 퀴즈프로그램 못지않게 오락성이 뚜렷하다. 또한 우리가 늘 사용하는 말들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재미와 함께 교육적으로도 유용해 두 가지 토끼를 동시에 잡는다는 긍정적 평을 받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본 뒤에 늘 쓰는 말인데도 그 정확한 맞춤법을 몰랐었다며, 그런 표현들을 알게 되는 것들이 신기하면서도 흥미롭다는 시청자 평이 많다.
예를 들면, ‘엉뚱하다’의 정의를 나타낸 문장의 빈칸 채우기 같은 문제는 우리가 매우 자주 사용하는 말이지만 그 정의 설명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 이상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우리말 끝말잇기, 띄어쓰기 등 참신하고 그리 어렵지도, 쉽지도 않은 적정한 수준의 문제들이 시청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으며, 가족이 함께 시청할 수 있는 유익한 ‘가족’ 프로그램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진행자들의 편안한 진행도 이에 한몫 한다.
정재환과 서민정은 요즘 대부분의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개성을 지나치게 표출하며 방송을 이끌어가는 여느 연예인과 다르다. 출현하는 이들을 편안하게 배려하며 퀴즈 진행을 이끌어 가는 모습이 몇 년은 이어져온 ‘장수’ 프로그램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출현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가족이거나, 절친한 친구사이, 사제지간이어서 방송분위기는 내내 화기애애하다. 억지로 가족, 친구 간 우애와 사랑을 보여주려는 인위적인 시도 없이도 이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자들 간의 믿음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우리말 겨루기>는 요즘처럼 한글이 위협감을 느끼고 있을 때, 우리말 지키기에 앞장서 함께 하겠다고 당당히 말한다. MBC <우리말 나들이>와 EBS <우리말 우리글> 같은 좋은 우리말 관련 프로그램이 많았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외면당하기 일쑤였고, 이런 프로그램들은 시청률 저조의 이유로 개편이 되면 사라져 있곤 했다. 이에 반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우리말 지킴이로 활약하는 KBS<우리말 겨루기>의 선두행진은 오래오래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처음에는 외국의 프로그램을 모방한 것은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었다. 미국의 ‘휠 오브 포천(Wheel of Fortune)’과 진행방식이 너무 유사하다는 비난이 있었다. 이에 피디는 어느 정도 프로그램의 방식을 차용한 것은 있지만, 그것을 표절한 것이라는 오해는 지나치다고 밝힌 바 있다.
음절로 단어나 구절을 맞추어가는 형식이라든지, 상금을 지급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한글과 영어 자체가 다르고 이미 한차례 진행방식을 바꾼 <우리말 겨루기>가 앞으로도 부족한 점은 보완하여 더욱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보다‘우리말’을 재미있고 유용하게 전달하는 참신한 방식으로, 계속해서 두 마리 토끼를 우리에게 전달해주기를 기대해본다. |